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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국내편 3)-밤은 그들만의 시간

작성자망사빤쥬~♡|작성시간02.12.30|조회수606 목록 댓글 0
밤은 그들만의 시간

 


1...........

 

법의학자이자 검시관인 장창열 박사는 요즈음 골치 아픈 일이 계속 몰아닥쳐서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원래 시신을 검시하는 일 자체가 그리 쾌적한 일은 아니었으나, 장박사는 무뚝뚝한 성품으로 웬만한 일 정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나갔었다. 그의 조수나 친구들은 그러한 장박사를 ‘부처’라고 불렀다. 물론 좋은 뜻으로 석가모니라 해석한다면 자비심이 많다는 뜻이 될 테지만, 영어로 하면 ‘butcher', 즉 ’도살자님‘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장박사가 사람을 해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때는 피에 뒤엉킨 사체를 이리저리 유심히 들여다보는 장박사의 무심한 손길에서 섬뜩한 느낌을 받는다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사실 검시관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으면 오만 가지 시체를 다 접해야 하니 웬만한 사람으로서는 그 이름만으로도 기가 질려버릴 일이기도 했다. 불에 타 까맣게 잿덩어리가 된 시체에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냄새 - 방화냐, 우연히 발생한 화재냐를 놓고 고민하는 수사관들을 위해, 장박사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시신에 코를 대다시피 하고 냄새를 맡아 톨루엔으로 불을 지른 방화라는 사실을 확인해준 일이 있었다. - 를 맡는다거나,개에게 갈기갈기 찢겨진 살덩어리들을 일일이 살펴서 토양 샘플을 채취하는 등의 일 - 과거에 장박사는 개떼에게 찢겨 거의 넝마가 된 시신의 조각조각에서 흙 알갱이들을 꼼꼼하게 하나하나 골라 모음으로써 시신의 사인이 개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다른 곳에서 살해된 후 옮겨져 개에게 물려 죽은 것처럼 위장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 수사관들로 하여금 개가를 올리게 해주었다. - 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돌덩어리 같은 그 특유의 딱딱한 표정은 직업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특이한 이미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실제의 장박사는 누구보다도 선량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에 그야말로 끔찍한 사체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제자 하나가 저걸 어찌 태연히 만지려느냐고 묻자, “가엾잖아. 그러니 나라도 돌봐줘야지.”라고 해서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거리게도 했다. 기실, 장박사는 마음 씀씀이가 섬세한 사람이라서 예전에 동료 의사였던 박신부의 말마따나 “원래는 의사가 되지 못할 친구”였는지도 모른다. 의사라면 응당 환자에게 감정을 개입시켜서는 안된다. 친구나 가족 등 아는 사람을 의사들이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장박사는 그러지 못했고, 그 때문에 많은 번민을 했다. 결국 그는 생명이 붙어 있지 않는 시체들을 다루는 쪽으로(그 쪽이 산 사람을 다루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공을 바꾸었고, 그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스스로 딱딱한 사람이 되어버린 터였다.


그런 그가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요새 들어 통 잠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날들이 벌써 일 주일 이상이나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우직한 의사는 새로 들어온 익사 시체를 무리하게 검시하다가 피곤에 못 이겨 시체의 갈라진 몸속에 코를 박고 졸도해 버렸다.


마침 오랜간 만에 한가한 시간을 맞은 박신부는 장박사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 박신부는 옛 친구의 문병을 나서는 길이었다. 준후가 쫄래쫄래 따라왔고, 현암도 잠깐 볼일을 보고 나중에 병원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승희는 데이트를 하러 나갔는지 통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하긴 승희는 장박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아직 장박사와 얼굴을 마주칠 기회는 없었으니 괜히 따라오라고 하기도 좀 멋쩍은 일이었다.


“꽃을 사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준후가 병원 맞은 편에 있는 화원을 가리키며 박신부를 쳐다보았다. 박신부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친구에게는 영 어울리지 않아. 해골 바가지라면 모를까. 하하하.”


준후가 입을 삐죽했다. 박신부는 다시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먹을 거나 사자꾸나. 과로로 그렇게 되었다니까. 이번 기회에 살이나 좀 찌게.”


박신부는 근처 횟집에 들어가서 큼지막한 생선초밥 꾸러미를 싸들고 나섰다. 준후는 얼굴을 찌푸렸다. 해동밀교에서 수행한 준후는 날고기는 딱 질색이었다.


“네가 먹을 것도 아닌데 왜 그러니? 하하하”


병원으로 들어간 둘은 쉽게 장박사의 방을 찾을 수 있었다. 어느새 땅거미가 짙어가고 있었다. 한 쪽 팔에 링겔을 꽂은 장박사는 마치 동상처럼 얼굴이 파리해진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박신부는 웃으며 인사를 건네려다가 장박사 얼굴을 보더니만 깜짝 놀랐다. 원래 바짝 마르고 키만 길쭉하게 큰 사람이었지만, 지금의 장박사의 몰골은 그야말로 해골바가지 같았다. 게다가 안색까지도 파리한 것이 이거 산 사람의 몰골이라고 할 수 없었다. 박신부와 마지막 만난 게 그다지 오랜 기간이 지난 것도 아니고 그 후에도 별다른 일이 있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이전과는 너무나도 판이하게 달라져버린 장박사의 모습에 박신부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왔나?”


장박사의 퉁명스런 목소리만은 여전했다. 박신부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괜찮은가?”


준후가 애써 명랑한 태도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장박사님.”


준후를 힐끗 쳐다본 장박사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으나 말투는 여전히 무뚝뚝했다.


“너도 왔구나. 원 칠칠치 못하게 이런 곳에 애까지 끌고 오다니......”


역시 장박사는 장박사라고 생각하자 박신부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박신부는 가져온 초밥을 꺼냈다.


“이거 받게. 자네 같은 악덕 의사들 때문에 병원 밥이 얼마나 시원치 않은지는 내가 잘 아니깐.”


장박사는 천천히 꾸러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 비린내가 나는구먼.”


“자네가 좋아하는 걸세.”


“그래 고맙구먼. 하지만 좀 있다가 먹지.”


박신부는 한 쪽 구석에 있는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저녁밥으로 날라다 준 것이 틀림없는 병원의 식사가 손도 대지 않은 채 놓여져 있었다.


“자네, 식사를 통 안 하나?”


“먹으면 잠이 오거든......”


준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했다. 장박사는 누우려고 하지 않고 계속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앉아 있었다. 과로로 입원한 환자라면 으레 누워 있어야 하는데, 장박사 뒤편의 베개는 눌린 흔적이 전혀 없었다. 준후는 박신부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눈으로 베개를 가리켰다. 박신부도 곧 눈치를 챘다. 박신부가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왜 그러나?”


장박사는 여전히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박신부가 말을 이었다.


“자네는 지금 환자야. 의사가 아니라구.”


“알고 있네. 그래서 이렇게 주사도 맞고 있지 않은가? 사실 이런 건 필요도 없는데......”


“과로로 입원했으면 잘 먹고 푹 쉬어야지. 집에 뭐 감춰놓은 금 덩어리가 있다고 앉아서 청승인가?”


“......”


“자, 어서 그거 다 먹고 드러누워서 푹 자게나. 명령이네.”


장박사는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박신부는 흠칫했다. 예전에 장박사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을 박신부는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장박사는 쓸쓸히 창 밖을 내다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두워졌구먼. 또 밤이 찾아왔어.”


장박사에게서 이상한 느낌이 전달되었는지 준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몹시 쓸쓸한 절망의 냄새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장박사가 멍한 시선으로 중얼거렸다.


“또 밤이야. 잠을 자야지...... 그러나 잠을 자서는 안돼. 그럴 수는 없어!”


장박사는 거의 실성한 것처럼 보였다. 박신부는 입을 반쯤 벌린 채, 장박사의 핏기 없는 얼굴을 쳐다보았다. 장박사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냉정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마치 머리속이 텅텅 빈 듯 그의 말은 혼란스러웠다. 장박사는 벌써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올 거야. 그러니 잠을 자서는 안돼!”


“정신 차리게! 제발 정신 차려!”


“무서워. 잠만 들면......”


박신부가 힘껏 소리를 질렀다.


“간호사! 간호사!”


장박사가 펄쩍 뛰었다.


“아, 안돼! 또 수면제를 맞을 수는 없어! 그러면 나는 죽을 거야! 제발!”


문 밖에서 간호사들의 잽싼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장박사가 박신부의 사제복 자락을 잡았다.


“이봐, 가짜 신부! 나를 믿어줘! 제발! 난 잠들어서는 안된단 말야!”


박신부는 장박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장박사의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 사람 좋은 친구가 어쩌다가....... 박신부는 서둘러 장박사를 눌러서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끌어올렸다.


간호사들이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무슨 일이죠?”


“아, 저희가 아닙니다. 옆방에서 누가 소리를 치던데요?”


영악한 준후가 박신부보다 앞질러서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간호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을 유심히 둘러보았다. 그러나 장박사는 고개를 창쪽으로 돌리고 이불을 쓴 채 얌전히 누워 있었고, 그 앞에 박신부가 기도하는 자세로 앉아 있는 것밖에는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간호사들은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안을 둘레둘레 살폈다. 준후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기도중이세요. 자리를 좀......”


간호사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방문을 나섰다. 준후가 문을 꼭 닫았다. 장박사는 다시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켜 세우자 박신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왜 잠을 자면 안되는 거지?”


장박사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꿈이......”


“꿈?”


“나를 괴롭혔네. 그 꿈들이......”


박신부는 재차 고개를 저었다. 꿈이라니? 얼마나 지독한 꿈이길래? 박신부는 혹시 사악한 기운이 있는가 하여 잠시 정신을 집중해 보았으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준후도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병실이나 장박사의 몸에 악귀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꿈이기에 그렇게 무서워하는 건가?”


“매일마다 달랐지. 그, 그러나......”


“꿈은 꿈일 뿐이야. 마음을 편히 갖도록 하게. 기도를 해도 좋고.”


장박사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게 아니야! 꿈이 아니었어! 세상에 어떤 꿈을 그렇게......”


박신부가 긴장하면서 장박사의 입을 쳐다보았다.


“내가 왜 이렇게 비참한 꼴이 되었는지 아나? 잠을 못 잤기 때문이 아니야! 그 꿈, 빌어먹을 그 꿈을 꾸고 나면......”


장박사가 잠시 말을 끊고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작은 음성으로 박신부를 쳐다보며 말했다.


“믿어주겠나?”


박신부가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일이라도 믿네.”


장박사가 한숨을 쉬었다.


“꿈을 꾸고 나면 몸에 기운이 없어져. 자지 않는 것보다 더 피곤하고 체중이 줄어 있는 거야.”


꿈을 꾸었다고 체중이 줄었다는 이야기는 박신부로서도 처음 듣는 말이다.


“아멘! 그럴 수가......”


장박사는 뭔지 모를 대상에 대해 분노를 떠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앙상한 두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가며, 목소리가 높고 날카로워져 갔다.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네. 내 체중은 원래 63킬로였어. 그런데 그 다음날은 57킬로가 되어 있더군. 그리고 그 다음날은 54킬로. 나는 잠을 자지 않기로 했어. 그러나 엿새밖에 견디지 못했지. 결국 졸도해 버렸다네. 그리고 병원에서는 주사를 놔서 나를 억지로 잠들게 만들었지. 아아, 지금의 내 체중이 얼마인 줄 아는가? 지금 나는 일어서지도 못한다네. 42킬로야! 이제 내 몸은 그야말로 뼈와 가죽만 남아 있다네. 한 번만, 한 번만 더 잠들면 그때는!”


장박사는 절규하다시피 소리를 지르다가 이내 힘이 빠지는지 헉헉거렸다.


“나는 믿지 않아. 내게 이상이 있는 걸까? 아냐. 나는 아직 건강하고 냉철하다고 내 스스로 믿고 있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 나를 괴롭히는 것이 있어. 뭔지는 모르지만, 놈들이 있어.”


박신부가 장박사를 부축해서 눕혔다. 박신부의 눈동자는 형형히 빛나고 있었고, 흥분한 탓인지 오오라가 희미하게 발하고 있었다. 장박사가 잠시 헐떡거리다가 박신부의 오오라를 보고는 평상시의 말투로 말했다.


“가짜 신부. 내가 죽을 때가 됐나 보네. 자네가 이상하게 보이네.”


박신부는 미소를 띠면서 힘 있게 고개를 저었다. 박신부의 얼굴은 신념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소리 말고 푹 쉬게. 내가 지켜주겠네. 맹세하지.”


장박사는 망설이는 듯했다. 아직도 잠들기를 꺼려하는 것 같았다.


“내가 잠들면 그들이 오네. 밤은 그들의 시간이야. 악몽 속에서 그들은......”


“밤은 휴식의 시간이고, 고요하고 성스러운 시간이라네. 나를 믿고 쉬게나.”


장박사의 눈이 점점 감겨져 갔다. 그의 입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자네를 보고 맨날 이상한 사람이라고 욕했었는데 정말 자네를 믿어도 되겠는가? 하하하...... 그래 나는 지쳤어. 그네들 맘대로 하라고 그러지.”


장박사는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중얼대다가 눈을 감고 침대에 몸을 깊이 파묻었다. 박신부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준후에게 고개를 돌렸다. 준후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박신부가 돌아보는 무언의 질문에 준후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사악한 영의 기운은 없어요, 전혀.”


박신부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박신부가 입을 열었다.


“밤이 되면 그들이 온다고 했어.”


준후가 눈을 빛냈다.


“그러면 몽마(夢魔)?”


“맞다. 아마도 십중팔구 그런 종류의 놈들에게 걸려들었을 거야.”


“몽마에 대해서는 저도 말로밖에 들은 것이 없어요. 직접 겪어본 일은 없는데......”


“잉큐부스(Incubus). 사람들의 꿈을 흐트러뜨리고 원기를 빼앗는다는 악령들이지. 수컷이 잉큐부스, 암컷이 셔규부스(Succubus)라고 하는 것들이지.”


“그런데 그놈들이 장박사님을 해치고 있는 거라면, 왜 아무런 기가 느껴지지 않는 거죠?”


박신부가 대답했다.


“그놈들은 사람들의 꿈속에 나타나는 존재들이지. 그러니 잠을 깨면 사라져버리는 거야. 그래서 장박사도 잠을 자지 않으려 했을 거야. 꿈속에서만 존재하고, 꿈속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것이 틀림없어. 준후야, 주의 깊게 보자꾸나. 장박사가 이제 잠이 들기 시작했다.”


둘은 잠들어 있는 장박사를 초조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주술이나 영능력의 기운도 보여서는 안되었다. 물론 장박사를 괴롭히는 것의 정체가 몽마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섣불리 무슨 수를 쓰다가는 몽마가 아예 겁을 먹고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은 긴장한 채 서 있는데, 뒤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박신부가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현암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쉿! 조용히!”


영문을 몰라 하는 현암을 박신부가 구석으로 끌고 가서 간략히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준후는 초조히 장박사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지 장박사의 숨소리는 규칙적이었다. 박신부의 설명이 거의 끝나갈 때쯤 준후가 중얼거렸다.


“이럴 때에 <몽몽결(夢夢訣)>이 필요한데......”


현암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몽몽결>? 그거 예전에 네가 빌려주었던 책 아냐?”


“그 책에 있는 동몽주(同夢呪)의 주문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만약 우리가 짐작한 대로, 상대가 몽마라면 우리도 지금 상태로 그들과 싸울 수는 없을 테니까요. 꿈속에서만 나타나는 놈들이라면, 꿈속에서 상대해야......”


“나는 그 주문을 아직도 외우고 있어.”


현암은 예전에 김윤영이라는 여자의 악몽을 고쳐주기 위해 준후에게서 그 책을 빌려 동몽주를 익힌 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준후는 매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네요! 나는 그 주문을 외우진 않았거든요. 지금 가르쳐줘요.”


동몽주의 주문은 삼사십 자 정도 되는 주문이었다. 현암이 준후에게 세 번을 반복해서 들려주자 영악한 주후는 다 외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박신부는 원래 그런 주문 종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아무 소리 없이 한쪽 구석에 서서 장박사만 지켜보고 있었다.


현암이 말했다.


“준후야. 일단 내가 장박사님의 꿈속으로 들어가보마. 그래서 몽마인지 뭔지를 쫓아내도록 할께. 만약 월향이 울면, 내가 못 당해내는 것이니 네가 들어와서 도와주고.”


현암이 문득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데 꿈속에서도 주술이나 공력을 사용할 수 있을까?”


“아뇨. 모르겠어요. 꿈은 단지 상상의 세계일 뿐이니까...... 현암형은 전에 이 술법을 써본 적이 있잖아요? 몰라요?”


현암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현암이 예전에 이 동몽주를 사용한 것은 다만 꿈속의 상황을 그대로 살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의식이 들어가서 상황을 보는 것일 뿐, 현암의 몸이 직접 들어가는 것이 아닌 바에야 공력이나 주술을 사용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공력이나 검기를 사용하지 못하면, 현암도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아무튼 해봐야겠어. 장박사님을 그대로 놔두면 산 채로 백골이 되어 버릴 것 같아. 준후야, 일단은 내게 맡겨라.”


현암은 왼팔에서 월향을 풀어 탁자 위에 놓았다. 그런데 탁자 위에 놓인 월향에서 나직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어? 월향이 울다니, 아무 기색도 없는데.”


준후가 놀라며 정신을 집중을 해보았으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현암이 장박사의 얼굴을 보았으나 장박사는 미소까지 머금으며 편히 자고 있을 따름이었다. 갑자기 박신부가 소리쳤다.


“몽마다! 놈이 지금 저 친구의 꿈에 들어와 있어!”


현암과 준후는 어리둥절하여 장박사의 얼굴과 박신부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장박사는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신부가 말을 이었다.


“저 친구는 원래 잘 웃지 않아! 악몽은 꼭 무서운 것만이 아닐 수도 있어. 깨었을 때의 기억은 악몽이더라도, 꿈을 꿀 때의 상황에서는 안그럴 수도 있을거야.”


현암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꿈은 무의식의 세계. 그렇다! 꿈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꿈을 꾸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본래의 모습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태연히 받아들일 수 있다. 꿈속에서는 즐겁게 보이는 일일지라도 잠을 깨고 나면 끔찍하게 느껴지는 악몽도 있다. 아니, 적어도 악몽 직전의 편안함일지도 모른다.


현암이 중얼거렸다.


“이 몽마라는 것들, 보통내기들이 아니군!”


현암은 급히 결가부좌를 하고 정신을 모았다. 준후가 서둘러 말했다.


“현암형, 절대 꿈속에서 장박사님을 직접 건드려서는 안돼요! 잘못하면 둘 다 큰일 나게 되요! 정말 몽마의 짓이라면, 장박사님의 의식이 모르게 처치해야 해요.”


“염려 마! 칼이 방금 운 것으로 보아 월향검이 신통하게 꿈속의 일까지도 알 수 있는 듯하니, 월향검을 잘 보고 있다가 여차하면 장박사님을 깨워라. 아마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뭘 하지?”


박신부가 묻자 준후가 답했다.


“지금 의식이 나간 상태에서 현암형을 건드리면 큰일 나요! 신부님은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조치를 취해주세요!”


박신부는 자기 친구의 일에 한낱 문지기 역할(?)을 하게 된 것이 불만스러웠으나, 곧 문 앞에 버티고 섰다. 현암은 이제 장박사의 몸에 댄 손가락 끝을 통해 의식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박신부가 외쳤다.


“조심하게!”


사실 불안 하기는 현암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몽마와 싸우러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렇다고 아이에 불과한 준후를 보낼 수는 없었다. 장박사의 꿈속에 무엇이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꼭 몽마가 아니더라도, 준후 같은 아이들이 보아서 좋을 것이 없는 일들도 많을지 몰랐다.


현암의 의식은 어느덧 장박사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장박사의 의식이라......’


현암은 의식을 이동시켜 장박사의 꿈의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하얗고 밝은 세계. 눈이 부실 정도의 환한, 마치 설원과 같은 백색의 세계였다.


‘좀 으쓸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악몽이군 그래. 내 악몽과는 다르군. 아니, 장박사는 악몽이라고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


현암은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다. 한 곳에서는 번득이는 의료기구들이 익살스럽게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현암이 알지 못하는 많은 얼굴들이 윗편에서 나타났다가 스러져갔다. 그러나 그런 것들도 무섭다기보다는 유머러스해 보였다. 현암은 장박사가 보기와는 달리 속으로는 유머 감각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만, 그러고보니 나는 몽마가 있더라도 그 기운을 느낄 수가 없잖아. 제길, 그렇다고 이렇게 무턱대고 헤맬 수야 없지!’


현암은 자신이 직접 몽마를 찾으려던 행동 목표를 수정했다. 몽마의 존재를 직접 느낄 수 없다면, 먼저 장박사를 찾는 것이 나을 듯했다. 몽마가 박신부에게서 들은 대로 장박사의 몸을 갉아먹고 있다면, 놈은 분명 장박사의 부근에 있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장박사는 어디 있지?’


그 순간,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산골짜기들과 비슷하게 거대하게 솟아오른 이상한 색깔의 봉우리들이 사방을 막고 있는 계곡 위에 현암의 의식은 떠 있었다. 현암은 어리둥절했다.


‘어라? 내가 왜 이리로 옮겨졌지?’


아래를 내려다보니 흰 가운을 걸친 장박사가 마구 달려가고 있었다.


‘음? 장박사의 의식? 그러고보니 이것 참 편하군! 생각만 하면 그 쪽으로 옮겨갈 수 있으니. 꿈속의 세계라는 것은 무척 편리하구나.’


현암은 바로 몽마에게 갈까 하다가 장박사가 무엇에 쫓기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장박사의 뒤로 수많은 그림자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현암은 의식을 조정하여 좀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장박사의 뒤를 와글와글 쫓아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들은 산 사람들이 아니었다. 시체들이었다. 불에 검게 타서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시체, 물에 팅팅 불고 눈이 불거져서 반쯤 튀어나온 시체, 갈기갈기 찢겨져 너덜거리면서 달리고 있는 시체들.


어진간한 현암으로서도 눈을 가리고 싶었다. 그런데 장박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 그만 해! 6784번, 나는 네 원수를 갚고 죄인을 잡기 위해 그랬던 거야! 8872번, 너의 사인을 알아야 했어! 그만, 그만!”


현암은 알 것 같았다. 지금 장박사를 추격하고 있는 저 시체들은 모두 숫자가 적힌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장박사가 검시관 생활을 하면서 해부했던 시체들인 것이 분명했다. 그 수는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았다. 현암은 망설여졌다.


‘저들이 왜? 장박사는 좋은 의미로 남이 마다하는 일을 한 것인데. 왜 저들이 원한을 품고 쫓고 있을까? 아니지, 여긴 생시의 세계가 아니야! 저건 분명 장박사가 만들어낸 영상이 아니야! 몽마의 장난일거야!’


그러나 장박사의 꿈 자체의 내용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현함의 뇌리에 떠올랐다. 현암은 안타까웠으나 참고 주시하는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던 장박사가 나뒹굴었다. 시체들이 장박사에게 우르르 덮쳐들었다. 시체들의 목소리들이 마치 전축을 갑자기 켠 것처럼 아우성치며 들려왔다.


“내 눈! 내 손! 내 다리! 내 심장! 코! 혀! 네가 잘라냈어! 내놔, 내놔!”


현암은 부르르 떨었다. 막 달려나가려다가 다시 준후의 경고를 생각해 내고 간신히 몸, 아니 의식을 정지시켰다. 그러면서 장박사가 의식을 차리기를 빌었다. 저란 상황에서는 누구하도 공포에 못 이겨 잠을 깨게 마련이었다. 그러면 저 시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장박사는 그러지 않았다. 장박사가 고통스럽게 외쳤다.


“그래, 다 가져가라! 필요하다면 다 가져가!”


현암은 충격을 느꼈다. 장박사는 스스로 의식을 차리려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몸을 내주고 있었다. 시체들의 탐욕스러운 손아귀가 장박사의 몸을 이리저리 긁어내기 시작했다. 왜 저렇게 당하고만 있을까? 그들에게 베풀겠다는 것인가? 하여간 저렇게 꿈속에서 당하면서, 장박사의 몸 그리고 생명의 에너지도 실제로 갉아먹히는 것이 분명했다. 현암은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만약 지금 장박사가 당함으로써 생명이 소진된다면, 장박사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약간의 위험은 무릅써야 했다. 그리고 저 시체들 중에 분명 놈이 숨어 있을 것이다.


“멈춰!”


현암의 의식은 쏜살같이 아래로 쏘아져나갔으나, 동시에 당혹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힘을 쓸 수 있을까? 여긴 장박사의 꿈속인데.’


그러난 현암은 곧 그런 걱정 따위는 잊어버리고 허공을 쏜살같이 가로질러 시체들을 향해 덮쳐들었다. 장박사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질 판이었다. 눈을 빼내려는지, 한 놈이 장박사의 얼굴을 더듬고 있었다.




현암의 의식이 장박사의 의식속으로 들어가자, 준후와 박신부는 초조하게 현암의 잠든 듯이 굳어진 얼굴과 월향검, 그리고 장박사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어엇, 신부님!”


준후가 소리를 쳤다. 월향이 소리를 높여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신부는 급히 달려가 장박사의 안색을 살피려는데, 갑자기 준후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박신부에게로 와당탕 부딪치면서 넘어졌다.


“왜 그러냣? 앗!”


박신부도 다급한 소리를 질렀다. 준후를 집어던진 것은 현암이었다. 그의 눈은 아직 감겨 있었으나 이상하게 얼굴 전체에 요사스러운, 마치 여자와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월향의 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저절로 공중에 솟아올랐다.


캬아아악!


박신부와 준후가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는 사이에, 현암의 몸이 서서히 일으켜졌다. 월향은 귀곡성을 울리며 현암의 주위를 맴돌았으나, 차마 현암의 몸을 건드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호호호!”


현암의 입에서 난데없이 여자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박신부와 준후는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준후는 눈에 띌 정도로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혀, 현암형! 형이 의식을 비운 사이에 다, 다른 녀석이 현암형의 몸에......”


박신부가 이를 갈았다.


“틀림없다. 잉큐부스의 암컷, 서큐부스””


준후는 재빨리 현암의 손가락이 장박사의 몸에서 떨어졌는가 살펴보았다. 현암, 아니 의식이 빠져나간 틈을 타 현암의 몸에 숨어든 몽마의 암컷 서큐부스는 왼손으로 준후를 집어던졌는지 굳어 있는 듯한 오른 손가락은 아직 장박사의 몸에 닿아 있었다.


“저 손가락! 손가락을 몸에서 떼면 큰일 나요!”


준후가 소리치면서 현암의 오른손을 침대에 찍어눌렀다. 현암의 몸에 들어간 서큐부스는 왼손으로 급히 옆에 뒹굴던 빈 병 하나를 집어들었다. 아직 현암의 몸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는지, 오른손은 다행히 힘을 쓰지 못하는 것 같았다. 병이 준후의 머리를 내리치려는 순간, 박신부가 현암의 왼손을 잡고 매달렸다.


“요사한 것! 썩 나와!”


월향이 쌔액 날아와 병을 스치고 지나가자 병은 왼손에 잡힌 목부분만 남기고 깨끗이 잘라지며 땅에 떨어져 산산이 깨졌다. 박신부는 오오라를 뻗어냈으나 현암의 몸을 조종하는 몽마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도리어 웃어댔다.


“바보 같은 것! 이 자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어떤 술수도 내겐 통하지 않아. 이 자가 자고 있는 동안에는!”


박신부는 입술을 깨물며 전력을 다해 현암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으나,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는 없었다. 준후가 소리를 쳤다.


“신부님! 오른손을 대신 잡아주세요!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박신부가 엉겁결에 안간힘을 다해 준후가 누르고 있던 현암의 오른손을 대신 잡아누르자 준후는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소리쳤다.


“꿈은 너의들이 장난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혼을 내주마! 형체도 없고 존재해 있을 이유도 없는 사악한 것들!”


준후는 곧 손가락을 현암의 몸에 대고 주문을 외웠다. 이번에는 현암의 꿈 아닌 꿈속으로 준후의 의식이 들어간 것이다. 박신부는 이를 악물고 점점 힘을 더해가고 있는 현암을 막아야 했다.


‘서둘러라, 준후! 나는 늙어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몰라!'


밤은 그들만의 시간

 


2...........

 

“물러서라”


현암은 소리치며 장박사에게 덤벼드는 시체들의 앞을 막아서며 소리를 쳤다. 시체들의 기분 나뿐 감촉이 느껴졌다. 비록 불쾌하기는 했지만 느낌이 오는 것으로 보아 장박사의 꿈속에 들어간 의식만의 상태에서도 힘을 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떠올랐다.


‘장박사의 의식이 나를 알아봐서는 안되는데!’


현암은 장박사에게 달라붙어 그의 몸을 뜯어내려는 두 놈의 시체를 집어 던졌다. 장박사는 아무것도 눈치를 채지 못한 듯했다. 정신이 없어서일까? 하여간 현암은 다행이라 여기면서 시체들을 향해 싸울 자세를 취했다.


시체들은 어지간히 당황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시체들이 한군데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몸뚱아리가 마치 밀가루 반죽처럼 붙어서 하나로 뭉쳐져 갔다. 현암은 메스꺼움을 느끼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장박사의 앞을 막아선 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뭉쳐진 시체들은 점점 거대한, 마치 넝마더미 같은 추악한 형체의 괴물로 변해갔다. 놈의 키는 이삼십 미터 이상은 되어 보였다. 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웬 놈이냐? 왜 방해하는 거냐? 보아하니 저 늙은이의 꿈과는 다른 존재인데?”


현암이 지지 않고 되받아쳤다.


“그러는 너야말로 이 사람의 꿈속의 존재가 아닌데, 왜 그를 괴롭히는거냐? 썩 물러가랏!”


“크헤헤!”


괴물이 포효하자 사방이 우르르 울렸다. 현암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놈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자신은 의식뿐인 존재라 공력을 사용할 수 없을 텐데...... 시험삼아 몸에 기들 돌리려 했으나 역시 아무 반응도 없었다. 괴물이 다가섰다.


“네 놈까지 같이 먹어주마.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꿈은 나의 세계다. 여기에서는 내가 신(神)이다!”


“개소리 마라! 꿈의 주인은 그 꿈을 꾸는 사람일 뿐이다! 너 같은 몽마 따위가......”


“크헤헤! 어리석은 것!”


괴물은 여유만만했다. 그 추악한 손아귀에 한번 잡히면 공력이 없는 현암으로서는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인간들은 스스로의 꿈을 알지 못하고 있다. 모두들 꿈을 무가치한 것이라 여기며 꿈을 잊으려 하고 있지. 스스로가 주인임을 포기한 이 꿈의 세계에서 나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꿈을 꾸는 시간 동안에는 내가 전지전능한 존재다.”


“그러면 장박사도 꿈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냐?”


“크헤헤! 이 녀석은 누구보다도 더욱 좋은 목표였다. 이 녀석은 속마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 남에 대한 동정심으로 가득 차 있는 바보같은 놈이지. 그래서 내가 놈의 기력을 빼앗기가 훨씬 쉬웠다. 고집불통이어서 여간해서는 잠을 깨려고 하지 않거든!”


현암이 노한 소리를 질렀다.


“네 놈같이 남의 마음에 기생해서 사는 놈에게는 그게 우습고 바보 같아 보일지 몰라도, 네 놈은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고귀한 마음을 알 수 없을 거다! 네 녀석은 지옥으로나 처박혀랏!”


현암이 노호성을 지르며 습관대로 왼팔을 내뻗었으나, 자신의 왼팔에 월향이 달려 있지 않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이건 어디까지나 의식 속에서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괴물이 웃어젖혔다.


“크헤헷! 여기서는 내가 왕이다! 네 놈이 여기까지 들어온 것을 보니 너도 한가닥 하는 놈인 것 같다만, 영 잘못 짚었다!”


괴물이 이상한 몸짓을 하자 사방이 갑자기 불바다로 변하며, 현암의 발 밑이 끈끈한 거미줄 같은 것으로 삽시간에 뒤덮혔다. 현암의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세상에! 아무리 의식 속의 세계라지만 이런 말도 안되는 주술들이 있다니!’


괴물은 쿵쿵 땅을 울리며 다가오면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산산조각을 내주마!”




“어디 있느냐!”


준후는 처음 와보는 현암의 의식 세계 속을 누비고 다녔다. 몽마의 암컷 서큐부스는 아마도 현암의 무의식 가운데 중요한 부분에 자리잡고서 현암의 온몸을 지배하려 하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암의 무의식 어디에 그 중요한 부분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준후는 의식을 몽마에게 집중시켰다. 곧 준후의 의식은 순간적으로 이동되어 주변의 환경이 갑자기 바뀌었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떠 있는 준후 앞에 한 기이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피부색도 괴이했고 흉악해보이는 인상을 한 여자였는데, 준후가 가장 싫어하는, 옷을 입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준후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몽마는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면서 서슴없이 준후에게 다가왔다.


“에엣,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썩 현암형의 몸에서 나가랏!”


“호호호!”


“가까이 오지 말고 썩 꺼져!”


“귀엽게 생긴 꼬마구나. 이 누나에게 올래?”


“으으!”


몽마가 다가와서 준후의 팔을 잡았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피하지도 못한 채 소리를 쳤다.


“옷이라도 입고 얘기하자! 놔, 놔!”


순간 준후는 깜짝 놀랐다. 어느 새 몽마의 몸에 흰 천이 둘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몽마의 얼굴에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어째서 내 말대로...... 윽!’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몽마가 준후의 목줄기를 움켜잡았기 때문이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차갑게 파고 들자 준후는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몽마의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호호호! 지금 너는 꿈속에 있다. 이건 악몽이야. 네 마음대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아. 절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준후는 속으로 외쳤다.


‘현암형, 제발 정신 차려! 아니지, 현암형은 딴 데 있지. 아이고, 신부님!’


준후는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애썼으나 잘 되지 않았다. 준후는 박신부를 마음속으로 소리쳐 불렀다.


박신부는 현암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적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현암의 얼굴은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안에서 무언가가 요동을 치는 것처럼 실룩실룩했다. 장박사의 안색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월향검은 진정하지 않고 계속 희미한 소리를 울리면서 주위를 불안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는 거지?”


박신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현암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기도력을 집중해보려는 것이었다.


준후는 사방이 거세게 뒤틀리며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온 사방이 연녹색으로 빛나면서 밝은 광채를 발했다. 그러나 그 느낌은 매우 친근한 것이었다.


“신부님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빛은 분명 박신부의 오오라력이었다. 그러나 아까 박신부가 기도력을 발했을 때에는 몽마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 않은가.


몽마가 놀란 신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준후는 움직일 수 없었다. 몽마가 다시 준후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퍼런 눈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몽마가 입을 열었다.


“이 의식이 없는 놈의 몸이 왜 변화를 일으키는고!”


몽마의 배에서부터 가슴까지 쫙 갈라지더니 그 갈라진 부위에 이빨 같은 것들이 번득였다. 준후는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아무런 힘도 쓸 수가 없었다. 몽마가 준후의 의식을 아예 통째로 삼켜버리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호호호! 내 아기가 되어라!”


준후는 발버둥을 치려고 했으나 몸을 꼼짝할 수가 없었다. 직접적인 물리력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목에 손톱이 파고 들어오는 그 고통은 생시의 그것과 너무도 비슷했다.


‘아아!’


준후는 거의 포기상태에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준후의 귓전에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포기하면 안돼요. 당신 역시 꿈을 꾸고 있는 거예요. 스스로의 꿈을 되찾으세요.


준후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 자신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몽마가 주는 고통도 꿈속의 고통에 불과한 것이리라.


‘나가자!’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준후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의식으로 돌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직 몽마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의 자신은 너무 기진맥진해 있었다. 현암의 몸에서 빠져나가려는 준후의 귀에 아까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안심하세요. 오빠는 꿈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는 오빠의 생각 속에 있는 그림자랍니다. 바깥의 어느 분의 힘을 제가 대신 받았어요.


‘그러면 이분은 현암형의 동생인 현아 누나?’


- 오빠는 저를 지켜주고, 저에게는 자신을 지켜달라고 부탁했지요. 저는 오빠가 지니고 있던 기억일 뿐이랍니다. 안타깝고 애절한 기억 말예요. 오빠가 붙잡아두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남겨두고 간 기억이랍니다.


준후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준후의 의식은 마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준후의 몸으로 돌아왔다.




지금 현암은 위기일발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괴물은 그 거대한 몸을 현암의 바로 앞에까지 들이밀고 있었다. 또 그 괴물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너의 발 밑에 깔린 꿈의 거미줄에서는 절대로 달아날 수 없다! 그리고 악몽의 불덩이가 너를 태워버리고, 회한의 얼음송곳이 너의 온몸을 꿰뚫을 것이다. 크헤헤!”


‘얼음송곳이라고?’


깜짝 놀란 현암이 위를 보자, 아득한 곳에서부터 엄청난 수의 날카로운 고드름 송곳이 빽빽이 내려오고 있었다. 불덩어리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현암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고, 현암의 발을 붙잡고 있는 거미줄은 달라붙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아래쪽을 향해 무서운 힘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거 정말 야단이구나!’


현암은 그 와중에도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아까, 생각만으로도 장박사의 의식이 있는 곳으로 몸이 이동되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혹시?


‘몽마의 뒤쪽!’


갑자기 현암의 다리에서 거미줄의 느낌이 없어졌다. 순간적으로 현암은 몽마의 뒤쪽으로 옮겨진 것이다. 현암이 있던 자리에 얼음송곳이 우르르 박히고 불덩어리들이 요란하게 부딪쳐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몽마가 뒤를 돌아보았다.


“제법이구나! 의식 속에서의 이동법을 알아내다니!”


‘그렇구나! 여기는 의식의 세계. 생각만 하면 그곳으로 의식을 옮길 수 있다. 맞아! 내 의식은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어. 일방적으로 놈에게 당하지는 않겠군!’


현암은 자신이 생겼다. 현암은 단단히 힘을 모으고 의식을 끌어모았다.


‘몽마의 머리 위!’


현암은 순간적으로 몽마의 정수리가 보이는 곳으로 옮겨졌다. 현암은 아래쪽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서 일격을 가했다.


“어엇!”


현암이 주먹을 내려치려는 순간, 몽마의 머리가 엄청나게 큰 바위덩어리로 변했다. 현암은 주먹을 거두려 했으나, 주먹은 어느새 그 바위 같은 몽마의 머리에 명중하고 말았다.


“크헤헤! 네 놈의 손은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현암은 놀라서 자신의 오른손을 들여다보았다. 현암의 오른손은 어느새 짓뭉개져서 없어져 버렸다.


“으아악!”


몽마는 이죽거리면서 다시 괴물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바보 같은 놈! 단지 이동하는 단순한 방법을 하나 알았다고 꿈 세계의 신인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현암은 극심한 고통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때 현암의 앞에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현암이 상대하던 몽마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서큐부스구나! 저것까지 나타나다니!’


괴물로 변한 몽마, 인큐부스가 소리쳤다.


“너는 왜 왔느냐? 저 젊은 놈의 빈 몸을 가지랬더니.”


“거기는 지키는 자가 있었어. 저놈이 남겨둔 기억이......”


여자 몽마는 잠시 말을 끊었다. 실언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대신 그 몽마는 자신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목 아래부분부터 배까지 끔찍스럽게 쫙 갈라지자 거기서 놀랍게도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호호호! 네 놈을 내가 통째로 삼켜주지!”


현암은 순간적으로 몸을 이동시켜 몸 전체가 아가리가 되어버린 서큐부스의 공격을 피했다. 오른손마저 없어진 상황에서 두 마리의 몽마를 상대하다니. 그러나 현암은 이를 악물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분명 저놈이 저렇게 강해진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걸 알아내야 한다.’


아래에서 괴물 몽마의 소리가 들렸다.


“크헤헤! 그놈은 네가 맡아라. 나는 이 늙은 놈부터 먼저 해치워야겠다!”


괴물로 변한 몽마가 장박사를 집어올렸다. 현암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안돼!”


현암이 몸을 날려 내려가려 하는데 뒤에서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네 놈은 내 차지다!”


뒤에서 서큐부스가 와락 현암을 껴안았다. 현암은 순간적으로 이동을 생각했다. 그런데 의식은 이동되었지만 뒤에서 잡은 몽마도 팔을 풀지 않고 따라오는 것이었다. 아마도 ‘현암이 있는 곳으로’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분 나쁜 끈적거리는 촉감이 현암의 몸을 감싸고 들어왔다.


‘큰일이구나!’




박신부는 현암의 몸이 안정상태로 돌아가자, 영문을 모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에 준후의 손각락이 현암의 몸에서 떨어지더니 준후가 푸욱 한숨을 내쉬면서 옆으로 피식 쓰러졌다. 박신부는 놀라서 준후에게 몸을 돌렸다. 준후는 의식이 돌아오면서 꿈속에서 받은 상처와 피로까지 같이 가지고 온 것이다. 준후의 안색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목에는 푸르고 붉은 손가락 모양의 멍자국이 들어 있었다. 자신의 꿈을 꾸면서도 간혹 멍 같은 것이 꿈 그대로 남는 경우가 있는데, 동몽주를 이용하여 남의 의식 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평소의 의식이 그대로 살아있는 터라 상처와 피로가 함께 따라올 수 있는 것이다. 박신부는 그런 사정을 대강 눈치챌 수가 있었다. 준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가물가물해지려는 정신을 애써 추스리고 있었다.


“준후야, 잘했다! 수고했어!”


준후가 간신히 고개를 저었다. 퇴마사 일행이나 준후 자신까지도 가끔씩 망각하는 일이지만, 아무리 도력이 높아도 준후는 기껏 열네 살짜리 아이에 불과했고 그래서 지극한 정신력이 아직은 부족했다. 스스로를 잊고 강한 힘을 쓰고 나면, 곧 지쳐서 정신을 잃거나 잠들어버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준후는 지금 몽마와의 싸움에서 하도 놀란 터라, 정신적으로 거으 탈진한 상태에 있었다. 준후가 눈이 감기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중얼거렸다.


“아녜요. 몽마는 이대로는 이길 수가 없어요. 나도 상대가 안되었어요. 스스로의 꿈이 없으면......”


“무슨 소리냐?”


“현아 누나에 대한 잊고 싶지 않은 기억...... 현암형의 몸에서 전 그걸 보았어요. 그 기억이 몽마를 물리쳐주었어요.”


“그러면 장박사는? 그 친구도 그런 기억이 있을까?”


“아아, 만약 그게 없다면......”


잠이 들려는 준후의 뺨을 박신부가 톡톡 쳤다. 쉬게 내버려두고 싶었지만 준후가 알아낸 사실을 듣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준후의 눈이 다시 스르르 열렸다. 준후도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현암형도 지금 그대로는 상대가 안돼요. 의식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어요. 그 사실을......”


준후의 몸이 풀썩 늘어져버렸다. 박신부는 고개를 들고 최대한 머리를 회전시키려고 애썼다.


‘그래! 현암군은 장박사의 몸으로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공력을 그 속에서 발휘할 수 있는지 의심을 하고 들어갔다. 꿈속의 세계! 거기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했지! 그러나 스스로에 대해 의심을 가지게 되면!’


박신부는 곰곰이 생각했다. 준후 정도 되는 아이가 저토록 고전을 할 정도로 강한 놈은 그리 흔하지 않다. 문제는 그들이 들어간 그 세계, 의식 세계의 문제였다. 준후는 그 의식의 세계를 불안하게 여겨 스스로의 능력이 발휘될지 의심했을 테고, 그 때문에 아무 힘도 쓰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큰일이다! 준후는 그나마 현암의 기억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장박사는 현암에게 도움을 줄 만한 기억이 없을 거야. 현암군이 매우 위험해!’


박신부는 서둘러 장박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든 채 장박사의 몸에 손가락을 짚고 있는 현암을 보았다. 장박사의 얼굴은 아까보다도 더 말라가고 있었다. 이제는 눈가가 퀭하니 일그러지고, 완전히 해골상이 되어 있었다. 박신부는 다급했다. 현암이 몽마를 잘 막아내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현암의 몸마저도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줄어들어가고 있었다.


‘할 수 없다. 이렇게 된 바에야......’


안경 속의 박신부의 눈이 번쩍 빛났다.




“놔라! 이거 놔!”


현암은 의식을 이리저리 옮겼으나 암컷 몽마인 서큐부스는 집요하게 현암의 의식에 달라붙어 점점 깊숙이 현암의 몸을 삼켜갔다. 현암은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다. 현암의 오른손은 뭉개진 다음에 몽마의 몽속으로 녹아들어가서 거의 어깨뿌리까지 없어져 있었고, 허리 아래로는 하반신부터 또한 거의 삼켜진 상태였다.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되다니! 이럴 수가......’


현암은 몽마의 수컷 잉큐부스가 장박사의 몸을 움켜주고 장난을 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장박사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듯, 몸을 축 늘어뜨리고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 장박사는 꿈에서 지독한 암흑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된 바에는!’


현암은 이를 악물었다.


‘의식을 집중하면 아무 곳이나 갈 수 있다고 했지?’


현암은 눈을 꽉 감았다. 일단 뒤에서 자신을 움켜쥐고 있는 서큐부스에게서 풀려나야 했다.


‘서큐부스의 머릿속!’


순간 사방이 캄캄해지면서, 질긴 벽이 현암의 몸에 엄청난 압박으로 조여왔다. 현암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서큐부스의 머릿속으로 현암의 의식이 이동된 것이다.


‘네 놈이 제 아무리 따라온다고 해도 자기 자신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스스로의 몸을 스스로의 몸 속으로 넣는다는 것은 모순이고, 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죽어랏!’


현암은 있는 힘을 다해서 사지를 뻗었다. 서큐부스의 머리 가죽으로 이루어진 사방의 벽이 움찔하더니 단단하게 버텼다. 현암은 기합을 발하면서 양 팔과 다리를 쫙 폈다.


갑자기 굉음과 함께 서큐부스의 크게 늘어난 머리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버렸고 현암의 몸은 밖으로 튀어나와 다시 허공을 밟고 섰다.


‘설마 살아나지는 못하겠지! 머리가 부서졌으니!’


현암은 지체없이 다음 행동을 취했다. 이번에는 잉큐부스를 저지해야 했다.


‘잉큐부스의 머릿속!’


현암은 잉큐부스의 머릿속이 너무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괴물로 변해 있는 잉큐부스의 머리는 현암이 들어가서 활동하기에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현암을 덮쳤다. 현암은 비명을 질렀다.


“앗! 너, 너는 죽었을 텐데!”


머리가 박살나서 산산조각으로 없어진 서큐부스가 현암을 뒤에서부터 붙잡은 것이었다. 힘도 전혀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서큐부스의 박살난 조각들이 다시 모여들면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호호호! 잔수를 쓴다고 될 것 같으냐? 여기는 꿈의 세계!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


현암은 기가 질렸다. 아래쪽에서는 잉큐부스가 아가리를 벌리고 장박사를 꿀꺽 삼키려는 참이었고, 현암의 반쯤 녹아버린 몸은 다시 서큐부스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너는 가망이 없다. 포기해라!”


‘안돼! 난 포기할 수 없다!’


현암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왼손으로 발버둥을 치려 하자 서큐부스가 요란한 웃음을 터뜨렸다. 서큐부스의 팔은 마치 쇠뭉치 같았다.


“호호호! 뜨거운 맛을 보여주어야 포기하겠느냐?”


현암을 반쯤 소화하고 있던 서큐부스의 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새빨갛게 불길이 일어나다가 다시 노란색으로, 파란색으로, 그러다가 거의 백열(白熱)의 상태로 변했다. 현암의 몸이 지글지글 타오르면서 서큐부스의 팔과 몸이 현암의 몸을 태우면서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현암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포기해라! 그러면 적어도 고통은 없을 것이다. 포기해라, 포기해!”


현암의 얼마 남지 않은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안돼!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아!”


그때 현암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박신부의 음성이었다.


- 현암군, 현암군! 괜찮은가? 정신 차리게!


‘시, 신부님이 여길 어떻게!’


- 나는 익숙하지 못하네! 그리로 갈 수는 없어! 자네에게 꼭 알려줄 말이 있네! 어서 의식을 차려! 그리고 상상을!


‘사, 상상이라뇨? 어떤 상상을?


- 의식의 세계. 지금 자네 또한 꿈을 꾸고 있는 거야! 꿈속에서는 뭐든지, 상상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능해! 아아, 나는 이런 주술을 더 계속하지는 못해! 어서 정신을!


박신부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점점 멀어져 갔다. 어떻게 박신부가 장박사의 의식 속으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원래 주술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식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신부님! 내가 이제 어떻게...... 내 몸은 이미 박살이 났는데......’


마지막으로 아련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 현암군, 집착하지 말게! 자네는 의식 속에 있어. 불가능은 없어. 자네의 의지로!


현암의 머리에 여러가지 생각이 벼락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맞다. 그의 의식은 맨 처음 스스로 가고자 하는 곳으로 그냥 옮겨갔다. 하다못해 몽마의 머릿속으로까지. 그리고 몽마도 술수를 부릴 때는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수법에 대해 구차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왜 그랬을까?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아니다. 현암의 의식속에 몽마가 말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현암의 몸은 이제 거의 조각밖에 남지 않았다. 생시의 일이었다면 벌써 현암은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암이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현암의 의식은 거의 머리와 팔 하나만 남은 상태에서도 살아 있다. 왜 미리 생각하지 못했을까? 몽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큐부스는 머리가 산산이 부서졌어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다시 살아났다.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다!


현암은 고함을 쳤다. 그와 동시에 서큐부스의 몸에 거의 빨려 들어가 조그만 조각이 되어버린 현암의 몸은, 고열로 달아올라 몸을 시켜멓게 태우고 있던 서큐부스의 팔이 원래 없었던 허상인 것처럼 스르르 빠져나왔다. 서큐부스가 소리쳤다.


“네, 네 놈이 꿈의 비밀을!”


현암은 조용히 공중에 떴다. 어느새 망가지고 부서져 녹아버렸던 현암의 몸은 원래대로 멀쩡하게 돌아와 있었다. 현암이 멀쩡하게 돌아온 자신의 오른손을 힐끗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알았다!”


현암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고는 아랫쪽의 잉큐부스까지도 겁을 먹은 듯 장박사를 내려 놓고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서큐부스도 아까의 기세등등하던 모습에서 갑자기 쭈그러들어 왜소하진 것처럼 보였다.


현암은 왼팔을 들어 가만히 살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너희는 상상력이 없어. 꿈이 없는 존재들, 항상 남의 꿈과 상상력에 기생하는 존재들이지. 너희가 나를 해치려 한 그 수법들, 그리고 그 환상들, 모두가 내가 먼저 생각했던 것들이었어. 지레 겁을 먹고, 염려하고, 머리를 굴리고......”


현암은 처음 장박사의 몸속으로 올 때부터 자신의 힘이 통할 수 있을까 염려하고 걱정했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월향을 발출하려 했을 때도 월향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고, 몽마의 머리를 칠 때에도 그 모습이 바위 같아 보인다는 생각을 했었다. 몽마는 스스로 생각해내는 힘이 없었다. 현암의 걱정, 현암의 지레 짐작을 읽어내어 그것으로 현암을 놀라게 하는 허상을 보이게 한 것이었다. 그래서 포기 상태로 몰아넣고 조금씩 그 사람을 갉아먹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 너희가 겁나지 않는다. 나는 생각할 수 있고 구속되지도 않는다!”


현암이 나직이 말하자 현암의 왼손에 월향검이 나타났다. 월향검은 남이 듣기에는 좀 쭈뼛하지만, 현암에게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들리는 귀곡성을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현암은 고개를 갸웃하면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너희가 무섭지 않아. 나의 의식에서는 내가 주인이다. 주인은 바로 나야!”


잉큐부스의 거대하던 몸이 풍선처럼 찌부러져 갔다. 잉큐부스는 미친 듯이 고함을 치고 발버둥을 치려 했으나, 그 몸은 마치 거대한 손에 짓눌려지는 것처럼 계속 찌그러지고 있었다. 서큐부스의 몸은 반대로 양쪽에서 당겨지는 듯, 고무줄처럼 가늘어지면서 늘어나고 있었다. 머리로부터 발목에 이르기까지 계속 그 길이가 늘어나면서, 폭이 계속 가늘어져서 마치 실처럼 줄어들고 있었다.


현암이 직접 손을 쓸 필요가 없었다. 현암은 단지 조용히 월향이 반사하는 빛을 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여기서의 모든 것은 생각에 달렸지. 도망치고 싶은가? 그러나 못 간다. 못 가고 말고. 꿈속이 아니고서는 너희는 존재할 수 없거든. 꿈의 주인이 너희에게 속지 않고 정신을 차릴 때, 너희는 정말 가엾은 존재가 되는 거야.”


이번에는 두 몽마의 몸이 고무줄처럼 마구 뭉쳐지면서 실타래를 꼬듯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두 몽마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종이처럼 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암은 좋은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다. 잔인하게 몽마들을 벌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의 생각은 현암이 수련했던 부동심결의 상태와 흡사한 것이었다.


“내가 좋은 것들을 생각하고 좋은 꿈을 꿀 때 너희는 고통받겠지. 지금 이러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지. 그러나 아마 내 힘도 그것뿐일 꺼야. 이 꿈의 진짜 주인은 내가 아니니까.”


현암은 묵묵히 왼손의 월향검을 쳐다보았다. 월향검은 조용히 검집에서 빠져나와 명령을 기다리듯 현암의 코앞에 떴다.


“자, 월향아. 장박사님에게 알려줘.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그리고 좋지 않은 꿈은 꾸지 않도록 하라고. 스스로의 의지로 다 되는 거야. 알겠지?”


월향이 오색영롱한 빛을 뿌리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장박사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장박사의 머리를 뚫고 들어갔다. 해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현암의 마음대로였으니까. 지금 월향은 귀검이 아니라 단지 의식 속의 전령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장박사의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어느새 월향이 들어가자, 장박사의 난도질당한 몸도 원래대로 멀쩡하게 돌아와 있었다.


현암이 기쁘게 소리쳤다.


“악몽은 없어요! 몽마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박사님, 스스로의 의지대로!”


장박사의 의식이 잠에서 깨어난 듯 눈을 떴다. 꿈속의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장박사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듯, 마치 잠에서 깨면서 누군가가 들려주던 자장가 구절을 읊조리듯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악몽은 없어. 그들도 없는 거야.”


뭉쳐지고 쪼그라들어서 엉망이 되어버린 두 몽마의 몸이 폭죽처럼 허공에서 터져버렸다. 그리고 비명 같은 공허한 굉음이 사방을 가득 메우다가 역시 여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몽마들은 사라졌다. 의식 세계의 주인이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자 그들의 존재는 다시 무(無)로 돌아간 것이다. 현암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장박사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는 한, 몽마들은 다시는 범접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생겨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갈 시간이 된 것 같았다. 현암의 의식이 장박사의 의식 속에서 대신 난리를 피웠던 것을 알면, 주인이 좋아하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현암은 동몽주를 쓸 때 주의하라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현암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장박사가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이제 갑니다, 장박사님. 다시는 악몽에 시달리지 않으실 겁니다. 나쁜 기억은 모두 잊어 버리세요.’


현암의 의식은 장박사의 의식을 남겨두고 서서히 길을 떠났다. 장박사가 미소를 짓고서, 시체더미 속에서 시체들을 하나씩 손보고 정성스럽게 매장해주는 모습이 언뜻 비쳤다. 다른 사람에게는 악몽으로 보일 만한 그 일이 장박사에게는 좋은 꿈으로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장박사가 좋은 꿈을 꾸다가 느닷없이 악몽으로 바뀐 것도 이해가 갔다. 정성스럽게 매장해주고, 안식을 찾게 해주려던 시체들이 별안간 장박사를 공격한 것이었으리라. 자신의 의식으로 돌아가던 현암은 장박사라는 사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암은 빙긋이 웃었다.




아직 준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퍽이나 놀랐던 듯싶었다. 박신부가 현암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현암군, 수고했네! 정말 수고했어!”


“뭘요. 신부님이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남의 꿈속에서 꼼짝없이 죽을 뻔 했습니다. 하하하!”


“그래도 자네의 의지와 준후의 지혜가 아니었다면, 아마 큰일 났을 거야. 준후가 안간힘을 다해 일러주었기에 나도 의속 속에서의 일을 짐작할 수 있었지. 아까 자네의 몸에서......”


현암이 눈을 크게 떴다.


“예? 제 몸요? 저 속에 있는 동안 제게도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박신부가 껄껄 웃었다.


“아니네!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하도록 하지.”


박신부는 흐뭇한 눈초리로 장박사의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다. 여전히 앙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평온한 얼굴로 미소를 띤 채 정말 평안히 잠들어 있었다.


“이제 악몽에 시달리지는 않을 겁니다.”


박신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현암의 머리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 올랐다.


“그런데 신부님, 물론 덕분에 위기를 넘겼습니다만, 아까 어떻게 장박사님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셨죠? 서툴기는 했지만, 그건 동몽주를 외워야 하는 건데.”


박신부가 희극적으로 넓은 두 팔을 들어올렸다.


“나도 외웠거든!”


“아니, 항상 주술은 안된다, 안된다 하시던 신부님이 주문을 외우고, 게다가 주술을 실제로 부리기까지 하셨다고요? 오 아멘!”


현암의 장난기 섞인 말에 박신부도 억지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면서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일부러 외운 것은 아니네. 아까 자네가 준후에게 주문을 일러줄 때 그냥 귀에 들어오다군.”


“아니, 겨우 세 번, 그것도 먼발치에서 듣고 다 외웠다구요? 신경을 쓰고 듣지 않았으면 불가능한데......”


“뭐, 내 머리가 돌인 줄 아는가? 이래 봬도 어렸을 땐 신동 소리를 들었단 말야! 하여간 걱정이군. 얼마나 고행을 하고, 기도를 울려야 이 죄가 씻어질지. 야훼 하느님이시여, 이 죄 많은 신부를 용서하소서!”


현암은 웃으며 창 밖을 보았다. 이제 밤은 이슥해져 있었으나 더 이상 요사하거나 우울해보이지 않았다.


“밤은 그들의 시간이라고 몽마들이 그랬던가요? 하하하!”


박신부가 엄숙하게 말했다.


“아니지. 밤은 휴식의 시간이지. 그것을 공포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은 사악한 어떤 존재들보다고 오히려 사람들 스스로의 죄와 걱정과 의심하는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걸 거야.”


둘은 말없이 창 밖의 어둠을 감상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준후는 쌔근거리며 자고 있었고, 장박사는 이제 코까지 드릉드릉 골며 편안하게, 정말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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