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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 이야기-예화

대신 죽으신 분 -예화모음

작성자김종민|작성시간03.10.05|조회수2,074 목록 댓글 0
대신 죽으신 분

브라질 산호세의 캄포라스라는 도시 근처에는 이상한 시설이 있다. 이십 년 전, 브라질 정부는 교도소의 운영을 두 명의 그리스도인에게 맡겼다. 그 건물은 휴마이타라고 개명되었고,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두고 운영되었다. 오직 두 명의 전임 직원을 제외하면, 모든 업무가 수감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척 콜슨은 그 교도소를 방문한 후에 다음 같은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나는 휴마이타를 방문하였을 때 모든 수감자들이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를 안으로 들여보낸 사람은 살인을 저지르고 잡혀온 사람이었다. 내가 어느 곳을 가든지 사람들은 평온해보였다. 안내자는 나를 예전에 죄수들을 고문하던 작은 독방으로 인도하였다. 지금은 단지 한 사람만 갇혀 있다고 말했다. ‘정말로 들어가보고 싶으세요?’ ‘물론이지요.’ 그는 천천히 육중한 문을 열었다. 나는 그 독방에 있는 죄수를 보았다. 휴마이타의 식구들이 아름답게 조각해놓은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 교도소의 유일한 죄수인 예수는 그 십자가에 달려 있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남은 형기를 채우고 계십니다.’ 안내자가 조용히 말했다.” 죄의 감옥에서 석방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죄의 형벌을 누군가가 다 갚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속은 갈보리에서 이미 있었다.

은혜를 만끽하는 비결 / 맥스 루카도



값싼 은혜

텍사스 주 어느 작은 마을에 내가 아는 목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그 마을에 사는 어느 늙은 여자를 심방하러 갔었다. 그 목사는 여러 해 동안 그녀를 한번도 보지 못했었다. 그는 그녀에게 복음을 전했다. 말하는 동안 내내 미소만 짓던 그 부인은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나는 12살 때 교회당의 복도를 다녔습니다. 여러 해 동안 교회에 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번 구원받으면 항상 구원받은 상태에 있다’라는 말을 믿는답니다.” 이것은 은혜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가 지닌 위험성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은혜에 관한 말씀을 듣고 잘못된 결론을 내린다. 구원은 선물이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을 때, 사람들은“좋습니다. 나는 그것을 받겠습니다. 하나님, 하늘에서 만나요”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결단’을 내린 후에도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변화가 전혀 없다. ‘값싼 은혜’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은혜요,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요, 십자가의 길을 따르지 않는 신앙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은혜는 그의 아들을 값으로 치르신 은혜이기 때문에 매우 값비싼 것이었다.

두 진리 사이에서 / 클라인 스노드그래스


열려 있는 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형벌을 면제받으며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복귀되어진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성령님을 보내시어 인쳐주신다. 하나님의 해방령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온 세계에 선포되었다. 그 사면장은 이미 만민에게 발부되었다.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된다. 해리 호디디는 이름난 탈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미국에 있는 어떠한 유치장에서도 탈출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사실 간 곳마다 탈출에 성공했다. 그런데 한번은 그가 탈출을 하지 못하고 경찰서의 유치장에 감금되었다. 다들 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허리띠에 가지고 다니던 가늘고 단단한 철사를 꺼내어 열쇠 구멍에 넣어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는 여러 번 시도하다가 너무 지쳐서 문에 기대어 쓰러졌다. 그러자 문이 열렸다. 그 문은 잠겨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잠그지 않은 문을 어떻게 열쇠로 열 수가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죄악에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 문을 열어놓으셨다.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오기만 하면 된다. 그 문은 아무도 닫지 못하며 아직도 열려 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 그리하여 참 제자가 되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라.

세월의 흔적 / 조효훈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로마의 황제가 한 원로원의 집에 만찬을 위한 초대를 받게 되었다. 종들은 조금도 쉴틈없이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늙은 종이 정신 없이 일하다가 응접실에 놓여 있는 값비싼 자기 하나를 깨뜨리고 말았다. 주인은 그 종을 끌어내어 연못속에 집어넣으라고 하였다. 그 연못에는 악어가 살고 있었다. 종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용서를 구했으나 주인은 완강하였다. 그 가보를 깨뜨리는 사람은 악어의 밥이 되게 하는 것이 그 집에서 정해놓은 규례였기 때문이다. 황제가 종을 용서해주라고 했다. 그러나 원로원은 자기 집의 가율이라는 핑계로 거절했다. 그러자 황제는 또 다른 가보인 자기를 일부러 깨뜨렸다. 그리고는 주인에게 말했다. “나도 이 집의 가보를 깨뜨렸으니 저 종과 함께 연못 속에 던져 나를 죽이라!” 그러나 아무리 그 집의 가보를 깨뜨렸다고 해도 황제를 죽일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원로원은 그 종을 용서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서 구약의 법대로 따져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같이 되시고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심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내일이 무엇이니? 영생이 무엇이니? / 박상훈


교회의 위대함이 증명될 때

몇 세기 전에 동방의 호전적인 어느 왕이 자신의 무적의 군대를 이끌고 어린 추장 아부타버의 영토에 이르렀다. 이 왕은 아부타버의 용맹성에 대해 익히 듣고 있던 터라 죽이는 대신 평화의 사절을 보냈다. 아부타버는 그 제안을 듣자 한 병사에게 단도를 주면서 “이것을 너의 가슴에 꽂으라”라고 명령했다. 그 병사는 명령대로 그 칼을 가슴에 꽂았다. 아부타버는 다른 병사를 불러“이 낭떠러지에서 유프라테스 강으로 뛰어내리라”고 명령하였다. 그 병사는 지체하지 않고 뛰어내렸다. 아부타버는 그 사절에게 “가서 당신의 왕에게 전하시오. 나에게는 이와 같이 용맹한 군사 500명이 있소. 앞으로 20시간 이내에 내 부하들이 당신 왕을 체포할 것이오.” 이 말을 들은 왕은 그 무적의 군대와 함께 진격을 했지만 아부타버의 충성스러운 작은 군대를 이길 수가 없었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진정한 기독교는 대중적이지 않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세상에서의 인기를 나누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밴스 헤브너는“교회는 상처를 통하여 성숙된다”고 했다. 교회의 위대함이 증명될 때는 군중의 자리에서 방관자로 있을 때가 아니라 신앙 때문에 사자 먹이가 될 때였다.

평신도 사역자의 성장을 위한 20가지 영적원리 / J. 오스왈드 샌더스


성령께 헌신하는 삶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생활이 부족하다고 불평하며 영적인 생활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연약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힘있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는 데 실제로 필요한 것에 관해서는 정말로 무시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영원히 찬송받으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미하는 예배보다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배웁시다. 우리가 바라고 의지할 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과 가까이 끊임없이 교제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놀라운 능력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그리스도의 임재를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주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실제로 알게 하시고,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 것이 되게 하시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전적으로 성령께 헌신하는 삶,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놀라운 일을 하실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가득찬 마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제단에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진 몸이라면 틀림없이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찬양의 노래를 부르도록 가르치실 것입니다.

헌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사명 / 앤드류 머레이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미시간 주 서부에 사는 15세 소년이 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화학 요법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었지만 구역질이 심하게 나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소년은 병이 가장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울 때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머리카락이 빠진 채 학교에 가야 했다. 그런데 학교에 간 소년은 놀라운 일을 발견했다. 소년의 많은 친구들의 머리에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모두 머리를 면도하고 왔다. 그들은 친구의 고통을 줄여주고 친구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끝에, 친구와 똑같이 머리를 자르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인 감정 이입은 공동체 내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복된 표식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몸의 지체들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손을 내밀어 서로를 돕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서로에게 제공하는 보살핌의 명칭은 사랑이며, 사랑은 결코 자신의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 각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히 이해되는 것처럼, 남녀간의 사랑도 계속해서 상대방을 온전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마음의 확신을 위한 묵상 / 코넬리우스 플란팅가


은혜 안에 자라기

어느 날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약속의 땅’으로 확실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걸어들어가야 할 의무와 특권을 힘주어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한 여인이 나의 주장에 반대한다며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아! 스미스 여사님! 저는 은혜 가운데 믿음이 성장하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얼마 동안이나 믿음 안에서 성장해 왔습니까?” “약 25년쯤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처음 그리스도인 생활을 시작했던 때보다 얼마나 더 세속으로부터 멀어졌고 주님께 헌신해 왔는지요?” “아! 그건 슬프게도 별로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성장이 성공적이었다기보다는 그것과는 정반대임을 비로소 깨닫는 것 같았다. 문제는 은혜 안에서 성장하려 하지 않고 성장해서 은혜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어느 정원사가 딱딱하고 돌투성이인 땅에 장미를 심어놓고 그것이 저절로 평탄한 화단 안쪽으로 들어가 성장해주기를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장미들은 무성하게 성장하기는커녕 시들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 안에 자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은혜의 땅에 심어지고 사랑으로 감싸여서 그 안에 잠겨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삶의 비결 / 한나 W. 스미스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의 돌쩌귀

자기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감정의 돌쩌귀는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돌쩌귀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될 때 문제에 빠집니다. 의기 소침, 편집증, 정신분열, 강간, 자살,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불안증세는 고립감이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대해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분 경영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모든 경영자들에게 매일 최소한 1분 동안 고용인들과 함께 그들이 하고 있는 일들에 관해 대화를 나누며 그들을 격려하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매일 단지 1분 간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난다면 많은 회사들에서 어떤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까요? 그것은 고용인들에게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며, 점차 자동화되어 가는 작업 환경 속에서도 자신들이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돌쩌귀에 기름을 칩시다. 매일 다른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한두 가지 일을 시작합시다. 그것이 음식이든, 전화든, 편지든, 카드든, 1분 간의 감사의 말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오늘 당장 그 일을 합시다. 누군가 참을성을 발휘하고 있거든, 그를 칭찬합시다. 누군가 일을 철저히 하고 있거든, 그를 격려합시다.

격려 / 데릭 빙햄


비방

잡담의 이웃 사촌은 비방이다. 잡담이 게으름이나 경망스런 수다의 문맥에서 기록되어진 반면, 비방은 남에게 상처가 되는 소식을 의도적으로 나누는 행위를 지적할 때 사용되고 있다. 신구약 중간 시대의 유대인들은 비방하는 혀를“제3의 혀”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비방하는 사람, 비방을 듣는 사람, 그리고 비방당하는 사람, 이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입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비방은 하나님의 법에 직접적으로 위배되는 명백한 범죄 행위이다(레 19:16). 비방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벗이 되는 자격을 박탈당하게 만든다(시 15:1-3).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과 되찾기 원하시는 자들을 우리가 우리의 말을 통해 실족시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벗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거스리는 적이 되고 말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대화로부터 잡담과 비방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물고 먹는 사회적 식인종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중 누군가가 다른 이에 대한 비방을 할 때에 그것을 그냥 듣고만 있는다면, 우리는“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천국의 진리로 사는 대신에“네 이웃을 잡아먹으라”는 윤리로 사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혀를 다스리는 지혜 / 조셉 스토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수학과를 늘 수석으로 다니고 대학 고전반에서 우수상까지 수상한 학생이 있었다. 학문 쪽으로 장래가 환하게 열려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명하지 않은 복음주의 교회에서 목사로 안수받는 길을 택했다. 그는 스물네 살의 나이에 인도로 떠났다. 인도까지 가는데 거의 일년이 걸렸다. 그리고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동안 그는 인도어와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이 세 가지 언어로 신약 성경을 번역했다. 그는 사막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짧은 인생이 다하기 전에 그 일을 이루었다. 인도로 떠날 당시 그는 인생의 사분의 일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그 시간 동안 무엇인가를 이루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에 그의 초상화가 거기서 이역만리 떨어진 캠브리지에, 전에 그가 목사로 섬겼던 교회의 찰스 시므온 목사에게 도착했다. 교회는 포장을 뜯고 그 초상화를 벽에 걸었다. 바로 헨리 마틴의 모습이었다. 학생들이 자신과 자신의 삶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게 해달라고 매일 와서 기도하는 그 방 안에는 아직도 그때의 초상화가 그대로 걸려 있다. 그리고 그 그림 속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두 눈은 여전히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바꿔 말하면 “세월을 아끼라”는 말이다.

내 삶을 받으소서 / 마이클 그리피스


가정에서의 역할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가정에 의해 경험되어지는 행복과 성취감은 그 순종의 결과이다. 하나님은 여자의 역할과 남자의 역할을 상세하게 규정해 놓으셨다. 성경은 여성들에게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경외와 존경과 복종이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복종”이라 함은 여성이 자기 권리를 빼앗기고 예속되고 노예로 전락하라는 뜻이 아니다. 정반대로 복종은 더 큰 자유를 허락한다. 왜냐하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고 의의 길을 걷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여성은“남편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복종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복종은 배우자의 행동 여하에 따라 좌우되는 조건이 아닙니다. 남편을 성령께 의탁하십시오”하고 대답했다. 참된 복종은 아내의 태도와 행동이 철저히 일치할 때 힘을 발휘한다. 복종하는 척해서 될 일이 아니다. 태도와 마음으로 복종해야 한다. 믿음의 아내는“저 현세적인 사람이 생활을 똑바로 하고 영적 안정을 건실히 되찾을 때만 복종할 것이다”라고 하지 않는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내의 복종하는 태도와 행동이 곧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이다.

성령충만한 삶은 가정에서부터 / 팀․비벌리 라헤이



자녀는 선물입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나그네에게 좋은 주인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우리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자녀들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를 발견하면서 끊임없이 놀랍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창조하지 않았으며, 우리가 그들을 소유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좋은 소식입니다. 그들의 모든 문제들에 대해 우리 자신을 책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그들의 성공 역시 우리 자신의 것으로 주장할 수 없습니다.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들은 환대를 요구하고 얼마 동안 좋은 친구로 지내다가 다시 여행을 떠나는 나그네와 같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기쁨과 엄청난 슬픔을 가져다줍니다. 그것은 그들이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그의 삶을 위해 우리 곁을 떠날 때에 슬픔과 기쁨이 엇갈립니다. 왜냐하면 이때 우리는 ‘우리의’ 자녀가 실제로 ‘우리의 것’이 아니라 참된 선물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맡겨졌었다는 것을 깊이 느끼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세상에서 자녀들에게 자유를 허용하기는 너무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모든 위험에서 그들을 보호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 헨리 누웬


마귀를 대적하라

몇 년 전, 나는 원수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던 때가 있었다. 나는 주님을 굳게 붙잡고 있었는데도 싸움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고, 빠져나올 길조차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나는 묵상하다가 마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작정했다. 결과적으로 그 편지는 내게 놀라운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마귀에게, 너는 나보고 약하다고 자꾸만 나를 깎아내리고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다. 너는 내가 혼자 있기 때문에 아무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 사람을 선택하신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너는 설교하는 일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복음 전파의 우둔한 것으로 모든 인생을 바꾸어놓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참소하고 비난하고 시험하고, 그리고 절망에 빠뜨리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들이 있다.…(성경말씀) …. ○○○(서명).” 나는 이 편지를 통하여 나를 절망하게 만드는 사탄의 공격에 대항하였다. 우리 모두 같은 방법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패배할 수밖에 없다.

살아 있는 영혼만이 승리할 수 있다 / 토마스 E. 트라스크․웨이드 I. 굿달 공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우리 힘으로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어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게 된다. 중보 기도야말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간구에서 중보로 기도를 바꾸는 것은 우리의 무게 중심을 우리 자신의 필요에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관심사로 옮기는 것이다. 중보 기도는 이기심이 없는 기도이며, 심지어 자신을 내어주는 기도이다. 하나님 나라의 계속적인 사역 가운데 중보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중보 기도는 제사장적인 사역인데, 신약 성경의 가장 도전적인 가르침 중 하나가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만인 제사장직이다.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아 제사장으로 임명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영예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신성한 의무요, 귀중한 특권이다. 중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그분의 이름이 새겨지고 하나님께서 손수 기록한 초청장을 주시며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수고하는 일에 직접 관여하게 하신다.

기도 / 리차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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