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까치발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푸른 산을 묵직하게 채워놓았다. 머지않아 온 산하에 푸른 잎들이 뜨거운 숨을 뿜어낼 날이 오겠구나.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아들이 가업을 이어받겠다며 다니던 직장까지 접고 내려온 지 어느덧 이 년, 올해는 아들과 함께 맞이하는 두 번째 봄이다.
지나친 모정이 때로는 짐이 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우리에게도 갈등의 시간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기에 보호해야 한다는 미명 하에 과한 간섭도 했을 것이다. 내 판단과 관심이 사랑이라는 착각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런 시간을 통과하며 우리는 적절한 선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오히려 아들이 내 생활을 살피려 하여 그 관여가 때론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아들과 나는 서로에게 적절한 거리가 어디쯤인지 잘 알기에,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 선을 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잘 지키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일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아들의 귀밑에 늘어가는 새치를 보고 “아니, 벌써……” 하고 놀라는 내게, 아들은 “엄마, 저 이제 마흔이에요” 하며 웃는다. 불룩 나온 배가 건강을 해칠까 싶어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되도록 먹지 말라는 잔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그런 나의 모습에 아들은 그저 빙긋 웃어 보인다.
나에게서 아들로 대가 이어지고, 아들은 살아가야 할 날이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기에 아들네 가정에 좋은 일들이 가득하기를 소망하게 된다. 그것도 막연한 욕심일까. 나의 시어머니도 이런 마음으로 자식을 바라보셨을까.
그렇다면 나와 시어머니는 왜 그토록 풀리지 않는 평행선의 관계로 이어져 왔던 걸까. 시어머니를 모시고 지냈던 8년의 세월을 헤아려보면, 체감상 30년은 족히 살았던 것만 같다. 그만큼 해묵은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이제 나도 시어머니가 되어 두 며느리를 두고 있지만, 며느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일은 영 자신이 없다. 며느리들 역시 나와 보낸 시간들을 되돌리기 싫은 기억으로 간직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 때문이다. 세대가 다르고 사고의 패턴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토록 고부 관계가 굴곡졌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한 번 뭉친 마음을 유연하게 풀어내지 못하는 내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소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고 지적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성품 탓이었을까. 무슨 일만 있으면 홀로 지내시는 친정어머니까지 들먹이며 깎아내려야만 속이 시원했던 분이었다.
지금도 시어머니를 그려보고 싶지 않고, 아니 되도록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유산 상속으로 지금의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고마운 분’이라고 좋은 쪽으로 생각을 바꾸려 해보지만 여전히 마음은 서늘하다. 시어머니가 내게 따뜻한 말씀을 건넸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시어머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머릿속이 송연해진다. 가장 인격적인 모욕이라 여겨지는 외모 평가까지도 서슴지 않으셨던 분. 내가 진정 못된 며느리여서 그랬던 걸까. 시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마다 나를 향한 원망과 미움뿐이었다. 언젠가 옆집에 사시는 당숙께서 집에 놀러 오셨다가, 내가 듣는 앞에서 막내며느리 잘 들어왔다는 칭찬을 하신 적이 있다. 시어머니는 그 일로 며칠 동안 “영감이 술 한 잔 얻어먹으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다”며 내게 욕설을 퍼부으셨다.
그런 시어머니는 평생 돌아가실 줄 몰랐다. 내 곁에 영원한 강적으로 남아 나를 괴롭힐 줄만 알았다. 그러던 분이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쓰러지셨고, 몸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가셨다. 문병을 온 마을 분들은 가실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며 한마디씩 하며 대문을 나섰지만, 나는 설마 하며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시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모진 세월이 끝났음에도 고통의 앙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훗날 나도 누군가에게 이토록 원망스러운 사람으로 남게 될까 봐, 사람들과의 관계가 항상 조심스럽기만 했다. 외롭더라도 남들과 가까이 지내는 일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적도 있었다. 용서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 사실은 가장 괴로웠다.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닌 시어머니 때문에 여전히 마음이 힘겨운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어느 날, 아들이 좋아하던 딸기가 싱싱하길래 사 왔다. 식사 후에 먹겠다는 것을 먹기 좋게 꼭지를 따고 반쪽으로 갈라놓으니, 아들은 “맛있겠다.”며 다가와 먹는다. 잘 먹었다며 뒤돌아서 가려던 찰나, 목이 파인 라운드 티셔츠 사이로 드러난 아들의 뒷목이 눈에 들어왔다.
검포도 빛깔의 사마귀. 시어머니와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모양으로 박혀 있는 사마귀였다.
나는 기절할 만큼 놀랐다. 듬직하고, 나를 잘 헤아려주고, 효심이 깊다고 여긴 내 아들에게 어떻게 그토록 미워했던 이의 피가 흐르고 있을까. 돋아난 위치와 빛깔까지 소름 끼치도록 똑같았다.
과거 시어머니는 농사일을 하시다 한낮에 집안으로 들어서면 곧장 수돗가로 가셨다. 함께 일터에서 일하고 부엌으로 들어가던 나를 불러 세우곤 하셨다. 다가서면 시어머니는 상의를 벗은 반나신의 굽은 등으로 등목하기 좋은 자세로 엎드려 계셨다. 열 명의 자녀에게 생명을 이어주었던, 다 빨린 젖가슴은 축 늘어져 있었다. 마치 허름한 곡식 자루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빨리 등에 물 좀 끼얹어라!” 하고 재촉하시던 목소리. 당시 내 마음에는 측은함보다는 그저 얼른 물을 끼얹어 드리고 이 상황을 끝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시어머니의 엎드린 뒷목 중앙에는 팥알만 한 사마귀가 버튼처럼 솟아 있었다. 시어머니가 저 사마귀 때문에 남들보다 더 심한 심술을 지닌 것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한 번 눌러보면 어떨까, 저걸 없애버리면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아질 수 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아들의 목에 난 똑같은 사마귀를 보는 순간, 수십 년 전 그 수돗가의 장면이 눈앞에 선명하게 겹쳐 보였다.
“야, 너 그 사마귀 언제부터 생겼어?”나도 모르게 따지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들은 나의 앙칼진 목소리에 놀라 “왜 그래요, 엄마?” 하고 둥근 눈으로 묻는다.
내 소중한 아들에게 있는 저 사마귀는 결국 할머니로부터 그대로 이어받은 유전이었다. 그토록 원망스러웠던 시어머니와, 내 전부처럼 여겼던 아들은 결국 하나의 핏줄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어머니를 미워하고 증오했던 오랜 시간은, 결국 내 아들의 뿌리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일과 다름없었다는 깨달음이 벼락처럼 스쳤다.
그동안 내 눈을 가렸던, 그리하여 내 골육마저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깊은 미움의 앙금을 이 순간 대지 깊숙이 묻어버리기로 했다.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평행선이, 아들이라는 존재 안에서 비로소 하나로 맞닿아 녹아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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