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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국내편 3)-초치검의 비밀(지박령 전쟁 1.2)

작성자망사빤쥬~♡|작성시간02.12.30|조회수755 목록 댓글 0
지박령 전쟁 (초치검의 비밀)





10. 지박령 전쟁 1



박신부와 준후는 막 영들이 몰려오는, 그들이 들어왔던 구회 만다라의 진의 입구쪽을 지나 바깥쪽으로 달음질치고 있었다. 박신부의 뒤로는 오의파의 두 사람이 따라 달려오고 있었고, 준후의 뒤에는 두 마리의 리매가 쿵쿵 거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박신부가 달리면서 말했다.


[준후야! 뒤의 저것들은 뭐지?]


[제가 불러낸 리매들이에요! 우리 편이니 염려하지 마세요!]


일행은 어느덧 구회 만다라진이 애당초 처져 있던 초입에까지 달려 나왔다. 아직 영들의 기운은 그곳까지는 다다르고 있지 않았다. 마치 군대가 서서히 진격하는 듯, 아직은 좀 떨어진 곳에서 점차 진열을 갖추어 다가오고 있는 듯 했다. 뒤쪽에서 달려오던 오의파의 두사람이 박신부를 소리쳐 불렀다.


[신부님! 신부님!]


[왜 부르십니까?]


오의파의 맏이인듯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신부님! 놈들을 막으려면 보통의 영력으로는 안됩니다!]


[그건 무슨 말이지요?]


[저희도 어느 정도의 능력은 있다고 자부했었습니다. 그러나...]


준후가 끼었다.


[그리고 보니 아까 묻고 싶었어요. 아까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 사무라이의 영들에게 빙의가 되었었죠? 칼까지 들고...]


오의파의 둘은 멋적은 듯 미소를 씨익 지었다. 좀 쑥스러운 듯도 했으나 그 와중에도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그들... 그들의 고분에 갔었습니다. 도지 님과 함께...]


[예? 그러면 도지 님은 어디 계시죠?]


[아마 혼자서 굿을 벌이고 계실 겁니다. 아직도 무사하시다면요... 도력이 보통이 아니신 분이니...]


[아멘... 혼자서... 그런데 당신들은 어째서?]


[녀석들은 보통의 지박령이 아닙니다. 몸, 몸을 갖추고 일어났었어요! 틀림없습니다]


박신부와 준후는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 보았다. 뒤에서 리매 두 마리가 으아아아~~ 하는 고함소리를 질렀다.


[몸? 몸을 갖추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들은 군대입니다. 그것도 이상한 주술로 보호되고 있는 군대였던 것이 틀림없어요. 놈들 중의 두 명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힘으로 밀어내고는...]


오의파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고분을 조사하러 갔을 때에 영적인 방어를 펼쳐 몸에 부적을 몇 개나 달고 갔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지 무당은 그곳에 도착하자 그들의 힘을 줄이느라고 혼자서 굿을 벌여 무아지경에 빠져 버렸고, 두 사람의 오의파는 고분들 사이에서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초치검을 찾아 다녔다. 그러나 갑자기 그들의 뒤에서 물리력에 의한 강타를 당하고 몸에 지닌 부적을 뜯긴 후 기억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저는 그 와중에도 잠시의 일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일본어로 지껄이는 소리가 들렸죠. 저는 원래 대학에서 일본사를 공부했었기 때문에 약간 알아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척후를 나가서 대술사(大術士)인 묘운(明雲)이 깨어났는지 보라 했지요.]


[대술사? 명운?]


박신부는 오의파의 한 명을 다시 새로운 눈길로 보았다. 비록 외모는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를 입고 있었지만, 대학에서 일본사를 전공했던 인텔리 였던 모양이었다. 박신부의 그같은 마음을 그 사람도 어떤 능력으로 알았는지, 슬며시 웃으며 대답을 했다.


[저희 오의파는 원래 거지와 각설이들에서 비롯된 유파입니다. 때문에 남의 마음을 알아내는 것과 잡귀를 물리치는 것에 강하죠.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릅니다. 지박령들... 그러나 절대 보통 잡귀가 아니에요!]


[아까 몸을 갖춘 군대라는 말을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죠?]


[놈들은 물리력을 쓸 수 있다는 겁니다. 묘운이 깨어났나 보라는 그 이후에 제가 어렴풋이 들은 말이 있는데, 묘운이 일어나야 우리들이 다 일어난다고...]


박신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묘운이 일어나야 일어난다고? 그렇다면 묘운이라는 자가 어떤 주술로 지박령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묘운이라는 자가 부리는 주술이 어떤 것이기에 그들이 모두 물리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말인가? 하나 둘도 아니고 오백이나 되는 지박령들이...
준후가 부적들을 무더기로 꺼내며 소리쳤다.


[신부님! 이 만다라진을 다시 응용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새로 진을 칠 여가가 없으니...]


박신부는 준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준후는 리매들을 시켜 아까 현암이 꺾어놓은 나무의 자리에 부러진 나무를 다시 세우게 했다. 리매들은 단순하여 준후의 말에 고분고분 잘 따르는 것 같았고 힘도 엄청 난 듯 했다. 준후와 리매들이 한참 작업을 하는 사이에 박신부는 다시 오의파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저는 그 초치검의 이야기가 제일 궁금합니다. 도대체 왜 초치검이 여기에 묻혀 있게 되었는지 말이죠. 그 초치검의 이야기에 대해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일본사를 전공하셨다면...]


[아... 그렇죠.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기는 쉬운일은 아닙니다... 우선, 일본에 내려왔던 초치검이라는 것은 분명 가짜입니다.]


[예? 과연... 그러면 고다이고 천황이 북조에게 내어준 삼종의 신기가 모두 모조였던 것이 확실하군요.]


[아니요. 그 이전에 이미...]


오의파의 그 사람의 눈빛은 진지했다.


[고다이고 천황 이전, 가마쿠라 막부가 설립될 때, 그러니 1180년대가 되겠죠. 그때 다이라 씨의 마지막 후계자 니이노마나(二位尼)가 싸움에 져서 8살 짜리 아이이던 안토쿠 천황을 안고 물에 뛰어 들어 자결했을 때, 삼종의 신기는 모두 가라앉았고, 거울과 목걸이는 건졌으나 초치검은 끝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예? 그렇다면 그 초치검이란 것은...]


[여기 나타난 초치검이 과연 가짜인지, 아니면 그 때 이후 물에서 건져낸 진짜 초치검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도대체 이야기가 얼마나 복잡하게 돌아가는지 박신부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박신부와 퇴마사 일행은 안기자의 전화를 받고 서울을 떠나기 이전에 분명 강한 영기를 투시해 냈고, 그 기운은 초치검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었다. 그런데 그 초치검이라는 것이 아예 가짜일수가 있다니? 도대체 무슨 곡절이 그렇게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인지 박신부로서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오의파의 사람은 다시 말을 이었다.


[다이라씨는 미나모토씨와의 대결에서 분명 패했습니다. 간몬해협(關門海峽)의 동쪽인 단노우라(壇浦)에서 500척의 군선 으로 미나모토씨의 요시쓰네의 700척 대군과 결전을 치렀던 일이 사서에 분명히...]


갑자기 준후의 외침이 들렸다.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 안전지대에서 적들과 대항해야 해요!]


준후의 외침에 세 사람은 준후가 있는 곳으로 뛰어 들었다. 셋이 뛰어 들자, 준후는 허공에 부적들을 던졌고, 자욱한 안개 같은 것이 그들의 앞을 막았다.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어요! 녀석들이 오고 있는 것 같은데...]


준후는 리매에게 손짓을 했고, 두 마리의 리매는 안개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의파의 두 사람은 땅바닥을 긁어 이상한 도형을 그리더니 각자 남과 북쪽을 향해 좌정하고 앉았다. 박신부도 성수 뿌리개와 부적을 꺼내어 들었으나 박신부의 머릿속에서는 계속 초치검의 이야기가 맴돌고 있었다.


안기자의 전화를 받고 준후가 영사를 행했다. 그 결과는 초치검이라는, 일본 천황의 신물이 거기 있다는 내용이었고, 안기자의 말에 의하면 우리 나라 각지에 숨어 지내던 주술사들이 대거 그 초치검을 얻기 위해 그리로 몰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이외의 것은 어떤 투시로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흑막을 친 듯, 아니면 어떤 주술의 탓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에 펼쳐진 구회 만다라 진... 이건 일본의 수법이었다.


진은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파괴되어 일본의 승려들이 와서 손을 보아 위력을 갖게 된 것은 분명했지만 하여간 이 진이 여기 펼쳐져 있었기에 일본 승려들이 진을 편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500구의 시체가 발견된 고분은 이 진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런! 거기에 뭔가 비밀이 있었겠구나! 너무 정신이 없다보니 그냥 영기만 느끼고 진 안으로 뛰어 들었었어!)


500구의 시체가 있는 고분이 아닌, 다른 곳에 진이 쳐져 있었다면, 그 진 속에는 뭔가 그 정도로 중요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건..


(초치검!)


그리고 오의파의 사람이 빙의 될 때 들었다는 말들... 묘운이 깨어났나 척후를 보내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묘운이 깨어나야 그들이 몸을 갖고 깨어난다고... 그렇다면 묘운이라는 자가 있는 곳은 분명 그 진의 안쪽, 그리고 초치검이 있는 곳도...


(낭패다! 저 진의 안쪽이 어쩌면 더 위험한 곳일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초치검... 오의파 사람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다이라씨와 미나모토씨의 싸움으로 삼종의 신기가 가라앉았고, 끝내 초치검을 건지지 못했다면 과연 여기 있는 초치검은 정말 초치검일까? 어떤 자는 그 검을 고다이고 천황의 검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먹장을 친 듯 불확실하게 투시될 정도로 강한 주술이 둘러싸고 있는 판에, 유독 초치검의 모습만 투시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속임수... 아아 이럴 수가... 그렇다면 초치검이 여기 있다는 것이 속임수였다는 말인가? 아니, 승희의 투시에 의하면 단군의 유물의 봉인을 풀려고 가지고 온 것이 초치검이라고 하던데... 아니었다는 말인가? 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일일까?)


박신부가 있는 힘을 다해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노호성이 들렸다.


[훠어이! 왜놈들은 물러가라! 나랏님의 땅이다!!!]


철기 옹이었다. 때를 같이 하여 준후가 쳐 놓은 안개 장벽의 너머로 기괴한 외침소리와 발자국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준후가 소리를 질렀다.


[놈들... 놈들이... 와요! 그런데 리매들은... 어째서...?]


그리고 보니 척후 격으로 준후가 보냈던 리매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오의파의 두 명은 긴장된 얼굴로 뭔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주변에 싸늘한 냉기가 돌며 뭔가 뒤에서부터 스스스 소리를 내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박신부는 일단 철기 옹을 불러 세웠다. 철기 옹은 줄이 끊어진 활과 이상하게 생긴 화살 하나를 들고 있었다.


[어르신! 어르신은 뭔가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아는 것이 있냐고?... 알지... 나는 많은 것을 안 다네!]


[저는 도대체 이 일들이 왜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도대체 초치검은 진짜입니까?]


철기 옹은 긴장된 얼굴로 박신부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움직이려 하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말 할 수 없네!!!]


[그러면, 이 일들, 단군의 유물은 정말 여기에 존재하는 것입니까?]


[자네, 그 일을 어떻게 알았나?]


[지금 사태는 급합니다.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아까의 일본 승려들 정도가 아녜요. 오백이 넘는 지박령의 무리가 몸을 가진 채 일어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철기 옹이 이를 악물었다.


[몸을 가지고... 몸을 가지고... 그건 그 스기노방 놈의 주술이야! 시체를 깨어나게 하는 주술! 놈은 이미 그 주술을 폈네!]


박신부는 경악의 눈으로 철기 옹을 쳐다 보았다. 시체를 깨어나게 하다니! 그렇다면 지금 오백의 지박령들은 단순히 영기만이 아니라 백골이 된 몸으로 일어나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말인가?


갑자기 준후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쳤다. 뭔가를 느낀 모양이었다.


[리매! 물러낫! 아아! 물러서!!!]


갑자기 안개 속에서 고함소리와 병장기 부딪히는 쇳소리가 들리며 미친 듯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발자국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고... 갑자기 안개를 뚫고 한 마리의 리매가 미친듯한 고함을 지르며 걸레꼴이 되어서 뛰어 나왔다. 귀신도 물질도 아닌 리매가 거의 반쯤은 난도질을 당해 버린 것이다. 준후가 비명을 지르자, 오의파의 두 사람이 기합을 넣었다. 아까부터 들리던 스스스... 소리가 더 커져서 박신부가 돌아보자, 사방에서 수 백을 헤아리는 뱀들이 몰려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윽! 이건 또 뭐야!]


철기옹이 소리쳤다.


[오의파의 뱀을 부리는 술수네! 아아... 그러나 그걸로 되겠는가!]


뱀들은 빠른 속도로 기어서 안개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저 편에서는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고함소리, 그리고 비명소리와 쿵쾅 거리는 발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박신부는 이를 악물었다.


[준후야! 안개를 거둬! 우리에게 되려 불리할 뿐이다!]


다친 리매는 준후의 앞에서 신음하는 듯 하다가 서서히 사라져 갔다. 준후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박신부를 돌아보다가 멍하니 주문을 외웠다. 안개가 걷혀가기 시작했다.


[으앗!]


[헉!]


[이럴 수가!!!]


안개 너머로 서서히 저 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모두는 기겁을 했다. 군대... 그것은 완연히 군대였다. 수백을 헤아리는 군대는 질서정연한 사각형의 방진을 이룬 채로 녹슨 병장기를 들고 저벅저벅 전진해 오고 있었고, 선두의 창병들은 달려드는 뱀들을 찔러 몰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백골이었다. 백골이 된 몸에 누더기와 녹슨 갑옷조각과 투구를 얹은, 죽은 자들의 군단이었다. 갑자기 안개가 걷히자, 중간에 선 역시 해골인 말을 탄 장수가 뼈 뿐인 손을 치켜 들자 대열은 정지했다.


박신부와 오의파, 준후와 철기 옹까지도 눈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준후가 더듬거렸다.


[지... 지옥이야... 이런 일이 어찌...]


철기 옹이 소리를 질렀다.


[왜놈들! 죽어서까지 우리 땅을 침노하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는 놈들!]


해골 장수의 신호에 따라 대열이 정비되자, 갑자기 방패를 든 앞 줄의 해골 병사들 뒤에서 썩어빠진 활을 든 궁수들이 우르르 나와 제 2열에 섰다. 오의파의 두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어어어! 활! 놈들이 활을!]


[아니, 700년이나 썩은 활이 당겨진단 말인가!!]


그러나 해골의 궁수들은 시위를 메기고 썩어빠진 화살을 일제히 발사하는 것이었다. 박신부는 순간적으로 기도력을 발휘하여 오오라막을 펼쳤다. 오오라막은 순식간에 일행 모두의 주위를 감쌌다.


[모두 조심해욧!]


화살은 거짓이 아니었다. 50여발에 이른 화살이 박신부의 오오라막에 충돌하여 우다다다다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나갔고, 애써 화살을 막아내던 박신부는 한 발 한 발의 화살이 오오라에 적중될 때마다 조금씩 몸을 흠칫거리며 뒤로 밀려갔다. 50여발의 화살을 다 막아내면서 박신부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뒤로 3미터 이상 땅에 자국을 남기며 밀려 나갔다.


[신부님!]


준후가 소리를 치는데 마지막 화살까지 받아낸 박신부가 몸을 떨더니 왈칵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모두... 모두 도망쳐! 저... 저건 영력과 물리력이 둘 다 깃든...]


준후가 씩씩 거리면서 해골의 부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해골 궁수들은 제 이의 화살을 시위에 메기고 있었다. 준후는 앙칼진 소리를 지르며 양 손을 미친 듯 휘둘렀다.


[야아아아아앗---!!!]


준후의 왼손에서는 인드라의 뇌전이, 오른 손에서는 부동명왕의 멸겁화가 물줄기 처럼뻗어 나갔다. 앞 쪽의 궁수 하나가 뇌전을 맞고 마치 항아리가 깨지는 것처럼 폭파 되어 버렸고, 두 명의 궁수는 몸이 불덩어리가 되어 땅에 뒹굴며 고약한 냄새를 왈칵 뿜어냈다. 다시 준후가 불과 번개를 내 쏘는데 뒷쪽에 있는 해골 장수가 손을 쳐 들었다. 와르르 하면서 이번에는 널찍한 방패를 든 해골 병사들이 몰려 나와 앞을 막았다. 준후가 내 쏜 불길은 방패에 맞고 해골 병사들을 뒤로 몇 걸음 밀려나게 했으나 그 뿐이었다. 준후는 울듯한 표정이 되었다.


[이...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다시 방패를 든 병사들이 고개를 숙이자 그 사이사이로 궁수들이 시위를 메긴 활을 내쏘았다. 오의파와 준후, 박신부와 철기옹마저도 벌떼같이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 비명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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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땅에서 솟구쳐 올라온 백골들은 한 데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 중앙에는 먼지가 가득 끼인 초치검을 안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놈들의 얼굴은 만신창이로 썩어 해골에 흙먼지만이 가득 끼어 있는 상태였으나, 그 퀭하니 뚫린 눈구멍 속에서 무언가 불타오르는 적의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현암은 이제 막 모험을 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 주기선생 상준의 속셈이 어떤 것인지 불분명하기는 했지만, 지금 십여 구에 이르는 썩은 백골들이 땅에서 일어나는 판에 사람들끼리 싸울 수는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현암과 상준, 근호를 제외하고서 실질적으로 이 괴물들과 맞붙어 싸울 수 있을만한 사람은 없었다. 지연보살은 치유 능력만을 가진 사람이었고, 승희도 변변한 힘은 쓰지 못했다. 승현 사미도 너무 어렸고, 그 이외의 사람들은 독에 중독되거나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판이었다.


현암은 침착 하려고 애쓰면서 상준을 쳐다 보았다. 상준의 눈매도 떨리는 듯 했다. 현암이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주기선생! 우리끼리의 싸움은 좀 뒤로 미루자. 일단 저것들부터 물리쳐야 할 것 같아. 찬성하나?]


[너... 너는...]


[지금은 일단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너와 나를 포함해서... 남자로서의 약속이다. 어떤가?]


상준은 뭐라 잘 말을 잇지 못하는 듯 하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좋다. 나도 살고 봐야지. 초치검의 보상금이 아무리...]


상준은 말을 하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현암은 날카로운 눈으로 상준을 잠시 보았으나 상준에게 더 묻지는 않고 입을 다물었다. 지금 상준을 다그칠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마디, 위협을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싫어한다. 그러나 배반자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현암의 날카로운 눈 빛을 받자 상준은 되려 화난 듯이 소리를 쳤다.


[남아일언이 중천금이다! 잔소리 말고 어떻게 저 괴물들과 상대해야 할지나 생각해봐!]


현암은 스기노방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고 있는 근호를 불렀다. 그리고 승희에게 말했다.


[우리가 잠시는 버틸 수 있겠지만, 모두가 사느냐 죽느냐는 너에게 달렸어. 너의 힘을 모아서 지연보살님에게 실어드려라. 사람들을 일단 모두 낫게 해야해! 최선을 다해서! 알았지?]


[현암군! 저... 해골바가지들... 그냥 박살을 내면...]


현암이 입술을 물었다.


[붙어 봐야 아는 거야. 그러나... 보통이 아닌 녀석일 것 같아. 그러니 나에게 힘을 넣어 줄 생각은 말고 사람들을 빨리 깨우는데 최선을 다해! 알았지!]


승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연보살에게로 달려갔다. 현암은 근호에게 눈짓을 했고 근호도 겁먹은 듯 하기는 했지만 용기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두 개의 단봉을 꺼냈다. 상준도 찢어진 기 하나를 던져 버리고 남아있던 용신의 기를 고쳐 잡았다. 그러나 아직 등에는 한 개의 기가 남아있었다.


이제 백골들은 둥근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썩은 장검을 든 두 마리의 해골이 칼을 땅에 내려치자 녹이 와스스 부서지며 칼이 흰 색을 드러냈다. 긴 낫같이 생긴 구겸창 같은 무기를 든 두 마리도 마찬가지의 행동을 취했다. 현암은 본능적으로 그들이 곧 덤벼들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선수다! 공격!]


현암이 소리를 치며 월향을 날리자 주기선생도 깃발을 휘둘러 불길을 뿜어냈다. 근호는 단봉을 이상한 수법으로 던져냈다. 월향검이 귀곡성을 울리면서 날아가고, 단봉 두 개가 공중을 윙윙거리며 돌면서 날아가는 뒤를 주기선생의 불길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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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희는 지나가는 길에 땅에 뒹굴고 있던 승현사미를 안고 지연보살에게로 달음질 쳤다. 그곳에서는 홍녀가 자영의 다그침에 못 이겨 약을 고르고 있었다. 갑자기 홍녀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몰라요!]


[아니, 해약을 모르다니! 그게 무슨 말이 예요?]


[도운 상이 쓴 게 무슨 약인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저는 약학에 능통하지 못하다구요! 정말이에요! 이 약들 중 몇몇은 알지만!]


자영이 어쩔 줄을 몰라하며 소리쳤다.


[정말이에요? 그러면... 그러면...]


지연보살이 홍녀에게 끼여들어 물었다.


[그러면 홍녀님이 아시는 약은? 그러니 해약이 아닌 것을 일단 골라내어 보세요.]


홍녀는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하면서 몇몇의 약들을 쓸어내었다. 그러자 색깔이 각각 다른 다섯 가지의 약이 남았다. 약들은 각각 여섯 개씩이 있었다. 다가온 안기자와 손기자도 망연한 눈으로 그 약들을 바라보았다. 지연보살이 입을 열었다.


[홍녀님... 홍녀님은 일본 사람이지요?]


홍녀는 겁먹은 듯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지요?]


이번에는 홍녀가 망연히 지연보살을 쳐다 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망연히 지연보살의 땀에 젖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연보살은 아직도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으나, 그 표정은 온화했다.


[그러면 귀신보다는 사람을 도와주세요... 지금 싸우는 사람들을...]


홍녀의 눈이 지연보살의 눈과 마주쳤다. 지연보살의 좀 우둔한 것도 같은 얼굴... 그러나 그 눈만은 바다같이 깊었다. 홍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자루만 남은 구마열화검을 손에 쥐고 몸을 일으켰다.


자영은 지연보살을 쳐다보았다. 지연보살은 다섯 가지의 약을 놓고 뭔가 생각하고 있었다. 문득 손기자가 눈을 돌리니, 지연보살의 손에 도운의 슈리켄이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손기자는 순간적으로 사태를 짐작해 내었다.


[보살님! 그러면 보살님은... 독을 직접 실험해서 약을 알아내려고...]


지연보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막 재빨리 슈리켄으로 상처를 내려는데 손기자가 와락 지연보살의 손목을 잡았다.


[안됩니다! 안돼요!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지연보살은 고개를 저었다. 손기자는 소리를 쳤다.


[괜찮습니다! 약은 겨우 다섯 가지에요! 네 번 실험 하면 분명 진짜 약이 무언지 알 수 있다구요! 그 다음에 제게 해약을 한 알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지연보살이 한 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이 다섯 가지의 약 중에 또 독약이 있으면 어쩔 셈이죠?]


[그... 그것은...]


[그러니 제가 해야 해요. 저는 해독을 시킬 수 있을 겁니다.]


[아닙니다! 해독을 시킬 수 있다면 저를 해독시켜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아아...]


자영과 안기자, 승희와 승현사미는 다만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연보살이 달래듯, 그러나 빠른 속도로 말했다.


[생각해 보세요. 남을 해독하는 것보다 제 몸을 해독하기가 훨씬 쉬워요. 그러니...]


[아녜요!]


승희가 외쳤다.


[자기가 중독된 상태에서 어찌 자기 몸을 스스로 치료하기가 쉽겠어요? 지연보살님은 아까 한 번의 해독에도 많은 힘을 쓰셨어요! 그러니 해독할 자신이 없으신 거죠? 그래서 스스로를 희생할 생각을...]


일동의 얼굴이 하얗게 상기 되었다. 승희의 말을 듣고 보니 지연보살은 해독에 자신이 없는 것이 분명했고 스스로를 희생하려는 것이었다. 손기자가 와락 소리를 지르더니 갑자기 재빠르게 지연보살이 들고 있던 슈리켄에 손을 찔렀다.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 미처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손기자는 씨익 웃으며 알약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안기자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뭐... 뭐하는 거야? 엉? 미쳤어!!]


손기자는 알약을 한 번 쳐다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마 독기운이 퍼지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내가 미쳤다면 좋아. 미친놈이 먼저 가야지... 하하]


손기자가 알약을 삼켰다. 지연보살을 포함한 모두는 긴장된 얼굴로 손기자를 쳐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여겨졌다. 갑자기 손기자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더니 코에서 두줄기의 피가 왈칵 뿜어져 나왔다. 자영이 비명을 질렀다.


[으악!!! 손기자!!!]


손기자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억지로 미소를 짓는 듯 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금방 이라도 넘어질 듯, 휘청거리고 있었다. 안기자가 소리를 쳤다.


[바보! 이 멍청잇!!!!]


귀곡성을 울리며 날아간 월향검을 한 해골이 구겸창을 휘둘러 막으려 했다. 그러나 월향검은 제비처럼 진로를 바꾸어 옆으로 돌면서 해골의 목을 따버렸다. 근호의 단봉도 한 개는 칼로 차단당했으나 도리어 단봉은 떨어지지 않고 빙빙 돌면서 다시 근호의 손으로 돌아왔고, 하나는 한 놈의 앙상한 팔뚝에 맞아 팔을 부셔버렸다. 이어 주기선생의 불길이 휘몰아치자 또 다른 하나의 백골이 불에 휩싸여 버렸다.


근호가 소리쳤다.


[하하하! 놈들아! 맛이 어떠냐!]


근호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며 단봉을 다시 잡고 앞으로 몇 걸음을 나아갔다. 현암이 불안함을 느끼고 제지하려 했으나 조금 늦었다.


[반자이(만세)-----!]


몸이 불로 뒤덮인 백골이 마치 총알같이 앞으로 달려나와 근호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근호는 놀라서 물러서려 했으나 놈의 뼈만 남은 팔이 근호의 허리를 감자 근호의 몸에도 삽시간에 불이 옮겨 붙었다.


[아니! 저런!]


현암이 당황하여 월향검을 재차 날렸다. 날아간 월향검은 근호를 안은 백골의 대가리를 날려버렸으나 그래도 놈은 근호를 놓지 않았다.


[으아아아악!!!!]


근호는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넘어뜨려 백골을 안은 채 데굴데굴 굴렀다. 불에 타고 있던 백골은 바닥에 넘어지면서 그대로 바스라져 없어졌으나 근호의 옷은 너덜너덜하게 되었고, 심한 화상을 입은 듯 했다. 현암이 잠시 넋 나간 듯 그 참혹한 모습을 보고 있는데 상준이 소리를 지르며 불길을 내쏘았다.


[정신 차렷!]


현암이 다시 월향검을 잡으며 몸을 돌리자 막 틈을 노려 뛰어나오던, 근호의 단봉에 맞아 외팔이 된 해골이 상준의 일격에 불덩이가 되어 쓰러지는 모습이 들어왔다. 뒤쪽에 있던 여섯 놈의 백골들은 끼어들려하지 않고 한데 모여 이상한 자세들을 취하고 있었다. 그 중앙에 있는 놈은 초치검을 검집째 높이 쳐들었다.


막 월향이 다시 한 놈의 백골을 꿰뚫자 주기선생의 불길이 놈을 태워버렸다. 그리고 현암과 상준이 막 달려 나가려는데, 갑자기 음산한 바람이 사방에서 일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게!]


상준이 놀라 고함을 치는데 갑자기 여섯 명의 백골이 모여 서 있는 곳에 시커먼 안개 같은 것이 우르르르 모여들고 있었다. 현암마저도 방어자세를 취하며 주춤하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현암상!!! 조심해요!! 그건!!!]


홍녀였다. 막 현암이 태극패를 꺼내려는데 백골들에 모였던 안개가 거대한 짐승의 모양을 이루더니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포효하며 현암과 상준에게로 덮쳐 들었다.


10. 지박령 전쟁 2



막 쓰러져 가는 손기자를 자영이 부축해 안았고 안기자는 눈을 붉혔다. 지연보살은 이제 막 입술을 깨물면서 슈리켄에 손을 찌르려 하는 참이었는데 승희가 슈리켄을 빼앗아버렸다. 승현사미가 소리 쳤다.


[잠깐! 잠깐!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잠깐만!]


지연보살과 승희가 승현사미를 쳐다보았다. 승현사미는 눈을 반짝거리면서 알약들을 가리켰다.


[저...저는 의학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약에 대한 건 좀 알아요. 약은 쓴 것 아닌가요?]


너무 허무맹랑한 말이었다. 일동은 모두 멍하니 승현사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승현사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입에 쓴 약은 누구나 싫어하는 법, 누가 입에 쓴 약을 먹으라고 한다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뱉어낼 거에요. 그러니...]


승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맞아! 그러니 독약은 쓴 맛을 지니고 있지 않을지도 몰라. 누구에게 복용시키려면 약이 잘 넘어가야 할 테지.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상한 맛이 느껴지지 않게 했을 거야. 그러나 만약 입에 쓰게 느껴지는 약이 있다면... 그것은 뭔가 이로운 필요가 있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일지도... 보살님! 약들을 더 추려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승희는 재빨리 약들을 집어 들어 혀에 대 보았다. 두 가지는 단 맛이 났다. 승희는 약이 혀에 닿기가 무섭게 퉤하고 침을 뱉어 버렸다.


[이 두 가지는 단 맛이에요! 의심스러우니 일단 제껴 놓고...]


다른 한 가지의 약은 좀 의아한 맛이었고 한 가지의 맛은 정말 속이 뒤틀려 버릴 것처럼 쓴 맛이었다. 승현사미가 저절로 찌푸려지는 승희의 얼굴을 보고는 무릎을 쳤다.


[와! 저거다!]


[잠깐!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 그러니...]


[아녜요! 저렇게 쓴 맛을 지닌 약, 만약 독약이라면 누가 뱉어내지 않고 삼킬 수 있겠어요!]


승현사미는 종알거리면서 승희가 쓰다고 했던 색깔의 약 한 알을 집어 쓰러져 있던 다문화상의 입에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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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앗!!]


[앗!]


새카맣게 날아오는 화살들을 보고 거의 체념했던 박신부와 준후, 오의파와 철기옹의 앞을 무언가 희뿌연 것이 가로 막았다. 날아오던 화살들은 그 희뿌연 것에 맞아 반 이상은 양 옆으로 흩어지고 반 정도는 그 희뿌연 것에 후두둑 박혔다.


[리매야!]


그것은 준후가 불러 내었던 리매였다. 아까 여기까지 도망 왔다가 중상을 입었는지 사라져 버린 리매가 아니고 돌아오지 않고 있었던 다른 리매인 듯 했다. 리매는 하늘을 향해 어헝~ 하면서 고함을 치며 몸을 돌렸다. 리매는 한쪽 팔이 뭔가에 의해 잘려져 있었고, 몸이 많이 상한 듯, 기가 흩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수십 개의 화살을 몸에 맞고도 리매는 아직 쓰러지지 않고 있었다. 준후가 소리를 쳤다.


[어서들 피해야 해요! 리매가 어서 달아나라고 하고 있어요! 어서요!]


오의파의 두 사람이 후다닥 박신부를 부축해서 세웠다. 그러나 박신부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면서 두 사람을 밀어내고 있었다. 철기옹이 갑자기 하늘을 향해 엄청나게 큰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와하하하하하하하...]


사방이 찌렁찌렁 울리는 듯한, 그야말로 엄청난 소리였다. 앞에 도열했던 해골궁수들의 몸이 마구 떨리는 듯 했고, 방패를 든 놈들도 그 웃음의 기운에 압도 된 듯, 방패로 도열된 진이 흔들리고 있었다. 갑자기 때를 같이하여, 저만치 먼 곳에서 부터 늙은 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불쌍한 망제들아 천고에 맺혔느냐 만고에 맺혔느냐. 천고에 맺혔으면 천고에 풀 것이고 만고에 맺혔으면 만고에 풀 것인데...]


철기옹이 웃음을 잠시 멈추고 웃음을 지었다. 그의 입에서 반가운 느낌의 말이 터져 나왔다.


[도지 그 할망구다! 이제 좀 대적해 볼 수 있을게야!]


그러면서 철기옹은 땅에 떨어져 있던 덩굴을 하나 주워 올렸다.


준후는 일단 리매에게 염을 발했다. 그리고 허공에 손가락으로 이상한 도형을 그리니 갑자기 리매가 힘을 얻은 듯, 어깨를 쫙 폈다. 그러자 리매의 몸에 박혔던 화살들이 우르르 빠져 나가서 땅에 떨어지며 먼지가 되어서 바스라져 없어져 갔다. 준후가 손뼉을 쳤다.


[와! 된다! 된다! 리매를 살릴 수 있구나! 리매야! 저 못된 것들을 물리쳐 버려라!]


리매가 포효하면서 앞으로 내달릴 차비를 했다. 아마 아까 없어진 것이 암놈이고 이 놈은 숫놈인듯, 이 리매는 덩치도 컸고 힘도 더 센 듯 했다. 준후는 뒤에서 리매를 지원하여 번개를 몇 방 내 쏘려는데 박신부가 소리를 쳤다.


[준후야! 잠깐!]


[왜요?]


[네가 쏘는 번개는 방패에 막혀서 별 효과가 없어! 너 리매의 무등을 타고 나가서 싸워 보아라! 나도 여기 오의파 친구들과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준후는 박신부의 말을 듣고 리매를 손짓해 불러서 무등을 탔다. 그러는 중에 계속 철기옹은 광소를 터뜨리고, 도지의 망자를 내보내는 가락도 점점 다가오자 모두 죽은 망자들인 해골 병사들은 점점 우왕좌왕하고 있는 참이었다. 준후가 엄청난 덩치의 리매의 무등을 타자 말을 탄 것보다 더 높이 위로 솟았고, 방패 너머에 웅크려서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아주 똑똑히 보였다. 오의파의 두 사람은 뭘 하려는 건지 주변에서 끝이 뾰족한 풀잎들을 모으고 있었고, 철기옹은 계속 광소를 터뜨리면서 덩굴 가닥으로 일단 끊어진 활 시위를 잇고 있었다. 오의파의 한 사람이 풀 잎을 한 움큼 들고 허공에 던지자, 다른 한 사람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우리의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닌 게 없는법! 우리 땅을 범하는 너희 왜놈들, 산천 초목에까지 깃든 이 땅의 정기가 어떤 것인지 한 번 보아라!]


오의파의 다른 사람이 품에서 부채를 좍 소리가 나게 꺼내어 부치자, 풀잎들이 허공에 날아오르더니 다시 화살처럼 해골 병사들을 향해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박신부는 눈을 크게 떴다.


(오! 저런! 풀잎을 화살처럼 사용하다니!)


해골 병사들의 일각에 풀잎 화살들이 쏟아지자 혼란이 일어났다. 물론 풀잎이 화살 만큼 강한 위력을 내지는 못했으나, 아무튼 해골 병사들의 몸에 풀잎들은 군데군데에 박혀 들어갔고, 놈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것 같았다. 방패를 든 병사들과 궁수들의 몇몇이 몸에 풀잎을 여러개 박은 채 괴이한 소리를 지르며 땅에 뒹굴자 진의 한 귀퉁이가 와해 되기 시작했다. 준후가 마치 말을 탄 장수가 된 듯한 기분에 소리를 쳤다.


[나가자!]


리매가 길게 울면서 앞으로 달려나가자 그 기세에 땅이 쿵쿵 울리는 듯 했다. 그 무등을 탄 준후가 신이 나서 사방에 제석천의 뇌전과 멸겁화의 불길을 마구 뿌려대자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리 떨어지는 불꽃이며 번개를 맞은 해골 병사들의 몸은 불길에 휩싸이거나 그대로 가루가 돼 버리기도 했다. 박신부가 오의파 사람들에게 외쳤다.


[풀잎의 위력이 약하네! 내 성수를 뿌려보자구!]


박신부가 허공에 솟구쳐 올라가는 풀잎들에 뿌리개를 휘둘러서 성수를 튕겨내자 풀잎들은 이슬처럼 성수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성수를 머금은 풀잎들이 다시 해골 병사들에게 내려 꽂히자, 아까 처럼 그냥 타격만 주는 게 아니라 숫제 놈들의 몸이 녹아 내리기 시작했다.


[좋다! 잘한다!]


철기옹도 소리를 치면서 덩굴로 만든 급조한 활이나마 튕겨대기 시작했다. 제 일격을 맞자 진의 일각에 버텨 두었던 방패 하나가 산산이 조각 나 버리고 그 사이로 제 이, 제 삼의 활을 튕기자 한 놈씩의 해골 병사들이 박살이 나 버리고 있었다. 준후를 태운 리매도 막 풀잎의 소나기와 철기옹의 지원 사격을 받으면서 막 무너져 가는 진의 일각에 도달했다. 몇몇의 해골 병사들은 흉폭한 리매의 기세에 질려 도망가려다가 준후의 불을 맞고 부서져 가면서 쓰러져 갔다. 리매의 몸에 다시 몇 개의 화살이 꽂혔으나, 리매는 그런 것 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앞에 서있던 해골 병사 한 놈의 팔뚝을 잡아 번쩍 들더니 그 놈을 그대로 허공에 휘둘러 대면서 돌진 해 나갔다. 해골 병사 한 놈을 통째로 휘두르는 통에 몇 몇 병사들이 그 놈과 부딪혀 와지끈 하면서 그대로 박살이 나 버렸고, 어느덧 재수없게 리매의 손에 잡혔던 병사는 팔목 하나만 남기고 콩가루가 되어 버렸다. 흉폭하게 날뛰는 리매의 주변에는 이제 너저분한 뼈다귀들만 널렸을 뿐, 나머지 해골 병사들은 뒤로 도망쳐가기 시작했다.


[하하핫! 어딜 도망가느냐!]


준후가 소리치면서 아낌없이 불을 내 쏘는데, 갑자기 긴 창 한자루가 날아 들어서 그대로 리매의 아랫배에 박혔다. 날뛰던 리매의 몸이 휘청 했다.


[어엇!]


리매가 쓰러지자 준후의 몸도 땅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게 되었다. 아랫배에 정통으로 긴 창을 맞은 리매는 고함을 지르면서 서서히 사라져갔고, 박신부와 오의파의 두 사람은 또다시 갑작스레 찾아든 상황의 변화에 잠시 하던 일을 멈추었다.


다각다각...


다그닥 다그닥...


해골의 말을 탄 해골 장수였다. 뒤에 십여 기의 해골 기병을 거느린 해골 장수가 서서히 등에서 엄청나게 긴 장검을 빼들고 있었다. 그리고 막 돌격할 채비를 하는 듯 했다. 철기옹이 뒤에서 소리를 쳤다.


[저 놈이 두목일거야! 모두들 조심하게!]


홍녀가 던진 구마열화검은 시커먼 짐승 모양의 형체의 몸을 뚫고 지나갔고, 그 놈은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현암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월향을 날렸다. 월향은 귀곡성을 내면서 짐승 모양의 형체의 양 미간을 향해 날아 들어 미간 부위를 꿰뚫어 버렸다.


[캬아아아악!!!]


짐승의 형체는 서서히 몸을 떨면서 사라져 갔다. 막 달려오는 홍녀를 보고 현암이 고맙다는 눈짓을 했다. 상준은 알기 힘든 눈빛으로 현암의 손으로 돌아온 월향검을 쳐다보고 있었다. 현암은 이번에 올 때에는 왼손 손목에 검집을 묶어서 언제든지 오른 손으로 검을 쉽게 뺄 수 있게 했고, 또 던졌던 월향을 다시 받을 때에도 왼손 손목만 내밀면 바로 월향이 날아 자기 집(?)으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그러니 퍽 편리했고, 남들이 보기에도 멋져서 이중의 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홍녀는 현암을 향해 다시 외쳤다.


[조심해요! 저 건 밀교의 술수에요!]


홍녀가 말을 잇는 동안 이제 초치검을 손에 든 자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고, 나머지 다섯의 해골들은 뒤에 도열하여 뭔가를 염원하듯 음산한 독경소리 같은 것을 내고 있었다.


상준은 잠시 몸을 흠칫하면서 몸에 불이 붙었던 현현파의 근호에게 힐기보법을 이용하여 달려갔다. 근호는 몸을 잘 움직이지 못했지만,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는 듯이 보였다. 상준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자네는 나와 대적했었지만, 자네 정도는 내 상대가 되지 않으니 도와주겠네.]


근호는 눈살을 찌푸렸으나 대꾸는 하지 않았다. 상준은 현암에게 소리치고는 근호를 부축하여 힐기보법으로 승희가 있는 쪽으로 달려 나갔다.


[잠시만 이 자리를 부탁하네!]


현암은 돌아보지도 않고 앞으로 나서고 있는 자만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손에 들려있는 초치검... 현암이 다시 월향검을 빼들고 이번에는 기공력을 주입하자 파란 검기가 월향에 맺혀갔다. 갑자기 그 자가 검을 자신의 앞에 세우자, 주변에 미친 바람이 불면서 나뭇잎이며 잡동사니 들이 마구 휘날렸다. 그러더니 놈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둘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다시 셋... 넷 으로 늘어났다. 홍녀가 다시 구마열화검을 주워들고 소리쳤다.


[저... 저건 밀교의 수법 중에서도 가장 고단계라고 하는 방법들... 저 자는 틀림없이 보통의 고수가 아닌... 아아... 대 선사님!!]


현암은 잠시 홍녀의 얼굴을 보았다. 홍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오!]


[아아... 저... 저건... 난... 묘운(明雲)... 묘운 대선사...]


[묘운 대선사라니? 저 해골의 이름이오?]


홍녀는 갑자기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의 빛을 얼굴에 띄면서 악을 썼다.


[아아아... 현암상, 어서, 어서 물러서세요! 어서욧!]


[물러서다니! 그럴 수 없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현암이 중얼대는데 이제 여덟 개의 분신(分身)으로 갈라진 놈의 모습이 현암의 팔방을 에워싸고 달려 들었다. 현암은 막 파사신검 중의 한 검초를 써서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면서 공격에 대응할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홍녀에게 외쳤다.


[홍녀님! 나 혼자 충분하니 홍녀님부터 어서 피하...]


갑자기 현암은 옆구리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현암은 간신히 몸을 수습하여 중심을 잡았다. 왼손을 대보니 옆구리에서 선혈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얼굴을 돌리는 현암의 눈에 얼굴이 그야말로 새하얗게 질려서 피에 젖은 구마열화검을 들고 있는 홍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홍녀의 얼굴은 현암보다도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현암은 고통보다도 놀라움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아니... 홍녀님... 왜...???]


[혀... 현암상... 나... 나는...]


미처 말을 잇지 못하는 홍녀의 뒤, 그리고 현암의 사면팔방으로 묘운의 분신들이 몸을 날려 공격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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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성공이다!]


승현사미가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는 중에 다문화상은 다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승희와 지연보살, 그리고 자영은 너무 기쁜 나머지 박수를 치면서 재빨리 해독약을 가지고 지국, 증장 화상과 손기자에게 약을 복용시켰다. 승현사미는 남은 두 알의 약 중 한 알을 가지고 쓰러져 있는 병수에게로 달려가면서 지연보살에게 외쳤다.


[보살님! 광목스님을 구해주세요! 저 일본 노승에게 맞아...]


[알았다... 동자야...]


자영은 나머지 한 알의 해독약을 들고 도운의 시커멓게 변한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승희가 말했다.


[복용시키세요...]


[이 악당에게요? 저쪽에는 또 중독 당한 우리편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저쪽의 중독된 사람들은 스기노방의 독에 의해 중독된 거에요. 일단 악인이어도 이대로 죽게 할 수는 없어요...]


[...]


[너무 많이 듣고,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야기 이겠지만... 그래도 사람의 목숨은 소중한 거에요...]


승희는 말없이 자영을 쳐다 보았다. 자영은 머뭇거리다가 한 숨을 쉬고는 마지막 한 알의 해독약을 도운의 입에 밀어 넣었다. 그 때, 현암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승희가 돌아보니, 주기선생은 몸이 시커멓게 탄 근호를 안고 이쪽으로 달려오다가 막 뒤를 돌아보고 있었고, 현암은 비틀거리면서 서 있는데 백골의 분신들이 막 팔방에서 현암에게 덮쳐들고 있었다.


(앗! 현암군이 다쳤나? 저런!!!)


승희는 순간적으로 눈을 감고 정신을 모았다. 현암의 위기상황을 보고 그냥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승희가 현암에게 힘을 보내자, 부상을 당해 주춤거리던 현암은 다시 순간적으로 자세를 가다 듬고 오른손에 힘을 가하여 월향검을 돌리며 떨쳐 내었다. 월향은 귀곡성을 울리면서 무서운 속도로 파르르륵 회전하면서 현암의 몸 주위에 바싹 붙어 한 바퀴를 돌면서 해골들의 공격을 차단했다.


챙챙챙...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면서 묘운의 분신들이 가하던 공격이 월향검에 의해 차단당해졌으나 미처 현암의 배후로 덮치던 하나의 분신에까지 미처 도달하지는 못했다. 순간, 퍽! 하면서 불기운이 솟으며 미처 현암이 막아내지 못했던 한 분신의 공격마저도 불기운에 의해 차단당했다. 바로 홍녀였다.


현암은 다시 월향검을 손에 쥐고는 홍녀를 돌아보았다. 홍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듯, 아니 극도의 번민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현암상... 나... 나는...]


현암은 홍녀의 사정을 대강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분신을 홍녀는 묘운 대선사라고 중얼거렸었다. 그렇다면 홍녀의 입장에서 묘운은 까마득한 사조(師祖)이었을 것이고 묘운의 영은 강압적으로 홍녀에게 현암을 없애라는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 분명했고, 홍녀는 엉겁결에 현암에게 상처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행동을 했던 자신을 후회하는 듯이 보였다.


[말할 필요 없소... 나는 괜찮으니 물러서요...]


괜찮기는 커녕 현암은 통증이 너무 심해 금방 이라도 쓰러지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그의 특유의 근성을 발휘하여 이를 악물고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홍녀의 눈이 피를 분수같이 뿜는 현암의 옆구리를 향했고, 홍녀의 눈빛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공격을 차단당한 묘운의 분신들은 다시 현암과 홍녀의 주위를 둘러싸고 섰다. 포악한 기세가 더 흉흉해졌고, 여덟 분신들의 입에서 호통소리가 터져 나왔다. 홍녀는 그야말로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그 호통소리에 대항하여 다시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현암은 이 상태대로는 얼마 버티기가 어렵다고 느껴졌다.


(묘운 대선사의 분신들... 저것들은 분명 허상이다. 허상... 그렇다면...)


갑자기 홍녀가 비명을 울리면서 구마열화검을 떨어뜨렸다. 묘운이 뭔가 술수를 부려서 금제를 발동시키려 하는 것 같았다. 홍녀를 무력화 시킨 후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 같았다. 홍녀는 묘운과 같은 밀교의 수법을 익힌 인물이었고, 묘운은 대선사라고 칭해졌으니 만큼 홍녀에게 무슨 수를 부릴 수 있을 만도 했다.
현암은 도박을 하기로 했다. 일단 저렇게 많은 수의 분신들과 상대한다는 것은 부상을 당한 몸으로는 무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고, 일단 홍녀마저도 위험해 지는 것이 분명했다. 속전속결!


(부동심결!!!)


현암은 월향검을 하늘로 떨쳐내고는 양손을 마주 쥐고 단전에 힘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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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철기옹이 달려나가면서 해골의 장수가 던진 창을 주웠고, 박신부는 쓰러진 준후를 안아 들었다. 해골 장수는 무서운 기세로 짓쳐 들어오고 있었다. 뒤에서 오의파의 두 사람이 다시 풀잎의 화살을 날렸으나 장수의 갑옷을 뚫지 못하고 모두 튕겨져 나갔다. 철기옹이 다시 몸에 신을 강신 시켰는지 창을 공중에 크게 휘둘렀다. 박신부는 준후를 안은 채 오오라력을 발동하여 철기옹의 앞을 방어 했다.


[야아아앗!!!]


막 철기옹의 창이 휘둘러지자 해골의 장수는 장검으로 창을 받아 넘겼다. 이 합, 삼 합... 철기옹과 해골 장수가 맞붙어 싸우는 중에도 박신부는 계속 오오라력을 발하여 철기옹의 방패가 되어주고 있었다.


박신부의 품에서 준후가 말했다.


[신부님... 저 자는... 지금 자신의 성명을 밝히고 있어요.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아들 마사토키(正時)라고... 누군지 아세요?]


[글쎄다. 음... 가만... 저 장수가 지금 일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냐?]


[그냥 뜻으로만 전달되고 있어요. 들을 수 있어요...]


[그러면 저 장수에게 일단 싸움을 중지해 달라고 전해 줄 수 있니? 잠시... 그러니까 잠시 휴전을 하자고 말야...]


준후는 눈을 몇 번 깜박거리더니 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는 듯 했다. 그러자 뒤에서 말을 돌려 재차 공격하려던 해골장수가 주춤하면서 말을 멈추었다. 철기옹도 대강 준후와 해골 장수 마사토키 사이의 말을 알아 들었는지 창을 곧추 세웠다. 준후가 다시 중얼거렸다.


[모두 길을 비키기만 하면, 죽이지는 않겠대요. 자기들은 급히 묘운 대선사와 만나야 한 대요.]


[묘운 대선사? 그리고 길을 비켜 달라고?]


[자기들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군요. 수백년 동안 기다려 왔대요!]


박신부는 긴장했다. 드디어 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낼 때가 된 것 같았다.


[왜 그들은 여기에 있었지? 어째서 이렇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준후가 다시 정신을 집중하다가 놀라움에 입을 벌렸다. 준후의 음성이 떨리는 듯, 잘 말을 하지 못했다. 무슨 광경을 투시하여 본 듯 했다. 박신부는 자신도 그 광경을 보기 위하여 준후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해골 장수는 울분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700년이나 지난 날의 일들... 해골 장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과거들이 준후를 통해서 박신부에게까지 생생하게 전달되어 왔다.




- 오백의 병사들은 아직 그대로 도열하여 서 있었다. 많은 어려움을 거치고, 고려의 해안 수군과 벌써 몇 번이나 싸워 잡힐 뻔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까지 일단 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들은 힘을 아끼기 위해 왜구들을 계속 그들 대신 싸우게 시켰고, 이제 자신들이 같이 왔던 왜구들은 지난 전투 때에 전멸해 버렸다. 남은 것은 자신의 오백 군사와 묘운 대선사와 그를 수행하는 승려 십 여명... 묘운 대선사는 일단 그 물건의 자취를 탐색하기 시작했고, 이제 대강 어느 곳에 그 물건이 묻혀 있는지 알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의 대군이 닥쳐오고 있었다. 몇 천명일까... 이제 우리에게는 식량도 남아 있지 않았고, 화살도 거의 다 떨어졌다. 병사들의 사기는 높지만, 오랜 항해로 쌓인 피로가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있었다...


(물건? 어떤 물건이란 말인가? 초치검인가?)


- 묘운 대선사는 우리의 안위보다는 일단 그 물건을 지키기 위해 사방에 진을 폈고, 우리에게 죽는 순간까지 진을 지키라 말하고 그 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죽어도 다시 빛을 보게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


(그러면 지금 저 진 안에는 묘운이라는 자가 또 있다는 말인가?)


- 우리는 마지막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남조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지금 덧없이 전멸해 버리면, 이제 거의 손에 들어온 물건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고려인들은 아직 자신들의 땅에 그 물건이 묻혀 있는 것도 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그들에게 이 물건의 소재를 공연히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싸우면 몇몇은 사로잡힐지도 모르고, 그러면 비밀이 누설된다. 그럴 수 없다. 후일을 기약한다... 묘운 대선사의 법력을 나는 믿는다...


(그렇다면 저들은...)


무서운 광경이었다. 오백명에 이르는 군사들은 차례대로 도열하여 벼랑 밑에 앉아 칼을 꺼내어 할복 자살을 하는 것이었다. 장검을 거머쥐고 배에 칼을 찔러 넣고 그대로 쓰러지는 자도 있었고, 독한 자는 배를 긋고 다시 칼을 위로 말아 올리는 자도 있었다. 그 누구도 뒤에서 고통을 줄이기 위해 목을 쳐주지 않았다. 아마도 고통을 깊게하여 원령을 남게 하려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신음성을 울리며 쓰러진 자는 뒤에 차곡차곡 눕혀 놓고 다시 다음 열이 들어가서 배를 가른다. 몇몇은 도망치려 하나 장수들은 그런 자를 그대로 창에 꿰어 다시 시체더미에 밀어 넣는다.


(세... 세상에... 그러면 여기 묻힌 오백명의 집단은 모두 할복자살을 한 거란 말인가? 그... 그 물건을 지키려...?)


장수들은 최후로 자신들의 말을 죽여 다시 시체 더미에 눕힌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대로 시체더미로 들어가 눕는다. 그리고 줄을 당기자, 미리 설치해 놓았던 듯, 머리 위의 벼랑이 허물어지면서 흙더미가 그들의 위를 덮는다... 아무도 그들이 왔었는지, 어디로 꺼져 버렸는지 눈치채지 못하리라... 고려인들에게 그 물건의 소재를 가르쳐 줄 수는 없다. 그 물건은 그대로... 남조... 남조의 정통성과 권위를... 먼 훗날이 오더라도... 나 구스노키 마사토키의 손으로...


(도대체 그 물건이 무엇이기에!!)


박신부는 눈을 떴다. 준후의 얼굴은 희게 질려 있었고, 오의파의 두 사람은 멍하니 서있었다. 철기옹... 그랬다. 철기옹은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해골장수는 묵묵히 서있었다.


그가 내뱉는 소리가 말이 아닌 마음의 울림으로 모두에게 전달되어 왔다.


--- 이제 길을 비켜라! 길을 비키면 해치지 않는다. 나 구스노키 마사토키의 명예를 걸고 약속한다...


오의파의 상렬이 눈을 크게 뜨면서 소리를 질렀다.


[구... 구스노키 마사토키! 그... 그러면 마사시게의 아들! 1348년에 북조의 군대에 밀려서 남조의 사령관인 형 마사쓰라와 함께 불타는 행궁 안에서 자살했다고 알려진...]


--- 형과 나는 서로 자해하려 했으나, 형이 나를 만류했다. 나에게는 마지막 임무를 남기고... 나도 같이 죽은 것처럼 보이게 했을 뿐이다. 이 일을... 그 물건들을 되찾아 남조의 영광을 이룩할 때까지... 나는 죽을 수 없다... 죽을 수도 없다... 나는 형의 앞에서 맹세를 했다... 맹세...


수백년에 걸친 해골 장수 마사토키의 집념... 그리고 물건... 그건 초치검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박신부는 천천히 준후를 내려 놓고 철기옹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철기옹은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박신부의 얼굴도 역시 비장하였다. 드디어... 드디어 박신부는 이 일의 전모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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