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기할까요' 라는 TV 프로그램에 한 소년이 나온 적이 있는데, 그 소년은 21명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violin concerto D Major op.61> 를 듣고 그들이 각각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구분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소년에게 여러 연주자들의 녹음에서 같은 부분을 들려주었는데, 전체 TV 시청자는 아닐지라도 방청객 전체는 소년이 음악을 듣고 "울프 횔셔입니다. 한스 퐁크가 지휘하는 드레스덴 시립 교향악단과의 연주예요." 등의 대답을 할 때마다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소년은 내기에서 이겼죠.)
..자신의 지적 재능을 그런 장기를 개발하는 데 쏟는 일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많은 직업 음악가들도 가령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라디오를 들으면서 그 소년과 비슷하게 알아맞히기 놀이를 합니다. 곡의 마지막 소절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 곡이 누구의 연주였는가를 자신이 반드시 맞춰야 한다는 듯, 정말 누가 연주했는지 얘기해주는 라디오의 멘트를 행여 놓칠세라 차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외쳐되는 것이죠.
이런 일은 어려우면서 동시에 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님도 어떤 특정한 곡의 모든 녹음들을 잘 알고 있다면, 그런 알아맞히기 과제를 그 소년처럼 별 어려움 없이 해낼 수가 있을 꺼예요.^^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모든 성악가와 악기 독주자, or 오케스트라들을 그 지휘자까지 포함해서 따로 떼어놓았을때 맞추는 일이죠. 사실 이 일은 엄청나게 어렵고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누가 무엇을 언제 연주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서 "그 연주를 지금쯤 라디오에서 틀어주겠구나" 라고 짐작하고 있을때나 가능한 것입니다.
어쨌든 가끔이라도 맞출 수 있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요? 20명의 배우가 각기 똑같은 독백 대사를 말하는데 님이 그 배우들마다의 작은 차이를 유념해야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하지만 사람 목소리는 악기 소리보다는 훨씬 개성적이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꺼예요. 맞는 말이죠. 그러나 악기들도 저마다 독특한 소리를 냅니다. 또 악기 연주자들도 각기 독특한 음색을 개발합니다.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는 빠르고 급한 비브라토로 자극적인 연주를 하는가 하면 또다른 바이올리니스트는 울림이 가득하면서도 부드럽게 연주해서 비브라토의 효과가- 원칙적으로는 현을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하는 왼손의 진동이 음색을 섬세하게 변화시킵니다.-더 크죠. 이 정도 수준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으려면 아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죠. 직업 음악가들에게조차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원칙상 가능한 일이며, 성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누구의 연주라는 걸 더 쉽게 알아맞힐 수 있는 경우는 비교를 할 수 있을 때입니다. 다른 모방 예술처럼 음악의 해석도 악보라는 고정된 텍스트가 구체적인 연주랑 연결되어 열어놓는 자유 공간에서 진행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음악 연주자의 해석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원 작품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갖고 있거나 자신이 그 작품을 직접 연주한 경험이 있을 때 큰 도움이 되죠. 그럴 경우엔 심지어 "자, 당신이 어떻게 연주하는지 한번 들려주시죠. 그럼 당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당신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해주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합니다. 작품들은 끝도 없이 새로운 해석과 설명이 가능합니다. 특히 어느 정도 특정 작품의 녹음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몇시간이든 전문적인 용어를 써가면서 아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속도의 문제, 음색, 화음, 극적 연출의 능력 등에는 연주자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건 노래와 연주에서의 귀찮은 근본 테크닉이 다 갖춰지고나서의 문제이죠. 곡의 해석이란게 결국 테크닉에 속하는 문제여서(간혹 반대인 경우도 있는데-or 좋은 해석이 자동적으로 적합한 테크닉을 낳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음악비평을 할땐 뛰어난 앙상블과 연주자들만을 대상으로 놓고 얘기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테크닉이 떨어지기 땜에 멋진 해석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을 테크닉이 뛰어난 연주자들과 견주어 평가하는건 공평하지 않죠. (어떤 사람이 느리게 연주하는 이유는 단지 빨리 연주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이외에도 200년쯤 되는 음악비평의 역사는 작품비평(알려지지 않은 새로 작곡된 작품)에서 공연비평(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레퍼토리)으로 바꼈음을 지적하고 싶은 상황이죠. 이런 변화된 상황은 독자들이 구체적인 작품들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어서 연주자의 작품 해석에 대한 묘사를 이해할 수 있는 동안에는 그대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독자들은 다른 지식을 갖고 있고 음악비평 또한 새로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길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사람들이 그저 추측해 볼 수 있을 따름이죠.)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의 음악비평가인 엘레오노레 뷔닝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현재 독일의 전국 일간지에서 읽는 음악비평과 같은 형태는 미래에는 아마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연주회에 대한 사전 보고 뉴스, 인터뷰나 르포가 주류를 이룰 것이다." 그러면서 뷔닝은 독자들이 비평을 읽으면서 자신을 성숙한 청자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당분간 아주 오래되고 잘 알려진 음악들일지라도 다시 처음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작품이 해석되어야 한다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물론 우리는 원래의 악보와 그의 다른 판본들을 접할 수 있으며, 작곡가가 자기 작품에 대해서 어떤 말을 했으며 어떤 연주 지시를 내렸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특히 연주 지시의 경우, 악보의 상단이나 중간에 작곡가들이 써놓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Adagio (유유하게), Allegro(밝게, 유쾌하게), cantabille(노래하듯이), cresc. (점점 크게), decresc. (점점 작게), f(크게, 세게), grave (무겁게, 진지하게), legato(연결하여), Moderato(보통으로), p(조용하게), presto(빨리), rit. (느리게), staccato(톡톡 튀면서)등..
...이런 것이 물론 프랑스어, 독일어, or 아이슬랜드어로도 다 있을 것입니다. 해석에 대한 지시가 어떤 언어로 되어있든간에 이런 지시사항들은 상당히 혼란을 줄 수가 있죠. 예를 들어 슈만이 1837년 피아노를 위해 작곡한 <다비드 동맹 무곡집>의 곡들에 '먼 곳에서 오는 듯이' or '격렬하고 유쾌하게' 라고 써놓는다면 우리는 어떤 지향점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그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많은 해석자들은 각기 자신의 해석이 특별히 맞는 것이며 원곡의 의도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작품은 어떻게 듣는 것이 올바르며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가를 설명할 때는, 이런 전제가 있기 땜에 수업 자체가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재연을 하는 예술가들도 최대한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창의성의 발휘는 그들이 단순한 보조적 수행자로 전락하지 않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훌륭한 음악가들의 연주는 그들이 원래의 작품이나 그 자품의 어떤 부분들을 아주 새롭게 선보인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럴 때 해석은 연주하는 예술가와 작품과의 대화이며, 또한 그들이 그 작품에 대해 청중과 나누는 대화이기도 하죠. (같은 작품을 가지고 어떤 연주자는 이렇게, 다른 사람은 또다르게 해석해서 연주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기 땜에 '원래의 작품' 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건 허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이란 소리가 날 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는 조용히 하면서 음악 소리를 듣는 누군가가 필요한 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