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Poiret
폴 푸아레
폴 푸아레 ( 1879, -1944) 는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로,
20세기를 통털어 피카소에 견줄만한 아티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푸아레는 1879년 옷상점을 하는 부모밑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우산을 제작하는 공장의 견습공으로 성장한다.
우산을 만들고 남은 천에 실크 스카프를 덧붙여 옷을 제작하게 된 푸아레는
이런 아이디어로 제작된 그의 의상 스케치를 그당시 디자이너였던 Madeleine Cheruit에게 발탁되어
디자이너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되고
1896년,유명한 패션 하우스인 Jacques Doucet 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푸아레는 1903년 그의 이름으로된 패션하우스를 설립하고 그때까지 어떤 디자이너도 시도하지 않던,
많은것들을 통해 패션역사의 한획을 긋는 선구자 역할을 하게 된다.
화가인 엘테 듀피, 사진작가인 만레이, 작가인 장 콕토등과 예술적인 교류를 통해
classicism, orientalism, 상징주의 , 원초주의등에 영향을 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러시아 발레에서 영감을 얻은 강렬한 색채와 야성적인 비비드 컬러의 디자인을 상류층 의상에 도입하게 되며
정형화되지 않은 원단과,러시아 발레, 오리엔탈리즘의 도입으로
상류층의 취향을 대변하는 디자인과함께, 가구, 인테리어, 패션하우스의 향수 런칭등을 통해
현재까지도 모든 패션 브랜드들이 추구하는 틀을 마련하게 된다.
또한 주목할 만한 오리엔탈리즘으로는, 중국 " 공자"풍의 코트와 기모노풍의 튜닉 드레스.
터키의 판타롱 터번등으로 신비롭고 여성적인 실루엣을 살려주는 독특한 디자인을 도입했다.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을 받은 폴 푸아레 드레스
동양적인 우산과 서민들의 모자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 되었다.
폴 푸아레가 발명한 호블 스커트는 그시대전까지도 여성들을 억압하던 코르셋과 페티코트를 없애고
발목까지 오는 길이에 폭이 작은 스커트를 일컫는 말이다.
모더니즘 패션의 선구
구조적 환원주의, 코르셋으로부터의 해방
1910년대 활동의 전성기를 이룬 푸아레는
1929년 25년만에 자신의 하우스의 문을 닫을 때까지 패션의 역사에 회자되는 주요 디자이너들보다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새로운 시각으로 혁신적인 디자인을 남겼다.
푸아레의 가장 큰 기여는 19세기 말부터 계속되어온 여성의 신체를 S자형으로 성형하는,
특히 현대의 기준으로는 비정상적으로 가늘게 허리를 조였었던
코르셋(corset)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아레는 18세기말 프랑스 총재 정부 시대의 스타일을 부활시킨
디렉투아르(Directoire) 양식의 하이 웨이스트(high waist) 엠파이어 라인(Empire Line)의
날씬하고 헐렁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 디자인을 비롯해 푸아레의 새로운 여성상은 푸아레의 아내 드니스(Denise)로부터 영감을 받았으며,
그의 모든 디자인은 그녀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이었다.
드니스는 당시 S자형의 굴곡있는 성숙한 체형에 어울리는 당시 패션과 달리
호리호리하고 젊고 코르셋을 입지 않은 ‘소년 같은 소녀(la garçonne)’의 전형이 되었다.
이 푸아레 스타일은 1920년대 플래퍼 스타일(flapper look)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푸아레의 디자인은 이후 단순하고 길이가 짧아지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푸아레는 큰딸의 이름으로 지은 Parfums de Rosine이라는 향수 회사를 설립하고
디자이너가 같은 이름으로 향수를 런칭한 제 1호를 기록하게 된다.
또한 둘째딸의 이름으로 하이 클라스의 워킹 걸을 겨냥한 "Ecole Martine"라인을 런칭한다
푸아레의 근대 패션에의 기여는
지나간 시간이나 다른 지역에서 의복에 있어서
자유를 찾는 역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 비해 조명을 덜 받아왔다.
그의 구조적인 단순성은 직물이 인체에 걸쳐져서 생성되는 공간에 새로운 조형성을 창조했으며
이는 모더니즘 패션의 선구였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근대성은 직물과 장식적 단순성을 포기하지 않았고,
기능적이고 시각적으로 훨씬 더 수수한 다음 세대 근대적인 디자인에 의해 묻혀졌다.
그는 샤넬의 검정색과 눈에 띄지 않는 쿠튀르적인 기법들이 주는 미학에
자신의 예술 세계를 타협하지 않았고,기성복 산업의 체계에 적응하지 않았다.
20세기 이래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려는 시도가 잠시 있기는 했었으나,
푸아레의 디자인이 여성복에 코르셋으로부터의 영구적인 해방을 가져왔다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