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지 말라(갈 2:17-18)
갈라디아서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의롭게 되다”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중심입니다. 나아가서는 기독교 자체의 가장 중심을 이루는 진리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독교를 이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롭게 되다”라는 단어는 16절에 세 번, 17절에 한 번, 그리고 21절에 한 번 나옵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진리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죄 범한 모든 인간은 그들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고, 하나님께 영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된 소식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믿지 못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의롭다함”이라는 말을 “칭의”(稱義)라고 부릅니다.
“칭의”라는 말은 법정에서 빌려온 말입니다. 이것은 “정죄”(定罪)의 반대어입니다.
정죄하는 것은 누군가를 유죄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는 것은, 그를 죄 없고 순결하며 바르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칭의는 하나님의 분에 넘치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죄값을 면제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깨끗하게 하여 주시고, 이제는 의롭다고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두 가지 기본적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우리 인간은 의롭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데, 우리는 의롭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려면,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의로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애쓰고 애써도 의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6:14절을 보면,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라고 했습니다.
죄 범한 인간은 의로우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가 없습니다.
죄 범한 인간은 의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욥기 25:4절을 보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정죄 받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겠습니까?
율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17-18절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주의자들처럼,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방법으로 돌아가야 할까요?
교회 안에는 정죄가 없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율법이 있습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지고, 상대방을 정죄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왜 나처럼, 하지 않느냐?
나는 이렇게 하지 않는데, 왜 나처럼, 하지 않느냐?
은혜로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율법으로 정죄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허무셨던 것을 다시 세우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함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