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호흡기로 감염되는 유행성 질환으로 2019년 중국 우한에서 창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공식명칭은 COVID-19로서 창궐한 이후 전 세계에 급속도로 번지며 지구촌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 1월부터 발병이 시작되었는데 그로 인해 달라진 풍속도가 마스크 상시(常時) 착용이었다. 그런데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마스크 상시 착용을 매우 특별하게 여겼다지만, 우리에게만큼은 그게 아니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병원, 작업장 등은 물론 봄철 황사와 감기 예방을 위해 늘 마스크를 착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시중에 ‘황사마스크’가 나와 있는 현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코로나-19 창궐 이후에는 평소보다 더 신경을 써서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부터 상당 기간 동안 마스크 착용 의무화 규정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며, 의료기관, 약국, 대중교통 등에서는 그 적용 기간이 상대적으로 더 길었다. 중요한 점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 규정과는 별개로 어느 곳에서나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실외에서의 마스크 착용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황사의 영향이 크다.
건강을 위해 날마다 두 번씩 걷기 운동을 한다. 아침나절 양지바른 길 걷기는 햇볕을 쬐기 위함이며, 저녁 식사 후 걷기는 운동 목적이다. 3월 어느 날 새끼낮(주1)쯤 밖으로 나서니 황사가 자욱하였지만 그래도 희뿌연 방해꾼을 뚫고 나온 햇살이 제법 발그레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일부러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목적지를 다녀왔다. 살갗에 햇볕을 충분히 쬐기 위함인데 그래야만 인체에서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이 합성되고 비타민D도 생성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이 들수록 세로토닌 합성이 어려워지고 그에 따라 멜라토닌도 부족하여 숙면이 어렵다니 얼마나 중요하랴. 한편 같은 시간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사람은 눈에 띠지 않았다.
이튿날에도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아침나절 햇살이 전날보다 더 흉악한 황사를 간신히 비집고 나와서는 기진맥진해 있다. 그래서 더욱 마스크를 착용할 수밖에 없으니 밖으로 드러난 곳이라곤 겨우 눈언저리와 양손뿐이다. 아직은 쌀쌀했지만 출발하기 전에 옷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이유다. 하지만 햇살이 황사한테 상당한 빛을 빼앗기고 희미한지라 햇볕 쬐기 활동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날마다 중간에서 햇빛을 가로채는 황사가 원망스럽다. 하루 종일 황사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은 날이었다.
아침나절 햇볕 쬐기 활동을 하고부터 마스크를 착용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보금자리에서 직선거리로 1킬로미터가 넘는 곳의 고층건물 선명도다. 즉 그 고층건물이 선명하게 보이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으며 흐릿하게 보이면 착용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마스크를 착용하는 날이 잦음을 실감하고 있다.
필자의 황사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특히 어쩌다 진청색 애마를 말끔히 세차하여 야외에 주차한 후에 비가 몇 방울 떨어지다 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후에 보면 빗방울이 떨어져 마른 자국마다 하얀 먼지가 선명하다. 따라서 ‘대기 중에 얼마나 많은 먼지가 있기에, 단 하나의 빗방울에 섞인 먼지가 저 정도일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저녁 식사 후 걷기 운동을 하면서도, 차라리 우산을 쓰고 걸을지언정 비가 오는 날이 더 반가울 정도다. 비가 내리면 적어도 황사만큼은 안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봄철이면 한반도가 희뿌연 황사로 뒤덮이기 일쑤다. 황사는 일반적으로 고비사막의 미세먼지가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 부근까지 운반되어 서서히 하강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만약 황사의 성분이 고비사막의 먼지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문제는 중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화학물질들이 포함된 미세먼지가 황사에 섞여 있다는 데 있다. 즉 공기의 흐름에 국경이 있을 리 없으니 중국의 공장 굴뚝에서 나온 화학물질을 우리가 마시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 누구나 마스크 생활화 이면에는, 중국 대륙의 황사와 미세먼지를 들이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즉 오늘날 우리의 마스크 생활화는 코로나-19 때문에 발단되어 황사로 인해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혹자들은 “우리나라의 마스크 생활화는 자칫 외국인들에게 무표정한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라고 주장한단다. 그런데 우리의 건강을 등한시하면서까지 마스크를 벗을 필요는 없으리라.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린다고 표정이 감춰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착용하고도 항상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으면 반드시 그 미소가 마스크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있다. 그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누구나 마스크를 착용하면 얼굴에서 눈만 드러난다. 그런데 인간이란, 입가에 미소 지을 때 눈웃음이 뒤따르고, 화나면 눈부터 노기를 띠며, 슬프거나 매우 기쁘면 눈물부터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니 어찌 마스크에 표정이 감춰지랴. 특히 미소는 절대 마스크 뒤로 숨지 못한다. 혹시 눈, 코, 입을 모두 가리는 마스크라면 모를까.
(주1)새끼낮 : 정오가 채 되지 아니한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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