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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품 합평작

13차시 (2026.5.30.토)/노소연5/김옥수2/박희곤4/전일정5/권은희2/정원주3

작성자캔디|작성시간26.06.05|조회수6 목록 댓글 0

1. 뚝배기야, 안녕/ 노소연5
2. 4시간의 자유/ 김옥수2
3. 역사를 파는 가게/ 박희곤4
4. 잣죽/ 전일정5
5. 내가 모르고 지나온 삶/ 권은희2
6. 몽니/ 정원주3

1. 뚝배기야, 안녕/ 노소연 5 화소(소설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많다.
* 딸의 방->서재->독서 *건망증->뚝배기->된장찌개->뚝배기->건망증->메모
* 뚝배기의 속성, 역할을 주제로쓰면 좋다.


1. 딸이 타지역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그 방은 자연스럽게 내 서재가 되었다. 이제는 나만의 놀이터다. 의자에 몸을 기대 앉아 책장을 넘길 때마다 종이 스치는 소리가 마음이 따뜻하다. ‘이 장만 더 읽고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어느새 또 한 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잠시 틈이 나서 글을 읽는 중이다.
2.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스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웃집에서 나는 냄새인가 싶어 ‘설마 우리 집은 아니겠지’ 하며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다. 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점점 냄새가 한층 짙어고, 코끝을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든다. 그제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하고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다.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니 연기가 자욱다.
“아차…”
주방부엌으로 뛰어가 보니 뚝배기에서 하얀 연기가 나고 있다. 급히 인덕션 전원을 끄고, 가열된 그릇을 싱크대로 옮겨 찬물을 담아 두었다. 저녁 반찬으로 준비해 둔 중인 된장찌개다. 두부는 새까맣게 변해 있고, 고기는 반쯤 검게, 반쯤 채소는 갈색으로 말라 있다. ‘잠깐이면 되겠지’ 했던 그 짧은 순간이 길게 지나갔다.
3.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지만, 냄새는 집 곳곳에 깊이 배어 쉽게 빠지지 않았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가. 뚝배기의 고난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타이머라도 맞출걸, 이리저리 작동을 해봐도 모르겠다. 기계에 별 관심이 없다.
4. 퇴근한 아들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말했다.
“엄마, 1층부터 타는 냄새 나던데…혹시, 우리 집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어 속상했다. 볶음밥으로 매뉴를 대체했다.

5. 삽십 년이 넘도록 우리 집을 지켜온 물건, 아마 집안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살이 일지도 모른다. 뚝배기 일 것이다. 그릇을 정리 할때도 남겨 둘 품목에 두었다.
(남편이 이 음식을 즐겼다. 식탁에 차려 놓으면 숟가락을 자주 움직였다. 바닥을 보이면 왼손으로 앞으로 살짝 기울여 남은 한 방울 까지 먹었다. 배를 만지면서 맛있게 먹었다고 웃곤 했다.
6. 서울에 사는 조카가 울산에 내려올 때마다,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를 식탁에 올려놓기가 무섭게 호호 불어가며 한 숟갈을 크게 떠먹었다.
“이모가 끓인 된장찌개가 제일 맛있어요.” 그 모습에 가족들도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더 가져갔다. 집에 오는 사람마다 한 번 더 손이 가던 그 따뜻한 풍경, 그 모든 순간의 중심에는 늘 그 뚝배기가 있었다.)된장찌개 이야기다.
7. 바닥에 금이 간 그릇을 뚝배기를 신문지에 싸서 재활용 쓰레기 봉투에 넣다. 손에 닿는 투박한 감촉이 따뜻하게 느껴다. 오래된 가족을 보내는 것처럼, 괜히 한 번 더 어루만다.
그동안 우리 가족의 행복한 밥상이었다.중심에 있었다. 버리는 것은 뚝배기 하나였지만, 그 안에 담겨 있던 시간까지 함께 내려놓는 기분이다.
8. 이제는 찌개를 끓이는 일이 어쩐지 낯설다. 뚝배기 대신 몇 백만 원짜리 냄비를 올려보지만, 맛이 어딘가 다르다. 익숙했던 온기와 깊이가 빠진 느낌이다.
9. 요즘은 왜 이렇게 자주 깜빡하는지 모르겠다. 큰방에 들어와서도 무엇을 하러 왔는지 잊고 한참 멈춰 서 있을 때가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늘 뚝배기를 그렇게 보내게 된 것도 ‘잠깐이면 되겠지’ 하며 방심했던 그 순간 때문이었다. 건망증 얘기
10. 이제는 메모를 해야겠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를 위해 메모지와 필기구를 가까이에 둔다.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적어 두고, 끝낸 뒤 포스트잇을 떼어낼 때마다 작은 성취감도 쌓인다. 그렇게 하루를 붙들고 살아가다 보면, 사람도 결국 무엇을 오래 품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메모얘기
그래서 나는 여전히 뚝배기 같은 사람이 좋다. 겉은 투박해 보여도 속은 따뜻하고, 오래 데워지고 쉽게 식지 않는 사람 말이다.” 뚝배기 얘기

2. 4시간의 자유 /김옥수 2 덤으로 얻은 즐거움

1. 올 때부터 각 자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공항을 이용하다보니, 돌아가는 시간도 다르다. 타국에서 가족 행사를 가졌다. 저마다 사는 곳이 다르니 돌아가는 일정도 다르다. 며느리와 손녀를 먼저 공항으로 보내고, 며느리는 길치인 내가 못 미더운지 몇 번이나, 단속을 아끼지 않는다.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저기 보이는 곳이 공원이고 그 안에 유적지와 미술관이 있어요. 도보로 15분쯤 걸리는데 이 길로 쭈욱 가면 돼요.” 한다.하며. 4시간의 여유가 남는다.
2. 어제, 전차로 도고온천을 오가면서 공원 위치는 봐 두었고, 호텔에서 빤히 보이는 곳인데, 좀 유난스럽다. 설마, 통역기 없으면 일어로 소통도 안 되는 저보다 못할까. 남은 시간, 제미나이는 공원주변 자전거 투어를 추천했지만 당치 않다. 딱히 혼자 4시간을 보낼만한 곳도 모르고, 걸어갈 수 있는 명소라 하니 가보는 거다.
3. 며느리와 손녀를 먼저 공항으로 보내고, 공원으로 향한다. 기모노 상점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 한 쪽 벽에, 기모노를 입은 다양한 여행객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기모노를 입고 사진 촬영만 하는 비용, 종일 대여비도 적혀 있다. 창덕궁과 마쓰야마 중 어디가 먼저인지 궁금해, 선 채로 제미나이에게 물었다.
4. “두 가지 모두 전통 의상을 입고 궁궐이나 도시를 즐기는 체험인데, 순서를 따지자면 창덕궁 한복 대여 및 한복 투어가 먼저 시작된 개념이에요. -중략- 이후 일본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관광객을 위한 마쓰야마 기모노 대여 투어 같은 프로그램이 확산된 거죠.” 라고 한다.
5. 그럼 그렇지. 축구든 뭐든 일본보다 앞서면 흐뭇하다. 바구니에 정렬된, 비단으로 조각조각 엮어 만든 작은 물건의 용도가 궁금해 주인을 불렀다. 기모노 만들다 남은 짜투리 천으로 만든 컵 받침이고, 사각 모양은 개당 3천 엔, 둥근 것은 4천 엔. Pass~.

6. 건널목 세 개를 지나니 마쓰야마 공원 입구다. 맑은 하천을 따라 언덕 위까지 두르는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마쓰야마는 일본 남쪽 섬 시코쿠의 최대 도시이자 에히메현 현청 소재지다. 운동장에는 무리 지어 축구, 야구, 줄넘기를 하는데, 신기하게도 시끄럽지 않다. 탁 트인 공원 잔디밭 곳곳에는 피크닉 나온 가족들이 각양각색의 텐트나 자리에 눕거나 앉아 논다. 둥근 형태의 텐트들이 다 작다. 3월 마지막 주라 그런지, 숲은 울창한데 벚꽃은 거의 지는 모양새다. 마쓰야마 성의 벚꽃나무들도 엉성하더니. 만개한 벚꽃 길을 상상하며 걷는다.
7. 벤치 여기저기에서 도시락을 먹는 풍경이 새롭다. 간단한 김밥이나 초밥이 아니라, 구운 생선과 갖은 반찬이 담긴 제법 푸짐한 사각 도시락이다. 젊은이는 한 쌍 뿐, 모두 대체로 여든은 넘어 보인다. 혼자 또는 두세 명씩, 조용히 담소를 나누며 봄을 즐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훨씬 일찍부터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풍경이다.
8. 하천 둘레 길을 나오니, 어디선가 희미하게 관현악 합주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니 마쓰야마 종합공원이다. 마쓰야마는 일본 남쪽 섬 시코쿠의 최대 도시이자 에히메현 현청 소재지다. 운동장에는 무리 지어 축구, 야구, 줄넘기를 하는데, 신기하게도 시끄럽지 않다. 탁 트인 공원 잔디밭 곳곳에는 피크닉 나온 가족들이 각양각색의 텐트나 자리에 눕거나 앉아 논다. 둥근 형태의 텐트들이 다 작다.
9. 나를 이끈 소리는 공원 제일 안쪽에 자리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다. 50여 명쯤 되는 단원들이 똑같은 모자와 점퍼를 입고 있다. 가까이 가 보니, 유니폼 뒤에 ‘에히메현’이라고 적혀 있다. 단원인듯한 사람에게 떠듬떠듬, 떠오르는 단어를 조합해 물어보니, ‘에히메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라고 한다.
10. 악기 연주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미처 플라스틱 간이의자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예 잔디밭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듣는다. 일요일이긴 한데, 무슨 특별한 날인가? 웬 뜻밖의 호사인가 싶다.
11. (공원 한 편, 가장자리는 푸드 트럭으로 둘러싸여 있다. 스무 개가 넘는 푸드 트럭을 기웃거리며, 요리사의 손놀림과 손님을 대하는 모습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다양한 음식은 물론, 생맥주, 디저트 등 같은 품목은 하나도 없다. 불 맛,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볶음밥이 오늘 점심이다. 도시락과 시원한 말차를 받아들고 오케스트라 근처를 기웃거리다, 큰 벚꽃나무 아래 빈 테이블이 보여 얼른 뛰어가 앉았다. )점심얘기
12. 주페의 ‘경비병 서곡’이 시작된다.( 경쾌하고 역동적인 리듬에 절로 고개가 까딱까딱, 발도 까딱까딱. 볶음밥도 맛있고, 차도 깔끔하다. 수준 높은 연주를 값없이 듣는 분위기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13. 계획대로라면, 오늘 점심은 도미덮밥이다. 소문난 맛 집 앞에 성이 다른 3대가 줄을 섰으나, 바로 앞 팀까지만 재료가 허락되어, 각 자 점심을 해결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야외에서 온전한 자유를 만끽하며 즐기는 혼 밥과는 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아니한가.
14. 나무 아래라고는 하나, 봄볕은 따갑다. 햇빛 알러지가 있어도, 이 순간만큼은 상관없다. 세 명은 족히 앉을 법한 야외 탁자에 혼자 앉아, 계란을 듬뿍 넣은 볶음밥 한 숟갈, 말차 한 모금. 꿀맛이다. 다진 야채와 계란 외 다른 재료가 들어간 것 같지 않은데, 볶음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드문드문 기무치 까지 들어있으니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15. 아마추어들이라지만, 영화음악과 경쾌한 서양 클래식 곡을 번갈아 연주하는 실력은 아마추어 경지를 넘어선 것 같다. 면면을 보니, 단원들 대부분이 실버세대다. 연주 전, 곡 제목을 알려주고 해설해주는 분은 제1 바이얼린, 목소리가 또랑또랑하다. 아흔은 됨직한 지휘자의 지휘봉을 잡은 손에서 열정이 전달된다. 선율에 따른 몸놀림도 예사롭지 않다. 다음 곡을 연주하기 전, 악기를 조율하면서 잠시 숨을 고르는 연주자들에게 파트 별로 지시를 내린다. 단원들의 집중하는 태도도 인상적이다.) 점심얘기
16. 특이한 것은 캐스타네츠를 대신한 큰 죽비 모양의 악기다. 곡 흐름에 따라, 지휘자가 악단 왼 쪽을 가리키자 기다렸다는 듯, 어깨가 구부정한 여자 어르신이 나온다. 모자 아래로 흰 머리가 삐죽 내려와 있다. 타 악기 소리가 점점 작아지자, 그녀는 청중들 앞을 지그재그로 걸으며, 그 길고 납작한 나무 악기를 부딪쳐 ‘딱딱’ 소리로 박자를 맞춘다. 청중들도 같이 박수로 박자를 맞추며 흥을 돋운다. 그녀의 눈은 시종일관 지휘자의 손끝에 머무르다가, 그의 손짓에 따라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17. 오케스트라 주변에는 소형차 크기만 한 나무 수레가 여러 대 늘려 있다. 무거운 악기들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보인다. 단원들의 평균 연령은 어림잡아 75세쯤 될 것 같다. 세월의 무게와 깊이가 감지되어 한 곡 한곡 감동스럽다. Bravo Silver!
18. 미술관은 꼭 들러야겠다 싶어 아쉬움을 털고 일어난다. 신나는 곡을 뒤통수로 들으며. 발걸음이 가볍다. 미술관에서 안내를 맡은 두 명의 자원봉사자도 실버세대다. 깨끗하고 단정한 차림새에 상냥하기 그지없다. 도시락 비닐을 버리려고 쓰레기통을 찾으니, 일어나 쓰레기통까지 안내해준다. 게다가 무료 관람이란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쓰”를 거듭하면서, 게걸음으로 전시장으로 들어간다.
19. 2층에는 서예가 겸 수묵화가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입구에 화분이 많은 것을 보니 꽤 저명한 작가인가 보다. 굵고 가는 붓으로 먹의 농도를 달리 해 구불구불한 선 몇 개를 그려 놓고, 무(舞)란다. 무슨 선문답 같은 수묵화들과 글씨는 힘이 넘쳐 보이지만,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훠이 한 바퀴 돌고 바로 3층으로 오른다.
20. 3층은 마쓰야마 시 초등학교 미술대회 입상작들을 전시 중이다. 공간 부족으로, 전시실마다 중간에 병풍 같은 가벽을 세워 앞뒤를 활용한 아이디어가 좋다.
21. 고학년들에 비해, 저학년들의 주제는 고양이가 압도적이다. 어느 6학년 학생의 그림 앞에서 발을 멈춘다. 결승점에 골인하거나 다다르기 직전의 모습들을 화지 가득 채웠다. 네 명의 감정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보통 솜씨가 아니다. 바다 생물에 대한 그림도 많다. 사실화 코너, 오징어 그림 앞에 서서 자동적으로 다리를 센다. 9개다. 1개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감추어진 것도 아니고, 물고기에게 뜯긴 것도 아니다. 이 작가도 유치원생 내 손녀처럼 오징어 다리가 10개인 걸 모르나보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창작품에 다리 수가 무슨 상관이람. 작품마다 창의성이 보이고 이야기가 숨어있다.

22. 왔던 길을 그대로, 또 건널목 3개를 건넌다. 직진하여 묵었던 호텔 로비에서 가방을 찾아 공항리무진 버스 주차장으로 시간 맞춰 나가면 된다. 아직 30분 남다. 스타벅스까지 다녀오기는 좀 빠듯하고, 호텔 옆 아이스크림 집에서 이 지역 특산물인 귤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을 시간은 충분하다.
23.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 리무진 기사도 일흔은 훨씬 넘어 보인다. 한국어로 된 팻말을 가지고 줄 서 있는 승객들 중 마쓰야마 공항으로 갈 사람들을 모은다. 맨 앞자리, 창가에 앉았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마쓰야마 시를 눈에 담고 싶어서.
24. 며느리의 기특한 발상으로 선물 받은 2박3일이 끝나려 한다. 아들이 혼자, 손자와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 강아지들까지 돌볼 마음을 내어준 것도 고맙다. 그에 더해, 오롯이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한 4시간은 오래오래, 특별히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으로 남으리라.

3. 역사를 파는 가게/박희곤(4) 접속사가 많다.

1. 10년 전, 목을 매듯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퇴직했다. 나름대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며 멋진 직업 하나 가져 보겠다고 커피 하기 위해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주변 사람들은 늦은 나이에 도전하는 용기가 대단하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취직해서 돈 벌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모두 말렸다. 하지만 백수가 된 처지에서 물러설 곳 없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경주의 황리단길에 카페를 차렸다.
2.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시장조사는커녕 무대뽀 정신 하나로 앞치마를 둘러맸다. 그렇게 늙은 영감 하나가 초로의 나이에 카페의 마담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황리단길을 찾는 손님 대부분은 외국인이거나 젊은 층이었다. 외국인과의 대화는 기본적인 회화만으로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한국 문화가 세계화되면서 그들 또한 어느 정도 한국어를 할 줄 알았고, 어려운 경우에는 번역기의 도움을 받으면 되었다. 문제는 젊은 세대였다.
3. 문제는 젊은 세대였다. 카페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그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했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감성에 반응하는지 알아야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이해하려 애써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상품을 선택하는 기준이었다. 베이비붐 세대인 나는 상품의 질, 가성비, 위생 상태 등을 보고 구매를 결정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는 그것이 우선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사진이 잘 나오느냐”였다. 모든 상품은 멋있고 폼 나게 보여야 했다.
4. 젊은이들은 먼저 카메라에 담고, 그것을 자랑하듯 SNS에 올렸다. 상품구매의 기준도 광고와 이미지가 좌우했다. 그래서 많은 가게가 젊은 층이 이용하는 SNS 광고에 거액을 쏟아부었다. 당연히 단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5. 그러나 내가 운영하는 가게의 현실은 냉혹했다. 결국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카페를 연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아이스크림 가게로 업종을 바꾸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가게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아이스크림은 계절상품이라 여름 성수기에는 장사가 되었지만, 겨울이면 파리만 날렸다. 남들이 잘된다고 따라 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었다.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넣었지만 단가만 올라갈 뿐 남는 것은 많지 않았다.
6..게다가 아이스크림 단일 품목만으로는 직원 월급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다. 먹고살기 위해 다른 상품도 취급했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니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은 빵집, 그 다음은 다른 업종….
7. 그렇게 여러 번 간판이 바뀐 끝에 현재는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십여 년 동안 몇 번이나 가게 인테리어를 뜯어고쳤는지 비용만 해도 족히 4~5억 원은 날아갔을 것이다. 결국 십 년 넘게 장사하며 퇴직금마저 다 날리고 인테리어업자만 배부르게 한 셈이었다.
8. 지금 생각하면 그것 또한 내 인생의 흑역사였다.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대가는 혹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실패의 흑역사를 가슴에 안고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분식집을 열었다. 우선 음식은 더 맛깔스럽게 만들고 보기 좋게 담아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조건 퍼 주자”는 마음으로 친절을 우선으로 바꾸었다.
9. 판매하던 생수는 정수기로 바꾸어 무료로 제공했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음식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정’을 파는 가게가 되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기본 음식 외에도 서비스를 늘려 관광지에서 흔히 느끼는 바가지요금의 인상을 지우고 싶었다. 또한 관광객들에게 길 안내를 해주고, 경주의 명승지와 유적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관광 안내 책자에는 없는 나만의 정보들이었다. 박물관 대학에서 공부하며 직접 체험한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나는 더 이상 단순한 분식집 주인이 아니었다. 손님들에게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는 해설사이자 안내자가 되어갔다.
10. 후식으로는 집에서 담근 매실차를 무료로 내놓고, 집에서 키운 과일도 덤으로 건넸다. 그렇게 작은 정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고 사람 냄새 나는 관계가 생겨났다. 외국인들은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이내 한국인의 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젊은 손님들은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고, 나 또한 큰 보람을 느꼈다. 멀리 미국에 사는 교포나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 후기를 보고 다시 찾아왔다는 말을 들을 때면 가슴 한켠이 뿌듯해졌다.
11. 누군가 경주의 관광지에 관해 물어 오면 나는 내가 배운 것과 느낀 것을 아낌없이 들려주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인의 시선으로 유적지를 해석해 설명하면 사람들은 더욱 깊이 감탄했다.
12. 이제 나는 분식집에서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정과 경주의 역사를 함께 팔고 있다. 떼돈을 벌지는 못해도 적어도 주말 장사를 하고 나면 손해를 보지는 않다. 무엇보다 욕심을 조금 내려놓자, 마음이 편안해졌고 건강도 좋아졌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집착을 버리고 나니 오히려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실패의 흑역사를 발판 삼아 한국의 정을 나누고, 경주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지금, 비로소 새로운 나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
13. 돌이켜 보면 지나간 징한 세월 속에서 속앓이만 하던 내가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시행착오를 줄이며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결국 자신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노년의 삶 속에서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4. 잣죽 / 전일정 5

며칠째 코가 찡찡하더니 열을 동반한 감기 딸의 몸을 파고들었다. 코가 보내던 경고음을 바쁘다는 핑계로 무시했던 나를 자책해 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무시한 결과다.
② 딸은 어릴 때부터 아파도 칭얼대지 않고, 그저 내 무릎을 베고 누워 굵은 눈물만 흘렸다. 다 자란 지금은 눈물만 흘리지 않을 뿐 자기 방에 누워 아프다는 말도 없이 조용하다. 그런 딸은 키우는 내내 나의 말에 ‘싫어’라고 했던 적이 별로 없다. 살갑지 않은 나의 성격 탓으로―엄마인 내가 저를 이해해야 함에도―저가 나를 이해하려 했던 적이 많았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딸이 오늘처럼 아프면 나도 모르게 아픈 마음을 넘어서 죄책감이 든다.
③ 인기척이 없는, 방문을 빼꼼히 열어서 안의 동태를 살피고는, 목이 아파 어떤 것도 먹고 싶지 않다는 딸에게 어떻게라도 먹일 심산으로 잣을 간다.
"엄마, 난 잣죽은 느끼해서 별로야."라고
평소에 여러 번 얘기했던 말이 뇌리를 스친다. 그래도 나는 그나마 이 죽이 부드러워 목에 통증을 덜 느끼게 할 거라고 생각하며, 쌀을 불리고 입자가 클 듯하여 믹서기에 곱게 갈아서 죽을 쑨다.
④ 한 달 전의 일이었다. 부탁받은 일이 있어서 외부와의 접근을 차단하고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무엇에 몰입하면 다른 일은 손을 놓는 편이라, 가족들과 나를 잘 아는 몇몇은 그런 것으로 불편을 겪지만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배려를 나는 받고 있었다.
⑤ 그날은 부탁받은 일이 예정보다 빨리 마무리가 되어서, 음악을 들으며 햇살을 등지고 느긋하게 집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화창한 날씨와 일의 마무리가 만족스러워 흡족한 기분으로 걷고 있는데,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바쁘지 않으면 아버지가 몸이 안 좋은 거 같으니 죽을 좀 끓여 줄 수 있겠냐고 했다. 조카아이들이 아파 병원에 있어서 자기는 하기가 어려워 그러니 나에게 전화한다고 했다. 전화를 끝내려는데, 무심한 나의 성격을 알고 있다는 듯, 위에 부담이 덜 되는 잣죽이었음 한다고 덧붙였다.
작년에 지난해 위병으로 수술한 아버지는 뒤로는 아버지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으셨다. 산책을 오기 전에 옆 동에 사는 홀로 계신 아버지께 들렀다 온다는 것을 깜박했었다. 귀에 있던 이어폰을 빼고 그런데도 옆동에 사는 아버지께 나는 늘 소홀하다.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근처 죽집을 검색했다. 잣죽은 쉽게 끓일 수 없는 죽이라며,. 경험이 없는 내가 끓이는 것보다 맛이 나을 거라며, 죽을 사 와서 아버지께 건넸다.드렸다. 일이 마무리 되어 바쁠거 없는데도, 그러고 몇 번 이나 성의 없이 포장해 온 것을 죽을 내미는 나에게, 아버지는 번거롭게 한다며 나의 일상에 방해가 될까 염려를 하셨다.
⑦ 죽이 뭉근히 잘 끓었다. 잣과 쌀, 물의 농도가 적절하다. 역시 음식은 정성이 반인가 보다. 뜨거운 죽을 먹기 좋은 온도로 식혀서 딸의 방으로 들고 들어간다. 선잠을 자다가 나의 기척을 느끼고 딸이 눈을 뜬다. 힘들겠지만 맛있게 됐으니 몸을 생각해서 조금 먹어보라고 권하는 나에게 딸은 성가신 듯 등을 돌린다.
죽이 담긴 쟁반을 침대맡에 놓으려는데, 나중에 먹는다고 책상 위에 두라며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반응이다. 어떻게라도 먹이고 싶어서 끓인 정성을 봐서 조금 먹자고 하니, 잣죽의 느끼한 냄새가 거북하다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한 숟갈도 먹이지 못하고 생각나면 얘기하라는 말을 하고는, 아픈 얘의 신경을 건들까 염려되어 조심스레 방문을 닫고 나온다.
⑨ 죽은 식어서 표면이 엉기고 있다. 엉기는 죽을 보고 있자니, 한 달 전 성의 없이 사 와서 내밀었던 아버지의 잣죽이 생각난다. 잠깐의 수고도 하지 않고 어떤 정성도 들이지 않았던 나의 행동에도, 내 일상에 당신이 방해가 될까 마음을 쓰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 내 마음이 아린다. 미안했지만 눈 감아지던 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음, 딸에게는 눈 감아지지 않는 마음이라서 대한 마음이 달라 처연하다. 자연스럽게 자식에게 쏟아지는 부모의 어쩔 수 없는 사랑이, 내가 부모가 되었지만, 부모에게 향한 나의 마음씀이 자식일 수 밖에 없어서,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 딸에 대한 나의 마음이 같아서, 그게 왠지 삶의 순리인 거 같아서 쓸쓸하다.

5. 내가 모르고 지나온 삶/ 권은희2

1. 지난 일월, 그날은 노인 일자리 합격자 발표일이었다. 아침부터 휴대폰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인 열두 시가 되어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평소에 그렇게 많이 오던 광고 문자 한통 울리지 않았다. '올해는 안 되었나 보다.' '몇 년째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해야지 나만 계속할 수 있나 라고 생각해도 아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불합격이라고 체념하고 있을 때, 문자 알림 소리가 들렸다. 얼른 확인해 보니 합격을 축하한다며 출근 날짜, 근무처를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신나게 첫 출근을 했다.
2. 푸드뱅크라고 해서 음식 취급하는 곳인 근무처인줄 알고 갔는데 여러가지 상품이 있는 웬만한 여러 상품을 갖춘 슈퍼마켓 수준이었다.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행정복지센터에서 대상자를 선정해 주면 그분들에게 상품과 식품을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분들이 대상자가 되는지 궁금했다.
3. 며칠 후, 직원에게 물어보니 대상자는 기초생활 수급자, 차상위, 장애인, 한 부모 가정 등이 대상자라고 했다.었다. 복지 혜택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난 연말 모임에서 기초연금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던 일이 생각났다. 부부동반 모임이었는데,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는 게 억울하다는 이야기였다. 젊어서 중동 건설 노동자로 그 뜨거운 나라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겨우 집 한 채와 노후자금 좀 마련 해놨다고 기초연금 대상에서 제외되는 게 말이 되냐고 열변을 토했다. 기초연금에서 제외된 다른 사람들도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하면서 대한민국은 나이 들어 가난하게 살아야 혜택을 받으며 편하게 사는 나라라고도 했다.
4. 나도 이야기에 동조를 했다. 우리는 사택이라는 조금은 특수한 곳에서 아이들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살았다. 그 집은, 남편과 같은 직책 같은 급여를 받았지만, 우리보다 훨씬 여유 있게 살았다. 아이들도 당시 유행하는 옷과 신발로 치장을 했고, 롤러스케이트, 게임기 등도 사택에서 제일 먼저 갖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집 아내도 특별하게 꾸미고 다녔다. 우리는 그렇게 살 수가 없어서 부럽기도 하고 속상해서 자꾸 비교를 했다. 유월 초순이었는데 아들이 수박을 사달라고 했다. 수박은 아주 더운 여름에나 먹는 거라고 했더니 그 집 아이는 먹고 있다고 칭얼댔다. 나는 '내가 살림을 못 하나 왜 저 집과 이렇게 다르게 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지나 남편들이 퇴직이 다가왔을 때, 그 집은 전세도 못 구하고 월세를 알아본다고 했다. 그 일을 생각하며 나도 열띤 토론에 끼어들었었다
.
5. 다음날, 출근해서찾아 오시는 분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단순히 어려운 분들이라고 생각했지만,는데 막상 가까이에서 보니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어렵게 생활하시는 독거 어르신 들이었다. 그중 눈에 들어오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분은, 장애인 부부 였다. 모자가정의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분이었다. 그 부부는 두 분 다 지적 장애가 있었다. 아내가 바구니에 상품을 넣으니 남편이 "무겁다"라며 대신 들어 주었,. 아내가 말을 할 때마다 흘리는 침을 연신 닦아 주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광경을 실제로 보고 있었다. 아내를 챙기는 모습을 보니 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6. 모자가정의 젊은 여자분은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지 못하고 한참을 더듬고 있었다. 가만히 쳐다보니 손끝 떨리고 얼굴은 창백했다. 겨우 신분증을 꺼낸 그녀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어제 항암을 맞고 와서 아직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저런 분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힘이 없어 할 수 없고, 또 할 수도 없는 분들이었다. 도와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반찬 한 가지, 라면 한 봉지라도 에도 고맙다고 몇 번이고 인사를 했다. 내가 모르고 지나온 삶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달았다. 지난 연말 모임에서 했던 이야기들은 부끄러운 논쟁으로 다가왔다.
7. 꾸준하게 기부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안 보이는 곳에서 때맞춰 고추장과 각종 반찬을 만들어 보내는 회원들, 쌀이며 생필품을 지원해 주는 기업들, 제과점과 베이커리 카페에서 보내주는 빵도 맛있는 간식거리가 되었다.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의 온정 덕분에 누군가는 오늘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마웠다.
8. 지금은 예전처럼 함부로 쉽게 말하지 못한다.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누군가를 돕는 마음이 결국은 세상을 버티게 한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어제는 한 기업에서 10킬로짜리 쌀 천 포대를 후원 받았다. 울주군 푸드뱅크 각 지부 나누다 보니, 대상자 모두에게 드릴 수가 없어 선별해서 드렸다. 안타까웠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 와서 웃으며 말했다.
"공짜로 줘도 무거워서 못 들고 간다."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해서 정류소까지 들어다 주었다. 고맙다며 내 손을 잡고 연신 허리를 굽혔다. 어르신이 떠난 뒤에도 한동안 온기가 남아 있었다
. 며칠 전에는 팔십이 넘은 할머니가 상품을 받으러 왔다. 다섯 품목을 갖고 갈 수 있는데, 복숭아 통조림만 바구니에 담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친구 병문안 가는데 병실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려고 가져간다고 했다. 나는 또 부끄러워졌다. 어려워도 나누는 마음이 따뜻했다.
9. 노인 일자리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을 배우는 자리를 얻은 것이다. 이곳에서 나누는 것은 상품만이 아니라 서로를 지탱해 주는 따듯한 마음이다. 내일은 어떤 분들이 와서 환하게 웃고 갈까 기다려진다.

6. 몽니 / 정원주3

1) 백두대간 수목원은 살아있는 호랑이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안전 펜스로 둘러놓은 호랑이 숲은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었다. 그때 만난 백두산 호랑이의 포효하던 소리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2) 처음엔 얼룩덜룩한 바위덩어리 하나가 테크석에 큼직하게 놓여 있는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자고 있는 호랑이였다. 몇 번 몸체를 뒤척이며 돌아 눕던 호랑이가 마침내 눈을 뜨고 자리에서 우뚝 일어났다. 집채만 한 거대한 모습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보내며 박수를 쳤다.
3) 이마부터 몸전체를 수놓은 황금빛 털과 검은 줄무늬에는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곁에 있는 새끼 호랑이를 비비기도 하고 핥아주었다. 배와 등짝을 비비는가 했더니, 발로 툭툭 치며 어르는듯한 정겨운 모습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호랑이의 눈꼬리가 웃고 있는 모양으로 내 눈에는 비쳤다. 매섭고 공격적일 무서운 호랑이를 연상하고 왔는데, 한없이 푸근하고 다정한 멋쟁이 보스 같은 풍채를 풍기고 있었다.
4) “ 어~흥! ”
냅다 지른 호랑이 소리에 온 산이 쩌렁쩌렁 울렸다. 너무 놀라서 갑자기 귀가 먹먹해졌다. 어슬렁거리며 데크를 내려오는 어미호랑이 뒤를 새끼호랑이가 따라가고 있었다. 어흥이 나를 따르라는 신호였을까.
5) 순간, 그 모습이 그려내는 풍광 앞에서 울컥하는 전율을 느꼈다. 천천히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호피무늬 물결 너머로 태산처럼 다가오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내 가슴을 덮여왔던 것이다.
6) 아버지가 다정하게 느껴진 기억이 없다. 어렵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존재는 다 그런 줄 알았다. 당신의 속 깊은 마음을 이해하는 데는 너무 긴 시간이 필요했다.
7) 중학교 2학년 가을이었다. 서울에서 명문 대학을 다니고 있던 이웃 마을 오빠가 뜬금없이 찾아왔다. 초등학교 때 세 들어 살았던 주인집 아들이라 부모님들도 다 아는 처지였다. 나에게 영어사전과 문제집을 주고 싶어 했다.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만 안 했어도 덥석 받았을는지 모른다. 오빠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던 모양이다. 끝까지 사양하며 돌려보냈다. 그 오빠를 배웅하러 밖으로 나갔다가, 길에서 친구를 만났고, 저녁밥까지 얻어먹으며 놀았다.
8) 집에 돌아오자, 어둠이 깃든 마당 한 켠에 밥상이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맨드라미, 접시꽃, 봉숭아 꽃들이 반찬을 뒤집어쓴 채였다.
“딸 교육을 어마이가 제대로 안 시키고 뭐 하는 거냐!”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었다.냈다. 언제부턴가 집에서 허용하는 자유시간은 저녁 식사하기 전까지였다. 조금이라도 귀가가 늦어지면 아버지는 사정없이 엄마를 혼내는 걸로 나의 혼줄을 쏙 빼놓았다. 친구를 좋아했던 나는 그 규칙을 자주 까먹었다.
9) 친구들이 책상 속으로 건네주던 남학생들의 편지는 답장을 보낼 엄두조차 못 내었다.냈다. 사춘기에 접어든 나이였지만 이성에 대한 관심과 동경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10) 한 번은,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친구의 문제집을 빌려보느라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더 하고 가기로 했다. 하교하는 이웃집 친구에게 좀 늦게 간다고 , 우리 엄마한테 전해 달라는 부탁을 단단히 했다.
11) 코스모스 꽃대가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는 시각,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대문이 나무 판때기로 가로질러 있었다. 굵직한 X 자 형태였다.
“야야, 어디 갔다가 이제 오노?”
엄마가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덥석 내 손목을 잡았다. 어린 동생들 얼굴이 눈물자국으로 얼룩덜룩했다. 저녁밥도 못 먹었다며 몽땅 쫓겨나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막냇동생을 등에 업고 선 엄마의 얼굴은 핼쑥했다. 어둡도록 돌아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친구 집이며 선배 집을 온통 수소문하며 여태까지 찾아다녔다고 했다.
12) 나를 보자마자 천둥 벼락같은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긴 골목길 담장을 넘었다. 옆집 친구 엄마와 친구가 그제야 뛰어나와 상황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다. 친구도 어디 갔다가 조금 전에야 들어와 부탁받은 말을 잊어버렸더란다.
13) 순간, 아버지의 노기가 툭, 풀렸다. 그날 우리 집은 처음으로 외식한 날이 되었다. 그때 먹은 중국집 짜장면이 그렇게 맛있었다고 동생들은 두고두고 이야길 하지만, 그날 저녁 고함소리는 마음속에 짙게 깔려 결혼할 때까지도 쩌렁쩌렁 울렸다. 직접 연락할 길이 없었다는 나의 볼멘 투정에 얼마 안 있어 아버지는 빚을 내어 전화기를 들여놨다.
14) 회사에 다니던 여동생이 결혼할 사람을 데리고 왔을 때였다. 신랑 될 사람의 아버지가 연로하셔서 빨리 결혼식을 올렸으면 한다는 요청이었다. 언니가 있는데, 동생을 먼저 결혼시킬 수 없다는 게 그 당시 아버지의 확고한 결단이었다.
15) 아버지는 나를 불러 앉혀놓고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혼기가 찬 맏딸이 만나는 사람도 없고, 결혼할 마음조차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하셨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저를 그렇게 키우셨잖아요.’라고 나는 내심 뻗대고 싶은 심술마저 났다.
16) 아버지가 고심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히려 천연덕스럽게 행동했다. 별일 아닌 일로 집안을 벌집 쑤시듯 해놓고 동생들 앞에서 나를 혼내던 일, 엄마를 다그치며 꾸짖던 일, 자식을 깨우치게 하려는 얼토당토않은 당신의 고집이라는 생각에 반발심이 쌓였던 것이다.
17) 사실, 교직생활을 하면서 호감을 보내던 동료 교사가 있었다. 오랜 고심 끝에 결혼에 대한 논의를 하려고 마음을 내었는데, 그 집 부모가 사주를 보더니 궁합이 좋지 않다고 했다. 기분이 몹시 상해서, 그만 결혼말은 없던 걸로 거두어 버렸다.
18) 남자 쪽 부모가 반대하는 집안에는 과는 혼사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게 당신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면서 맞선을 보자고 여기저기서 소개를 받아들였다.
19) 권유와 강요에 못 이겨 맞선을 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낯선 사람을 만나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덜컥 겁이 나고 숨이 막혔다. 아무 하고나 결혼할 수 없다는 회의감과 강압적인 상황이 죽기보다 싫었다.
20) 결혼을 앞둔 여동생은 부모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혼기를 한참 넘긴 나는 부모의 권유에도 선을 보러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아버지의 울화가 폭발했다. 앞가림을 못하는 데 대한 실망이 컸던 탓일까. 그럼 어떻게 할 거냐고 되물었고, 대책이 없던 나는 맞섰다. 결혼 안 한다, 동생 먼저 보내면 되지 않느냐는 오기와 억지를 부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려거든 당장 이 집에서 나가거라며 불호령이 떨어졌다.
21) 숨 막히도록 닦달하는 강압적인 분위기가 힘들어 나도 모르게 집을 뛰쳐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맨발로 걷고 있었다. 반듯하게 앞만 보고 살아온 자신의 삶이 맨발의 신세처럼 서러워왔다.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정을 떼내려던 속셈인 것일까. 말할 수없이 원망스러웠다.
22) 어둠이 짙은 비포장도로를 따라 무작정 걷다가 생각했다. 궁합이 안 좋다고 말한 동료교사 부모님께 전화를 해보기로 용기를 내었던 것이다. 늦은 밤 시각이었지만, 내 앞에 펼쳐진 운명만큼이나 캄캄한 어둠을 가르며, 공중전화기 앞에서 번호를 눌렀다.
23) 도와주세요! 궁합이 안 좋더라도, 극복하는 길을 만들겠다. 양가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열심히 잘 살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고백하는 순간, 인연은 결국 내편이 되어주었다.
24) “호랑이도 지 새끼는 안 잡아먹는다더라. 시부모 말씀 잘 따르며 가서 잘 살아라."
아버지는 걱정이 앞섰던지 진중한 당부를 거듭했다. 동물 중에도 가장 무섭다는 맹수가 사는 곳이 시댁이라는 뜻이었을까. 한숨 깊은 침묵 속에서 딸이 이제는 품 안의 자식이 아님을 체념한 것일까. 떠밀리듯 결혼한 나를 보내놓고서, 당신은 그렇게 많이 우셨다고 했다.
25) 속 깊은 아버지의 생각을 읽을 줄 몰랐던 젊은 마음은 호랑이 같이 무섭고 엄격한 아버지의 동굴을 벗어난다는 홀가분함 뿐이었다. 그런 강경한 아버지와 마주하는 게 불편하여, 결혼 후에도 의무적인 도리만 하고 살아왔다.
26) 이제 아버지를 뵈러 산소에 갈 때면 커피믹스를 끓여서 준비한다. 생전에 술보다 커피를 더 좋아하셨기에 제단 상석에 커피잔을 올리며 지난 시절을 회상해 본다.
27) 그동안 아버지가 나에게 몽니를 부린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몽니를 부린 삶은 나였다. 당신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맏딸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이, 자식의 몽니 앞에서 당신의 고집을 내려놓고 적절한 타협을 해 주셨나 보다. 주신 아버지 . 아버지의 부린 몽니는 몽니가 아니라 자식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태산같이 높고, 넓은 보호막이었다.
28) 호랑이 줄무늬처럼 이마와 눈가에 굵은 주름살이 가득했던 아버지, 강한 보호본능과 책임감으로 자식을 반듯하게 기르고 싶어 그토록 쩌렁쩌렁 포효하셨는지도 모르겠다.
29) 자식 사랑이 깊었음을 뒤늦게 깨달았건만, 진한 커피 향만이 쓰라린 내 속을 타고 내린다. 한 번도 아버지랑 다정하게 카페를 가본 적이 없다. 어~흥하고 울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산소 앞에 엎드린 내 등을 오늘도 가만히 다독거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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