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분 전
미술여행 장두이 문화국장
[미술여행 장두이 문화국장]필자 연기인생에 最上 롤모델로 리스트 상위에 있는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1907.5.22-1989.7.11)’.
수 백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로 존칭되는 배우.
최고의 화술(Speech)을 구사하는 배우.
셰익스피어를 갈파한 연기메소드의 大家.
지금도 그가 출연한 작품의 ‘명장면 명연기’를 필자는 생생히 기억한다.
[햄릿], [헨리5세], [리차드3세], [폭풍의 언덕], [레베카]. [마라톤 맨], [해밀턴부인], [스파르타쿠스] 등등....
독보적으로 빼어난 화술(話術/말의 기술)과 카리스마로 가만히 있어도 흘러 넘치는 에너자이저의 배우.
배우 본연, 분신(分身)과 현신(顯身)의 배우!
배우 본연, 분신(分身)과 현신(顯身)의 배우! 올리비에 젊은시절의 모습
‘올리비에’가 41세에 감독이자 제작자이며 햄릿역할로 제작된 영화, [햄릿/1948년]은 1970년 연기를 마악 시작했던 필자에게 가장 크게 각인된 흑백영화로 영화가 아니라, 바로 눈앞에서 보여지는 생생한 라이브 공연처럼 흑백을 넘어 컬러풀 연기예술미장셴이었다.
영국을 비롯해 영어권에서 연기 체현(體現)에 가장 어려운 작품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셰익스피어’다. 수 백 년을 통해 인류에 회자되며 책, 연극, 영화, 뮤지컬, 오페라, 무용, 웹툰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셰익스피어 작품에 연기는 연기의 마스터링이다.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명대사에 명료한 詩的 호흡과 리듬 그리고 깊이 있는 예술적 감각은 보통 연기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이 결코 아니다. 그렇게 셰익스피어가 있어, 영국엔 ‘로렌스 올리비에’, ‘알렉 기네스’, ‘죤 길거드’, ‘이안 멕켈런’ 등 타고난 화술의 배우들이 많은가 한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누구보다 셰익스피어를 통해 연기마스터로서의 입지를 가진 배우이자 연출가다.(사진: 대표작 햄릿 연기)
특히 ‘로렌스 올리비에’는 누구보다 셰익스피어를 통해 연기마스터로서의 입지를 가진 배우이자 연출가다. ‘로렌스 커 올리비에(Laurence Kerr Olivier)’는 영국 'Dorking Surrey'에서 ‘제라드 커 올리비에’ 목사와 '애그니스 루이즈' 사이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다. 차가운 성직자 아버지의 영향 아래에서 올리비에는 아버지의 설교를 통해, “언제 목소리를 낮추고, 언제 외쳐야 하는지, 또 언제 말없이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감상적이어야 효과적인지.... 말을 통한 감정과 그에 따른 태도를 아버지로부터 배웠고 잊지 못한다”라고 예배의 연극성이 매료시켰다고 술회한다. 그래서 그런가? 필자가 서울예전 연극과 재학시절 유인형교수님이 들려준 올리비에 “성경 천지창조 LP”판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연기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劇的인 ‘천지개벽 천지창조’ 그 자체였다. 발음, 발성, 감정, 언어의 높낮이, 억양에서 오는 극적드라마.....! 하나의 목소리 총체 교향곡이었다.
사진: 올리비에 햄릿중에서
올리비에가 10살 때. 학교에서 공연한 <줄리어스 시저>에서 브루투스역으로 관객들을 열광시켜 깊은 인상을 남기며 연기자로서의 재능을 이미 알렸으니, 어려운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초등학교 연극 공연에 하는 영국은 그래서 세계 演劇强國이 아닐 수 없다.(미국도 그렇지만 영국에서 초등학교에서 연극공연을 꾸준히 진행하는 것은 곧 언어 교육, 인문학에 대한 이해, 예술에 대한 체험, 사회 적응교육, 표현법의 체현, 감성 교육 등으로 매우 가치 있는 교육으로 일관한다)
1924년 올리비에 형이 인도에 고무재배 담당자로 떠나, 형을 따라가고 싶다고 하자, 부친이 “바보 같은 소리! 넌 인도에 가는 게 아니라, 무대에 올라가는 거야!”라는 말로 부친 역시 올리비에의 연기적 재능을 장려했다.
마침내 올리비에는 ‘Central School of Speech Training and Dramatic Art’ 학교에 입학, 본격적인 연기에 입문한다. 이어서 학교 졸업 후, 본격적인 연극무대에 출연. 1930년 'Noel Coward'의 <Private Lives>로 성공을 거둔다. 이후 1935년 <로미오 줄리엣>으로 셰익스피어 배우 입문으로 대중적 성공을 얻고, 1940년대에 영국 연극의 최고 극단 [The Old Vic/올드빅] 이사로 등극, <리차드 3세>와 <외디푸스 왕>의 성공을 이끌었다. 이어서 1963년에서 1973년까지 영국 [National Theater] 창립 예술감독으로 취임, 1965년 <오델로>, 1970년 <베니스의 상인> 등으로 명망을 쌓고, 영화작품에도 출연해 성공을 거둔다.
사진: 영화 폭풍의 언덕(1939년)
<폭풍의 언덕/1939>, <레베카/1940>, 셰익스피어 3부작으로 그 자신이 연출하고 주연한 영화 <헨리5세/1944>, <햄릿/1948>, <리차드3세/1955>등으로 셰익스피어 연기와 연출의 정점을 찍는다. 그 후에도 <스파르타쿠스/1960>, <마라톤 맨/1976> 등 수많은 연극무대 외에, 영화와 TV 드라마 5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당대 최고의 배우로, 엄청난 에너지와 달변의 연기로 무대와 스크린을 매섭고도 뜨겁게 달군다.
사진: 올리비에 대표작 오델로
사진: 올리비에 샤일록
1947년에 기사 작위를 받고, 1971년 평생귀족작위, 1981년 영국공로 훈장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상, 토니상은 물론 영국아카데미영화상 5회, 에미상 5회, 골든 글로브상 4회 등을 수여한다. 지금도 그를 기리는 ‘런던연극협회’가 제정한 “로렌스 올리비에상”은 영국 최고의 연극상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에 출연한 영국 출신 유명배우 ‘비비안 리’는 물론, ‘질 에스몬드’, ‘조안 플라우라이트’ 등과 결혼, 4명의 자녀를 뒀다. 불륜으로 알려진 두 번째 결혼의 ‘비비안 리’와의 관계에서 올리비에는 “비비안과의 관계는 어쩔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단순한 욕망 때문이 아니라,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이끌림을 당했다!”고 회고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진: 올리비에 두번째부인 비비안리
올리비에의 ‘연기 메소드’는 지금껏 전설로 남아있다. 평론가들 사이에서 올리비에 연기는 “연기를 매우 세밀하게 만들며, 역할마다 외모 변화를 바꾸는데 탁월하다. 특히 역할에 따른 다양한 목소리 구사와 억양에 뛰어난 화술 연기력을 보여줬다.”
올리비에 자신이 연기에 대해 한 말, “나는 외부에서부터 안으로 연기 작업을 진행한다! 절대로 나 자신으로 보이기 싫었고, 나처럼 보여서는 다른 배역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진: 올리비에의 _오델로_ 변신
사진: 올리비에 학교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그는 세칭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 메소드’를 신뢰하지 않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 {연기에 관하여}란 책에 의하면 “스타니스랍스키는 그냥 서재에 넣어둬라. 무대나 영화 세트장엔 가져오지 마라!”를 남겼다.
미국 배우 윌리엄 래드필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올리비에는 말론 브랜도 보다재능이 덜하다. 같은 영국 배우 죤 길거드, 리차드 버튼, 폴 스코필드, 랄프 리차드슨 보다 역시 재능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20세기 최고의 결정적 배우다! 왜? 연기자로서 그의 업적, 헌신, 학문, 연습, 결단력, 그리고 용기.... 그런 측면에서 그는 가장 탁월하며 용감한 배우다!”
사진: 올리비에
그가 영화 <마라톤 맨>을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촬영 당시 함께 출연한 미국 유명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일부러 연기를 위해 땀을 흘리며 공원을 뛰어오자 “실제로 하지 말고, 그냥 연기를 해!”라는 일화는 연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그의 연기메소드를 대변하는 이야기로 자금도 회자된다.
1983년 생애 말년에 출연한 드라마 <리어왕>에서 올리비에는 “리어는 쉽다. 왜? 사실 우리 늙은이들과 비슷해. 멍청한 늙은이에 불과하니까!” 이 작품이 방영되었을 때 평론가 스티브 바인버그는 “올리비에의 리어역은 숨이 멎을 만큼 순수하다. 코딜리아의 시신 앞에서 던지는 마지막 대사는 우리를 견디기 어렵게 했다. 왜냐하면 우린 이미 올리비에가 연기할 마지막 셰익스피어를 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시대 최고의 배우는 우리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명연기를 보여줬다. 그저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말일 것이다!”
사진: 올리비에의 다양한 역활과 변신
타임즈의 버나드 레빈은 “올리비에는 실제로 많은 작품에서 그 배역의 옷을 입고 걸었다. 아무도 그처럼 연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빌링턴은 “올리비에는 연기예술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람이다. 압도적인 힘으로 연기에 화려함과 힘으로 관객을 어둠속으로 이끌고, 초월적인 황홀경을 경험케 한다!”
1989년 마지막 연기. 영화<워 레퀴엠>에서 노년의 휠체어 兵士 역을 마치고 그해 건강이 악화되면서 7월 11일 ‘웨스트 서식스 애셔스트 마을’ 자택에서 82년 생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사진: 올리비에 생가
어려서부터 연기에 대한 관찰력과 노력, 재능으로 점철되어 수많은 성공을 거둔 올리비에 역시, 그 화려한 삶의 여정을 연기가 아닌 실제 ‘죽음 연기(?)’로 마친 것이다. 이제 그의 연기는 영상으로나마 후세에 그 ‘演技의 核’을 참고하게 한다. 역시 배우의 연기는 무대에서나 영상에서나 ‘최후의 마침표’란 증표(證票)를 남겨주었다.
사진: 런던 _내셔널 씨어터_에 있는 올리비에 동상
사진: 올드빅 극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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