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성도들을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
◆ 양산되는 이름뿐인 성도들...
우리는 우선 이름뿐인 성도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부터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름뿐"이라는 말 자체가 참으로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여러 가지 유형의 성도중의 하나라고 해도 무방할지도 모른다. 예를들면 자신이 신앙인이라는 의식이 없는 사람, 세례는 받았지만 신앙 공동체 테두리를 벗어난 사람,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에 등록을 했으나 다른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 교회의 정규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 참여하는 횟수가 적은 사람, 신앙 신조의 일부에 대한 의심을 갖는 사람, 신앙은 가지고 있지만 목회자와의 갈등 때문에 교회 출석을 거부하는 사람, 직업이나 기타 특별한 사유로 교회 출석을 못하는 사람, 신앙의 일부나 교회의 가르침의 일부를 거부하는 사람...
그 중에서도 이름만 신자인 사람은 세례는 받았지만 자신이 등록한 교회에 참여한다는 명백한 표시가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들이 교회 출석을 거부하는 이유 또한 다양하다는 것이 이채롭다.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의 방법도 당연히 변해야 한다는 극히 말이 되는 자기 주장을 신앙의 신조처럼 따라가기 때문에 골치가 아픈 것이다. 한 마디로 늙은 신세대요, 젊은 늙은이같은 사고 방식의 감옥에 갇혀 사는 외톨이 신세이기 때문에 대화마저 수월치 못하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종교적인 의식에 만족하기 보다는 삶에 의미를 추구하는 멋대로의 신앙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기성 신앙인이 원인 제공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믿음은 가지고 있으나 그 믿음이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의 막강한 영향력과 맞서서 싸워 이길만한 강한 힘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을 위해서라면 부정과 불의 앞에 바른 말과 행동을 보이고 목숨을 걸만큼 자신 있는 마음의 자세가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이라는 신기루 앞에 자기 신앙마저 청개구리처럼 변형되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믿는 신자나 이름뿐인 자신이나 별로 다른 것이 없고 달라질 것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수 때문에 고난을 받고 예수 때문에 손해보려는 마음이 애시당초 없기 때문에 이름뿐인 신자들이 더욱 늘어만가고 있는 것이다.
◆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가?
이름뿐인 신자들이 많다고 느끼어 질 때 최우선적으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 스스로 확실한 목회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다. 이른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선 다음 세 가지 관점에서의 기본 계획을 권하고 싶다.
첫째, 정확한 숫자와 소재를 파악한다.
둘재, 그들이 관심을 갖고 모일 수 있는 소그룹을 만든다.
셋째, 참여의식과 동반자 의식을 생활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개발 실시한다.
우선 교회가 실시하는 공동체 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교회 예배나 기타 모임에 잘 참석하지 않는 사람을 위한 모임이기 때문에 예배모임으로 고착화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모임에 장애 요소는 그들 스스로 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과 만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 관계를 개선하고 자신이 지금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하는 일이 중요하다.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때는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교육 내용 중에는 현재 자신의 처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 후 이상적인 삶의 모델이 무엇인지를 자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물론 소그룹을 통한 공동체 훈련이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프로그램은 도서출판 글로리아에서 발간된 "21세기 교육목회 프로그램"을 참고할 것)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면 분석된 모든 문제의 공통분모가 파악된다. 구성원들의 실천적인 무신론, 개인주의, 공동성 의식의 결여, 개인과 단체에서의 결의를 통하여 파생되는 문제와 삶에 신앙적인 생기를 빼앗아가는 적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이해하게 되면 반쯤 성공한 것이다. 삶의 목적에 대한 상실에서 생기는 고뇌가 무엇인지를 알 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강점을 찾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신앙을 생활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복음화 운동이 피상적이 아니라 과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현실을 살고 있느냐를 위하여 자신이 자신에게, 가족이 자신에게, 교회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 주셨고 그 혜택을 어떻게 누리면서 사는 것이 진정한 복음적인 삶이 되는 것인가를 알게 된다는 것처럼 바람직한 일이 아디 있겠는가?
제 1 단계 : 조직이라는 이름의 동력
모임에 대한 선포는 개인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게하는 일이다. 종교적, 지적 회개를 동반한 회개운동이 아니라 삶 안에서 타인과 더불어 하나님을 아는 체험의 장에 함께 한다는 의식이 바로 이 프로그램의 동력이 되게 해야 한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믿고 존중하는 법을 알게해야 한다. 고립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임을 통하여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 돕는 경험을 갖는 그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처음부터 전통적인 예배모임으로 시작하면 그들 안에 잠재된 저항이 의외로 강하게 반발심으로 나타난다. 오랫동안 잊혀지고 포기된 신앙이 하루 아침에 회개라는 강한 변화를 수용하기 힘든 상태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들 안에 숨겨져 있는 인간성에 호소하면 된다. 조직의 일원이 되어서 각자가 소중한 한 개체라는 의식이 생기면 모임은 성공할 수 있다.
제 2 단계 : 교육이라는 이름의 훈련
교육은 훈련을 통하여 얻는 능력이다. 훈련은 못하는 것을 잘하게하는 반복 연습이다. 이런 반복을 통하여 약한 능력이 강해지는 힘을 얻게 된다. 이 교육에서는 세례의 위임이 의미하는 것이 주요 교육 내용이 되어야 한다. 일단 교육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 때는 어떤 것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중심에는 세례의 위임이 포함되면 된다. 즉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확인해 주면 된다. 교육의 단계에 접어들면 주일 교회에 나오는 빈도가 많아진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을 알게 된다. 의미를 깨닫게 될 때 그들은 삶의 가치관과 태도와 생활 방식에 대한 새로운 변화의 길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제 3 단계 : 믿음이라는 이름의 변화
공동체 훈련에 참여하고 교육을 통하여 믿음이 생기면 변화는 필연적이다. 스스로 미래지향적인 방법으로 이상을 정립한다. 현실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이상의 빛 안에서 미래를 앞당겨보면서 미래를 사는 사람이 되고 내일을 위한 계획 속에 자신을 투자하는 힘을 갖게 된다. 이러한 소망안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긴다. 들은 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훈련을 통해서 가슴으로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 자기 소리를 듣던 사람이 남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동반된 훈련을 통해서 가능해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