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블랙 달리아 토막 살인사건 (사건전말)

작성자아름다운현후_|작성시간12.02.14|조회수14,504 목록 댓글 15

 

'The Black Dahlia'는 'Brian De Palma'가 연출한 작품으로 2006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는 처음 사전제작 과정에서, 'David Fincher'가 감독으로, 'Mark Wahlberg'가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예정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윌버그가 'The Italian Job II'와 스케줄이 겹치면서 떨어져 나갔고, 감독 역시 브라이언 드팔마로 바뀌었다.

  

드팔마는 촬영을 시작하기 직전인 2005년 4월, 윌버그가 연기하려했던 자리를 'Aaron Eckhart'로 메꾸었다. 그 외에 이 영화에는 'Josh Hartnett', 'Scarlett Johansson', 'Hilary Swank' 등의 배우들이 출연했고, 'Mia Kirshner'가 블랙 달리아 역을 맡았다. 

블랙 달리아는 'LA'와 'Bulgaria'에서 촬영됐고, 영화가 제작되는 동안, 'James Horner'가 책임지고 있던 영화 음악을 'Mark Isham'이 대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 되었다. 이 영화는 프랑스에서는 2006년 5월, 미국에서는 2006년 10월 3일부터 극장에서 상영된다고 한다.

영화 블랙 달리아는 1940년대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블랙 달리아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두 명의 수사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블랙 달리아는 당시 잔인하게 살해된 'Elizabeth Short'라는 이름을 가진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별명이었다.

   

  엘리자베스 쇼트는 1924년 7월 29일, 매사추세츠 주 'Hyde Park'에서 태어

났다. 'Phoebe'와 'Cleo Short'의 딸이었던 그녀에게는 미들네임이 없었으며, 어린 시절 많은 사람들에게 'Betty'로 불려졌던 그녀는, 성장하면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Beth'로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다. 

1929년, 베쓰의 아버지 클레오는 아내와 다섯 명의 딸들에게서 갑자기 사라진다. 실종 당시 클레오의 자동차는 비어있는 채 어느 다리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가 자살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클레오는 포이베에게 갑자기 떠났던 것을 사과하는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포이베는 클레오가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오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가족은 곧 매사추세츠 주 'Medford'로 이주해 살았다. 베쓰는 천식을 앓으면서 여름은 메드포드에서 겨울은 플로리다에서 보내기도 했다. 베쓰는 빨리 성장하면서 아름다운 틴에이저로 자라났다. 자기 또래보다 성숙해 보였던 베쓰는 일찍부터 순수함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갔다. 

19세 때, 베쓰는 캘리포니아 주 'Vallejo'로 가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1943년 초, 부녀는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살기도 했지만, 베쓰가 아버지 곁에 오랫동안 머무른 것은 아니었다. 클레오는 자신의 딸인 베쓰에게 게으르고 늦게까지 쏘다닌다며 못마땅했다. 

베쓰는 군인매점의 일을 얻으면서 아버지의 곁을 떠났다. 그 후 'Santa Barbara'로 이주해 살던 베쓰는 그곳에서 1943년 9월 23일, 미성년자 음주행위로 체포됐다. 지문을 찍고 그녀의 신원을 확인한 경찰은 그녀를 어머니가 있는 메드포드로 돌려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쓰는 플로리다로 갔다. 그곳에서 'Matthew M. Gordon Jr.'를 만나게 된다. 고든은 공군장교로, 당시 아시아 지역 전투에 대비해 부대배치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 후 다시 아시아로 떠났던 고든은 인도에서, 자기와 결혼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베쓰에게 보냈다. 베쓰는 고든의 청혼을 받아 들였다. 그러나 베쓰와 결혼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인 1945년 8월 10일, 고든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다. 

 

 

1946년 7월, 베쓰는 남부 캘리포니아로 되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전쟁 기간 동안 플로리다에서 알게 되었던 예전 남자친구를 만나기도 하면서 몇 주간 머물렀다. 당시 그곳에서는 'Alan Ladd'과 'Veronica Lake'가 주연을 맡은 'The Blue Dahlia'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속옷을 즐겨 입던 베쓰에게, 친구들은 'Black Dahlia'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아이일 때, 베쓰는 종종 자기 어머니와 영화를 보러 갔고, 그러면서 어린 소녀의 목표는 영화배우로 성공하는 것이 되기도 했었다. 1946년 8월, 엘리자베스 쇼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할리우드로 갔다.

 

1947년 1월 9일, 엘리자베스는 'Biltmorel' 호텔 로비에서 어느 남자와 함께 있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목격된 베쓰의 마지막 모습이었고, 그날 그 호텔을 떠난 후, 그녀는 결코 살아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1947년 1월 15일, 엘리자베스 쇼트는 로스앤젤레스 남서쪽 지역인 'Leimert Park' 내 'South Norton' 에비뉴 3800 블록의 빈 공지에서, 지나가던 사람에 의해 시체로 발견됐다.

 

 

  시체로 발견된 엘리자베스 쇼트는 발가벗겨져 있었고, 잔인하게도 그녀의 허리 부분은 동강이 나 있었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그녀의 질 속으로는 강제로 잡초가 쑤셔져 들어가 있었고, 죽은 후에 그녀는 살인자에게 소돔행위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부분으로 갈라져 발견된 그녀의 시체는 두들겨 맞아 멍이 들어 있었는데, 조사 결과 거꾸로 매달려 린치를 당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적갈색으로 물들여져 있었고, 시체가 된 그녀의 육체에 BD라고 새겨져 있다는 소문들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쇼트는 죽어서,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살았던 메드포드가 아니라,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 있는 'Mountain View'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녀의 큰언니가 'Berkeley'에 살고 있었고, 그녀가 캘리포니아를 사랑했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언제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것이 살인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살인은 익숙한 것이 되었다. 물론 잔인함에 있어서, 충분히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엘리자베스 쇼트 살인사건은 그 이상의 것이 되고 말았다. 엘리자베스 쇼트 살인 사건은 오랜 시간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를 당혹하게 하고 어리둥절케 하고 심지어는 정떨어지게까지 했다. 

 

 

  엘리자베스 쇼트는 영화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할리우드로 왔던 여자였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잔혹하게 살해당한 후, 스크린이 아닌 신문기사 등을 통해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작은 시골마을 출신으로 젊고 아름다웠던 스타지망생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사람들은 베쓰가 여러 타입의 남자들에게 구애를 시도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군인들을 좋아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베쓰는 성기에 결함이 있었으며, 그런 까닭에 표준적인 성교행위(standard intercourse)를 할 수 없는 여성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해당했을 당시, 그녀는 매우 젊었고 아름다웠기에, 할리우드에서 자주 나이트클럽을 드나들었던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여자로써의 매력을 충분히 개발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베쓰는 사망 직전까지 몇 년간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웨이트리스와 같은 여러 가지 임시직으로 일을 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돈을 벌기 위해 한 일 중 하나로, 자신의 육체를 팔았다고 생각했다. 언제인가 작성된 검찰측 보고서에서, 엘리자베스 쇼트는 창녀가 아니었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지만, 많은 작가들은 그녀가 매춘을 했다는 가능성에 많은 무게를 두면서 자신들의 글을 쓰고 있다. 어쨌든 당시 사람들은 베쓰가 온갖 남자를 상대했으며, 여자까지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그런 그녀의 고객 중에는 'Marilyn Monroe'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 

 

  

 엘리자베스 쇼트가 비참하게 살해 된 후, 기자들은 그 살인사건에 관한 글을 쓰면서 희생자의 별명인 블랙 달리아를 자주 사용했다. 그로 인해 엘리자베스 쇼트는 자신의 이름보다는 블랙 달리아라는 별명으로 더욱 알려진다. 블랙 달리아란 별명은 그녀가 살해당하기 전부터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누군가는 언론인들에 의해 사건 발생이후 만들어졌다고도 주장한다. 언론은 블랙 달리아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집중시키려 노력하면서, 선정적이고 가끔씩은 잘못된 보도까지도 내보냈다. 그런 언론의 보도로 인해, 소름끼치는 그 살인범죄는, 그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격렬한 쪽으로 맞추게 했다.  

   

블랙 달리아 살인사건은 1927년에 있었던 'Marian Parker' 사건 이후 가장 광대한 수사가 펼쳐졌다. 사건 수사는 주로 'LAPD'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다른 법률 기관 소속의 수백 명의 수사관들까지 차출되어 그 수사에 참가했다. 그 범죄의 복잡성 때문에, 담당 수사관들은 엘리자베스 쇼트를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을 살인 용의자로 취급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용의자로 의심을 받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경찰에게 조사를 받았다.

 

경찰들이 블랙 달리아 사건을 조사하는 동안, 비전문가들 중에서 자신들이 그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여성은 만약 쇼트의 손에 달걀을 쥐어주고 묻히게 한다면, 일주일이 안 되어서 살인자가 발견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쇼트의 생년월일을 알려준다면 며칠 안에 살인자의 이름을 알려주겠다고 장담했던 점성가도 있었다. 누군가는 쇼트의 오른쪽 안구를 원했다. 그 사람은 쇼트의 안구에는,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본 모습들이 남아 있을 것이고, 아마도 거기에는 살인자의 모습도 포함되었을 것이라며, 자기가 그것을 사진으로 찍겠다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쇼트가 시체로 발견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강력계 형사 두 명은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그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찰서로 돌아간 후, 그들은 한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남자는 자신이 막 살인자들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그 남자는 형사들이 식사를 했던 식당 웨이터였고, 그 남자가 말한 용의자들의 이름은 두 명의 형사였다.

위의 경우는 투철한 시민의식으로 인해 발생한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경찰을 귀찮게 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자기 집에 세 들어 살던 사람을 내쫓으려던 집주인들 중에서는,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행동들을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여성의 경우, 그녀는 누가 엘리자베스 쇼트를 죽였는지 알고 있다면서, 답례만 충분하다면 말해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 경찰 조사 결과 그녀는 신문기사 이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단지 그녀는 자신을 버린 두 명의 남자친구에게 앙갚음하기 위해, 전 남자친구들을 그 사건에 관련시켜 골탕 먹이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Joseph Dumais'라는 군인은 42일간의 휴가에서 돌아 온 후 동료에 의해 헌병에 신고 됐다. 그의 옷에 피가 묻어 있었고, 그가 블랙 달리아 살인사건에 관한 기사를 많이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뒤마를 신고한 동료는 평소 금전문제로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료였다.


엘리자베스 쇼트 사건과 같은 잔인한 살인사건과 마주쳤을 때,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 그리고 한편으로는 비참하게 살해당한 희생자를 애도하는 마음 등을 가지게 된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비율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잔인한 살인사건 등을 대하면서, 누군가는 범인이 경험한 것을 선망하고 매혹되기도 한다.


바로 조셉 뒤마가 그런 경우였다. 그는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료에 의해 밀고 되어, 끔찍한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마는 자기가 잔인한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황홀해했다. 그는 조사를 받는 동안, 자신이 살인자가 아니라고 부인하기는커녕, 자신이 쇼트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수사관들은 그에게서 특별한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그는 계속 자신이 살인자라고 주장했다. 결국 그는 정신과 의사에게 보내졌다.

뒤마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엘리자베스 쇼트를 죽인 사람은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대부분 남자들이었지만 몇 명의 여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자백은 모두 허위로 밝혀졌다. 그들은 대부분 신문기사 정도 외에는 상세한 것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살인자만이 알 수 있는, 자신들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질문 받았을 때, 그들은 상대방 수사관에게 "당신과는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겠다. 변호사를 불러 달라"고 한다던지, 자신이 칼질에 뛰어난 솜씨를 갖고 있다든지 하면서, 그런 비정상적인 능력을 과장하려 하면서 자신을 특별한 인간으로 대접받으려 하다가, 결국에는 장난이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어느 여성은 쇼트가 자신의 남자를 훔쳤기에 복수의 칼질을 했다고 했는데, 그녀 역시 특별히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결국은 자신이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자백했다.


잔인한 살인사건과 그로 인한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인자라며 나타났던 사회적인 현상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잭 더 리퍼 사건 때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어쨌거나 블랙 달리아 사건에서 자기가 엘리자베스 쇼트를 죽였다고 자백했던 사람들의 숫자는 살인 사건이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 시간이 지나가는 가운데,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도 계속 추가되면서, 대략 60여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블랙 달리아 사건의 살인자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해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몇 건의 유사한 사건들까지 발생했고, 희생자의 가슴에 블랙 달리아를 의미하는 듯한 'BD'를 루즈로 갈겨 쓴 경우도 있었다.   

  

엘리자베스 쇼트 살인사건은 유력해보이던 몇 명의 용의자들이 있었지만, 누가 엘리자베스 쇼트를 죽였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그 사건은 결국 오늘날까지도 미제로 남아있다. 살인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채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미제의 사건은 심한 억측의 문제를 남기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쇼트와 성관계를 가졌던 인물로 알려진 'George Knowlton'의 딸 'Janice Knowlton'은 'Daddy Was the Black Dahlia Killer'를 써서 발표했다. 재니스 놀튼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추리를 내놓았다. 그중에 흥미롭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건들과의 연관성이다. 사람들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는 다른 사건의 범인이 바로 엘리자베스 쇼트의 살인자라는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사건은 'Cleveland Torso' 살인사건이다. 그 사건은 'Kingsbury Run' 살인사건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클리블랜드에서 1934년과 1938년 사이에 벌어졌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1947년 블랙 달리아 사건을 수사하면서, 두 사건을 연관시키지 않았다. 'Max Allan Collins'는 블랙 달리아 사건을 클리블랜드 토르소 살인사건과 연관지어 쓴 소설 'Angel in Black'으로 2002년 'Shamus' 상을 수상했다.

 

 

 

블랙 달리아 사건과 관련되어 또 하나 자주 거론되는 사건은 1945년 시카고에서 발생했던, 여섯 살 나이로 토막 살해된 'Suzanne Degnan' 살인사건이다.

 

  그 사건은 다른 두 건의 살인사건과 함께, 'William Heirens'가 자기가 저지른 짓이라고 자백을 했다. 그러면서 하이렌스는 'Lipstick Killer'라는 별명을 얻었고, 엘리자베스 쇼트가 살해되었을 당시 그는 감옥에 있었다. 엘리자베스 쇼트 사건과 수잔 데그넌 사건의 연관성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데그넌을 죽인 사람은 하이렌스가 아니며, 잡히지 않은 진짜 범인이 쇼트를 죽였다고 주장한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쇼트의 시체가 발견된 장소는 'Degnan Boulevard'근처이기도 했다. 

 

 

1975년, 블랙 달리아 사건을 다룬 TV 영화 'Who Is the Black Dahlia'가 'Robert Lenski'에 의해 만들어졌다. 'Lucie Arnaz'가 출연했던 그 영화는 실제로 엘리자베스 쇼트와 관련된 적이 있었던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상세한 내용들이 많이 바뀐 채 아주 허구적으로 다루어졌다. 1988년 방송된 TV 수사물 'Hunter'의 한 에피소드에서도 블랙 달리아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담았다. 1947년 건설된 빌딩을 폭파하는 과정에서 허리가 잘린 사체가 발견되었고, 주인공들이 엘리자베스 쇼트 사건을 수사한 바 있는 은퇴한 수사관과 함께 한다는 내용이었다.  

 

'John Gregory Dunne'은 1977년 발표된 자신의 소설 'True Confessions'에서 블랙 달리아 사건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사용했다. 그 소설은 던과 그의 아내 'Joan Didion'이 쓴 시나리오로, 'Robert Duvall'과 'Robert De Niro' 등이 출연하면서 1981년 같은 제목의 영화 'True Confessions'로 발표됐다.  

 

네오 느와르(Neo noir) 작가 'James Ellroy'는 1987년 'The Black Dahlia'를 발표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책은 블랙 달리아 사건을 기초로 해서 쓰여졌다. 하지만, 제임스 엘로이는 그동안 허구적인 살인사건들을 주로 써왔던 작가로, 이 작품 역시 완전한 실화는 아니고 실제 사건에 많은 상상력을 석어 만든 작품이다. 브라이언 드팔마가 연출한 영화 블랙 달리아는 제임스 엘로이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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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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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쁜내강아지들 | 작성시간 12.10.03 끔직한사건인데 범인도 안잡혀 ...
  • 작성자sunny♥ | 작성시간 13.05.25 정말끔찍하네요ㅠㅠ
  • 작성자KDC익산점장 | 작성시간 14.03.12 잔인하네요.ㅠㅠ
  • 작성자송이 사랑 | 작성시간 15.03.19 살인마는 꼭 잡아 피해자의 원한을 갚아주어야 합니다.. 나쁜 늠
  • 작성자황홀해서새벽까지 | 작성시간 16.12.07 미제라니...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잘쳐먹고 잘살다가 뒤졌을 살인마놈 생각하면 내가 다 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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