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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힌 듯했던, 그러나 잊을 수 없는 3년의 기록 |
[미술여행]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촬영한 기록사진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진전이 열린다.
사회적 거리두기, 접촉 금지 시대...김봉규 사진전 알림 포스터(김봉규 작가 제공)
오는 7월 1일(수)부터 7월 13일(월)까지 열리는 전 한겨레신문 김봉규 사진기자의 코로나19 3년의 기록 사진전이다. 김봉규는 선별진료소와 병원, 거리와 학교, 장례 현장 등 우리가 함께 통과했던 역병의 시간을 담아냈다. 김봉규는 사진집 출간과 함께 전세계가 공포로 떨어야 했던 현대판 역병의 시대를 전시를 통해 소환한다.
21세기 우리는 접촉 금지 시대를 살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전 세계적 유행병(팬데믹) 때문이었는데, 일상적인 삶의 방식을 근본부터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날부터 2023년 5월 11일 정부의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선언이 있기까지 3년 4개월의 긴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 고통스럽고 답답한 ‘역병의 시대’를 건너야 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마스크를 구하려 약국 앞에 아침부터 긴 줄을 서야 했고, 그마저 없으면 빨아 다시 써야 했다. 입과 코를 마스크로 가린 채 우리는 서로를 경계했다. 체온계에 찍히는 ‘36.5도’라는 수치가 사람을 통제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눈총을 넘어 쫓겨나기까지 했다. 집 앞 편의점에서 라면 한 봉지와 물 한 병을 사는 일조차 조심스러웠고, 거리마다 ‘잠시 휴업’ 또는 ‘폐업’이라는 문구가 붙은 가게들이 늘어 갔다. 문을 연 식당에 들어서도 투명 아크릴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야 했으며, 여러 사람이 몰리는 대형 음식점들은 아예 식탁 사용이 금지되었다. 수많은 소상공인은 무너져갔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마치 자석의 같은 극끼리는 밀쳐내듯 서로를 밀어내며 살았다.
일상은 멈춘 듯 보였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사진: 결혼식장에서의 기념촬영도 신랑 신부 외에는 모두 마스크를 써야했다.)
일상은 멈춘 듯 보였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그 역병의 시대에도 젊은이들은 연애해야 했고, 새 생명은 태어났다. 초·중·고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아이들 없는 운동장엔 흙먼지만 날려 스산했다. 대학생들은 캠퍼스를 한 번도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채 졸업했다.
사진: 코로나 19 사태로 텅빈 운동장 학교 (1)
비극은 더 깊은 곳에 고였다. 코로나19 확진자는 가족 면회가 제한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중증 환자의 경우 가족들이 마지막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진 사망자는 병실 침상에서 곧바로 검은 시신 포대에 담겨 그 자리에서 나무관에 입관되었다. 차마 눈을 뜨고 바라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렇게 화장터로 향해야 했다. 사연 많은 장례는 이어졌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급증으로 화장장 예약이 어려웠다. 많은 유가족은 화장 일정을 잡지 못해 3일장에서 5일장으로 늘어나는 경우가 주변에 흔했다. 확진된 부모와 어린 자녀 등 가족들이 각각 다른 병실에 격리되면서,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늘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상이 아닌 일상’을 살며 버텼다.
우리는 ‘일상이 아닌 일상’을 살며 버텼다.
2022년 8월 20일부로 전 세계 누적 확진자가 6억 명을 넘어섰다. 사실상 확진자 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한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우리나라에서만 3,400만 명 넘게 확진되었고, 3만 5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진기자였던 나는 병원과 선별진료소, 거리를 오가면서 이 역병의 시대를 기록했다. 그 와중에 대통령 선거도 치러졌다. 당시 국회 출입 기자로 전국에서 벌어진 대통령 선거유세 현장을 돌아다녀야 했고. 기자실에선 진단키트의 ‘한 줄’로 확진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결국 바이러스는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확진 판정을 받고 안방에서 아내와 함께 자가 격리되는 처지가 돼서야, 비로소 기록자가 아닌 당사자가 되었다.
누군가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검사소 줄에 서야 했다.
질병관리청에서는 아침이면 생방송을 통해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매일매일 집계해 발표했다. 휴대전화는 경고음과 함께 ‘긴급재난문자’로 본인이 기거하는 동네 확진자와 그의 동선까지도 추적해 공표했다. 가족 중에 확진자가 나오면 직장과 학교에 보고해야 했고, 누군가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검사소 줄에 서야 했다.
어느덧, 망각의 동물답게 3년 넘도록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흔들어 놓았던 역병의 시간을 잊어가고 있다. 아니,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듯하다. 니체는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했지만, 동시에 망각을 단순한 타성이 아닌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억제력’이라 정의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눌러야만 비로소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살기 위해 잊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코로나19의 혼란과 고통을 빠르게 잊히는 것 역시, 어쩌면 삶을 회복하고 오늘에 집중하려는 우리 안의 강인한 생명력일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 빠른 망각은 위험하다. 역병의 시대가 드러냈던 방역의 허점,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가장 먼저 무너졌던 취약계층의 고통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살기 위해 잊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 우리는 이 역병의 시간을 기억 속 저편으로 밀어내며 살아갈 것이다.
거리의 풍경 속에 사람이 꿈틀거리며 숨 쉬고 있다.
여기 내놓은 졸작 사진들은 내가 스스로 나서서 기록 했다기보다, 말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역병의 시간을 찍어 내야 했던 기록자로서 ‘작은 의무감’의 결과물이다. 나의 사진들을 마주하면서 내 사진들의 한계를 나는 알고 있다. 비록 투박하지만, 이 사진집은 내게 다가와 어두운 카메라 상자 속에 갇혀 있던 빛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그 빛이 원래 있던 세상으로 다시 돌려보내려는 시도다. 거리의 풍경 속에 사람이 꿈틀거리며 숨 쉬고 있다. 우리가 함께 살아낸 고통의 시간이자 결코 잊혀서는 안 될 흔적들이다.
끝으로 이 책은 <눈빛> 출판사 이규상 대표의 출간 결심이 없었다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집 출판이 어려워진 현실에서도 이 기록의 가치를 믿고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신 것에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6년 6월 김봉규
사진: -코로나19 지하철 퇴근 (1)
<사진가 노트>
이 책은 우리가 함께 겪어야 했던 역병의 시간, 그 3년여의 기록을 담은 사진집이다. 책을 마무리하며 사진에 얽힌 이야기들을 후기로 남긴다.
나는 평생 사진기자로 밥벌이를 해왔지만, 일상에서는 그저 평범한 사진가였다. 출퇴근길이나 휴일 동네 공원을 산책할 때도 내 작은 가방 안에는 늘 카메라가 있었고, 특별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에세이를 쓰듯 한두 컷씩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35년 넘게 카메라와 함께 지냈다.
그 긴 시간 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나만의 사진 철학이나 이념을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 것들이 있을 법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로 보는 세상이 사뭇 다르다는 점은, 내 경험의 한계로는 말로 다 풀어내기 힘든 영역이다.
잊힌 듯했던, 그러나 잊을 수 없는 3년의 기록
2024년 12월 31일, 긴 직장 생활의 마침표를 찍고 정년퇴직했다. 수십 년간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맞이한 홀가분함도 잠시였다. 어느 날 책상 위 라디오 뉴스에서 익숙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겨울철을 맞아 지역별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조금씩 발생하고 있습니다….” 순간, ‘아! 그래. 아직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라며 무릎을 쳤다. 그 짧은 뉴스는 마치 잠겨 있던 기억의 상자를 여는 열쇠 같았다.
평범했던 일상이 하루아침에 멈춰버렸던 날들. 마스크 없이는 문밖을 나설 수 없었고, 사람들과의 만남조차 두려웠으며, 매일 아침 확진자 숫자에 가슴을 졸여야 했던 지난 3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코로나19가 창궐했던 그 시기를 어떻게 기록하고 바라보았을까. 기억을 더듬어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사진들은 어둠 속 카메라 안이나 메모리칩, 하드디스크 속에 그대로 머물고 있었다. 일단 연필과 두꺼운 공책,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화면이 큰 모니터를 준비했다. 사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그때의 느낌을 적어 내려가는 데만 한 달 보름이 넘게 걸렸다.
김봉규 기자 사진첩 속 사진
렌즈 이야기: 50mm 단렌즈와 줌렌즈
왜 흑백과 컬러가 섞이게 되었을까? 수많은 색채의 간섭에서 벗어나 피사체와의 교감에 온전히 집중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50mm 단렌즈를 체결해 항상 가지고 다녔음에도, 그 화각에 적응하는 데는 1년이 넘게 걸렸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화각이었다. 약 45도의 화각 안에 피사체를 조화롭게 배치하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정교해야 했다. 오랜 시간 광각과 망원 계열의 줌렌즈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50mm는 답답한 구석이 있었다. 실제 거리에서 내 시각에 가장 적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70~90mm 정도의 이미지 서클이었다. 50mm 렌즈는 상황에 따라 물러서기보다 한 발 더 다가서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로 이 책에 실린 흑백 사진 대부분은 50mm로 찍은 것이다.
반면 컬러 사진들은 신문 마감을 위한 취재였기에 다양한 렌즈를 사용했다. 16-35mm, 24-70mm, 80-200mm 줌렌즈부터 800mm 망원렌즈까지 동원되었다. 그러다 보니 50mm 한 가지만 사용한 흑백 사진들의 일관된 앵글에 비해, 다양한 화각을 넘나든 컬러 사진들은 다소 어수선해 보이기도 한다.
코로나19를 기록하며 마주한 가장 큰 벽은 초상권이었다. 아무리 절실한 순간이라도 초상권이 해결되지 않으면 발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별검사소와 전담병원 등 현장 대부분은 통제가 심했고 사진기자들에게 배타적이었다. 기록하고 싶으나 기록할 수 없는 상황들 속에서 셔터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를 기록하며 마주한 가장 큰 벽은 초상권이었다.(시민들이 거리두기로 멀리 떨어져 걷고있다)
미련하다와 미련(未練)
얼마 전 김진해 교수의 ‘미련’이라는 글을 읽으며, 내 사진 속에 남은 미련의 흔적을 다시금 깨달았다. 마치 내 사진을 두고 하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김 교수는 ‘미련’을 두 가지로 풀이한다. 하나는 어리석다는 뜻의 고유어 ‘미련하다’이고, 다른 하나는 단념하지 못한다는 뜻의 한자어 ‘미련(未練)’이다. 이 한자어 미련은 애초에 ‘익숙하지 못하다, 미숙하다’라는 뜻으로 숙련(熟練)에 이르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숙련되지 않으면 마음에 앙금이 남고, 그 앙금이 자꾸 떠올라 생각을 끊어낼 수 없으니 단념하지 못하는 마음은 어리석음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내 사진들은 미련했고, 나 또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평생 수백만 번 넘게 셔터를 눌러왔음에도, 나는 촬영 현장을 쉽게 떠나지 못하고 늘 주저하며 아쉬움에 서성거렸다. 미리 계산된 빛을 기다리는 상황이 아니라면, 미련을 두고 서성인다고 해서 첫 컷보다 나은 사진을 얻은 기억은 거의 없다. 혹여 더 나은 사진을 건졌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곳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 낳은 우연’이었을 테다. 돌이켜보면 여러 장을 찍을 수 있는 35mm 카메라를 들었을 때나, 단 한 장만 담아야 하는 4x5인치 대형 카메라를 썼을 때나 결과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사진들은 미련했고, 나 또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 책 00쪽 사진을 보면 안다. 지하철역 플랫폼에서 마스크를 쓴 채 작별하는 남녀의 모습이다. 촬영 동의를 구했지만 막상 찍으려니 망설여졌다. 프레임을 넓게 잡을지 더 다가갈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에게는 50mm 렌즈 하나뿐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는 사이 열차는 들어왔고 두 사람은 프레임 밖으로 사라졌다. 소중한 기회를 나의 미련함 때문에 놓친 것이다. 텅 빈 플랫폼에 서서 한참을 자책했다. 결국 나의 주저함이 미련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여전히 내 사진이 미숙하고 서툴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은 눈으로 보고 찍는 것이라지만, 내 사진은 늘 내가 본 것에 미치지 못했다. 찰나의 빛이 암상자 속에 갇히는 순간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사라진다. 그것이 사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 받아들이면서도, 그 아득한 괴리를 메우지 못한 채 나는 여전히 미련 속에서 서성인다.
코로나19라는 시련은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진가에게 닥친 공동의 과제였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팬데믹의 3년여를 기록했을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시련은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진가에게 닥친 공동의 과제였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팬데믹의 3년여를 기록했을 것이다. 막상 결과물을 내놓으려니 졸작인 것만 같아 나의 한계가 명확히 보인다. 동료 사진가들이여, 부디 그대들의 사진도 세상 밖으로 꺼내어 우리가 함께 겪은 이 기록이 온전해지길 고대한다. 함께 고민하고 어울려 조금은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 여기 실린 사진들은 풍경에 가깝다. 그 풍경 속에 겨우 숨 쉬고 있는 우리가 있다.
김봉규 사진전: 코로나19(COVID-19) 접촉금지시대 2020~2023 전시 안내
●전시명: 코로나19(COVID-19) 접촉금지시대 2020~2023
❍전시기간 : 2026년 7월 1일 ~ 7월 13일
❍전시장소 : 갤러리 인덱스
❍작가: 김봉규
❍출판기념회 및 오프닝 : 7월 1일 오후 6시
❍작가와의 대화 : 7월 4일 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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