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댕강나무 가지치기 / 노소연8
1도로 한쪽 가로수 아래 가지치기 작업이 한창이다. 두 사람이 그물망을 세워서 양쪽에서 잡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기계로 가지를 자르고 있다. 무성했던 나뭇가지가 정리되자 꽃댕강나무는 한결 단정한 모습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2 '내 삶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오 년 전 온라인으로 영어 회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매일 다섯 문장을 외우고 영상을 찍어 SNS에 인증했다. 혼자 하던 공부는 새벽 영어 모임으로 이어졌다. 네 명이 모여 주 3회 공부했다. 한 사람은 영어를 읽고, 한 사람은 우리말을 읽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3시간이 흐르면서 한 명, 두 명이 떠났다. 결국 두 사람만 남았다. 남은 우리는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영어 원서도 읽고 한 페이지 정도 외웠다. 단톡에 녹음한 것을 올렸다. 격려의 하트를 누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 혼자였다면 포기했을 공부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다.
4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금요일 수업이 다가오면 부담이 되었다. 알람이 울리면 5분만 더 자야지 하면서 알람을 껐다. 임박하셔야 후다닥 일어났다. 줌 링크를 보내고 수업 준비를 했다. 공부를 지속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 오히려 부담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서 모임 횟수를 줄이는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 의견 끝에 주 2회로 정했다.
5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공부가 다시 즐거워졌다.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갈 수 있는 속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6 비슷한 경험은 운동에서도 있었다. 아침 영어 공부를 마친 뒤 거북목 예방 요가를 매일 20분씩 했다. 몸이 피곤해도 쉬지 않았다. 빨리 효과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몸에 무리가 왔다. 아무리 좋은 운동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주말에는 쉬기로 했다. 오히려 월요일 운동이 훨씬 가볍고 즐거워졌다.
7가지 치기는 나무에만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삶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했다. 덜어내야 할 것을 덜어낼 때 공부도, 운동도, 마음도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8 창밖을 바라본다. 가지치기를 마친 꽃댕강나무가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길가에 무리를 지어 서 있다. 이 길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쉼을 선물한다. 오늘도 나는 꽃댕강나무를 보며 생각한다.
잘라내는 용기가 때로는 인생이라는 장거리 경주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온라인의 가까운 거리 / 노소연 9
1버스의 종점은 간절곶이다. 시내에 볼일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로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좌석이 거의 차 있다.
"다음은 서생포 왜성입니다."
안내 방송이 나오자 한 여성분이 졸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아내는 분홍색 점퍼를, 남편은 연한 파란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두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자 버스 안에서 누군가 말했다.
"부부가 참 어울린다."
나는 차창 밖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란히 걷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2며칠 뒤, 여성질환으로 병원을 찾았다. 10년 만에 방문한 병원이다. 초음파 검사 후 의사는 오른쪽 가슴에 1.5cm 크기의 양성 종양 세 개가 모여 있다며 수술을 권했다.
3일주일 뒤 오전 9시 30분까지 병원에 오라고 했다.
입원실에는 깨끗한 시트와 환자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이 옷을 입으면 누구나 환자가 된다.
같은 병실의 다른 환자는 보호자와 함께였다. 친정어머니가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혼자였다.
이럴 때 조금 서럽다.
4수술실 문이 열리자 의사는 환하게 웃으며 긴장하지 말라고 했다. 국소 마취를 할 때도 아프지 않은지 세심하게 살피며 안심시켜 주었다.
5수술이 끝나고 붕대를 감은 모습을 보니 마치 럭비선수 같았다. 순간 어지러웠지만 심호흡을 하니 괜찮아졌다.
오후에 수납을 하러 갔다. 환자복 차림으로 병원 복도를 걷는데 누군가를 의식하게 된다.
6아들에게 카톡을 했다. 근무 중이라 센터장의 허락을 받아야 온다고 했다. 바쁘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택시 타고 가면 되니까. 퇴원 시간이 맞춰 병실로 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여자친구가 아플 때는 병원비를 아끼지 않았고, 여자친구의 반려묘가 아플 때도 정성껏 돌봤다. 그런데 엄마가 아플 때는 왜 이렇게 조심스러울까.
서운한 마음이 스쳤다.
7 다르게 생각을 해 봤다.
내 몸이 아프니 내가 나를 위로하고 돌보면 된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가 나를 데리고 가서 사 먹으면 된다. 기다릴 필요는 없다. 이제는 오래 사는 시대다. 각자 자기 몸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
8며칠 뒤 월요일 줌 모임이 있었다. 평소와 달리 내가 참석하지 않자 친구들이 이유를 물었다. 수술 후 일찍 잠들었다고 하자 걱정의 말들이 이어졌다.
"어디가 아픈지, 충분한 휴식과 건강하게 회복하시길 기도합니다." 라는 고마움을 전달한다.
서울과 울산은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눌 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매일 주고받는 톡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가까이 있었다. 어떤 분은 한우 사골 선물세트까지 보내 주셨다. 그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7버스에서 보았던 노부부가 다시 떠올랐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꼭 누군가가 곁에 있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8아들이 조금 더 살갑게 챙겨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서운함에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누구나 자기 삶을 살아내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9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날, 나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친구들의 안부와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일으켜 세웠다.
10생각해 보면 돌봄의 끝은 자립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아프면 내가 나를 돌보고, 힘들면 내가 나를 위로하며 살아가야 한다.
11버스에서 보았던 노부부처럼 둘이면 둘이서 잘 사는 것이고, 혼자면 혼자서 잘 사는 것이다. 자립의 끝은 내가 나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다. 이번 수술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가르쳐 주었다.
<도서관(圖書館)과 인연> --이영수6--
1. 맹모삼천지교란 고사성어가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알고 있다. 왜냐하면 워낙 유명한 말이고 고사성어로서도 유명하다. 보통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는 있으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별로 관심이 없다. 맹자는 기원전 사람이고 동양에서는 중국의 공자와 맹자 두 분을 성인으로 추앙하고 받든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2.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서 이사를 세 번 했다는 단순한 내용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절실하게 반성하고 배워야 할 점이 많다. 맹모삼천지교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도 나온 내용으로 알고 있으나 현대인들은 너무나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3. 맹모삼천지교를 오늘날 현대 과학사회에서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맹자는 어릴 때 어머니만 계셨고 집안이 가난하여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때 맹자와 그 어머니는 가난하여 공동묘지 근처에서 살았고 맹자가 매일 장례 행사와 상여놀이 행사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맹자의 교육을 위해 그 어머니가 시장 근처로 이사를 했고 다음은 학교(서당) 근처로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맹자가 주변 분위기에 따라서 공부 흉내 행동을 했고 그것이 공부라는 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4.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교육열이 강한 나라다. 특히 지방에 비해 서울이 더욱 그렇고 서울에서도 명문학교가 위치하는 곳이나 명문 학원이 있는 곳이 유독 그렇다. 특히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유독 그 곳으로 이사를 가곤 한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그곳으로 옮겨가서 살면 그 지역 분위기에 휩쓸리고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은 자기가 속해 있는 환경 분위기 영향을 받는 것은 확실하다. 나도 도서관과 특별한 인연이 있고 그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 된다. 그 덕분으로 오늘의 나도 있는 것 같다.
5.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내가 Y중학교 신입생 때였다. 요즘은 학교에서 학생 간에 학폭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지만 내가 중,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학폭은 더러 있었다. 그때는 워낙 먹고 살기 바빠서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먹고 살기 바쁜데 학교 선배나 동료 학생들에게 폭행 쫌 당하기로 그게 뭐 별것이냐 하고 그냥 지나쳤다. 많이 다치거나 큰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문제가 되었겠지만, 특히 중학교 선배들은 하급생들의 규율을 바로 잡는다는 핑계로 틈만 나면 야만적인 폭력 행사를 많이 가했다. 시골 출신이고 마음 약하고 어리숙한 나는 많이 당했던 경험이 있다.
6. 특히 내가 다닌 Y중학교는 학교가 역사와 전통이 있었고 학생 수가 많은 중학교였다. 그 당시 다른 학교에는 없었던 크고 훌륭한 학교도서관도 있었고 장서가 많았다. 특히 점심시간 동안에 교실에 그냥 앉아 있으면 교도부 선배들이 와서 복장 검사를 한다는 핑계로 별것 아닌 티를 잡고 구타를 가하고 폭력을 행사 했다. 점심시간 동안이나 학교를 파한 후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있으면 그곳에는 일체 그런 간섭이 없었다. 도서관은 완전한 치외 법권 지역이었다. 나는 교도부 선배들의 폭력을 피하려고 일부러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가서 책 읽는 시늉을 했다. 도서관에는 폭력은 고사하고 절간 같이 조용하고 엄숙했다.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 외에 독서, 어떤 책이라곤 읽어 본 적이 없다. 독서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무엇을 읽을지 몰랐다. 그냥 학교 선배들의 폭력을 피신하기 위해 학교도서관에서 이것저것 읽어 보고 책을 뒤적거리곤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주 쉬운 책 몇 권을 읽었던 기억도 있다. 사육신, 사씨남정기, 장화홍련전, 성웅이순신 ... 아주 쉽고 통속적인 오래된 고전 소설이다
7. 습관이 운명을 좌우 한다는 말이 있다. 한번 가고 두 번 가고 계속 가니까 익숙해지고 도서관 가는 것이 생활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지금도 공공도서관에 자주 가는 것도 그때 습관이 시초가 된 것이다.
8.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고사 성어에 보통 사람들은 그냥 웃고 지나친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에 공감하고 실행 하려고 노력 한다. 맹자가 살았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이고 중국 춘추전국시대이다. 현대 시대와는 많이 다른 사회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사람은 자기가 속한 환경의 영향을 받고 지배당한다는 원칙이다>. 맹자는 자기가 속한 분위기에 적응하였고 많은 공부를 했다. 공자와 맹자는 동양 최고 성인으로 추앙 받는 이유다. 맹자의 어머니가 오직 맹자의 교육을 위해서 3번이나 이사했고 그 깊은 뜻을 오늘날 우리들도 꼭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어린 맹자는 단순히 주변 분위기에 따라 그냥 행동했던 것이고 그 습관이 맹자라는 성인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물론 처음 생각은 맹자의 어머니 생각이고 맹자는 그냥 따라서 행동 했고 습관이 되었다. 요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도 그것은 변함없는 원칙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주변 분위기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어린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어른인 나도 마찬가지로 실감 한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공공도서관에만 입장하면 책을 읽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기분이 저절로 난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전부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만 앉아 열심히 책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자연적으로 그 분위기에 빠져들고 만다.
9. 중학생 때 처음으로 공부와 독서를 위해 도서관에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에 자주 계속 가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빠져들고 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10. 성인이 되고 공무원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험 공부할 때도 틈만 나면 공공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직장에 근무할 때는 피곤하여 쉬고 싶고 놀고 싶었다.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조용한 집에서 해도 될 것인데 굳이 도서관에 뭐 할라고 가느냐 하고 말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 된다. 그 분위기 효과 원칙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갔고, 쉬고 놀고 싶어도 도서관에 가서 논다는 생각을 하고 도서관에 계속 자주 갔다. 도서관에 가면 일간신문 각종 잡지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내 마음대로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온갖 책도 다 볼 수 있다. 정말 좋은 환경이다. 사시사철 냉 온방 장치가 되어 있고 깨끗하고 정말 천국 같다. 특별히 돈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일체 간섭도 없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만 해도 학생들은 많고 도서관 수가 적어서 수험생들이 자리 잡기 위해 좌석 쟁탈전이 엄청 심했다. 그래서 아침 일찍 개관시간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던 기억도 있다. 선착순으로 좌석을 잡기 때문이다. 지금은 학생들이 많이 줄어서 언제 어느 때 가도 늘늘 하고 좌석도 마음대로 앉아 공부도 하고 밀린 일도 혼자서 꼼꼼하게 할 수도 있다. 요즘은 더러 나이가 들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 노인들도 많이 보인다
11. 나는 이상한 버릇도 하나 생겼다. 오래전부터 실행하고 있는데 지금도 계속 실행하고 있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내 나름대로 기쁨을 느끼고 계속 실행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독서를 하면서 보낸 시간을 누적 기록해가고 있다. 일만 시간 달성 목표이다. 오래전 수험공부 시절에도 일만 시간을 달성했고 지금도 직장 일을 하면서 일만 시간 목표 달성했고, 재차 일만 시간을 목표로 누적 기록해가고 있다. 그 기록 숫자가 쌓여갈 때 마다 남들은 모르지만 내 삶의 지혜 마일리지가 쌓여가는 것 같다. 내 자신만이 기쁨을 느끼고 있다. 어느 신문에서 보았다. 무슨 일이던지 하나의 일에 일만 시간 이상 투자하면 그 분야 최고 전문가가 된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나도 전문 직업인으로 전문분야 책을 틈만 나면 계속 보고 또 보고 반복 습관을 한다. 많은 보탬이 되고 있다.
12. 논어에 성상근야(性相近也) 습상원야(習相遠也)란 말이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는 서로 비슷비슷 하다고 한다. 그러나 성장해 가면서 현재 무엇을 계속 반복습관 하느냐에 따라서 먼 훗날 미래가 달라지고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는 말이다. 내가 도서관에 가서 계속 책을 읽고 나 자신을 갈고 닦으면 먼 훗날 내 미래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데 도서관과 나는 우연히 좋은 인연을 맺은 것 같다. 맹모삼천지교란 말은 결국 사람은 주변 분위기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내가 자주 가는 울주도서관 현관 앞 창문에는 이런 큰 글귀가 적혀 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 이었다—빌게이츠-->
13. 솔직히 나는 남보다 특별히 머리가 뛰어난 것도 없고 어려서 가정 형편이 좋았던 것도 아니다. 단지 도서관과 인연이 조금 있었다.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도서관에 가서 독서를 하곤 한다!
말 한마디의 무게 / 남경수 8
1. 무심코 한 말 때문에 오랜 친구를 잃어 본 적이 있는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데, 그 말 때문에 친구 관계가 끝났다.
2. M은 대학교때 잠시 같이 살았을 정도로 친했던 친구이다. 울산에 같이 발령을 받았고 결혼하기 전까지 둘이 붙어 다니며 놀았다. 남자 친구를 따라 전라도로 옮기게 되었고 광양에서 한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3. K는 교지 편집장을 하며 글도 잘 쓰고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학생운동을 같이했던 친구다. 마산에서 근무하다가 공무원인 남편을 따라 울산으로 오게 되면서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K와는 육아휴직을 같이 하면서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4. 방학을 맞아 M이 멀리서 아이를 데리고 놀러왔을 때이다. 그즈음에 K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공무원이던 남편이 퇴근 후에 술자리 때문에 자주 귀가가 늦어지면서 술집 여성과의 불륜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K집에 가면 불륜 드라마에 빠져 있었고, 불륜에 관련된 이야기만 했다.
“ 요즘 K가 불륜 드라마만 보고 불륜 이야기만 한다. 애가 좀 이상해졌어”
나는 M에게 무심코 말하고 잊어버렸다.
5. 어느 날, K에게서 서슬퍼런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 너 안 보고 살아도 돼, M한테는 말하지 마라”
M에게서 내 이야기를 전해 들은 K는 친구 관계를 끊겠다고 했다. 망치로 한 방 맞은 듯 멍해졌다. 내가 한 말이니 변명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잘못한 일인가 싶었다. 심한 욕을 한 것도 아니고, 친구 사이에 그 정도 말도 못 하는 걸까. 내 말을 그대로 옮긴 M이 원망스러웠고, 단 한 번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관계를 정리해 버린 K에게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6. 하루아침에 가장 가까웠던 친구 둘을 모두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엄청난 고통 속에 빠졌다. 섭섭함과 서운함이 뒤섞여 마음을 짓눌렀다. 나는 M과 내가 더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 둘은 더 친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7. 혼자서는 감정을 추스르기가 너무 힘들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 밤늦게 M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M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소와 같은 태도였다. 그 순간 준비해 두었던 말들이 목구멍에서 멈춰 버렸다. 묻고 싶었던 것도, 따지고 싶었던 것도 끝내 꺼내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8. 결국 잊어버리기로 했다. 계속 붙들고 있어도 내 마음만 더 아플 뿐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M 역시 남편의 외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K와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8. 그 후로도 가끔 학교 행사에서 K를 마주칠 때가 있었다. 우리는 예전처럼 편하게 대화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인사만 주고받았다. K는 여전히 M과 가끔 어울리는 듯했다. 가족끼리 겨울방학에 함께 스키를 타러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둘은 아직도 서로 연락하며 지내는구나. 나만 빼고.’
그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이미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만 관계 밖으로 밀려난 기분이 들었다.
9.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M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며, 문득 내가 보고 싶어졌다는 말과 함께였다. 이미 잊혀진 줄 알았던 감정들이 다시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그동안 묻어 두었던 울분을 쏟아내듯 오래전의 일을 꺼냈다. K가 관계를 끊게 된 이유와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서운했고 상처받았는지를.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였다.
10. 그런데 M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M은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11.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한 허탈감이 찾아왔다. 나는 그 일로 두 친구를 잃었다고 생각하며 오랫동안 상처를 품고 살아왔는데, 정작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12. 지금도 가끔 K를 마주친다.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만, 예전처럼 가까워질 수는 없다. 너무 오랜 시간 침묵이 이어졌고, 그 사이 풀지 못한 감정들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반가움과 함께 안타까움, 그리고 미안함이 공존한다.
13. 가끔은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왜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관계를 끊어야 했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묻는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시간은 많이 흘렀고, 우리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14.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아무리 가까운 친구 사이라도 상대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은 있는 법이다. 가벼운 푸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K에게는 친구에게조차 보이고 싶지 않은 상처였을 수 있다. 나는 그 경계를 알지 못했고, K는 그 경계가 침범당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말이 K의 자존심이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내게는 갑작스럽고 가혹했던 단절이, K에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15. 물론 그렇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서 당시의 상처와 서운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 역시 비슷한 상처를 겪으며 사람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 친구가 보였던 반응과 선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6.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그렇게 단순한 사이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오해를 풀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 만큼 가깝고 단단한 관계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서로를 충분히 안다고 믿었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를 잘 알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라는 관계 역시 끊임없는 이해와 노력이 있어야만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17.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랜 친구를 잃게 만들었다. 그 말은 한 사람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상처가 되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일이었다. 어떤 관계는 끝내 이유를 다 설명하지 못한 채 멀어지고, 아쉬움으로만 남는다.
지용이의 귀환/심규박2
1. 08학번 지용이는 특별한 학생이 아니었다. 그는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지만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밝고 예의 발랐으며, 학과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고, 사람들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한 적도 없었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가기 위해 휴학했고 해병대에 지원했다. 캠퍼스에 빨간 단풍이 들 무렵 포항으로 입대한다며 인사를 왔고, 나는 건강히 다녀오라고 격려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이 그러하듯 그의 존재는 내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졌다.
2. 그러던 중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다. TV 화면 속에서 불길이 치솟고 포성이 울렸다. 북한의 도발로 연평도는 불바다가 되었고, 우리 장병들은 즉각 대응 사격에 나섰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현장에 지용이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던 국토가 불타는 모습을 뒤로한 채 포탄이 날아오는 쪽을 향해 포를 쏘고 또 쏘았다. 죽음을 각오한 전투였다.
포격전이 끝난 뒤 지용이는 부상을 입고 국군통합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대통령이 병문안을 다녀갔고, 언론은 그의 용맹함과 애국심을 칭찬했다.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불렀고, 그는 국가를 위해 싸운 자랑스러운 용사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전쟁은 그에게 훈장만 남긴 것이 아니었다.
3. 2011년 봄, 학교로 돌아온 지용이는 예전의 지용이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격려도, 국민의 박수도 그의 가슴속 상처까지 치유해 주지는 못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혼자 있으면 불안해했다.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에는 술에 취해 갑자기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입으로 총소리를 내며 손가락 총으로 어딘가를 향해 마구 쏘았다. 친구들이 찾아가도 울면서 문고리를 잡고 열어주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혼잣말을 했고, 전사하거나 함께 부상 당했던 전우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4. 어느 날 지용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 우리 지용이 좀 살려 주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울음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용이의 상태를 물어보니 늘 머리가 아프다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헛소리를 한다고 했다. 집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차도가 없다고 했다.
5. 나는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라고 권했다.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으니 치료비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아직 행정절차가 끝나지 않아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지 않았으며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화가 났다. 전 국민이 그가 싸우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았다. 대통령까지 병문안을 다녀갔다. 그런데 정작 치료가 절실한 순간에는 서류 절차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6. 나는 재직 중인 학교의 부속병원으로 지용이를 데리고 갔다. 병원장을 만나 사정을 설명하며 가정형편이 어려우니 무료 진료를 부탁했다. 규정상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지만, 병원장은 교직원 복지 혜택 기준을 적용해 치료비의 절반을 감면해 주겠다고 했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대학병원 정신과 치료비는 여전히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7. 나는 할 수 있는 곳마다 전화를 걸었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고등학교 후배에게도 연락했고, 언론사에 근무하는 지인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나라를 지키다 다친 청년이 왜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8. 그 사이에 지용이의 병은 점점 깊어 갔고 결국 휴학을 했다.
그 후에도 나는 가끔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지용이의 안부를 물었다. 몇 달이 지나 국가유공자 지정이 완료되었고, 큰 대학병원에서 본격적인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제야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9. 다음 해 지용이는 복학했고 다시 사회와 어울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후배들에게 웃음을 보였고 수줍은 모습으로 연구실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가 목숨을 걸고 했던 장한 일에 대해서는 입에 담지 않았다. 4학년에 올라가자 그는 국가의 지원으로 ‘풍산금속’에 취업하면서 또 한 번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일하며 학교에 다니기 어려웠던지 세 번째 휴학을 했다.
10. 몇 년 뒤 보훈처로부터 국가유공자의 학업에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는 공문이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와 협의한 끝에 지용이가 학업을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오랜 시간 멈춰 있던 그의 대학 생활도 비로소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11. 졸업 보고서 발표 날이었다. 연구실 문이 열리고 지용이가 들어왔다. 곁에는 아내가 있었고, 품에는 어린 아들이 안겨 있었다.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연평도의 포화 속에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스물한 살 청년이 어느새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에게 아들과 함께 강의실에 들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전공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부탁했다. 연평도에서 있었던 일, 그 후 자신이 견뎌야 했던 시간들, 그리고 지금의 삶에 대해서.
12. 후배들은 숨죽여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발표하는 지용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는 전쟁도, 국민적 영웅도, 아픈 마음으로 그를 걱정하던 사람들도 없었다. 그저 밝고 예의 바르며 친구들과 잘 어울리던 08학번 지용이가 서 있을 뿐이었다.
13. 전쟁은 한 청년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삶을 끝내지는 못했다. 그날 나는 내가 만든 작은 연못을 떠나 거친 바다를 건너온 한 제자의 귀환을 조용히 축하하고 있었다.
혼자 떠나 보니/김연미 3
1. 내리는 듯 아닌 듯한 비는 내 마음 같기도 하다. 비 때문인지 공기가 차갑게 닿았다.
2. 2월에 예매한 미술관 티켓은 마감일이 다 되어갈 때까지 외면받다가 드디어 제 본분을 다하게 되었다. 전날밤까지도 썩 내키지 않았다. 취소할까, 갈까. 몇 번을 망설였다. 혼자 하는 장거리 외출은 처음이다. 기껏해야 대구에 있는 친정을 오가는 정도였다. 이제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고 단단히 마음먹었지만 쉽지 않았다. 남편의 끼니도 걱정이 되었고 취업 준비로 바쁜 딸아이도 마음에 걸렸다. 내가 1박 2일 집을 비워도 되는 걸까.
3. 연휴가 끼어 서울행 기차표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렵게 새벽 5시 30분 차를 예매했다. 어린아이도 아닌데 밥 못 챙겨 먹겠냐며 남편은 울산역까지 데려다주었다.
“조심히 다녀와. 재밌게 놀다 와.”
은근히 붙잡아 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은 내 속도 모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4. 새벽의 역은 생각보다 붐볐다.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옷과 모자를 맞춰 입은 노부부, 손을 꼭 잡은 연인들. 주변은 즐거워 보이는데 나만 다른 공간에 있는 듯했다. 환한 풍경 속에 혼자 덩그러니 놓인 이방인 같았다.
5. 기차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긴장했는지 몸이 잔뜩 굳어 있었다. 하지만 불편함도 잠시, 새벽부터 서둘러 나온 탓인지 금세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기차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나 역시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6. 서울역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별마당도서관으로 향했다. 늘 가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는 평범하게 느껴졌다. 울산도서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은 많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도서관이라기보다 거대한 관광지에 가까웠다. 기대는 종종 현실보다 한 발 앞서 달려가는 법인지도 모른다.
7. 더현대 서울 전시회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많았고 전시장은 붐볐다. 그림 앞에 서서 천천히 감상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을 보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그림을 보는 일에는 감상을 나누는 즐거움도 포함되어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8. 종로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광화문 광장을 지나게 되었다. 광장 한쪽에서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고, 세종문화회관 앞에는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관광객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신기한 풍경이었다. 투쟁과 문화, 관광과 일상이 한 공간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고 있었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세상은 늘 하나의 모습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9. 북촌의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건물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곳곳에 꽃이 피어 있었다. 도서관이라기보다 오래된 공원의 산책길 같았다. 혼자 걷는 시간이 제법 좋았다. 누구에게 맞출 필요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 상의할 필요도 없었다. 숙소에 돌아와 누웠을 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별것 아닌 안부 전화였지만 괜히 반가웠다.
10. 다음 날 아침, 북촌 한옥마을을 걸었다. 아직 단체 관광객들이 들어오기 전이라 마을은 조용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기와지붕들은 아름다웠고 골목마다 여유가 흘렀다. 북촌동양문화박물관 전망대에 올라 한옥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참 좋은 풍경이었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이 풍경을 함께 볼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것이. 몇 시간이나 기다려 먹은 수제비와 에그타르트를 먹을 때도 남편이 생각났다. ‘이건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인데.’
11. 좋은 것을 보아도, 맛있는 것을 먹어도 자꾸만 가족 생각이 났다. 그토록 바라던 혼자 여행이었지만 생각만큼 자유롭지는 않았다. 나는 혼자 여행을 다니고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사람들이 멋져 보였다. 어쩌면 그런 모습이 진짜 독립이라고 생각했고 동경했다. 하지만 북촌의 골목을 걷고, 전시장의 그림 앞에 서고, 낯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알게 되었다. 나는 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좋은 것을 보면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었다.
12.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올 때와는 다른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떠날 때는 혼자라는 사실이 낯설었는데,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은 이상하게도 든든했다. 울산역에 도착하니 남편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겨우 하루였는데도 반가웠다. 문득 떠나는 날의 내가 생각났다. 혼자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 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 하지만 내가 얻은 것은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었다. 좋은 그림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함께 오고 싶다고 생각되는 사람.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문득 생각나는 사람.
그 사람이 있다는 것.
13. 역을 나서자 떠날 때 보았던 것처럼 비가 내리는 듯 말 듯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남편의 차에 올라탔다. 하루 동안 비워 두었던 자리가 다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산다는 건 / 전일정 6
① 그들의 부산했던 아침 광경이 집안 곳곳에 자취를 남겼다. 널브러진 빨래 바구니와 먹다 남은 잔반들로 더럽혀진 식기가 손길을 기다린다. 현관에는 짝이 바뀐 신발이 서로 어색하게 마주 보고 있고, 화장실 앞이 제자리인 실내화 하나가 거기까지 가서는 갈 바를 찾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있다.
② 방들의 침대 위는 전란의 현장을 보여주는 듯 옷가지들이 팔다리가 꺾여서는 뒤엉켜 있다. 때늦은 밥을 기다리는 덩치가 큰 리트리버 종인 장군이는 창문 너머에서 마당으로 나의 행차를 재촉하고, 늘 주어도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는 화초들은 물을 갈급하게 원하고 있다.
③ 식구들이 사회적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빠져나간 텅 빈 그곳에 오늘도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어떤 때는 시간이 멎기를 바라기도 한다고, 그래서 시간의 무게가 때론 권태롭고 버거울 때가 있다고, 이때쯤이면 찾아오는 적막감으로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런 기분을 떨쳐내려 여기저기 남겨진 가족들의 분주했던 흔적을 정리해 나간다.
④ 쾌청한 4월의 햇살 아래서 바삐 움직인 나의 몸을 타고 짜고 끈끈한 땀이, 내가 갱년기라는 걸 상기시키며, 한여름 소낙비가 되어 쏟아부은 듯 흘러내린다. 청명한 하늘의 해는 아직 중심에 서기도 전인데, 나의 몸뚱이는 저물어 가는 시간을 준비하고 있는 거 같아서 묘하게 얼룩지는 감정을 수건으로 닦아낸다.
⑤ 정신없이 겨우 아침을 마무리하고 식탁 의자에 몸을 팽개치듯 앉는다. 닦아도 끈적이는 턱 밑의 땀이 신경을 건들고, 납부 기한이 지난 세금 용지가 눈길을 잡는다. ‘에효, 참’ 효과음을 내뱉고는 잠시 넋을 놓고 있자니,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장기가 돈다.
⑥ 그릇에 대충 담겨서 뚜껑도 덮지 못한 식은밥 한 덩이가 식탁 위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열기를 잃은 내 모습과 같다. 때 이른 허기를 채우려 밥을 물에 말아서 후루룩, 대강 끼니로 때운다. 먹고 난 그릇을 개수대에 담그며 ‘오늘은 뭘 해서 먹나......’라고 일과처럼 되뇐다―어차피 고민해도 별다른 반찬이 없다는 걸 안다―듣는 사람도 없고 답을 하는 사람도 없는데, 50대에 접어들면서 혼잣말할 때가 많다. 이러는 게 가끔은 이상하다고 인식되지만, 심각하게 고려할 일도 아닌 것 같아서 그러려니 넘긴다.
⑦ 어쩜, 열기를 잃는다는 것도 한편으로, 필요 이상으로 집중되는 감정과 생각들로부터 느슨해지는 면이 있는 거 같아 편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⑧ 거실 테이블에 있는 리모컨을 집어서는 TV 홈쇼핑으로 채널을 돌린다. 식후의 노곤함을 달래려 잠시 소파에 몸을 맡기려는데,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동서, 어머니에게 들었어?”
⑨ 수화기 너머로 다짜고짜 물어오는 날카로운 형님의 목소리가 느슨해지려는 신경을 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