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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수행 여덟째날 - 사중득활(死中得活) ] (11)

작성자도혜|작성시간22.05.28|조회수87 목록 댓글 0

[ 단식수행 여덟째날 - 사중득활(死中得活) ] (11)

법우들을 이끌고 아침 요가와 좌선을 마친 큰스님께서 산보 나갈 준비를 하라고 하신다. 몸은 너무 힘들지만, 혼자서 방에힘들게 있는 것보다 그래도 산을 올라갔다 오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떻게든 일어나 같이 길을 나선다. 그간 앞장서시는 큰스님을 바로 뒤에서 모시며 산을 오르던 내가 오늘은 제일 뒤에서 어렵게 한걸음 한걸음 떼며 쫓아간다. 아침 공기가 청량하고 햇볕도 여느 봄 햇살처럼 따스하건만 내 발갈음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무겁기만 하다.

그간 산보를 하며 중간에 두번을 쉬고 마지막 정상을 올라가는 데, 오늘은 그 두번째 포스트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새 일행은 보이질 않는다. 상체를 30도 정도 숙이고 그저 눈앞에 길과 내 발걸음을 보며 앞으로갈 뿐이다. 이러다 산길에 쓰러지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심호흡을 하며 힘을 내본다.

한시간 남짓의 산보를 어렵사리 끝내고 돌아와 방에서 30여분 쉬고 있으니, 드디어 첫 보식을 하러 모이라고 하신다. 다들 힘들텐데 현미밥을 준비하신 보살님들이 대단하시다. 허리를 숙인채 다시 좀비처럼 방문을 나와 식탁에 앉으니, 현미밥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커피잔에 2/3정도 현미밥을 각자 채우고 공동으로 된장을 앞에 놓고 공양의궤 기도후 식사를 시작한다. 밥 한숟갈 위에 된장을 차 스푼의 1/4쯤 떠서 올려 놓고 입에 넣고 100번을 씹어 심키라고 한다. 생각보다 너무 맛있는데,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힘드니 먹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100번을 씹으니 밥이 액체가 되어 삼키기가 좋고, 된장의 구수한 향기가 같이 나니 먹을만하다. 7일만에 먹는 곡기가 이렇게도 감사할 줄이야… 식사를 마쳐도 장 기능의 회복을 위해 식사 두시간 후에나 물을 마실 수 있다. 여섯째날 저녁 때부터 물을 안 마셨으니 대략 36시간동안 물까지 완전히 금식하는 셈이다.

어렵사리 식사를 마치고 이어서 관장을 시작한다. 오늘까지 포함해서 두번 남았다. 그동안 관장이 즐거웠는데, 몸이 힘드니 이것도 좀 쉽지 않긴 하다. 그래도 커피물이 들어가니 여전히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관장을 마치고 화장실로 가 설사를 하니, 이번에도 마지막에 숙변에 떨어진다. 도대체 언제까지 나오려나… 샤워까지 마치고 나니 몸이 좀 풀리고 위장을 옭죄던 팽팽한 느낌도 조금씩 나아진다. 침대에 누워서 약 한시간 정도 지나니 위장 쪽의 아픔이 서서히 없어지고, 잠겨있던 목소리도 이제서야 잘 나오기 시작한다. 이제 드디어 하루 반만에 따뜻한 온수를 마시니 몸과 마음이 모두 푸근하고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중득활 死中得活!” 진짜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느낌이다. 옛 산사들의 말씀에 아집으로 가득찬 나의 에고를 죽여야 진정으로 살아날 수 있다 하였는 데, 칠일째 완전 단식을 거치며이기심으로 가득찬 “가짜”의 나를 죽이고 “진짜”의 모습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오후 2시 정도 되어 두번째 보식을 위해 식탁에 모인다. 그나마 이제 좀 살아나서 새벽부터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큰스님 말씀이, “거사님은 그간 가족과 떨어져서 집 밥 못 먹고 혼자서 11년을 중국에서 지내면서 내장에 엄청 많은 독소가 쌓여서 그래요~”하시면서, “거사님은 이번 한번으로는 모든 숙변을 빼내기는 어려울 것 같고, 두세번 더 하면 아주 좋아질 겁니다”라고 하신다. 몇년전에 대장에서 큰 용종을 떼어낸 적이 있어서 그간 조심한다고 했는 데, 이번에 보니 대장 뿐만 아니라 식도, 위장, 십이지장, 소장 등에 많은 독소가 쌓여 있었던 듯 하다. 특히 위장은 내시경해도 별탈이 없어서 괜찮은데, 독성이 많은 음식을 제일 먼저 받아들였던지라 안으로 많이 힘들어했나 보다. 마지막으로 큰스님께서 덧붙이시길, “그렇게 아팠던 것은 어느 정도 고쳐졌다는 의미이고, 이번에 그리 아팠던 게 오히려 다행입니다”라고 마무리해 주신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큰스님의 은덕에 감사드린다.

어제 아픔의 고통을 겪으며, 몇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는 배고픔의 고통을 받은 아귀 중생들이 얼마나 힘들 것인지를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 모두 언젠가 과거생에 한번은 내 부모님이셨을텐데, 그분들이 지금은 아귀가 되어 배고픔의 고통을 받고 계시니 진정으로 연민심을 내고, 그들을 위한 초연공 등의 기도를 게을리 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둘째, 너무 배가 아프니 숨도 가빠지면서 숨 쉬는 것 자체 쉽지 않아지는 것을 겪으니, 사람이 숨이 끊어질 때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는다는 경전의 말씀을 몸소 실감하게 되었다. 숨이 끊어지는 고통을 맞게 되는 망자들에게 진심으로 연민심을 내고, 그 분들이 가시는 마지막까지 성심으로 임종기도를 해 드리는 것이 먼 길을 떠나는 망자를 위해 크게 도움이 될 것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 모두 경전의 말씀이니, 경전에 말씀에 한치도 틀린 바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삼보와 스승님에 대한 진실한 공경심을 세세생생 잃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12번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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