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가 오면
단오가 오면 왠지 마음이 먼저 들뜬다.
홀수가 겹치는 길한 날이라서도 아니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여인들의 풍속이
신기해서도 아니다.
단지 단오가 지나면
바로 다음 날이 내 생일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보다 성탄 전야가 더 설레듯,
음력 오월 초닷새인 단오는
내게 생일을 알려주는 작은 종소리 같은 날이었다.
모내기로 들녘이 가장 분주하던 계절.
지금처럼 기계가 논을 대신하던 시절이 아니어서
마을 사람들은 품앗이로 서로의 논을 돌며
허리를 굽혀 모를 심었다.
하필이면 내 생일은
모내기가 절정에 이르던 때와 겹쳤다.
그래서 내 생일은 언제나
논바닥 흙냄새와 함께 찾아왔고,
대부분은 생일인 줄도 모른 채 지나가기 일쑤였다.
어머님께서는 늘 그것을 미안해하셨다.
"생일도 제대로 못 챙겨줘서 어쩌나…."
그래서 어머님은 하루 앞선 단오날이면
작은 잔치를 마련해 주셨다.
씨암탉 한 마리 푹 삶아 놓으시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우던 그날.
지금 생각하면 거창한 상차림도 아니었고,
풍족한 살림도 아니었지만,
그 시절에는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다.
세월은 흘러 논에는 기계가 들어서고,
품앗이 소리도, 모심기 노랫가락도
이제는 추억 속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단오가 찾아오면
나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들녘으로 돌아간다.
햇살에 반짝이던 논물과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
그리고 자식의 생일을 못 챙겨 미안해하시던
어머님의 따뜻한 마음….
그 모든 것이 떠오르는 날.
그래서 내게 단오는
명절이라기보다,
그리운 어머니와 함께했던
가장 따뜻한 추억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