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악보와 음악
음악을 서면이나 그밖의 수단으로 기록하기 위한 수단과 매체가 악보이다.
악보 자체는 결코 음악이 될 수는 없으며, 다만 음악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 지나지 않으나, 악보는 작곡의 방향을 규정해 주는 것은 물론, 연주의 기법을 결정하는 커다란 강제력을 갖는다.
특히 유럽 음악의 악보는 본래 음곡 기억을 위한 수단 이라는 소극적인 사고 방식을 오랜 옛날부터 탈피하여 음악 창작의 터전이 되어야겠다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작곡가는 악보와 대치하여 사색을 하고, 악보를 음미하면서 그의 음악을 한 구절씩 다듬어나가는 것이다.
2. 고대와 중세의 악보
고대 그리스의 악보는 매우 체계화된 음악 이론을 바탕으로 완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고대 그리스의 악보가 음의 높고 낮음을 문자나 특저음의 기호로 표시하는 방법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중세 유럽의 악보에서는 선율의 높고 낮음과 그 음색 표현을 네우마라는 선 모양의 기호로 표시했다.
중세 그리스도 교회의 전례 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는 9C 이후 지역 나름대로의 지방색을 띄어 그 지역의 고유한 네우마에 의해서 기보되어 있음이 특징이다. 네우마로 표기되는 중세 유럽의 악보는 지역에 따라서 그 형식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선율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표시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세 유럽의 악보는 또 10-11C 경부터 변화를 보였는데 네우마에 보선을 첨가해 음정 관계에 명확하게 시도되었다. 뒤이어13C 이후에는 4각형의 네우마가 일반화되어 독일을 제외하고는 전 유럽에 사용되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로마 카톨릭 교회의 그레고리오 성가의 표시에는 네선을 붙인 4각형의 네우마를 쓰고 있다.
또 중세의 갖가지 형태의 세속 가곡도 대개는 이 네우마에 의해 기록되고 있었으나 네우마는 보선이 첨가되어 있으므로 음의 높고 낮음은 명확하게 기표를 할 수 있으나 리듬의 표시는 기표로 나타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레고리오 성가 나 중세 세속 가곡이 그 당시 어떠한 리듬으로 연주되고 있었는지에 대한 학자들간의 이론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3. 정량보의 발전
보선이 첨가된 네우마는 음의 높고 낮음은 명확하게 표기되지만 리듬의 표시가 애매한 것이 흠이다. 홑선율의 성가나 세속 가곡의 경우는 리듬의 표시가 애매한 네우마가 오히려 적합할 수가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연주자가 제각기 다른 성부를 동시에 연주해 나가는 다성 음악의 경우에서는 리듬 표시 없이는 연주가 불가능하다.
13C 이후 유럽의 음악가들은 뛰어난 리듬의 표시법을 추구하기에 이르렀고, 또 이 리듬 표시의 추구로 인해서 여러가지의 시행 착오를 일으키는 일도 자주 있었으나 이를 계기로 <모드스 리듬 기보법>, <흑부정량 기보법>, <백부정량 기보법> 이 만들어진다.
1) 모드스 리듬 기보법
- 초기의 다성 악곡에서는 두개의 성부를 위아래로 오늘날의 스코어처럼 늘어놓아 서로 다른 음부를 적절하게 배치하는 방법을 썼다. 그러나 음악의 진보에 따라 성부가 늘어나게 되었고, 따라서 성부가 독자적으로 복잡하게 움직이게 되자 이것만으로는 연주가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13C 노트르담 악파에서는 <모드스 리듬 기보법> 이라는 특한 표시법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리듬을 장→단, 또는 단→장이라고 하는 몇가지 형식의 기본적인 패턴(모드스)으로 분류하여 4각 네우마(단독부와 연결부)의 조합에 따라 표시하는 것이다.
2) 흑부 정량 기보법
-그러나 <모드스 리듬 기보법> 의 방법은 전체의 리듬과 패턴을 표시할 뿐, 하나하나의 음의 깊이를 정확하게 표시할 수는 없었는데, 13C 후반에 들어서야 모든 음의 장, 단을 하나하나의 음부의 형상으로 구별하여 표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중세 이후 악보 형식의 하나가 된 정량 기보법의 시초가 되었다.
긴 음부(롱거)와 짧은 음부(브레뷔스)의 구별로 시작되어 보다 짧은 세미 브레뷔스와 미니아, 보다 긴 맥시마 등의 음부가 사용되었는데, 초기에는 3분할법, 즉 장음부는 세개의 단음부로 분할되는 것이 정석처럼 되어있었으나 14C 초엽에 들어서는 3분할법과 2분할법이 양립되는 흑부 정량 기보법이 체계화되기에 이르렀다.
이 흑부 정량 기보의 기법은 14C에서 15C 중엽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유럽에 사용되었는데 특히 이 기간 동안에는 붉게 표기하는 음부(코럴색부라고도 함)를 비롯해 각종 기호를 복잡, 다양하게 사용하는 매우 기교적인 보법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편 14C 이탈리아에서는 리듬 표시가 다소 다른 보법이 쓰여지고 있었는데 15C 들어서면서 앞에서 말한 정량 보법에 동화되고 말았다. 어쨌든 이 정량 보법의 출현으로 인해 종래와 같은 스코어 모양으로 음부를 상,하로 늘어놓을 필요가 없게 되고 따라서 각각의 성부를 분리시켜 따로따로 기보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었다.
이 기법에서 보선의 수는 단선율의 곡에서는 4선, 다성곡에서는 그 음역을 감안하여 5선, 건반곡에서는 6선으로 되어 있다.
4. 근대 기보법
16C 이전의 음악가들은 음악이라는 시간 예술과 절대적인 예술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음악가들은 음악의 시간적 제약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과제를 연구, 이에 바람직한 기보법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탐구 분위기 속에서 하나의 새 보법이 창시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르간과 같은 건반 악기를 위한 기보법이었다. 15C 경부터 상하 2단의 대보표, 소릴선의 사용, 2분할법의 우선이라고 하는 건반 악기에 걸맞는 표현법이 개척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기보법은 16C가 다가오도록 빛을 보지 못했던 특수한 보법이었으나 17C 초엽부터 갑자기 음악사의 표면 무대로 등장, 모든 장르를 통해 널리 성행하기에 이른다. 건반 악기는 물론 오페라, 독창 가곡, 합창 가곡, 오케스트라 합주의 성악곡에서까지도 통주저음과 연계 사용, 그 우수한 표시 능력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전의 보법은 완전히 배제되었고 근대 기보법이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 근대 기보법은 17~19C에 이르는 200여년 동안 발표된 많은 명작들을 정확히 기보하여 오늘날까지 전승하고 있다.
이 시기에 완성된 기보법이야말로 오늘날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일반적인 보법으로 중용되고 있으며 음악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먼저 이 기보법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나 인도, 아라비아, 일본, 서양 음악과는 그 형식을 달리 하는 음악 장르에서 악보가 만들어진 것도 사실은 이 근대 유럽 기보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본의 작업을 외국의 문학 작품을 다른 나라말로 번역하는 경우와 같이 결정적인 변용이나 변질은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음의 높고 낮음의 표시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유럽 근대 기보법의 특징은 어디까지나 유럽 음악의 발상일 뿐, 유럽 밖의 문화권의 음악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고 있다. 음의 높이나 길이보다는 반음 이하의 미세한 음정의 바이브레이션이라든가 그 악센트, 또한 음정, 음색을 중요시하는 동양 음악의 기보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20C의 작곡가들은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방법으로 유럽 근대 기보법의 제약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Vienna Mater Series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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