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6·3 지방선거.
전대미문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이른바 '투표소 봉쇄'가 사흘째 이어졌다는 소식이다. 투표소가 위치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결국 시위대에 공식 퇴거를 요청했고,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다행히 조금 전 투표함이 이송되었다고 한다. 사태는 일단락되는 분위기지만, 주민들의 마음에 남은 앙금까지 함께 사라지지는 않을 듯하다.
투표용지 부족은 분명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의 실수라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다소 늦게라도 투표를 마칠 수 있었다면, 과연 그것이 경찰 병력 1천 명이 동원될 정도의 사태로 번질 일이었을까.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시위였고, 그 모습을 지켜본 주민들 또한 쉽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일상 공간이 점거되고 소란이 이어지자 시위대의 퇴거를 요구하게 된 것인데, 그들의 분노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는 선관위 대변인은 아니다. 다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적지 않은 투표용지가 사용되지 않은 채 폐기되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은 이를 예산 낭비라고 비판하고, 남는 투표용지를 최소화한 선거관리 담당자를 유능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아마도 예산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마음, 불필요한 낭비라는 비난을 피하려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의가 결과적으로는 어제와 같은 혼란을 낳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것이 모든 것을 마비시킬 만큼 큰 죄였을까.
실수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분노가 이성을 잃고 행패로 이어질 때, 또 다른 분노를 낳는다. 주민들이 시위대의 퇴거를 요구하며 분노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분노는 강력한 감정이다. 때로는 정의를 세우는 힘이 되지만, 이성을 마비시키는 순간 파괴의 도구가 된다. 조절되지 않은 분노는 생각보다 훨씬 큰 상처와 피해를 남긴다.
어쩌면 전쟁조차도 작은 분노가 쌓이고 쌓여 폭발한 결과인지 모른다.
조금 늦게 투표한 불편함을 잠시만 참을 수 있었다면, 주민들의 퇴거 요청도, 사회적 갈등도 없었을 것이다.
분노는 순간이지만, 그 후유증은 오래 남는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