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읽는 역사와 시사
ㅡ 몽골제국 징기스칸의 리더십
징기스칸은 자기를 부를 때 징기스칸 이라 하지 말고 이름인 테무친이라고 부르라 했다. 각하, ~님 식으로 부르지 못하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징기스칸은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리더와 구성원 관계에서도 공평을 추구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도 그것을 지켰다. 심지어 정복한 민족과 정복당한 민족 간에도 차별을 두지 않았다.
징기스칸은 자신부터 검소하게 살았다. 부하들과 똑같이 입고 먹었으며 자기 것을 부하들과 공유했다. 징기스칸이 추진한 여러개혁들은 당시 몽골 기득권 세력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것이었다.
당연히 반발이 거셌지만 징기스칸은 오갈 데 없는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고 약속했다. 그들 또한 징기스칸의 미래 청사진을 지지했기에 그의 개혁은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모든 사회 각층에서 학연, 혈연, 지연 중심의 사고 중심에서 수많은 이같은 연의 족쇄를 채우고 있어서 공평하지 못한 나라가 되어 왔다. 특히 현 정권이 드러서서는 서울대 법대 검찰 공화국이 성립 되었는데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이처럼 서울대 학연의 인사 지명 등 전 국무 분야를 독점 한 적이 없었다.
이 뿐만 아니라 현 정권은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 전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주로 전문가들이 무분별 없이 교체 되었다. 그런 이유로 전체 행정 분야에서 거의 아마추어 수준의 어설픈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윤핵관 등 특권이 차별하게 적용되어 기존 당 대표를 내치는 등 자체적으로 심하게 분열되고 있다.
여기서 징기스칸의 경영적 측면에서 판단해 본다면 대 몽골 제국의 건립은 커녕 조그만 정권마저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