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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품 합평작

14차시 (2026.6.6.토)/남경수5/김근태5/이재명1/신준영2/이영수5

작성자캔디|작성시간26.06.05|조회수5 목록 댓글 0

1. 가격표 없는 시간/ 남경수5
2. 광야문성(曠野問聲)/ 김근태5
3. 아내의 창(窓)/ 이재명1
4. 커피를 내리며/ 신준영2
5. 중독/ 이영수5

1. 가격표 없는 시간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 남경수 5
부사는 조심해서 써야한다.독자를 설득시키면 안된다.(정말, 대부분)

1. 정말 소중한 것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랑, 신뢰, 시간, 그리고 관계 같은 것들이다. 일관성이 있는 단어는 아니다.이질적인 단어들이다. 우리는공공의 글이 된다. 그것들이 삶을 지탱하는 진정한 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시선은 늘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집중하여 살아가고,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있다.
2. 아이를 낳은 후에도 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고, 쉽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아이를 맡길 사람을 구할 때까지만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여겼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떨어져 있는 시간이 점점 견디기 힘들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긴다는 것도 기고, 쉽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내 얘기로 넘어가면 안된다.
3. 나는 육아휴직을 선택했다.하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육아휴직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 아이들은 그냥 둬도 잘 큰다.” 는 말과 함께, 왜 굳이 일을 멈추느냐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엄마는 딸의 고생이 안쓰러워 아이를 데려다 키워주겠다고 했다. 다섯 남매를 키운 엄마의 노후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결정을 앞두고 아이를 먼저 키워본 선배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흘러나온 말은 ‘아쉬움‘ 이었다.
4. “ 어릴 때 친정에 맡겨 키우다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야 데리고 왔어. 아이를 업어 준 기억이 없어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가끔 업어 줘” 그 말이 가슴을 울렸다. 또 다른 선배는 첫째는 친정에 맡겨 키웠고, 둘째는 휴직을 해서 곁에서 키웠다고 했다. 둘째 아이는 눈빛만 봐도 속을 알 것 같은데, 첫째는 어딘가 투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분명 같은 자식인데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이 있다는 말이었다. 함께 지내온 시간의 밀도가 달라서 생긴 틈,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솔직한 고백경험담이었다.
5. 아이에게 엄마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과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 만남이었다. 엄마로 살아가는 경험을 온전히 겪어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행복하고 싶었다.
6. 대학교를 졸업한 직장을 가진 후 쉼 없이 일만 했던 나는, 하루아침에 가정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내 손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루종일 아이와 둘이 아파트 안에 머물며 남편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도 외로웠다.
7. 초보 엄마였던 나는 육아책을 펼쳐 들고 발달단계에 맞는 이유식을 만들고, 아이와 놀아주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루는 온전히 아이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밤 중에 아이가 깨면 잠에서 일어나 다시 재워야 했고. 하루는 온전히 아이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우는 아이때문에 화장실 문을 붙잡은 채 서둘러 볼 일을 보기도 했다. 신발을 들고 밖에 나가 놀기를 원하는 아이를 따라 다니느랴 밥 한끼를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려웠다. 집안일은 아이가 잠잘때를 이용해서 서둘러 해야했다.
8. 아이를 키우는 일은 직장생활보다도, 대학원에서 논문을 붙들고 씨름하던 시간보다도 더 고된 일이었다. 독자가 다양하기 때문에 적지 않는 것이 좋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과제를 감당하는 일이었,. 그 과제의 이름은 대부분 ‘희생’이었다. 자기 자신을 희생이라고 적지 않는다. 타인이 말하는 희생은 가능함. 9. 끊임없이 내어주기만 하던 엄마를 보며 마음속으로 여러 번 다짐했었다. 하던 나였다. 나는 절대 (친정을 적어주면 좋다. 본인도 엄마니까)엄마처럼 희생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희생은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 스스로 내어주게 되는 것이라는 걸.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끝내 몰랐을 감정이고, 결코 택하지 않았을 사랑의 방식이었다.
10. 아이에게 정성을 다하는 일은 희생 이전에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은 사람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었다. 무겁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것이었, 그 무게를 견디며 나는 조금씩 엄마가 되어 갔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끝없는 노동과 희생이 반복되는, 보상을 기대할 수 없는 시간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적으면 안되는 내용이다.
11. 아이가 첫 발자국을 떼는 순간을 본 적이 있는가? 기적같은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이었다. 배를 밀고 기어다니다 작은 손으로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고, 마침내 두 발로 걸음을 걷는 과정은 하나하나가 기적이었다. 어느 평범한 날, 어느 순간에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 라고 불렀을 때는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호칭을 나를 향해 불러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다.
12. 3년의 육아휴직은 힘들었지만, 엄마로서 한층 성장하게 만들어 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가치를 가격으로 매길 수 있을까? 돌아보면 아이와 나를 단단하게 이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일하는 엄마로서도 아이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의 근원이 되었다. 엄마로서의 경험은 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날 때도 또 다른 시각을 열어주는 자산이 되었다.
13.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는 방향으로 흘려가고 있다. 눈만 뜨면 마주하는 스마트폰 속에는 아름다움과 부를 과시하는 장면들이 끊임없이 흘러넘친다. 홈쇼핑과 광고는 무언가를 더 사야 한다고 말하고, 더 많이 가져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을 것처럼 우리를 설득한다.
14, 우리는 이런 환경속에서 끊임없이 비교하고 욕망을 자극받으며 살아간다. 가격을 매길 수 있는 것들은 쉽게 선택되지만, 가격표가 없는 것들은 보이는 것들 뒤에서 조용히 뒤로 밀려난다. 이 흐름 속에서 무엇을 놓치지 않을지는, 각자가 스스로 선택해야 할 몫이다.
15.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설명하기 힘든 깊은 슬픔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오래 마음에 남는 것들은 대부분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종종 가장 중요한 것들을 붙잡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린다. 결국 남는 것은, 그때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가에 대한 기억이다.

2. 광야문성(曠野聞聲)/김근태5 간증, 신앙 고백의 글이다. 순수 문체는 약하다.

1. 빛 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을 오래 들여다본다. 색을 잃은 얼굴들 위로 시간의 먼지가 내려앉아 있지만, 그 안에 갇힌 기억들은 여전히 선명하다. 나는 그 사진 속에서 한 사람을 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흔들리며, 인생무상의 파도를 건너려 애쓰던 젊은 날의 나를. 그 시절은 실패와 좌절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 존재를 단련시키던 거친 물결이었다.
2. 나는 집안에서 얌전하고 모범적인 아들이었다. 부모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 이른바 ‘범생이’였다. 그러나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세상은 내 안의 억눌린 에너지를 자극했고, 나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채 밖으로 쏟아냈다. 좌충우돌, 방향 없는 질주. 그렇게 20대 초반은 청년시절은 질풍노도의 계절로 흘러갔다.
3.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이 붙은 시대의 구호는 달콤한 유혹처럼 들렸다. 병역을 대신할 수 있다는 조건은 나를 울산의 한 대기업 훈련소로 이끌었다. 교관들의 설득에 이끌려 용접을 선택했고, 군대식 규율 속에서 기술을 익혔다. 쇳물이 튀는 작업장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4.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다. 않았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처럼, 앞에서 말한 범생이와 상반되는 말이다. 하루의 훈련이 끝나면 나는 다시 방황의 궤도로 돌아갔다. 포장마차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하루를 씻어내고, 정문의 경비와 마주치는 것이 싫어 담을 넘었다. 숙소에 들어오면 또 다른 긴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체 조건과 상관없이 서열을 정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을 던졌다. 장발 단속을 피해 2층에서 뛰어내리던 날들, 외국인 소장의 차가운 시선까지도 이제는 하나의 장면으로 남아 있다.
5. 밤이 깊어지면 모든 소란이 잦아들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한밤의 음악은 내 마음을 적셨다.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라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공돌이로 살아가는 설움과 막막한 미래를 떠올렸다. 희망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던 그 시절, 눈물은 조용히 베개를 적셨다. 그리고 다짐했다. 병역 문제가 해결되면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가겠다고. 세속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다.
6. 병역 문제는 해결되었고, 나는 회사를 떠났다. 출가의 뜻을 아버지께 전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장남은 안 된다.” 그 한마디는 나를 다시 세상으로 밀어 넣었다. 방향을 잃은 나는 또다시 방황했다. 일등만을 인정하는 사회를 원망했고,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했다.
7. 다른 대기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장 안의 삶은 내게 또 다른 답답함을 안겨주었다. 정문에서 타임카드를 찍기 위해 줄을 서고,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일상. 줄을 서는 것이 삶의 전부인 듯한 구조 속에서 나는 깊은 회의를 느꼈다. 월급쟁이로는 승부를 낼 수 없다는 결론이 서서히 자리 잡았다.
8. 결국 나는 회사를 떠나 선박 용역회사로 옮겼다. 몇 년만 버티면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이 나를 붙잡았다. 외국 선박과의 에서의 업무를 위해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밤이면 사무실에 남아 타이핑 연습을 하고, 회화연습을 하였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그러나 인내는 끝내 한계에 부딪혔다. 상사와의 갈등은 결국 퇴사로 이어졌고, 나는 또다시 길 위에 서 있었다.
9. 그 후 2년은 공백의 시간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며 보낸 나날들. 결국 전공이었던 토목을 떠올렸고, 아파트 전문 건설업체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10년을 버텼다. 성실하게 일하며 나름의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IMF1997~2000라는 거대한 파도가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회사는 부도가 났고, 나는 다시 무너진 자리 위에 서야 했다.
10.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기회는 폐허 속에서 찾아왔다. 내가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조합 사무장을 맡게 되었다. 행정과 실무를 배우며 재건축과 재개발의 구조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아파트들이 새로 태어나는 과정을 보며, 이 분야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가 대학 강의를 들으며 컨설팅을 공부했다.
11. 이후 컨설팅 업체의 임원으로 일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경험은 쌓였고, 독립에 대한 꿈도 커졌다. 그러나 운명은 또다시 나를 시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건설업계를 무너뜨렸고, 내가 몸담았던 회사 역시 문을 닫았다. 노력과 성실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12. 그 후 나는 과거 인연이 닿았던 시행사 대표와 함께 도시락 배달업을 시작했다. 생계를 위한 선택이었다. 1년 만에 동업자는 떠났고, 남은 것은 나와 아내뿐이었다. 우리는 함께 버텼다. 새벽부터 밤까지, 묵묵히 일을 이어갔다.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그 시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서로를 의지하며 삶을 지탱해 낸 기록이었다.
13.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실패의 연속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나를 이끌고 있었다는 것을.
14. 나는 서른다섯의 어느 날, 광야에서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귀로 들리는 음성이 아니라, 존재 깊은 곳을 울리는 부름이었다. 나의 사명은 그 소리를 전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15. 지금 나는 선교사로 떠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준비하고 있다. 필요한 교육을 마치고, 언젠가 실버선교사로 세상 끝까지 나아가기를 꿈꾼다. 그것이 내가 걸어온 길의 이유이자, 앞으로 걸어갈 길의 방향이다.
16. 이 땅에서의 삶은 때로 실패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보이지 않는 차원의 세계에서는 이 모든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광야에서 들었던 그 음성은 여전히 나를 부르고 있다. 오늘도 나는 그 소리를 따라 한 걸음씩 걸어간다.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들리지 않는 음성을 붙들고.
종교적인 간증의 의미가 보인다. 인생의 실패라는 문장이 중복된다.

3. 아내의 창(窓) / 이재명1 북창 너머 영남 알프스로 바꾸면 좋을 듯. 편집장 근무함.
문학적 감성이 뛰어남. 완성도 높은 글이다. 북창은 좋지 않은 의미로 많이 쓴다.

1. 아내가 북쪽으로 창문을 내달라고 한 것왜 그런지 주제가 드러나게 알려줘야 함. 내가 정년퇴직을 한 지난해 봄이었다. 아내는 제 방의 창문이 크기가 작고 남쪽으로 향해 있어 북쪽의 영남알프스 경치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며 북쪽에 새 창문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봄에는 산기슭의 화사한 봄꽃들을,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진 골짜기를,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을, 겨울에는 봉우리마다 하얗게 내려앉은 눈꽃을 감상하고 싶다고 했다.
2. 하지만 멀쩡한 벽을 허물고 대형 창문을 다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우리 동네에서는 북쪽 벽에 대형 창문을 다는 경우 거의 없다. 겨울이면 천 미터 이상의 깊은 골짜기에서 삭풍이 사정없이 마을로 몰아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저러다가 말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 두 달 세월을 보내고 있던 차에 아내는 어디서 그려왔는지 대뜸 설계도를 내 앞에 내밀었다.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이리저리 알아보니 공사비가 장난이 아니었다. 더욱이 대형 창문을 달려면 구조를 변경하고 방도 거실 쪽으로 더 넓혀야 했다. 이 와중에 아내는 한술 더 떠 창문 밖의 죽담 잔디를 걷어내고 대신 현무암 판석을 깔아달라고 요구했다. 죽담의 잔디에 벌레가 너무 많이 살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죽담 면적만 해도 열 평 훨씬 넘는데, 이 공사를 혼자 나보고 하라고? 34년의 회사생활 동안 근육을 쓴 것이라고는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것이 전부였던 내게 이 공사를 혼자 하라고?
4.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는 사이 여름은 지나가고 문득 10월이 된 어느 날, 아내는 저녁을 먹고 난 뒤 정색을 하고 말했다. “평생 꽃집 일을 하면서, 그리고 아이들 가족 뒷바라지하면서 제대로 된 내 방도 없이 살았는데, 그깟 창문 하나 못 달아줘요…” 아내는 작심한 듯 서러웠던 지난날의 기억들을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눈이 휘둥그레진 나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 말 못 하고 연거푸 소주만 들이켰다. 가 되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다가는 오히려 화만 키울 판이었다. 아내는 나의 소주잔 놓는 소리를 뒤로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았다. 굳게 닫힌 문을 보면서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간 큰 남자 삼식이가 눈치 없이 개기다 종국에는 버티다가 비극적인 결말에 이를 것만 같았다.
5. 사실 아내는 꽃집 운영에 평생을 다 바쳤다. 환갑을 맞은 지금도 주문만 들어오면 만사 제치고 가게로 향한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노후가 편안해진다면서 아픈 허리와 무릎을 절뚝거리며 일하러 나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외려 나의 정년퇴직 후 백수 생활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다.
6. 아내의 꽃집 운영은 IMF 구제금융과 함께 시작됐다.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몰아닥친 1998년, 굴지의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내가 다니던 신문사도 부도 직전이었다. 그때 묘수를 찾아낸 사람은 바로 아내였다.
“당신, 술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잖아. 회사 업무도 기업체, 관공서와 연관돼 있고. 내가 꽃 만드는 기술을 배우면 당신이 틈틈이 영업을 좀 하면 안 될까?”
결혼 6년밖에 안 된 아내의 아이디어는 나를 감동시켰다. 되든 안 되든 뭘 하겠다는 의지가 기특하기 고맙기만 했다.
7. 우리는 아내는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아내는 아는 꽃집에 취업해 월급 대신 기술을 전수받기로 하고 3개월간의 도제 수업을 받았다. 꽃·난·나무 이름 외우기, 화환 만들기, 꽃다발 만들기 등등 할 일 너무나 많았다. 아내는 조그만 체구에도 불구하고 다부지게 일을 해 인근 꽃집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가게는 자리를 잡았다.
8. 그러나 좋은 일이 겹칠수록 마가 끼는 법, 두 아이 뒷바라지하랴, 꽃배달하랴, 일가친척 대소사 참여하랴 몸이 셋이라도 부족했던 아내는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갑자기 쓰러져버렸다. 의식을 회복하긴 했으나 의사는 과로가 지속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몇 달 동안 안정을 취하고 난 뒤 아내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는지 ‘에고, 이러다가 죽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댔다.
9. 어느 날 아니나 다를까 아내 몸에는 듣도 보도 못한 ‘급성횡단성척수염’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진단을 받았다. 척수에 갑자기 염증이 생겨 하반신을 못 쓰는 병이었다. 그날 아내는 몸에 탈이 났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오늘 일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허리 아래쪽에 힘이 없어. 뭔가 이상해.” 난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양다리를 열심히 주물렀다. 하지만 하반신 마비는 급속도로 진행됐고, 급기야 새벽에 앰뷸런스를 부르는 사태로 이어졌다. 의사는 “일단 치료는 해보겠지만 어느 정도 회복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평생 앉은뱅이로 살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와중에 아내는 꽃 주문을 받아야 한다며 펜을 끄집어내 배달 주소를 받아 적었다. 내 마누라가 이렇게 지독한 여자인 줄 예전에는 몰랐다.
10. 아내의 재활은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코로나 때문에 더 힘들었다. 환자 말고는 아무도 병실을 출입할 수 없었다. 아내는 허리 통증 때문에 매일 고농도의 진통제 주사를 맞았다. 거기다가 스테로이드 약물을 계속 투여하다 보니 얼굴은 풍선처럼 부어올랐다. 아내가 보내준 얼굴 사진을 보면서 ‘병실에 보름달이 떴네.’라면서 우습지도 않은 농담을 문자로 보냈다. 아내는 영상통화를 하면서 내 눈꼬리가 젖어있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했다.
11. 2~3년의 재활은 몸을 완전히 정상으로 돌려놓지는 못했으나 생활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았다. 아내는 이제 바늘귀도 못 꿰는 환갑의 나이가 됐다. 줄곧 거실에서 잠을 잤던 아내는 작년에 딸이 분가해 나간 후 비로소 제 방을 갖게 됐다. 북쪽으로 창을 내달라는 아내의 주문은 그즈음에 나왔다. 나는 아내의 요구를 더 이상 미룰 처지가 아님을 그제서야 알게 됐다.
12. 북쪽 벽에 창을 만들고 죽담에 현무암 판석을 까는 일은 늦가을에 시작돼 봄까지 이어졌다. 허리와 어깨 등 몸 곳곳에 붙였다가 뗀 파스는 낙엽처럼 나뒹굴었고, 손목에 감았던 손목보호용 아대는 아예 땟국물로 꼬질꼬질해졌다. 진통제와 물리치료는 일상이 됐다. 6개월 만에 간신히 공사를 끝냈으나 몸은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뼈마디마다 통증이 속속들이 침투해 잠을 못 이루게 했다.
13. 하지만 지금까지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최근 아내 방에 누워 허리 찜질을 하면서 깨닫는다. 창가에 몸을 누이면 간월산, 신불산을 배경으로 왜가리와 백로가 동영상처럼 창문을 가로질러 날아간다. 홍매, 산수유, 목련, 개나리, 박태기, 불두화가 차례로 피었다 지고 중턱의 산벚꽃은 여기저기서 폭죽처럼 터진다.
14. 아내가 그렇게 원했던 풍경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고맙다는 아내의 인사에 괜히 겸연쩍은 생각이 든다. 사실은 나도 내심 이런 풍경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기분 좋은 몸살을 앓는 사이 또 한 번의 봄이 지나가고 있다.

4. 커피를 내리며/신준영2 이 글은 바리스타, 핸드드립 하는 방법을 서술한 것이다.
사례가 없다. 수필은 분석, 해석 하면 안된다.
1. 부드럽게 분쇄된 커피 가루 위에 뜨거운 물을 붓고 약 20초간 뜸을 들인다. 커피 내부에 있는 가스를 빼고, 물이 가루 사이에 잘 스며들어 골고루 젖게 해서 다음 물을 부었을 때 커피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을 균일하게 추출문학적 용어는 아니고 바리스타 용어다 내리다로 하면 좋겠다.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뜸을 들인 후 2~3번 두세번 정도 물을 더 부어 커피 추출을 완료하고 즐기면 된다. 커피를 내리면 한 잔의 원두 커피가 완성된다.
2. 기본적으로 커피 원두를 분쇄하여 가루를 만들고 그 위에 물을 부어 추출하는 원리는 비슷하지만, 커피를 내리는 방법은 저마다 다양한 방법이 있다. 커피를 담는 드리퍼 모양에 따라 종류가 다르고, 물을 붓는 방법에 따라 이름과 맛이 달라지기도 하며, 차가운 물을 부어 오랜 시간동안 내려 물을 타서 먹는 커피도 있다.
3. 어떤 추출 방식이 더 맛있는 커피가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저마다 자기의 입맛에 맞으면 그게 제일 좋은 커피라고 말한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커피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신선한 원두로 볶아서 신선한 원두로 내린 커피가 제일 맛있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얘기는 정보를 줄 수 없다.
4. 다시 말하면 커피의 본질인 커피 자체가 좋아야 한다. 갓 볶은 커피는 처음 밀봉되어 있는 커피봉투를 개봉했을 때 그 공간에 퍼지는 원두의 향만으로도 맛있음을 직감하게 한다. 하지만 그 맛있는 커피도 보관을 잘못하거나 오랜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두면 산폐하게 되고, 잡내가 베어 향긋한 커피의 향은 옅어지고, 입에 머금었을 때 군내가 난다.
5. 신선하고 좋은 원두는 아무나 적당량의 물만 부어도 맛있는 커피가 되지만, 오래되고 방치된 원두는 그 아무리 세게적인 바리스타가 와도 커피 맛을 살릴 수가 없다.
6. 인간도 갓 볶은 커피원두와 같다. 커피에 물을 붓고 뜸을 들이듯 교육을 통해 상당한 시간동안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던 내부의 동물적 본능을 내보내고, 사회에서 사람들과 섞여 더불어 살 수 있는 준비를 한다. 그 준비를 바탕으로 취업, 결혼, 출산 등으로 2~3번 정도의 인생의 변화를 맞이한다.
7. 기본적인 사람들 인생은 비슷하다. 하지만 각자 생활 방식이 있다. 주위 환경도 다르고, 부모의 양육 방식도 다르며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발휘하게 되는 시간도 다 다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결과를 돌아보면 각자 호불호가 있을 것이다. 돈이 많아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역경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자기 입에 맞는 커피가 제일 맛있듯, 지금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가에 따라 저마다 행복을 느끼는 기준이 다르다.
8. 커피의 기본이 좋은 원두인 것처럼, 행복하고 잘 산 인생의 기본은 자신이다. 갓 볶은 신선한 원두처럼 인간도 계속 새로워져야 한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쌓은 나만의 경험과 지식만을 가지고 세상을 대한다면 꼰대라고 불리며 오래된 커피에서 느껴지는 군내처럼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다.나는 사람이 된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마음과 귀를 열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려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다름과 변화에 대해 받아들이려고 하고, 순응하는 것 자체가 새로워짐이라 생각한다. 이 새로워짐은 지난 세월을 살아오며 알게 된 지식과 터득한 경험과 섞여 그 어디에도 없는 자신만의 향기를 가지고 주위를 그 향으로 채울 것이다.
9. 인간에게도 사람의 향기가 있다. 향수나 체취처럼 코로 맡을 수 있는 화학적인 냄새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갓 볶은 커피가 좋은 향으로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처럼,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며, 늘 새로움으로 같이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서 운 마음으로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5. 중독/ 이영수(5)

1. 사회에서 사람들은 중독이란 말 자주 사용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게임중독 도박중독, 안 좋은 쪽으로만 사용하는 것 같아 다소 아쉽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일중독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 적당하게 중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중독 보다는 중도 또는 중용을 취해야 할 것이다. 대체로 부정적인 듯을 가지고 있다. 이 중독에는 음식이나 약물등에 의한 신체적 중독이 있는가 하면 사상과 사물에 의한 정신적 중독이 있다. 어쨋든 중독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데서 오는 질병이다.
2. 사람이 살면서 일, 공부, 운동 삶에 있어 좋은 것이라도 어느 정도는 적당하게 중용을 취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중독은 좋지 않다. 그러나 세상 살다보니 그게 만만하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하필이면 안 좋은 것의 습관이나 중독만 말할 뿐 좋은 것의 중독은 말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3. 고등학교 졸업 후 다른 직업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하고, 시종일관 공무원만 하다가 퇴직한 나도 중독이 하나 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 사오십 년 전만 해도 국세공무원들은 토 일요일 근무는 기본이고, 주말이 없을 정도였고, 집에도 일거리를 집에 가지고 다닐 정도로 일이 많았다. 물론 손 빠르고 특별한 일부 직원은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이거나 일손이 조금 늦은 사람들은 거의 집에까지 가져가서 일을 하였다. 공휴일 날에도 출근하여 일을 많이 하였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때는 그런 것이 거의 관행이고 일상화된 생활이었다.
특히 내가 근무하던 초창기 공무원 시절에는 주로 주판으로 계산을 하였고, 장부를 정리하던 시대로 요즘에 비하면 매우 비능률적으로 일을 하였던 시대였다. 요즘 유식한 말로 하면 디지털이 아닌 완전 구식 아날로그 시대였다. 다른 국가 기관에 비해 그래도 국세행정이 전산화가 빨랐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옛날 초창기 공무원 시절은 아주 원시적으로 일을 했다.이었다. 단순 반복되는 일이 많았기에 사무실내 공식적으로 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임시여직원이 공공연하게 일을 돕게 하곤 하였다. 그래서 행정전산화 초창기 때에는 일반 세무 행정이 아닌 전산요원이란 여직원을 선발하여 전산실이란 별도 기관까지 두고 있었다. 그 직원을 전산실 여직원이라고 호칭하였다. 지금은 모두들 자기 책상 앞에 개인용 컴퓨터가 있다. 그리고 모두가 컴퓨터 전산으로 일을 한다. 있지만 그때는 전산실 여직원들만 컴퓨터를 다루던 시절이었다.
4. 국세공무원을 명예퇴직하고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전문직 직업 몸이다.인이다. 어느 누구도 나를 이래라 저래라 통제하는 사람은 없다. 마음만 먹으면 오늘이고 내일이고 쉴 수도 있고 그만 둘 수도 있다. 내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그런데도 오래 몸에 밴 습관, 생각은 하루아침에 절대 떨쳐 버릴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하면 꼭 죄를 짓는 것 같기도 하고 죄의식이 든다. 기분이 좋지 않다. 왜 그럴까 이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인 것 같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닌 것 같다.
5.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약간 나에게 일중독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실감하는 때가 있다. 주로 명절이나 연휴를 이용하여 해외여행을 갔을 때 많이 경험한다. 다른 일반 사람들은 해외여행 가서 편안하고 즐겁게 여행을 잘도 다녀온다. 나는 유독 평일이 하루라도 끼어 있으면 마음이 조금씩 불안하다. 몇 번이나 실감했다. 해외에서도 평소 친한 고객의 휴대폰 전화를 한번이라도 받으면 사무실에서 출근하지 않은데 대해 죄책감과 불안감을 느끼고 기분이 안 좋아진다. 물론 전화로 지금 해외인데 나중에 귀국해서 전화로 통화할 것을 약속 답변하고 끊기는 하였다. 느끼게 된다.
패키지여행의 경우 평일을 택하여 가면 여행경비도 훨씬 적게 들고 좋은데 굳이 연휴를 끼워서 가면 여행비도 비싸다고 아내는 자주 불평하곤 한다. 그러나 내마음속에 있는 이 말은 차마 말을 못하고 속으로 삭인다. 평일에 나를 믿고 찾아오는 고객들께 실례가 된다면서 거절 하곤 한다. 꼭 학생이 무단결석을 하는 느낌이 든다. 마음속으로는 이러면 안 된다! 괜찮다고 하면서...
6. 가끔 아내는 어떤 해외여행에 관한 좋은 정보가 있으면 무조건 가보자고 졸라댄다, 100% 연휴를 이용하여 가면 마음 편하게 다녀 올 수 있는데 하루라도 평일이 끼여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마음의 죄책감이 덜어 꺼려지곤 한다. 물론 그래도 몇 번이나 다녀오기는 했다. 중복되는 내용
7. 친한 친구에게 지인들에게 속 내막을 말하니까 약한 일중독 증세라고 말하면서 충고의 말을 했다. 듣기는 불편했지만 사실 맞는 말이라고 생각 되었다. 어떻게 들으면 좋은 말 같기도 하지만, 왠지 들으면 기분이 씁쓸하다. 병이라고 까지는 생각되지는 않지만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 틀린 말 아니고 맞는 말이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까 늘 고민하곤 한다.
8. 패키지여행의 경우 평일을 택하여 가면 여행경비도 훨씬 적게 들고 좋은데 굳이 연휴를 끼워서 가면 여행비도 비싸다고 아내는 자주 불평하곤 한다. 그러나 내마음속에 있는 이 말은 차마 말을 못하고 속으로 삭인다. 평일에 나를 믿고 찾아오는 고객들께 실례가 된다면서 거절 하곤 한다. 꼭 학생이 무단결석을 하는 느낌이 든다. 마음속으로는 이러면 안 된다! 괜찮다고 하면서...
9. 언제쯤 나는 아무런 부담 없이 홀가분하게 패키지 자유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갑갑하다. 과연 그런 날이 올지 기대를 해본다. 이 말은 아직 한 번도 아내에게나 가족들에게는 말하지는 않았다. 괜히 좀스럽다는 소리를 들을 것만 같아 속으로만 그냥 삭인다.
10.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사람이 살면서 무슨 일이던지든지 중독이 아닌 적당한 중용이 옳은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오늘날 그나마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편안하게 살고 있는 것이 그 일 중독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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