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분 전
장두이 연극배우
[미술여행=장두이]뮤지컬(Musical)은 말 그대로 음악적인 드라마 음악극이다. 음악극은 동서양 古代연극 그 자체였다. 고대 그리스 연극이 그랬고, 지금도 존재하는 인도 카타칼리, 인도네시아 토팽, 중국의 경극, 일본의 노오, 우리나라의 가면극 탈춤 등이 모두 음악, 노래, 춤, 연기가 앙상블을 이루는 총체음악극, 뮤지컬씨어터(Musical Theater)다.
최근 뮤지컬은 오페라에서 모티브를 시작해 1920년대 들어서 하나의 스토리를 가진 완벽한 공연형식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불과 100여년의 역사 가운데 미국의 ‘브로드웨이’와 영국의 ‘웨스트엔드’를 중심으로 점차 세계 공연계에 대중 음악극으로의 확산을 이어가고 있는 것.....! 그동안 [명품연극 시리즈]를 통해, 뮤지컬계에 빼어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을 살펴보았지만, 오늘은 뮤지컬 무대는 물론 뮤지컬 영화에까지 대박흥행을 기록한 커다란 업적을 이뤄온 영국태생의 ‘줄리 앤드류스(1935~현재) 뮤지컬 라이프’를 짧게나마 소개한다.
사진: 줄리 앤드류스 출연 뮤지컬 _카멜롯_ 포스타
'줄리 앤드류스(본명 Julia Elizabeth Wells)'는 2000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드2세로부터 영국 아티스트로서 최고의 권위인 훈장격인 ‘DAME 작위’를 받았다. 아역배우로 13세 때 ‘웨스트엔드’ 무대에 데뷔, 이미 영국에서 가장 어린 프리마돈나로 불렸고, 1954년 19세 때에 브로드웨이에서 <The Boy Friend>를 통해 평단과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으며, 이어 1956년 <My Far Lady>에서 주인공 ‘엘리자 둘리틀’ 역과 <Camelot/1960>에서 ‘퀸 비네귀어(Queen Guinevere)’ 역할로 아름다운 보이스와 정제된 연기로 최고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사진: 줄리 앤드류스
빛나는 무대공연에 이어서 1964년 월트디즈니 제작의 영화 <Mary Poppins>에서 ‘메리 포핀스’, 1957년 <Cinderella>에서 ‘신데렐라’ 그리고 마침내 일생 최고의 배역으로 자리매김한 1965년 <Sound of Music>에서 ‘마리아 폰 트랩’ 역할로 ‘골든 그로브’ 최우수 연기상은 물론,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갈아치운다. 최근에까지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2> 출연과 <슈렉 프렌차이즈> 등에도 목소리 연기를 했지만, 그녀의 본능은 역시 음악극 뮤지컬이다. 미국처럼 뮤지컬연극을 영화로 만들어 세계적 흥행을 주도하는 나라는 없다. 그 중심에 오랫동안 정상에 섰고, 지금도 그녀의 뮤지컬영화는 세계 각국에서 시시때때로 보여지고 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傳說이다.
사진: 줄리 앤드류스 (1)
사진: 줄리 앤드류스(2)
‘줄리 앤드류스’는 1935년 10월1일 영국 Walton-on-Thames, Surrey에서 금속목공 교사 ‘Edward Charles Wells’와 ‘Barbara Ward’ 사이에서 태어난다. 하지만 그녀 자서전에서 밝혔듯이 당시 어머니는 가족 친구와의 불륜으로 줄리 앤드류스를 잉태했고, 15세 되던 해에 어머니의 고백으로부터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부모는 이혼을 했고, 어머니와 계부 밑에서 열악한 런던 빈민가를 배경으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알코홀 중독과 폭력적인 계부 밑에서 ‘줄리 앤드류스’는 두번이나 계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 하며, 급기야 자신의 방문에 자물쇠를 잠군채 지내야 할 정도였다.
사진: 줄리 앤드류스 (3)
‘줄리 앤드류스’의 재능은 예술학교 ‘Cone-Ripman(현 Tring Park School of Performing Arts)에서 성악 강사 '릴리안 스타일스 앨런(Lillian Stiles-Allen)' 부인으로부터 레슨을 받으며 꽃을 피워나간다. “스타일스 앨런선생은 내게 엄청난 영향을 준 분이고, 나의 세 번째 어머니 격이다.”라고 회고할 정도.... 선생 ‘스타일스 앨런’은 “줄리 목소리는 무거운 오페라틱 보이스 보다는 엄청난 순수함을 지닌, 하얗고 가는 소리의 절대음감과 3옥타브의 음역대, 정확성 그리고 톤을 가진 그저 감탄할 정도의 소녀였다. 타고난 뮤지컬에 적합한 神의 재능이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확고한 성악 수업 외에도 발레, 탭댄스, 볼룸댄스 등으로 본격적인 뮤지컬의 재능을 키운다.
사진: 줄리 앤드류스 (4)
1948년 11월 1일 13세의 나이로 ‘죠지 6세’와 ‘엘리자베드 여왕’ 앞에서 열린 ‘Palladium Royal Variety’ 공연에 솔로로 출연, 환상적인 보이스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이어 15세부터 본격적으로 뮤지컬 <Jack and Beanstalk>, <Little Red Riding Hood>, <신데렐라> 등에 출연 웨스트엔드는 물론 영국 전역에 재능과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 재능은 곧이어 뉴욕으로 그녀를 안내..... 1945년 9월 30일 그녀의 생일 바로 전날, 드디어 뮤지컬 <The Boy Friend>로 브로드웨이에 데뷔. 1년간의 공연 속에 까다롭기 그지없는 뉴욕 평단은 물론 관객들을 열광시키며 ‘미래의 뮤지컬 스타!’라는 탄탄한 입지를 거둔다. 마침내 당시 뮤지컬의 작사와 작곡의 대명사였던 ‘Alan Jay Lerner’와 ‘Frederick Loewe’로부터 영국 최고의 극작가 ‘버나드 쇼오’ 희곡 'Pigmalion'을 새롭게 각색한 <My Fare Lady> 여주인공 ‘Eliza Doolittle’ 역의 출연 제의를 받으며, 교수역할의 배우 'Rex Harrison'과 함께 브로드웨이 커리어의 신기원을 만들어낸다.
사진: 줄리 앤드류스와 리차드버튼 _카멜롯
노력하는 사람에게 성공은 다른 성공의 길이 열리는 법. 작곡가 ‘리쳐드 로져스’가 <My Fare Lady>를 보고 ‘줄리 앤드류스’에게 단짝 ‘햄머스타인’과 만든 뮤지컬 TV드라마 <Cinderella> 주인공 출연을 제안하면서 1957년 3월 31일 CBS 전파를 타고 생방송, 무려 1억 7천 만 명 시청자들을 열광케 한다. 이어 1960 대배우 ‘리처드 버튼’과 함께 뮤지컬 <Camelot>에 출연하고, 1963년 디즈니는 당시 무대디자이너 ‘토니 월튼’과 결혼해서 임신한 ‘줄리 앤드류스’를 끈질기게 설득해 출산 후, LA에 집까지 마련해주며 영화 <Mary Poppins>에 출연 디즈니 역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쓰며,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과, ‘아카데미’ 5개 부문에 여우주연상을 또한 수상한다. 당시 ‘버라이어티’誌는 “메리 포핀스는 엄청난 성공이다. 줄리 앤드류스 연기는 노래만큼 자연스러웠고, 신선한 아름다움을 청량제처럼 안겨주었다.”
사진: 줄리 앤드류스 열창
필자 역시 수십 번을 본 영화 ‘Robert Wise’ 감독의 <Sound of Music>은 1964년 3월에서 9월까지 오스트리아 찰츠부르크와 런던, LA에서 촬영하며 ‘마리아’역할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고, 아름다운 가사와 음악을 만든 ‘햄머스타인과 로저스 뮤지컬’ 그 이상의 영혼을 담아냈다. 평단에서 “줄리 앤드류스가 작사가와 작곡가를 넘어 활기차고 건강한 노래를 만들었다.”라고 칭송을 받을 정도였고, 그녀 스스로도 “이 작품은 내게 크나 큰 선물이었고 특권이었다!”라고 회고한다.
사진: 줄리 앤드류스의 _사운드 오브 뮤직_
사진: 줄리 앤드류스의 _사운드 오브 뮤직 포스터
1965년 개봉, 전 세계적으로 2억 8,300만 명 관객동원으로, 총 수익 2억 8,600만 불의 수익을 올린 역대 최고의 흥행작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아카데미’ 5개 부문 수상과 ‘골든 글로브’ 수상, 미국 ‘감독 조합상’ 등을 수상, 2001년 미국의회도서관은 이 영화를 ‘문학적, 역사적, 미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영화예술작품’으로 국립영화 등록부에 영구 보존 작품으로 결정한다. 이어서 ‘조이 힐’ 감독의 영화 <하와이>와 ‘알프레도 히치코크’ 감독의 <Torn Curtain> 등에 출연하고 1967년엔 또다시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 영화 <Throughly Modern Millie>에 출연한다. 영화 작품 출연 외에도 뮤지컬 무대를 떠나지 않던 ‘줄리 앤드류스’는 1995년 <Victor/Victoria>로 오랜만에 브로드웨이와 세계 투어 공연으로 다시금 무대 위에서의 ‘줄리 앤드류스’를 환기(喚起)시키는데 성공한다.
사진: 줄리 앤드류와 크리스토퍼 플러머_사운드 오브 뮤직
그러나 영광 뒤엔 아픈 후유증도 있던가? 1997년 <Victor/Victoria> 브로드웨이 공연 말기에 갑자기 그녀 목소리가 쉬어지면서 목에 이상을 느껴, 4번에 걸친 성대결절 수술을 받은 후에 그녀 특유의 맑고 높은 음역대의 보이스를 영구적으로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집념과 신념은 다시 살아나는 법. 1998년 런던 웨스트엔드 무대에 뮤지컬 <닥터 둘리틀>에 출연, 앵무새 폴리네시아를 연기. 손상된 목소리에 제한된 옥타브 음역대로 앵무새 노래를 개성 있게 소화한다. 그리고 드디어 2000년에 엘리자베드 여왕으로부터 영국출신 아티스트로서 최고의 영예인 ‘DAME 훈장작위’를 받고, 2001년엔 ‘케네디센터 명예예술가’로 지정 받는다.
사진: 줄리 앤드류스 최근 모습
평생을 음악극에 매달려온 ‘줄리 앤드류스’는 지금도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시절을 보듬으며 세상의 어린새싹들에게 치유를 제공하고자 어린이를 위한 도서 15여 권이 넘는 책 저술을 계속 집필하고 있으며, 노래를 부르기 어려운 처지에도 애니메이션 <슈렉 프렌차이즈> 등에 목소리 연기로 참여하고, 2020년에 넷플릭스가 제작한 <브리지튼>에 ‘레이디 휘슬다운’ 목소리 연기로 참여, ‘에미상’을 받기도 했다.
첫 번째 남편 ‘Tony Walton’ 사이에 딸, 두 번째 결혼한 영화감독 ‘Blake Edwards’ 사이에 2명의 베트남 딸 입양 등 모두 9명을 거느린 할머니이고 3명의 손녀를 가진 증조할머니로서 현재 뉴욕 롱아일랜드 ‘Sag Harbor’에 딸 ‘엠마’와 함께 건립한 ‘Bay Street Theater’극장을 소유 운영하며, 평온한 말년의 삶을 살고 있다.
사진: 줄리 앤드류스 천의 얼굴.
뮤지컬 음악과 연기가 무엇인지를 평생 무대와 영상을 통해 값진 유산을 후대에게 전해준 ‘줄리 앤드류스’는 분명 대중음악극 ‘뮤지컬의 전설이며 여왕’이다. 이번 기회에 그녀를 접하며 생각한다. ‘역시 예술은 교육이 중요하다!’ 그리고 ‘뮤지컬을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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