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지에 의하면 삼한(三韓時代) 이래 산성으로 추정, 고대(古代) 이래 왜구(倭寇)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성(城)으로도 추정된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성씨(姓氏)인 자씨(慈氏)의 성(姓)이라면 빗살무늬토기 등의 출토물 등으로 보아 아래의 자씨들의 먼 조상으로 가야시대 이전의 부족국가 또는 부족집단의 성씨로 추정해 볼 수도 있습니다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성(城)의 유래를 한번 조사를 해 보면 좋겠습니다
== 레 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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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인터넷 검색자료입니다
■ 요양 자씨
자씨(慈氏)의 유래와 본관
자씨는 중국 형주현 동주 사람인 자호상(慈好祥)을 시조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씨는 홍선(弘善)의 아들 경보(慶輔)·순직(順直)·순희(順熙)·경조(慶祖)가 1625년 우리나라로 들어와 길주(吉州) 남쪽 설봉산(雪峯山) 밑에 살면서 예전에 살던 요양(遼陽)을 관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자씨는 1985년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서 24가구에 13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전자도서관
http://cafe.daum.net/miryang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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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 자씨(遼陽慈氏)
요양(遼陽)은 중국 랴오닝성의 도시로 랴오허강(遼河)의 지류 타이쯔강(太子河) 좌안에 위치한다. 동북(東北)지방에서는 일찍이 한인(漢人)이 입식(入植)한 곳으로, 진(秦), 한대(漢代)를 통하여 요동군(遼東郡)이라고 불렀다. 당(唐)의 태종( 太宗)이 이 땅을 공략하여 요주(遼州)라 개칭하고, 요(遼)가 발해국(渤海國)의 유민(遺民)을 다스리기 위해 이 곳에 동단국(東丹國)을 세웠으나, 뒤에 오경(五京)의 하나로 동경 요양부(東京遼陽府)를 두었는데, 그것이 현 지명의 기원이다.
자씨(慈氏)는 중국(中國) 형주현(荊州縣) 동주(憧州) 사람인 자호상(慈好祥)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요양자씨세보(遼陽 慈氏世譜)>에 의하면, 그는 1557년(명나라 가정 36) 영군부장(領軍副將)으로 몽고 정벌(蒙古征伐)때 순절(殉節)하였고, 그의 아들(弘善)이 요양(遼陽)으로 이거(移居)하여 살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자씨(慈氏)의 시원(始源)은 홍선(弘善)의 아들 경보(慶輔), 순직(順直), 순희(順熙), 경조(慶祖) 4형제가 명나라 신종(神宗)때 전란(戰亂)을 피해 동래(東來)하여 길주(吉州) 남쪽 설봉산(雪峯山) 밑에 정착(定着)하여 살면서부터이다. 후손들은 전세거지(前世居地)인 요양(遼陽)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자씨(慈氏)의 본관(本貫)은 요양(遼陽) 외에도 해주(海州)와 중원 자씨(中原慈氏)가 있는 것으로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기록되어 있으나, 시조(始祖) 및 계대(系代)에 대해서는 문헌(文獻)이 전하지 않아 상고(詳考)할 수 없다.
요양 자씨(遼陽慈氏)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조선조(朝鮮朝)에서 동지중추부사(同知中 樞府事)를 지낸 충국(忠國)과 만선(萬先)이 유명했으며, 취덕(就悳)과 석항(碩恒), 만찬(萬贊) 등은 부호군(副護軍)을 역임 하였으며 만흘(萬屹)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은강(銀綱)과 명은(明殷)은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러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요양 자씨(遼陽慈氏)는 남한(南韓)에 총24가구, 13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 부천족보전문도서관
http://www.jokbo.re.kr/book/index.html?sn=&fn=1272&fnkey=12721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