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고린도전서 9:19~27
제목 : 복음을 위해 종으로 살아가는 성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어떤 모양으로 드러나는지 보여 줍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었지만, 복음을 위해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또 그는 복음을 전하는 길에서 스스로 훈련하며 끝까지 달려가기를 선택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죄에서 해방된 자유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종으로 이 땅을 살아갑니다. 이 같은 정체성을 가진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까요?
먼저,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낮아지는 자유를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19절). 세상은 자유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힘으로 이해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자유는 다릅니다. 그는 자유를 자기 권리를 지키는 데 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그들처럼, 율법 없는 자에게는 그들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자신을 맞춥니다.
이는 그들이 복음을 더 잘 받아들이도록 삶의 방식과 태도를 그들에게 맞추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바울의 자유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닌, 복음이 전해지는 통로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나의 편리와 민족만을 촉구하진 않습니까? 우리의 편의를 내려놓고 누군가의 눈높이를 맞추는 그 자리에서 복음이 전해집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알아, 삶을 드려 복음을 전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 영원한 상을 바라보며 절제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상을 얻는 자는 하나라고 말합니다(24절). 이는 목표를 분명히 하라는 권면입니다. 이 길의 핵심은 절제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도 된 우리는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바라고 인내하면서 믿음의 여정을 완주해야 합니다.
이 여정은 감정적 열심만으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작은 절제가 우리를 면류관의 길로 인도합니다. 말의 절제는 공동체를 세우고, 관계의 절제는 사랑을 지킵니다.
시간과 욕심의 절제는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붙들어 주고, 식욕과 쾌락의 절제는 영혼이 흐려지지 않게 지켜 줍니다. 더 큰 기쁨을 바라보며 오늘의 욕망을 다스리십시오. 주님이 주실 영원한 상을 바라보며, 절제하는 믿음 위에 서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목적을 두고 훈련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바울은 ‘나는 허공을 치는 것같이 하지 않는다’라고 고백합니다(26절). 그의 삶이 세상의 흐름에 떠밀려가지 않고, 분명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에게는 복음이 삶의 이유였고, 그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여정과 복음을 전하는 삶에는 수많은 싸움이 있지만, 그 싸움의 핵심은 자기 안에 있는 방심과 욕망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뒤에 자신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 훈련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자신을 살피고 넘어질 자리를 미리 피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믿음의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이 여정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삶의 주인이신 주님께 자신을 맡겼던 바울처럼 우리도 믿음의 여정을 완주해야 합니다.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그날까지,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자유롭게 된 성도가 어떤 믿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성도의 자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낮추는 능력입니다. 또 복음의 길은 절제 없는 열심히 아니라, 목표 있는 훈련으로 이어집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은혜에 합당하게 달릴 힘도 주셨습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위해 내려놓고, 절제하며, 끝까지 달리는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