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른 별은 없다/권중석3
2. 박꽃 치는 고향 집/박희곤5
3. 바들솜/이애란2
4. 마법의 주문/신준영3
5. 그 날의 종소리/허윤미3
1.다른 별은 없다 / 권중석 3
테마,주장의 글이 강할수록 칼럼이 될 수 있다.
1. 집 근처 공원을 걷고 있었다. 초여름 풍경이 눈을 시원하게 해주고,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초록 향기를 머금고 내려앉고 있었다. 금계국이 피어있는 호숫가 꽃밭을 지나고 있는데 문득, 어떤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벤치 위에 누군가 그냥 두고 간 플라스틱 빈컵이었다. 별것 아니었다. 환경미화원이 보면 치울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떠올렸다.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내용2. 현재 지금 바로오는 물건이 있다.우리는 편리함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필요한 물건은 휴대전화 몇 번만 두드리면 다음 날바로 집 앞에 도착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원하는 메뉴를 음식을 주문해서 먹을 수 있다. 코로나 시기부터 인터넷 쇼핑은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외출을 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문 횟수가 늘어났다. 생필품도 인터넷으로 사고, 먹거리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집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는 날이 많아졌다. 편리한 생활의 내용
1반과 2번은 이질적인 내용이 된다.
3. 처음에는 그저 편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편리함 뒤에 남겨지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분리수거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팬트리에 있는 분리수거 백에 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이 한 가득이었다. 몇 번의 주문이었는데 쓰레기양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특히 계란을 주문했을 때 경악했다. 계란 마흔 서른 개가 깨지지 않도록 포장한 정성은 놀라울 정도였다. 두꺼운 상자 안에 또 다른 포장재가 있었고, 충격을 막기 위한 완충재가 여러 겹 들어 있었다. 계란은 무사히 도착했지만, 포장을 모두 벗겨낸 뒤 바닥에 쌓인 쓰레기를 바라보며 한동안 멍해졌다. 마트에서 샀다면 손에 들고 왔을 물건 하나가 수많은 포장재를 남긴 것이다.
4. 그날 이후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편리함을 얻는 동안 지구는 얼마나 많은 짐을 떠안고 있을까. 정리하는 글이므로 마지막에 적는 것이 좋다. 배달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식탁 위에는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봉지, 일회용 수저와 젓가락이 남았다. 음식을 먹는 시간은 삼십 분 남짓이지만, 남겨진 플라스틱은 훨씬 오랜 시간을 지구 위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오랫동안 편리함을 선택했다. 나 역시 환경을 걱정하는 사람인 동시에 환경을 오염시키는 사람이었다.
5. 집에서 분리수거를 하며 느낀 불편함은한 마음은 집 가까이 있는 바다를 걸을산책할 때 더 선명해졌다. 그날도 파도 소리를 들으며 산책로를 걷고 있는데 어느 순간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이 있었다. 파도에 밀려온 플라스틱, 비닐봉지, 스티로폼 조각들이었다.은
"너희가 버린 것들을 다시 돌려준다.“마치 바다가 인간에게 이 말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는 항변 같은 것이었다.
6. 어린 시절의 내가 기억하는 바다는 지금보다 훨씬 깨끗했다.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며 조개껍질을 주웠고, 파도에 발을 담그며 놀았다. 바다는 언제나 넉넉한 품을 가진 존재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바다는 점점 많은 쓰레기를 떠안게 되었다. 누군가 버린 플라스틱, 누군가 흘려보낸 쓰레기에 주문 버튼을 눌렀던 나의 손, 일회용 컵을 들었던 나의 손도 결국 이 쓰레기 더미에 조금씩 보태지고 있었다.
7. 그 이후, 나는 생활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무심코 인터넷 주문을 하지 않았다. 가까운 마트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직접 가서 구입했다. 장을 보러 갈 때는 장바구니를 챙겼다. 처음에는 깜빡 잊고 나가는 날도 있었지만, 이제는 현관문을 나설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물건이 되었다. 외출할 때는 텀블러를 가방에 넣는다. 예전에는 카페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당연하게 사용했지만, 이제는이제 텀블러에 담아 마시는 일이 익숙해졌다. 종이컵도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다.
8. 장바구니나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고세상이 달라질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장바구니를 드는 순간 예전의 나와는 조금 달라졌다는 기분이다. 누가 알아주는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편리함만 생각하던 사람에서 한 걸음은 걸음 벗어난 것 같다.
9. 며칠전, 티브이에서 <쓰레기 대란> 방송을 보았다. 우리 모두가 매체를 가져오면 칼럼이 된다. 함부로 쓰레기와 를 버리는 것은 함께 미래도 를 버리고 있었다. 는 것과 같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와 기업, 시민단체가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의 생각과 생활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거창한 목표보다 작은 실천을 이어가고 싶다. 누군가 보기에는 사소한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지구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처럼 느껴진다.
10. 사람들은 언젠가 다른 행성에서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아주 먼 훗날에야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숨 쉬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곳은 지구뿐이다. 내가 걸었던 갈맷길도, 어린 시절 뛰놀던 바다도, 나무 그늘 아래 쉬던 공원도 모두 이 푸른 별 위에 있다. 훗날 후손들이 지금의 우리를 떠올릴 때, 지구를 함부로 사용한 세대가 아니라 지구를 지키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했던 세대로 남고 싶다. 우리가 살아갈 다른 별은 없다.
2.고향 집/박희곤(5)
한 문단 끝에 감정적지 않고 마지막에 적어준다.
1. 야반도주하듯 흥부네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떠났네. 마을 어귀, 서낭당 느티나무 길을 길에서 뒤돌아본 고향 집은 한없이 높고 외로웠네.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에 서서 이마에 손을 얹은 채, 초가집 용마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물 흘리며 바라보았네. 굶지 않으려 도시로 떠난 제비 새끼들, 배고픔을 참고 살면서도 따뜻한 초가집 구들목을 잊지 못했네. 그렇게도 무심한 세월은 수수만년처럼 흘러갔네.
2. 그날, 남도의 고향 마을에서는 샛바람이 불었네. 봄꽃이 웃는 계절이 오면 겨우내 얼었던 논밭에는 풀이 먼저 돋아나오고, 아버지는 소 몰고 논갈이를 나갔네. 어머니는 밭에 고추와 를 가지 호박을 심었고, 담장 밑 추녀 끝을 향해 박을 심었네. 초가지붕 처마 밑에는 제비가 집을 짓고, 담장 너머에는 감꽃이 소리 없이 떨어졌네.
3. 지금도 분교의 아득한 종소리 들리고 아이들의 자치기 소리는 감옥 같은 아파트에 들어가 잠든 나에게, 수신되지 못한 카톡의 소리로 남아 문풍지를 흔들며 지나가네. 그 유년에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잔상으로 남아 봄바람보다 먼저 찾아와 마음을 흔들며 눈가를 붉어지게 하네.
살구꽃이 바람에 흩날리고 청보리밭에서 종달새가 울면, 거름더미에 꽂혀 있던 쇠스랑은 이 생각나네 아직도 주인을 기다리는 듯하네. 나는 그 초가집에서 짧은 생을 살다 간 나의 몇 줄 남지 않은 추억을 오래도록 기억하네.
4. 소나기가 내리고 번개 치면 돌담 위에는 호박넝쿨이 기어오르고, 초가지붕 위에는 하얀 박꽃이 피기 시작했네. 친구들과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토끼풀 꽃대로 반지 만들며 소꿉놀이하던 친구들 간 곳이 없네.을 오래도록 기억하네 저녁이면 초가지붕 위에 가득 핀 박꽃은 별이 되어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었네.
5. (2026.6.13.토)꿈속에서나 보이는 고향 집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돌담마저 없어져 버렸고, 골목길에는 시멘트 포장만 덩그러니 누워있었네. 초가지붕 뒤편 우물가에서 물을 긷던 누나의 빨간 댕기도 보이지 않았네. 앞마당의 느티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낯선 콘크리트 울타리만 가 서 있었고,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무서워했던 서낭당 상엿집도 흔적 없이 사라졌네.
6. 어릴 적 뛰놀던 흙 마당에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잠들어 있고, 밤새 호롱불을 밝히던 초가지붕 황토방은 어디로 갔는지 풀밭에 흩어진 담장만 흔적이 남아있네. 없어진 고향 집에는 이제 돌아갈 수가 없네. 초가지붕 위에 떠 오르던 둥근달도 꿈속에서만 솟아나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곳이 되었네. 둥근달이 그믐으로 기울 듯 그 시절은 사라져 버렸고, 초가지붕 위의 박꽃도 조용히 지고 말았네.
7. 소를 먹이던 한여름, 된장 떡과 갈치 한 토막은 세상에서 가장 풍성한 내 저녁상이었네. 모깃불을 피워놓고 온 식구가 멍석 위에 수제비를 먹고, 박꽃에 스민 달빛을 받으며 별을 바라보던 그 밤은 왜 그리도 일찍 잠이 들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네. 쓰르라미 울음은 자장가였고, 가을이면 잘 익은 박을 켜 바가지를 만들고 마당에는 타작할 나락이 산등성이처럼 쌓여 쌀밥의 기쁨을 느끼고 있었네.
8. 겨울이 되면 초가지붕 위에 눈이 소복이 쌓이고,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와 에 함께 세월은 더욱더 빨리도 흘러갔네. 밤이 깊었네. 사랑방 옆, 쇠죽 솥에서는 소죽이 끓고 있었고, 외양간의 누렁이는 쇠파리를 쫓는 요령 소리만 떨렁 이며 한겨울에 의 석양을 지키고 있었네.
9. 어머니, 아버지. 박꽃 피던 우리 집이 없어졌네요. 고향 집이 사라졌네요. 평생 지게와 쟁기와 쇠스랑을 자식처럼 아끼며 살아온 그 사람시절을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네요. 눈 쌓인 장독대 위에 정한 수 떠 놓고 자식 잘되라고 빌던 어머니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네요. 지지배배 울던 흥부네 자식들은 타향으로 흩어져 소식이 없고 늙어버린 막내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어머니, 아버지. 초가집 지붕에 둥근달이 떠오르는 밤이면 우리 꿈에서라도 만나요. 초가집 우리 집은 세상에서는 사라졌지만 내 가슴속에서는 아직도 영원히 살아 있네요.
10. 이제, 인생에 시간표는 속절없이 흘러갔지만, 없어진 고향 집의 둥근달은 꿈에서만 피어나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은 내 삶의 가장 깊은 그리움이 되었네. 초가삼간은 사라졌지만, 그 안에서 웃고 울던 제비 새끼들의 숨결은 아직도 기억 속에 각인되어 남아있네. 없어지고 사라져도 내 마음속 고향은 허물어지지 않고 변함없이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네.
11. 돌아보면 둥근달은 여전히 환하게 떠 있고, 그 달빛 아래 없어진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 추억이 머무는 마음의 고향이었네. 오늘도 초가지붕 위에는 박꽃이 피고, 둥근달은 환하게 떠오르면 부모 형제들 와 살던 고향 집에서 이 말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네. 그리워지네. 그 집은 내가 평생 돌아가야 할,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내 마음의 고향 집이었네
3.버들솜의 꿈 / 이애란 2
1. 봄의 절정을 지나 쓸모없는 말 여름의 길목에 들어설 때면, 우리 집 마당은 온통 눈부신 흰 눈으로 뒤덮인다. 대문 마을 어귀의 커다란 에선 버드나무들이 가 하얀 솜털을 뭉치를 바람에 실어 무수히 날려 보낸다. 보내는 까닭이다. 흔히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날리는 이 풍경을 보며‘버드나무 홀씨’가 날아다닌다고 말한다.2. 하지만 이는 홀씨가 아니다. 홀씨는 이끼나 버섯, 고사리처럼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들이 만드는 단순한 세포일 뿐이다. 반면에 버드나무는 봄에 엄연히 꽃을 피우는 나무다. 그러므로 이 솜털의 정체는 스스로 땅을 뚫고 일어설 ‘씨앗’이다. 워낙 작고 가벼워 혼자 힘으로는 멀리 갈 수 없기에 나무가 씨앗 주위에 낙하산을 달아 바람 속으로 떠나보낸 것이다. 우리는 눈부시게 흩어지는 이 하얀 비행을 ‘버들솜’이라고 부른다. 버들솜은 스스로 땅에 떨어져 큰 나무로 자라게 될 씨앗이다.
3. 갈 곳을 정하지 않고 그저 바람에 온몸을 맡긴 채 어디로든 날아가는 버들솜의 여정을 보노라면 가만히 응시하노라면, 사십여 년 동안 도서관계 일을 했던 나의 오랜 기억 위로 한 사람의 생애가 소환된다. 긴 세월 동안 스스로 한 알의 하나의 버들솜이 되어 날아올랐던 선구자, 울주가 낳은 도서관 운동가 간송(澗松) 엄대섭 선생이다.
4. 선생은 울주군 웅촌면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났다. 그는 40년 동안 도서관에서 봄직해온 나는 선생을 삶의 지표로 삼고 살아왔다. 그는 1921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갔다. 우연히 고서점에서 책을 읽고 얻은 안목으로 헌 옷 사업을 시작해 자수성가했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에게는 안락한하고 넉넉한 삶이 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선생은 책이 우리 삶을 구원할 가장 가치 있는 도구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안온한 미래를 위해 대신 누구도 가지 않은 험난한 길을 택했다.
5. 한국전쟁의 상처가 깊던 1951년, 하루 끼니를 잇는 것조차 버거워 모두가 절망하던 그때였다. 선생은 사재를 털어 울산에 최초의 사립 무료 도서관을 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시내에 있는 도서관까지 오기 어려운 주민이 너무 많았다. 당장의 생계에 쫓겨 도서관을 찾을 여력이 없는 이들을 보며 선생은 깨달았다. 도서관에서 사람을 기다리기보다 책이 직접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바람에 몸을 싣고 어느 땅이든 가닿으려 날아가는 버들솜처럼, 그 역시 소외된 이들의 가슴속에 지식의 씨앗을 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6. 이때 책을 운반한 도구는 자전거였다. 책을 담을 도구는 상자는 군인들이 버리고 간 텅 빈 탄환 궤짝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던 차가운 살상의 도구가 영혼을 살찌우는 따뜻한 지식의 보물상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누군가는 거친 화약 냄새와 죽음의 상흔을 보았을 무거운 상자였다. 선생은 그곳에 책을 가득 채워 흙먼지 이는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렸다. 마을 마다 내디딘 그의 발걸음은 바람을 탄 버들솜의 비행과 꼭 닮아 있었다. 궤짝에 담긴 책들은 동네 사랑방의 작은 서가에 꽂혔다. 주민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는‘마을문고’의 시작이었다.
7. 어떤 이들은 버들솜을 보며 시야를 어지럽히는 불청객이라 눈살을 찌푸린다. 선생의 숭고한 선의는 역시 가난이라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 그리 환대받지 못했다. 정성껏 빌려준 책들은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책은 찢겨 한겨울 바람을 막는 흙벽의 도배지가 되었고, 아궁이를 데우는 불쏘시개가 되었으며, 심지어 화장실의 휴지로 쓰여 허무하게 사라지기도 했다.
8. 평생 책을 소중히 다루어온 나의 눈에 그렇게 훼손된 책들은 베인 살점처럼 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나 엄대섭 하지만 선생의 시선은 마음은 달랐다. 당장의 매서운 추위를 막고 주린 배를 채우는 일이 지식을 쌓는 일보다 훨씬 절박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책을 깨끗하게 보관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9. 당시 우리나라 도서관들은 책이 훼손될까 봐 서고 출입을 통제했다.하는 시스템이었다. 오직 사서직원만 서고에 출입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카드목록을 보고 책을 신청해야만 읽을 수 있었다. 이는 주민과 책의 거리를 가로막는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더 많은 사람이 책을 만날 수 있도록 선생은 누구든지 서가로 직접 가 책을 고를 수 있는‘개가제’를 도입했다. 도서관의 낡은 제도를 과감하게 바꾼 주역이었다.
10. 선생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전거로 에 탄환 꿰짝을 싣고 달리던 순회문고에서 진일보하여 자동차를 개조한‘이동문고’를 만들어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마을문고 만으로 부족함을 느끼던 주민들에게 한결 편리한 도서관이 직접 배달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삶 가까이에서 만나는 이동 도서관 서비스의 태동은, 이미 반세기 전 그의 낡은 자동차 안에서 버들솜처럼 날아오를 준비를 마치고 있었던 날아올랐던 셈이다.
11. 그러나 이 눈부신 비행을 계속하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나 높았다. 높은 문맹률과 가난의 무게를 한 개인이 모두 짊어지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선생은 자신이 세운 사립도서관의 장서와 시설 전부를 울산군에 기증해 공립도서관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관청의 무관심 속에 뜻은 거절당했다. 결국 그는 피땀 어린 책들을 싣고 자신의 뜻을 알아준 경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는 우리 지역 도서관 역사에 두고두고 뼈아픈 실책이자 후회로 남는다.12. 비록 고향에서는 쓸쓸히 밀려났지만, 탄환 궤짝에서 시작된 그의 집념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그 책을 단 한 줄이라도 책을 읽어 내려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나도 세상을 알아야겠다’는 작은 불씨가 지펴졌다. 그 불씨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전국 방방곡곡에 만들어진 ‘마을문고’는 어느덧 지금 3만여 개에 이르며 거대한 지식의 숲을 이루었다. 도서관은 비로소 책만 놓인 정적인 공간이 아닌, 지식을 탐구하고 정보를 나누는 역동적인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13. 이 울창한 숲은 오늘날 우리 동네 골목 어귀마다 따뜻하게 불을 밝히는‘작은도서관’의 기반이 되었다. 누구나 평등하게 앎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한평생을 바친 그는 1980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척박한 땅에 눈물로 뿌린 자신의 씨앗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세계 앞에 당당히 증명해 낸 순간이었다.
14. 세계는 이토록 일찍 거인의 발자국을 알아보았건만, 정작 그의 고향은 에서는 그의 행적을 탐색하는 작업이 너무나 무뎠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오랜 세월 도서관 일을 해 온 나조차도 이 위대한 선구자가 고향 울주 출신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나처럼 뒤늦게나마 울산과 울주가 그를 조명하기 시작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선바위도서관에 흉상을 세우고 해마다 10월이면 추모제를 이어가는 것도 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흉상 하나와 일회성 추모 행사만으로는 그가 바친 열정의 혼을 온전히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15. 다행히 그 간절한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또한 선생의 생가 복원과 기념관 건립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있으니 반갑고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폐 탄환 상자로 문고를 일구었던 그의 정신을 진정으로 이어받는 길은 외형의 복원에만 머무를 수 없다. 평생 평등한 알 권리를 외쳤던 선구자의 유지를 온전히 받드는 일이어야 한다. 박제된 기념관을 넘어, 집과 학교를 보완하는‘제3의 공간’이자, 지역공동체가 책과 만남으로 하나 되는 살아있는 터전을 일구어야 한다. 16. 그곳은 누구나 문턱 없이 드나들며 일상의 지식을 묻고 생각을 나누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소외된 지역없이 남여녀노소 모두가 앎의 기쁨을 누리는 배움터. 그것이 바로 선생이 평생을 바쳐 꿈꾸었던 진짜 도서관의 얼굴이다.
17. 저무는 하늘 저편, 오색으로 찬란하게 빚어진 채운(彩雲)이 붉게 걸려 있다. 때마침 그 아래 하얀 버들솜들이 내 눈앞을 소리 없이 스쳐 지나간다. 사람들은 그것을 버들솜을 그저 가벼운 홀씨라 부르며 무심히 넘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선명히 안다. 저 작고 부드러운 솜털 속에 대지를 뚫고 나올 버드나무의 미래가 숨어 있음을. 선생이 텅 빈 탄환 궤짝에 담아 보냈던 책 한 권 한 권은, 바로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을 향해 날아갔던 지식의 버들솜이었다.
18. 그 속에 담긴 씨앗들은 소외된 이들의 가슴속에 앎의 싹을 틔워냈다. 이제 그 푸른 싹들이 자라난 이곳에 울주 땅에 ‘엄대섭도서관’이 새로 세워지는 날을 꿈꾼다. 빼곡한 서가마다, 그리고 우리가 설렘으로 펼쳐 들 모든 책갈피마다 그 선생의 오래된 희망의 빛이 사그라들지 않는 눈부심으로 스며들기를 조용히 그려 본다. 그날 우리는 비로소 선각자에게 진 오랜 부채를 기쁨으로 갚아낼 수 있을 것이다.
4.마법의 주문/신준영3 마법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기적적인 말이 된다. 주문의 주는 주술적인 표현이다.
1. 주말 아침 TV를 켜니 ‘다큐 3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욕지도 편이 방영되고 있었다. 3일간 욕지도에 머물며 그 곳에서의 일상을 보여주었다. 욕지도의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되어 설레어하며 배를 내리는 관광객들과 그 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았다. 화면으로 보이는 욕지도의 모습은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친근하게 다가옴과 동시에 대학시절의 기억을 소환했다.2. 1994년에 대학을 에 입학하고, 2학년이 되는 95년에 군입대를 하기로 했다. 일 년이 지났다. 주위의 친구들은 학사일정을 고려해 상반기에 입대신청을 했는데, 늦게 지원한 나는 하반기에 입대가 예정되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 두 명이 상반기 입대 전 휴학을 하고, 한 달 일정으로 전국일주를 계획했고, 그 첫 시작 지점이 욕지도였다. 당시 욕지도에는 공중보건의를 하는 동아리 선배가 있어서 그곳에서 며칠 지내다 본격적으로 전국을 일주한다는 것이었다.3. 친구들이 방학을 이용해 전국일주를 함께 하자고 권유를 했다.해왔다. 친한 친구들과 배낭과 텐트만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갓 스무살이 된 나에게 너무나도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대학가면 하고 싶었던 여러 소망 중 하나가 무전여행이었기에 앞뒤 재지않고 무조건 같이 하기로 했다.
4. 친구들과 약속을 한 그날 저녁, 들뜬 마음으로 1학년 마치면 휴학을 하고, 친구들과 전국일주를 하겠노라 부모님께 계획을 말씀드렸다. 성인이기도 하고, 나쁜 일도 아니었기에 당연히 허락해 주실 줄 알았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응은 냉담했다.
5. 친구들은 여행을 마치면 바로 입대하는데, 난 몇 개월을 휴학한 상태로 시간만 보내다 가는 것이기에 시간낭비가 심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 한마디 덧붙였다.
“내네가 대학을 에 안나와서 잘 모르지만, 여행다녀 와서 몇 개월을 휴학하고 들어가서 놀면 동생들이 니보고 뭘 배우겠노?”
6. 부모님은 나에게 마법의 주문을 걸었고, 나는 여지없이 그 마법에 걸렸다.
“동생들 보는데, 니가 그러면 되겠나?”,
“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지.”2남 2녀의 4남매의 장남인 나는 ‘동생들이 보고 배운다’는 의미의 문장이 들어가는 이야기를 말을 들으면, 나의 모든 계획과 행동을 멈추고 없던 일로 하거나,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했다. 그 주문은 성인이 되어서도 한번도 부모님께 반항하지 않는 착한 아들, 동생들에게 모범적인 형, 오빠로 만들었다.
7. 부모님은 소중한 아들이 고생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꽃길만 걷기를 바랬랐으며, 동생들도 그 길을 따라 걸어가길 원했기에 을 것이다. 당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어렵거나 힘들 것 같은 위험한 길을 가려는 나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하려고 한 말인 것을 알았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보고 싶다고, 힘들고 실패해주문의 주는 주술적인 표현이다.도 내 인생에 하나의 경험으로 남아 앞으로의 삶에 더 좋을 것이라고 내가 말했더라면 허락했을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 면서도 나의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거나 실패했을 때, 닥쳐올 실망과 고통이 두려워 나에게 마법의 주문을 건 부모님의 주문을 핑계로 못했다는 이유를 대며 편한 곳으로 도망친 건지도 모르겠다.
8. 친구들과의 전국일주를 포기하고 수업을 듣던 나에게 욕지도에서 하는 친구로부터 편지가 도착했다. 봉투 안에는 같이 하지 못한 아쉬움이 담긴 위로의 글과 욕지도에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찍은 사진이 있었다. 나도 저 사진속에 있어야 했다는 후회와 함께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설득 한번 해보지도 않고 그냥 순종한 나 스스로도가 원망스러웠다. 군대 다녀오면 모든 걸 내가 계획하고, 결정하리라 다짐했다.
9. 군대를 제대했 다녀왔지만, 여전히 마법의 주문은 유효했다. 이젠 부모님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주문을 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은 늙어가고, 동생들이 크면서 경제적 부담을 오롯이 부모님이 감당해야하는 것을 보니, 내가 하고픈 것을 하면 집이 더 어려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10. 결혼 후 독립하니 을 하자 이제는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부모님에게서 듣던 주문은 이 아내에게서 나왔다. 주문의 내용은 동생들에서 집안의 경제적 문제와 아들로 바뀌었다. 이 주문 역시 아내가 나를 생각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또한 제대로 설명하고 설득하면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을 동의하리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잘못되었을 때 들을 원망이 두려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여전히 내려 놓포기를 반복했다. 평생 반복된 일이라 ‘그 때 고집을 피워서라도 할 껄’하는 후회만 한가득 마음에 쌓였 다.
11. 아들이 자라며 나 역시 아들에게 주문을 걸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아들이 실패하거나, 남보다 뒤쳐질까봐 아들이 하고파 하는 일에 대해 제지하거나, 허락을 해줘도 충고라는 명분으로 내가 어릴 적부터 걸려왔던 마법의 주문을 아들에게 걸고 있었다.
12. 항상 뛰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던 아들에게 ‘아무데서나 뛰면 위험하다. 넌 왜 그리 힘들게 사니?, 이제 그만 하자’라고 주문을 걸고, 친구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가능한 양보하라고 주문을 걸었으며, 아직 어린 아들에게 어른들만큼의 룰을 지키기라고 분쟁이 생기면 양보하라고 주문을 걸었다. 그 많은 주문들은 친구들에게 인기있고, 활발했던 어린 아이를 얌전하고 게 뭔가를 도전할 때 완벽하게 자기가 성공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도전을 주저하게 만들어 버렸다. 13. 겉으로는 도전해서 넘어지고, 실패해봐야 다 경험으로 쌓여 건강하게 자란다고 말하면서도, 아들의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고 성공으로만 이끌려고 제약하고 마법을 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14. 요즘은 아들에게 말한다.
“ 아빠도 실은 잘 몰라. 널 너무 안다치게 하려고 보호했던 것 같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그러니 나쁜 일만 아니면 네 너 하고 싶은대로 해라. 혹시 아빠나 엄마가 그게 아니라고 말해도 네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다고 말해라. 성공이든 실패든 네가 감당하겠다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면 아빠는 응원할 거야.”
15. 이제 나를, 아들을 억누르던 마법의 주문을 깨끗이 지워 버릴 것이다. 가다 넘어지면 어떠랴. 다시 일어나서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고 다시 갈 길을 가면 되는 것을. 이제는 나의 실패도, 아들의 실패도 응원할 것이다.
5. 그 날의 종소리 / 허윤미 3
1.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친구의 목소리가 잔뜩 격앙되어 있다. 취준생 아들의 면접 때문이었다.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회사의 최종 면접까지 다섯 명이 올랐는데 세 번째 지원자의 개별면접 차례에 면접관이 모친의 부고를 접하게 되었단다.
2. 면접은 즉시 중단되었고, 회사 측은 형평성 문제가 있으니 앞서 봤던 단체 면접으로만 평가하겠다고 했다는데, 그 후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다는 것이다. 알음알음 알아보니 개별면접을 마친 1, 2번 지원자가 최종 합격을 했다는 것이다.고 했다.
3.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그런 상황이면 다시 면접일을 지정해서 전부 개별면접을 보는 게 공평한 거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업계에선 나름 알아주는 업체였기에 이곳에서 경력을 쌓은 뒤, 훗날 더 큰 조직으로의 이직을 계획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있었단다. 그렇게 면접단계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는데 전부 물거품이 됐다는 것이다.
4. 그렇다고 면접관의 잘못은 아닌 것 같다고 조심스레 얘기하자, 의도된 일은 아니겠지만 그 일로 인해 내 아들의 인생 방향이 틀어질 수도 있는 거고, 이 사건이 아이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냐고 흥분을 멈추지 않는다.
5. 무슨 면접 하나에 거창하게 운명까지 논하나 싶어 대꾸하려다가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문득, 5년 전의 그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찌 잊을까. 그날 그 경연장의 공기와 조명, 그리고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듯한 종소리까지.
6. 그날은 국악경연대회 예선을 치르는 날이었다. 당시 나는 경연을 기록하는 카메라 영상 촬영 업무를 맡고 있었다. 본선과 달리 예선은 시간제한이 있어 참가자 한 명당 주어진 연주 시간이 최대 2분이었다. 2분이 될 때쯤 종소리가 들리면, 참가자는 지체하지 않고 연주를 멈춘 뒤 퇴장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나는 아르바이트로 카메라 영상 촬영 보조 중이었는데 사건은 마흔여 명의 참가자 중 열 몇 번째쯤 일어났다.
7. 판소리 수궁가를 부르기 위해 고등부 남학생 참가자가 조명이 내려앉은 무대로 들어왔다. 예선 경연이다 보니 관객은 거의 없었고, 심사위원 6명에 사회자 1명, 행사 스텝 서너 명이 전부였던 지라 500석 규모의 경연장은 침 넘어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8. 참가자가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자라와 토끼의 첫 대면 하이라이트 대목을 구성지게 뽑고 있을 때였다. 시작한 지 채 일 분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실내가 어두웠던 탓인지 갑자기 한 스텝이 뒤통수로 카메라를 막고 서버리는 것이었다. 새까매진 모니터에 깜짝 놀라 비켜달라고 얼른 손을 뻗었는데 닿지를 않았다. 말을 할 상황은 아니어서 급한 맘에 팔을 더 길게 뻗으려고 난간을 잡고 몸을 숙이던 그때였다. “땡”하는 청아한 종소리가 엄숙한 경연장에 울려 퍼졌다.
9. 그 순간 나도 같이 땡 하고 얼어붙고 말았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내가 걸고 있던 링 목걸이가 쇠 난간에 부딪혀서 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왜 하필 그게 종료 신호 종소리와 똑같았는지. 머릿속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했다.
10. 무대를 내려다보니 열창하던 고등부 참가자는 한참 토끼를 꾀던 중에 소리를 멈추고 예의 바르게 인사한 뒤 퇴장하고 있었고,다. 집중하던 심사위원들은 종료 타이밍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종 치던 진행요원 쪽을 힐끗거렸다. 누구보다 당황했을 그 진행요원은 어리둥절해하며 종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어찌 이런 일이 발생한 건지. 제발 꿈이길 바라면서 얼었던 팔을 거두는데 그제야 앞을 막았던 그 스텝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은지 무대 쪽으로 뛰어 내려가는 것이었다. 11. 물론 그 이후로도 진행은 계속 이어졌고 경연은 마무리되었다.
대기실 옆 벽에 본선 진출자 명단이 붙었을 때,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찾았지만, 명단 어디에도 그 이름은 없었다. 본선 진출 여부를 확인한 참가자들의 얼굴은 희비로 엇갈렸고, 축 처진 어깨로 되돌아서던 수많은 낙선자 중에 그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무거웠던 기억만 또렷하다.
12. 그 아이가 뒤에 어떤 길을 걸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날의 탈락으로 더 좋은 기회를 만났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내 길이 아니다 싶어 아예 접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친구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5년 전, 수궁가를 구수하게 뽑아내던 그 아이도, 최선을 다해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 아들도 의도하지 않은 ‘종소리’일로 인해 예상치 못한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3. 살면서 누구나 한번 쯤은 자신도 모르게 종을 울리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종소리를 듣게 되기도 한다. 이런 일을 만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 종소리가 그 사람을 어디에 데려다 놓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원하는 방향에 가 닿아있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