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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창작11기

15차시 수필창작반 자료 (2026.6.13.토)

작성자캔디|작성시간26.06.05|조회수3 목록 댓글 0

# 수필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얘기하는 글
# 수필의 소재중 돈, 자리 쓰면 좋음

* 참고작품

< 지혜로운 이기주의/김창남 > 생각의 발상. 대구아카데미 수강생(51년생,70대)

아침 운동 삼아 산책을 다녀온 아내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말을 꺼냈다.
"글세, 내 말 좀 들어봐. 산책하고 오는 길에 아범이 전화가 왔어요. 어디냐고 묻길래 운동 중이라고 했더니, '엄마 운동 열심히 하네'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이거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거야. 건강하게 늙어서 너한테 폐 안 끼치려고.' 그랬더니 '엄마 최고! 내가 엄마 좋아하는 스테이크 사 줄까?' 그러는 거야 그 녀석 참."
아내의 들뜬 수다를 듣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났다. 듣고 보니 아내 말도 맞고, 아들 말도 맞았다. 나이 든 부모가 건강하면 자식의 수고가 줄어드니 좋고, 짐이 되지 않으려는 부모 마음도 편안하니 좋다. 결국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 바탕에는 각자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놓여 있는 셈이다.
얼마 전 '사람은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례로 고깃간 주인이 옆집 채소가게의 단골이 되면, 채소가게 주인도 그 고깃간의 고기만 사게 되어 결과적으로 두 집 모두 이익을 본다는 내용이었다. 상생相生의 원리를 이기주의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한 대목에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오래전, 지하철 안에서 볼펜을 파는 장애인을 만난 적이 있다.
"불쌍한 사람 좀 도와주세요. 볼펜 하나만 사 주세요."
반신불수인 듯한 그는 절름거리면서 사람들 무릎 위에 볼펜을 한 자루씩 놓으며 지나갔다. 그러고는 객차 끝에서 다시 돌아오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옆자리 아주머니는 핸드백을 열어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들고 있었다.
나는 짐짓 눈을 감은 채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마음이 못내 불편했다. 지금이라도 지갑을 꺼낼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그는 내 무릎 위의 볼펜을 거두어 갔다. '쓸 데도 없는 볼펜을 왜 사나' 싶은 마음과 '그래도 도와줬어야지'하는 마음이 자꾸만 엇갈렸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까지 그 찜찜한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천 원이 아까워서도 아니고, 지갑에 돈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던 내 모습이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아, 한참 동안 마음의 앙금으로 남았다.
다음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옆자리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은 구걸하는 사람이 안 보이잖아. 그런데 그날따라 백화점 앞에 한 사람이 깡통을 앞에 놓고엎드려 있더라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는데 엎드린 모습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거야. '명색이 성당에 다닌다면서 이게 뭐지?'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다시 돌아가 천 원짜리 한 장을 넣고 왔더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데. 그 사람 모습도 금방 잊히고."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천 원짜리 한 장이 장애인이나 구걸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건, 내 마음은 내내 불편했고, 그 친구 마음은 편안해졌다는 사실이다. 결국 남을 돕는 일은 타인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평온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을 조금 더 키워, 모든 일상적인 일을 '나를 위해서'라고 바꿔보기로 했다.
아내가 동호회에 파크골프를 치러 나가는 날이면 나는 혼자 점심을 챙겨 먹어야 한다. 처음에는 그게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졌다. 아내의 운동이 곧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을 바꿔보았다. 운동하면 건강해지고, 스트레스가 풀려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게 아닌가. 그러면 먼 훗날 나이 들었을 때 병 수발을 드는 내 수고가 줄어드는 셈이 되는 것이었다. 요즈음은 오히려 내가 먼저 부추기듯 묻는다.
"오늘 운동 안 가? 점심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다녀와."
생각 하나 바꿨을 뿐인데 부부 사이가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아내와 나는 자유를 얻었다. '지혜로운 이기주의'가 가져다준 선물이다. 이기주의를 조금 더 넓게 바라보면 어떨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가르침이었다. 세상에는 억울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무차별 폭력 사건으로 자식을 잃고 지옥 같은 삶을 사는 부모에게 어떻게 용서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오래도록 마음속 깊이 남아 있던 이 의문은 어느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서야 비로소 실마리가 풀렸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내 마음을 묶어 두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를 용서함으로 인해 나 또한 나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겠다는 결심입니다."
이 얼마나 처절하고도 명쾌한 이기주의인가. 용서는 상대를 위한 시혜가 아니라 나를 고통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자기방어인 셈이다.
상호이타주의라는 말이 있다. 서로 돕고 서로 도움을 받는 삶을 말한다. 이렇게 살펴보면 내가 생각하는 이기주의는 상호이타주의 가운데 어디쯤일 것이다. 남을 돕는 일이 결국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 내 삶을 살려내는 길이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이기주의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마음이 모이면 세상은 더 따뜻해지리라.
남을 돕는다고 생각하면 실천하기가 어렵지만,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쉬워진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괴롭지만, 나를 위해 잊어버리자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내 마음의 중심을 지키며, 누구보다 나 자신을 깊이 아끼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사전적인 의미의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지혜로운 이기주의', '조금 다른 방식의 이기주의'. 이 작은 생각의 전환이 우리의 삶을 훨씬 더 풍요롭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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