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눅 18:9-14)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하여,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선입견이란, 어떤 사람이나 사물 또는 주의나 주장에 대하여, 직접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마음 속에 굳어진 견해를 의미합니다.
편견이란,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를 의미합니다.
또한,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하여, 혐오감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혐오감이란, 어떤 사람이나 행동에 대하여,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 그리고 혐오감을 가지고 있으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닙니다. 올바른 인간관계를 위해서도, 그러한 것들을 과감하게 떨쳐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동일하게 대하여야 합니다.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멸시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9절 말씀입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아멘.
바리새인과 세리가 기도하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에 대하여,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앙이 좋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짓을 너무나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의 신앙이 좋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자기들 스스로가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신앙을 좋다고 인정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그 믿음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바리새인이란 구약의 율법의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철저하게 지키고자 애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켰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왜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듣지 못했을까요? 그들의 문제점은 자신들이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의롭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의롭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거나, 하나님이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의롭다고 인정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남들보다 의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늘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외우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어떤 면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의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인정해 줄 때에나 의롭다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의롭다고 믿었습니다.
신앙은 내가 나 자신을 평가하여,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의로운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전혀 의롭지가 못합니다. 그렇다고,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봐도, 못된 구석이 너무나도 많은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우리 자신을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의롭다고 단정을 하고,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자신들을 의롭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기들처럼, 의롭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거나, 이해하거나, 높여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마음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사회생활이나 제대로 하겠습니까?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아주 교만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을 당대 최고의 신앙인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던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한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며,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주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박해했습니다.
이 얼마나 교만한 모습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겸손해야 하는데, 그들의 교만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7-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회칠한 무덤 같았습니다. 그들은 외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겉과 속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의로운 척 했지만, 온갖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였습니다.
바울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믿기 전의 자기 자신의 과거 행적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6)고 말했습니다.
바울도 율법적으로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로마서 12:2-3절을 보면,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명하면서,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썼습니다.
여러분! 바리새인들은 어느 정도로 교만했습니까? 그들의 교만은 도대체 어디까지 이르렀던 것입니까? 그들은 기도까지도, 교만하게 할 정도로 아주 교만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교만을 드러내기 위해서,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읽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대한 비유입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아멘.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겉으로 봐서, 의로운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죄악 가운데 사는 사람은 세리입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데, 그들의 기도하는 태도와 내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를 살펴보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교만했습니다.
11-12절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아멘.
두 사람이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했는데, 바리새인은 세리와 따로 서서 기도했습니다.
왜 바리새인은 세리와 따로 서서 기도했을까요?
바리새인의 마음 속에는 “나는 이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꽉 차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대인이기에, 누구보다도 신앙이 좋다. 나는 의롭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교만한 모습입니까?
바리새인의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더 가관입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겉으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꼬박 꼬박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물론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정말 좋은 신앙입니다. 나무랄 데가 없는 신앙입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잊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정말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자랑거리가 된다든지, 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복을 받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겸손하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바리새인에게는 그런 면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겸손함보다는 교만함이 가득찼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남들보다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 마음 속에, “나의 믿음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차원이 다르다. 비교가 안된다. 다른 사람들이 나처럼 믿음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 더 많이 기도하고 있다. 더 많이 헌금 생활하고 있다. 더 많이 봉사하고 있다.”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호흡할 수 있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떻게 우리와 같은 죄인들이, 어떻게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같이 식탐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금식하며,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같이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십일조를 구별해서, 하나님께 바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주님이 내 안에서 감동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세리는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세리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세리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그의 가슴을 치면서,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아멘.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던 세리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너무나도 큰 죄인이라고 생각했기에, 주님 앞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는 죄인이며, 죄인 중에 가장 큰 죄인인데, 감히 어떻게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멀리 서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은 도저히 주님 앞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큰 죄인이라고 생각했기에, 세리는 아예 멀리 서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얼마나 겸손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세리처럼, 우리는 감히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큰 죄인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오라고 불러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우리는 주님 앞으로 감히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죄인들인데도 불구하고, 가까이 나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세리는 주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눈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습니다. 죄인이 무슨 염치로 고개를 들 수 있겠습니까?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우러러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면목이 없었습니다.
이 얼마나 겸손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세리는 신앙이 뭔지 잘 몰랐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낮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여러분! 세리의 기도는 겸손했습니다. 그는 자기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낮추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이 실제로 그랬기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로만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리는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쌍하다고 판단하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세리는 실제로,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이라고 판단하고, 자신을 죄인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세리는 가장 겸손한 기도의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기도는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구하는 기도이며, “내가 큰 죄인입니다.”는 것을 인정하는 기도입니다.
사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내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내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쌍해 보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흉악한 죄인으로 보입니다. 그것을 세리는 알고 있었기에, 정직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교만한 기도가 아니라 겸손한 기도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바리새인의 기도는 듣지 않으셨지만, 겸손한 세리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세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과 보좌를 흔들었습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아멘.
주님은 세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셨습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바리새인은 의롭다 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고, 겸손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