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 : 평화를 얻음과 은총 속의 영적 발전을 열망함에 대하여

작성자김종민|작성시간26.06.20|조회수33 목록 댓글 0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11 : 평화를 얻음과 은총 속의 영적 발전을 열망함에 대하여

 

1. 남의 말과 행위에, 그리고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열심히 참견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평화를 한껏 누릴 수 있다.

남의 일에 무모하게 뛰어들어 간섭하고, 바깥에서 간섭거리를 찾아 헤매면서 자신에 대한 반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 어찌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마음이 순진하고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들은 평화를 한껏 누리리라.

 

2. 성도들 중 어떤 분들은 아주 완벽한 인격을 지녔었고 사려가 깊었었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이는 그분들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여 모든 세속적 욕구를 절제하는 데에 힘썼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들은 온 마음을 다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예속시킬 수 있었고, 마음껏 영적 명상에 몰두할 수 있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열정에 의해 너무나 크게 지배받으며, 덧없이 사라져 버릴 것에 대하여 너무나 마음을 많이 쓴다. 또한, 우리는 한 가지 악덕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며, 더욱이 날마다 수양하려는 열성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냉담하고 만사에 미온적이다.

 

3. 만약 우리가 스스로를 완전히 극복하고서 자기의 감정에 휩쓸려 들지 않는다면, 이윽고 신성한 것들을 맛볼 수 있으며 천국의 명상을 다소라도 체험할 수 있다. 가장 큰 절대적인 장애물은 우리 인간이 정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우리보다 앞서 걸어간 성인들의 완전무결한 발자취를 따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소한 역경에 부딪쳐도 우리는 너무나 조급하게 실의에 빠져 세속적인 위안을 찾으려고 헤맨다.

 

4. 만약 우리가, 싸움터의 용사들처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임하여 선전 분투한다면, 우리는 하늘로부터 내려지는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도움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결국에는 승리를 거두게 될 싸움거리를 마련해 주시며 씩씩하고 용감하게 싸우면서 당신의 은총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내리시려는 분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형식적인 계율만을 중시하는 종교 생활에서의 발전을 중히 여긴다면, 우리의 신앙심은 순식간에 끝장나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도끼를 나무 뿌리에 놓음으로써 정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될 뿐 아니라 영혼의 안식을 찾을 수 있으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3:10)

 

5. 매년 악덕 한 가지씩을 뿌리째 뽑아 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곧 완전한 인격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신앙고백을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처음 개심했을 때의 선함과 순결함을 지니지 못하고 있음을 자주 깨닫는다.

우리의 영적인 정열과 발전이 날로 커져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만약 어떤 사람이 최초의 정열 중 일부분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정말 큰 다행으로 여겨진다.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조금만 더 힘써 한다면, 그 후에는 모든 것을 힘 안 들이고 즐겁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6. 오래 전부터 해 오는 것을 버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자기의 뜻하는 바와 반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

하지만 만약 그대가 사소한 손쉬운 일마저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보다 어려운 일을 어떻게 극복하겠는가?

악습에 서서히 빠져들어 엄청난 난관에 처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그러한 성향을 억제하여 아예 그런 악습에 물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말로, 그대가 거룩한 생활의 모범을 보여 줌으로써 자기가 얻게 될 내적 평화와 남에게 가져다 줄 기쁨이 얼마나 큰가를 인식한다면, 그대는 자기 자신의 영적 발전에 더욱더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으리라.

(자료 출처 :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 조항래 역, 예찬사, 198811)

 

토마스 아 켐피스의 새롭게 쓰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11장은 참된 평화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해 줍니다. 그의 통찰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날카로운 도끼와 같습니다.

이 장은 단순히 세상과 거리를 두라는 금욕주의적 권면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앞서 있는 자기 자신을 다스릴 때 비로소 영혼의 평화가 찾아온다는 복음적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가정에도 평화가 있기를 원하고, 교회에도 평화가 있기를 원하며, 세상도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마음은 늘 분주합니다. 남의 말이 신경 쓰이고, 누군가의 행동이 마음에 걸리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분노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쉽게 보이는데 자신의 죄는 잘 보지 못합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왜 평화를 찾으면서도 평화를 잃는 행동을 반복하는가?”고 질문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타인의 삶이라는 마당을 기웃거리느라, 정작 내 영혼의 안방을 돌보지 못합니다.

존 번연은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자신의 짐을 벗기 위해, 오직 좁은 문을 향해 곧장 걸어갔음을 상기시킵니다. 타인의 언행에 참견하는 것은 영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칼빈은기독교 강요에서 자신을 깊이 성찰하지 않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평화는 밖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정돈될 때, 내면에서 샘솟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불안과 갈등은 외부 환경보다 내부의 소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면서도, 정작 자신의 영혼은 돌보지 않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42:5)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원인을 환경에서 찾지 않고, 자기 영혼을 향해 질문했습니다. 참된 경건은 남을 살피기 전에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평화를 깨뜨리는 원인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다른 진단을 내립니다.

우리 안에는 아직도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려는 옛 사람이 살아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질서 잃은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할 때, 하나님보다 명예를 더 사랑할 때, 하나님보다 자신의 뜻을 더 사랑할 때, 우리의 마음은 반드시 흔들리게 됩니다.

켐피스는 평화를 빼앗기는 가장 흔한 원인으로 남의 일에 대한 지나친 간섭을 꼽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쓸데없는 참견을 경계하는 도덕 훈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입니다. 밖을 향한 시선이 많아질수록, 안을 향한 고요함은 줄어듭니다.

마음이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 정박할 때, 비로소 평화가 시작됩니다. 이 평화는 세상 사정이 좋아서 얻는 평안이 아닙니다. 상황을 초월하여 하나님 안에서 뿌리를 내린 평안입니다(4:7).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5:8)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은혜 안에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원하지만, 세상도 원하기 때문이다. 그 이중성이 영적 빈곤의 뿌리다.”고 말한, 마틴 로이드 존스는 청결한 마음이란 단일한 목적, 즉 하나님만을 향한 통일된 마음의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1:8)는 쉼이 없습니다. 분열된 욕망이 평화를 산산조각 냅니다.

 

켐피스가 말한 마음이 순진하고 온유한 사람은 산상수훈의 팔복에 등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욕심의 분열이 없는 단순함과 자아를 앞세우지 않는 온유함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평화는 이미 내주합니다.

 

성도들의 위대함은 자기 부인에 있었습니다.

자신을 아는 것은 최고의 지식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은 최고의 승리다.”고 말한 켐피스는 성인들이 완전한 인격에 이른 비결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세속적 욕구를 절제하는 데 힘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영성 전통이 동의하는 진실이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싸움은 외적 대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내적 자아와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7:19), 이 싸움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이것은 신앙이 없는 자의 탄식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자가 여전히 싸우는 육신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자기 부인은 내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도록 나를 비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냉담한 이유는 악덕을 극복하려는 거룩한 열심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놀라운 영적 거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과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고전 9:27)고 말했고, 존 오웬은 죄를 죽이라. 그렇지 않으면 죄가 너를 죽일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완벽함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한 가지 악습을 뿌리 뽑는 작은 싸움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자기 표현을 강조하지만, 성경은 자기 부인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8:34)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부인은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감정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요, 내 계획보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사소한 것을 이기지 못하면, 큰 것도 이길 수 없다.”는 매우 실제적인 교훈을 줍니다.

 

많은 영적 실패는 거대한 죄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작은 게으름, 작은 교만, 작은 불평, 작은 시기, 작은 타협에서 시작됩니다.

스펄전은 큰 배를 침몰시키는 것은 거대한 구멍이 아니라 작은 틈으로 스며드는 물이다.”고 말했습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큰 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루쯤 쉬게 만들고, 말씀을 조금 소홀히 하게 만들고, 회개를 미루게 만들고, 죄를 정당화하게 만듭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영혼은 무감각해집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죄가 싹틀 때 뿌리째 뽑으라고 강조했습니다.

 

도끼를 나무 뿌리에 놓았다”(3:10)는 예수님의 말씀은 죄의 열매만 자르지 말고, 근원을 다루라는 뜻입니다. 켐피스는 이 말씀을 영적 자기 수련에 적용합니다. 열매만 따내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죄의 뿌리, 즉 악한 욕망 자체가 잘려 나가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영적 싸움이 힘들다고 느낍니다. 기도도 어렵고, 말씀 묵상도 어렵고, 죄를 이기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자를 도우십니다. 성령의 사람은 매일 도끼를 나무 뿌리에 댑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하나님께서 내 삶에 손대실 때, 그것은 언제나 표면이 아니라 근원을 향한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자연적 자아의 토대를 흔드신다.”고 말했습니다. 이 도끼질이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 믿음의 사람은 그것이 은혜의 외과 수술임을 압니다.

 

마틴 루터는 우리는 새가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둥지를 틀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혹은 올 수 있지만, 굴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넘어질 수 있지만,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지 않으시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안에서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한 걸음 순종할 때, 하나님은 열 걸음의 은혜를 공급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조금만 더 힘써 한다면, 그 후에는 모든 것을 힘 안 들이고, 즐겁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는 켐피스의 말은 현대의 루틴(Routine)’ 영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영적 침체에서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진리의 말씀을 붙들라고 조언했습니다.

매일 한 가지씩 나의 못된 성정(말의 실수, 판단하는 마음, 교만)을 찍어버리다면, 1년 뒤에는 그곳에 그리스도의 성품이라는 아름다운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매년 악덕 한 가지씩을 뿌리째 뽑아 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곧 완전한 인격자가 될 것이다.”는 켐피스의 실천적 제안은 구체적입니다.

영적 성장은 한 번의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꾸준하고 구체적인 자기 부인의 훈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영적 성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번에 변화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대개 점진적으로 우리를 빚어 가십니다. 농부가 씨를 뿌린 다음 날 열매를 기대하지 않듯이, 영혼도 오랜 훈련을 통해 성숙해집니다.

리처드 백스터는참된 목자에서, “날마다 자신의 양심을 점검하라. 오늘 어떤 죄가 강했는지, 어떤 은혜가 약했는지 기록하라. 영혼의 성장은 관찰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권면합니다.

 

한 해 동안 단 하나의 악습이라도 줄어들었다면,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온유해졌다면, 조금 더 기도하게 되었다면, 조금 더 용서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신 증거입니다.

존 스토트는 성화를 평생에 걸친 성령의 사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급해하지 말고 꾸준히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느리게 자라는 나무를 통해서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오늘 내 삶에서 뿌리 뽑아야 할 한 가지 악덕은 무엇입니까? 교만입니까? 탐욕입니까? 분노입니까? 게으름입니까? 켐피스의 도전을 구체적으로 받아 한 해 동안 씨름할 대상을 정해보십시오.

 

묵상을 위한 질문

 

1. 오늘 나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습니까? 타인의 허물을 살피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영혼의 뿌리에 도끼를 대고 있습니까?

 

2. 오늘 내가 뿌리 뽑아야 할 단 한 가지의 악습은 무엇입니까?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분주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정작 제 자신의 영혼은 돌아보지 못했던 모습을 고백합니다.

남의 허물은 쉽게 보면서도 제 안에 숨겨진 교만과 욕심과 불순종은 보지 못했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제 마음에 참된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되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위안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오는 하늘의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제 마음을 다스려 주셔서 정욕과 욕망에 끌려가지 않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며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작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죄가 싹틀 때마다 십자가 앞으로 가져가 회개하게 하시며, 거룩함을 향한 싸움을 결코 포기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늘도 넘어짐보다 일어섬이 많게 하시고, 낙심보다 소망이 많게 하시며, 세상의 소음보다 주님의 음성에 더욱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주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믿사오니, 날마다 주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성숙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참된 평화와 안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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