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게 살해당한 Jamie penich
살인 혐의로 기소된 Kenzi Snider
2001년 3월, 대구 계명대의 외국인 교환학생 7명은 서울로 주말 여행을 떠난다.
이태원의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즐겁게 놀았던 그들중 한 여학생이
그녀의 여관 방 103호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로 발견된다. 용의자 없이 1년이 지난후 FBI는 그녀의 살해범으로 그녀의 친구인 켄지 스나이더를 체포한다.
** 이 글은 범죄 전문 채널인 Court TV의 Harriet Ryan이 서울에 특파되어 재판을 받고있는 켄지 스나이더와 경찰, 형사, 학생들, 군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펜실베니아의 피해자 가족을 인터뷰 한후, 사건을 심층분석한 기사 “ Murder in room 103” 을 정리 요약한 것입니다.이 글의 원본은
http://www.courtv.com/room_103/index.html 에 가시면 생생한 사진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메인 화면에 한국어로 “103호실 살인사건”이라는 제목과 한국어를 볼 수 있어서 다소간 신비감과 이국적 분위기마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에 보면 한국의 과학적 수사에 대한 비판과 외국인으로서 켄지가
느낀 한국에서 답답한 감정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아주 조심스럽고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비판을 합니다). 이 사건은 “신동아” 4월호(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세요)에 “동성애 살인이냐 미군보호용 희생양이냐”라는 기사도 나와있는데 똑같은 사건을 하나는 미국인 여성이, 하나는 한국인 남성이 쓴 기사로 동일한 사건을 묘사함에 있어서 그 관점이 사뭇 다름이 흥미롭습니다.
< 서울로의 주말여행 >
2001년 3월 18일, 이태원의 여관 금성장103호 실에서 한 미국 여인이 무참히
살해당했다.피해자는 21세의 제이미 페니치(Jamie Penich)로 밝혀졌다
펜실베니아 작은 마을에서 살던 제이미는 어린시절부터 다른나라와 문화에 관해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대학에서 인류학과 종교학을 복수전공하는 바쁜 가운데 파트타임 일을 하며 한국 에 갈 여비를 마련하여 2001년 3월부터 대구 계명대에서 봄학기 강의를 듣게된다.
계명대에는 19명의 외국인 교환학생이 있었으며 그들은 같은 기숙사, 같은 수업을 들으며 무척 친하게 지냈다. 주말을 맞아 8명의 학생은 서울로의 여행을 계획하지만 그중 한명은 한국인 룸메이트의 부모님의 저녁 초대로 빠지게 되고 러시아 여학생은 토요일에 합류하기로 해서 6명의 학생들 - 미국인 제이미와 켄지, 핀란드 연인, 네델란드 여학생 안네로와 남학생 제론-은 서울행 기차를
탄다. 여행을 가기전 들뜬 제이미는 부모님께 전화로 이 소식을 알렸고 부모님은 걱정을 하며 그녀에게 서울에 가면 반드시 “Holiday Inn”에 머물라고 말했지만 그들 일행이 서울역에 내려 여행자 안내소에 갔을때, 직원은 그들의 허름한 옷차림과 배낭을 보고는 이태원의 “금성장”을 추천해 주었고 예약해 주었다. 그들이 금성장에 도착했을 때 너무나 초라해서 잠시 실망도 했지만 15불이라는 싼가격은 그들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101호는 토요일에 합류한 러시아 여학생이 혼자쓰고, 핀란드 연인 한쌍이 102호, 제이미와 네델란드 여학생 안네로가 103호를,켄지와 네델란드 남학생이 104호를 쓰게 된다. 남산, 남대문시장, 이태원, 민속마을을 구경하였고 토요일 저녁엔 그들의 명절인 St. Patrick’s Day 를 맞아 이를 기념하자는 켄지의 제안으로 바에 가게 되고 그 바안에는 수 많은 주한 미군들이 있었다.
새벽 1시 45분경 미국인 여학생 켄지와 제이미를 뺀 나머지 일행은 다음날 있을 전쟁기념관 투어를 위해 먼저 여관으로 돌아온다. 바에서 미군들과 어울리던 켄지와 제이미는 새벽 3시 15분경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묶은 여관방은 2인용 침대가 하나있고 욕실이 딸린 아주 작은 방이었다.
< 103호에서 생긴일 >
다음날 아침 8시에 잠이 깬 103호의 네델란드 여학생 안네로는 바닥에 자켓으로 얼굴이 가려진 나체의 여자가 누워있자, 그 자켓을 걷어냈고 그 안에는 무참하게 짓이겨져 피범벅이 된 여자가 누워있었다. 안네로는 비명을 지르며 친구들의 방으로 달려갔다.
“ 시체가 방에 있어! 제이미는 없고! ”
출동한 경찰들에게 나머지 6명의 학생들은 시체의 얼굴이 심하게 짓이겨서 그녀가 제이미인줄은 모르겠지만 만약 그 시신의 등에 united states라는 문신이 있다면 그건 제이미라고 말했다. 그 시신의 등에는 united states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사건 현장은 너무나 잔인했다.
바닥엔 피묻은 발자국과 벽에는 수많은 핏자국. 그녀의 사인은 목뼈 골절로 인한 질식사로, 누군가 그녀의 얼굴, 머리와 목을 수차례 짓밟아서 턱과 이빨이 부서지고 귀는 찢어지고 목뼈가 부러져 있었고 그녀의 얼굴은 피묻은 자켓으로 덮어져 있었다.그녀가 나체의 상태 였지만 반항한 흔적은 전혀 없었고 강간의 흔적도 없었다. 그녀의 얼굴과 가슴에 난 피범벅의 발자국은 일반 구두나 운동화가 아닌 부츠자국이었으며 문 손잡이는 피범벅이었다.
< 6명 학생들의 증언과 목격자 2명의 증언 >
이런 끔찍한 살해현장에서 그녀와 같은 방을 쓴 여학생 안네로는 아침에 깨기전까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잠이 깰 수 없는지에 대한 의문에 그 여학생은 자신은 깊이 잠드는 타입이며 특히 그날은 과음을 했기 때문에 더더욱 깊이 잠들었다고한다.
마지막까지 제이미와 같이 있었던 켄지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이 3시 15분경 숙소로 돌아왔고 제이미는 욕조들어가 몸을 담그길 원해서 그녀를 위해 물을 틀어주고 그녀가 브라와 팬티만 입고 욕조 옆에 있는것을 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가 술이 많이 취한 제이미가 걱정이 되어 다시 103호로 가서 문을 노크해 괜찮니 하고 물어보니 괜찮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문을 열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 학생들 중에 유일하게 바로 옆방인 102호 에 있던 핀란드 여학생은 4시까지 잠을 이루지 않았는데 화가난 미국 남자의 목소리와 “but you are here now” , 신음소리, “let’s go” 후에 적어도 두명의 발자국 소리와 여성의 신음소리를 들었고 이에 자던 남자친구를 깨웠지만 그는 다른 방에서 나는 소리라며 그냥 자라고 했고 그녀는 너무 무서워서 밖에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당시 사무실에 있던 매니저의 아내는 103호 쪽에서 걸어나온 한 백인남자가 바지에 피가 묻어있 었다고 증언하였고 그녀의 증언에 따라 몽타주가 작성되었다. 또한 투숙객의 증언에 의하면 그녀는 3시 30분경 한 미국인 남자가 103호실 문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 5명의 주한 미군 용의자들 >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경찰은 미군이 개입되었다는 판단에 미 육군 범죄 수사대(CID)에 공조 수사를 요청한다.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있던 켄지의 증언으로 바에서 만나 그들과 어울렸던 미군 자쉬, 닉슨, 빈스, 마이클, K 등을 조사했지만 그들 모두 알리바이가 있었다. 켄지는 제이미가 자쉬에게 그들이 묶은 여관의 전화번호를 주었으며 그녀들이 숙소로 돌아오던중 길에서 빈스와 그 친구들을 만났으며 그들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들5명중 4명의 신발은 바로
부츠였다. 목격자의 증언으로 경찰과 CID는 주한 미군 두명을 범인으로 추정하지만 계속되는 조사는 오히려 5명 용의자들의 혐의점을 풀어주었다.
< 한국경찰의 실수 >
살인사건이 흔치 않은 한국은 범인의 자백에 의존한다. 90%의 사건이 범인의 자백으로 해결되며 미국에 비해 범죄율이 높지 않은 한국에서, 범죄현장에서 증거를 모으고 이것을 분석하는 Forensic Science는 당연히 발달되지 않았다(영화 과학 수사대 CSI를 생각해 보세요).
출동한 한국 경찰은 범죄 현장을 보존하는데 실패하고 수많은 증거를 놓친다. 심지어 출동한 형사 들이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카메라를 빌려 사건 현장을 찍었다. 게다가 방안에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범벅의 발자국에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신발을 국립과학수사 연구소로 보내지 않았다.
또한 피해자가 강간을 당한 흔적은 없지만 그녀의 옷에서 정액이 추출되었는데 한국의 국립과학 수사 연구소에서 쓰는 정액 테스트 방법은이미 미국이 그 헛점을 발견하여 쓰지 않는 시대에 뒤떨어진 방법이었다.그러나 사건을 담당한 한국 경찰과 형사들의 부지런하고 진지한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 미궁 그리고 새로운 용의자 >
사건은 고착상태(dead end)에 빠지고 만다. 한밤중 지구의 반대편에서 날아온 소식- 자신의 딸이 여관방에서 무참히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피해자 제이미의 부모는 앉아서 기다리는데 지쳤다. 딸이 돌아오기로 예정된 6월 1일 , 그들은 국회에 탄원을 했고 펜실베니아 상원의원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이 사건에 대해 협조를 요청하였다.
CID 요원인 마크 맨스필드가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사진과 증거를 면밀히 조사하던 그는 제이미의 지갑속에서 마이클 그레코라는 이름표를 발견한다. 그 역시 계명대의 교환학생으로 그들의 주말 여행에 합류하기로 했지만 같이 가지 못한 학생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과연 목격자들이 본 범인일까?
그들은 그날밤 피뭍은 바지를 입은 사람을 목격한 여관 매니저의 부인과 함께 대구로 향했다.그날밤의 사건이후 6명의 교환학생을 모두 수업을 중단 하고 한국을 떠난 상태였지만 마이클은 계속 학교에 남아있었다. 목격자는 그를 보는 순간 99% 그녀가 본 그날 밤 피묻은 바지의 주인공임을 확신한다.
게다가 마이클 그레코는 경찰의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실패하여 더더욱 혐의가 짙어진다. 그러나 그날밤 그와 함께 있던 그의 룸메이트 와 룸메이트의 부모는 그의 알리바이를 증명하여 그는 혐의를 벗게된다.
다시 사건을 면밀히 조사하던중 마크는 19세의 켄지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증언에서 많은 모순을 발견했다. 켄지의 증언에 의하면 그녀가 방을 떠날무렵 제이미가 셔츠와 바지를 벗고 브라와 팬티만 입고 욕조 옆에 서있었다고 말했지만 사건 현장의 사진에 의하면 그녀의 옷은 욕조 옆에 있었는데 그녀의 팬티는 청바지속에 있었고 청바지 밑에 브라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셔츠를 먼저 벗고나서 브라를 벗고 그위에다가 팬티와 바지를 동시에 벗어 올려놓았다는 것으로 켄지의 진술과는 다른 것이었다.
또한 켄지가 여관에 돌아오는길에 바에서 만난 미군 빈스와 빈스의 친구들을 보앗다는 증언에 빈스와 친구들은 아니라고 진술했다. 또한 그녀들이 있어던 바의 주인은 그녀들이 바를 떠난 시각은 켄지가 주장한 3시15분이 아니라 2시 30분에 떠났다고 진술했다. 빈 45분에 켄지는 무엇을 했는가?
또한 사건현장을 찍은 비디오를 보면서 욕조안에 비닐 봉지가 있음을 보고 왜 샤워를 하려는 사람이 이것을 여기에 넣었을까 의문을 가지기 시작. 경찰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이 출동했을때 욕조와 바닥은 건조 상태였으며 누눈가 샤워를 한 것은 아닌것 같다고 했다.
이에 조사관 마크는 이게 단순 증발인지를 조사하기 위해 다시 103호실로 가서 샤워기를 틀어서 욕조를 적신후 6시간 반(사망후 발견까지의 시간)을 기다린 결과 물의 반도 증발되지 않아서 그날 제이미는 샤워를 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켄지가 거짓말을 한다는 심증을 굳히게 된다.
< 켄지가 범인? >
한편 켄지는 그 사건후 한국에서의 수업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친척들과 오빠를 방문하고 네델란드에 사는 제이미가 살해당하던날 룸메이트였던 안네로를 6주간 방문한다. 수사관 마크는 이 방문의 목적이 협박이나 공모의 가능성을 가지고있다고 생각한다.
켄지는 어린시절, 공군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여러나라를 다녔고 10대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살인 사건이 나기 일년전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이 게이임을 밝힌다. 오랜 외국생활때문인지 그녀는 나이에 비해 성숙했고 친구들은 그런 그녀가 엄마 같이 행동했다고 말한다. 2002년 2월 수사관 마크는 켄지를 만나기 위해 한국계 미국인 FBI 요원 이승 과 함께 미국으로 향한다. 뚜렷한 살인동기를 찾지 못한채 그들은 혹시 켄지와 제이미가 레즈비언 관계에 있는지에 의문을 가지고 미국에 도착한다.
그들이 만난 FBI의 20년 베테랑 프로파일러 Mark Safarik에게 사건을 의뢰하자 그 또한 이 두 여학생의 레즈비언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 하였으며 제이미가 살해당한 방법인 짓밟는 방법은 아주 드문 방법으로 범인이 극도로 분노했지만 총이나 칼이 없을 때 쓰는 방법이며 주로 남성이 쓰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짓밟는 방법은 그들이 그날 만난 군인과 같은 낯선 사람이 아닌 켄지처럼 피해자와 관계성이 깊은 사람만이 쓰는 방법임을 지적한다.
게다가 살해당한 제이미의 손에 방어 무기가 없다는 것은 범인이 그녀가 신뢰하는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그리고 시신의 얼굴에 덮어진 자켓의 의미는 범인은 피해자인 제이미를 물체화 (objectify) 비인간화 (depersonalize) 하려는 것으로 피해자와 어떤 관계성도 없었던 범인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고 단지 관계성이 깊은 사람만이
자신이 저질른 짓에 대해 불쾌할 때 하는 행동이라고한다.
< 자백 >
한국계 미국인 FBI 요원 이, CID 수사관 마크, FBI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 클락은 그녀를 만날 준비를 한다. 시내의 한 모텔에서 만난 그녀에게 그들이 구사한 전략은 그녀를 편안하고 기분좋게 해주어서 자백을 유도하자는 것이었다. 켄지는 한국에서 돌아온후 악몽에 시달렸다고했다.
꿈에 상어와 기차가 보였다고 했는데 여성의 꿈에 나타난 기차는 성적인 충돌의 상징이라고 한다. 용의자에게 자백을 이끄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형사가 범인에게 그들의 범행이 정당하다고 느끼게끔 해서 유도하는것이다. 친절하고 이해심 많아 보이는 그들에게 켄지는 마음을 열었고 수사관들은 그녀의 증언의 모순을 하나씩 지적하며 우리는 너를 범인으로 의심한다고 말하자 이에 켄지는 긴 침묵후 변호사를 선임하겠다고 방을 나가버린다. 그러나 켄지는 곧 방으로 다시 돌아와 자백을 하기 시작한다.
그날밤 서울의 이태원에서 바에서 남아 놀던 그들은 새벽 3시경 숙소로 돌아와103호 실로 향했고, 룸메이트인 아네로가 자는것을 확인후 그들은 욕실로 향했다. 몇분간의 애무후에 제이미는 켄지의 바지를 벗기려고 했는데 이것은 어렸을때 켄지의 기억속에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있었으며 갑자기 게이임을 선언한 아버지가 생각나 켄지는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제이미를 때렸고 뒤로 자빠진 제이미를 욕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제이미가 계속 그녀를 노려보는것 같아서 화가난 나머지 부츠를 신은 발로 쓰러져있던 그녀의 얼굴과 목을 마구 짓밟았다고 한다.
자신이 한짓에 놀라, 피범벅이된 제이미의 얼굴을 자켓으로 덮어놓고 방으로 돌아와 잤으며 자신의 기억속에는 자신이 제이미를 그날 밤 죽인 것과 죽이지 않고 방으로 돌아온 두가지 기억이 있으며 어느것이 진실인지 몰랐지만 지금 이순간 자신이 제이미를 죽인 기억이 사실임을 확신한다고 자백했다.
사건이 한국에서 발생했으므로 “한미 범인 인도협정”에 의하면 그녀의 체포 영장은 한국에서 발부 받아야 하므로 그녀의 자백을 받아낸 수사관들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22일만인 2002년 2월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켄지는 그 협정에의해 한국에서 저질러진 범죄의 재판을 받기위해 한국으로 소환된 첫 미국인이 되었다.
그녀의 체포 소식을 들은 제이미의 부모는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딸의 장례식날 전화를 걸어 그들 부부를 위로하던 상냥한 목소리의 켄지였었다. 그러나 딸이 살해되기 일주일전 전화 통화에 서 켄지가 그녀에게 너무 엄마처럼 굴면서 잔소리를 한다고 불평을 한것을 기억하고 켄지가 예쁘고 매력적인 제이미에게 성적인 접근을 했다가 거부당하자 그런 범행을 저질렀다고 확신하게 된다.
<켄지가 범인이 아닐 가능성? >
그녀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피묻은 바지를 입은 백인을 보고 또다른 교환학생인 마이클 그라코를 범인으로 지목한 여관 매니저의 부인, 103호 근처를 얼쩡거리던 백인 남자를 본 투숙객, 문고리에 서 발견된 피(B형 남자로 판명), 제이미의 몸에서 발견된 약간의 정액, 옆방의 핀란드 여학생이 들은 화가난 남자의 목소리 등은 다른 진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피해자가 벗어놓은 옷의 사진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켄지의 처음 증언대로 제이미가 브라와 팬티 바람으로 있다가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옷을 다시 입고 문을 열고나서 그 다음에 다시 사진에서 본대로 벗었을 수도 있다.
욕조에 샤워의 흔적이 없는 이유는 범인이 (시체 곁에 발견된) 래그로 범인이 욕조의 지문과 피를 닦아서 일 수도 있다. 또한 범죄 현장이 온통 바닥이며 벽이 피범벅이 된 것에 비해 켄지의 옷에서는 피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 켄지가 입고 있던 옷은 그 전날밤 그녀가 입고있던 바로 그 옷이었다. 게다가 제이미나 스나이더가 레즈비언이란 증거도 없다.
켄지의 변호사가 증인으로 부른 거짓자백에 대한 전문가인 Richard ofshe는 수사관들이 사용한 심문전략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에 대해 불신하게 만들고 거짓 자백을 하게끔 유도했음을 지적한다. 켄지의 범행 자백에 대한 기사가 나가자 용의자중 한명이었으며 피묻은 바지를 입고 있었던 사람이라 지목당했던 교환학생 마이클 그라코는 자신의 경험을 언론에 털어놓았다.
그를 용의자로 몰아간 이름표에 관해서는 교환학생들이 필드 트립을 갈경우 항상 그것을 착용하는데 아마도 그전에 그가 그녀에게 맡긴 것이며 자신의 알리바이는 확실하며 그런 그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출동한 미국인 CID 요원들은 친절하게, 웃고 떠들고 그로 하여금 그들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만들고(미국인들 특징) 나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날 넌 서울에 있었어” 라는 말과 함께 그가 그날밤 룸메이트 부모님과의 저녁식사 후 은밀하게 서울행 기차를 탓으며 친구들이 머문 여관을 알아내 103호실에 갔으며 제이미를 죽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너는 범행당시 완전히 미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거라고 계속 추궁하여 그는 하마터면 서울에 있었다는 그들의 가상시나리오에 동의 할 뻔했다고한다. 그들은 또한 그에게 한국식으로 소주를 마시자고 제안하면서 그를 술집으로 데리고 가서 자백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다.
친절하고 나를 이해해주는 이들에게 만족을 줘야한다는 생각과, 이 사람들은 나의 친구가 아니며 나를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에 갈등하던 그는 , 켄지가 범인인지 아니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겪은 경험에 의하면 그 상황이 거짓 자백을 이끌 수 있음을 지적했다.
< 한국행, 영등포 구치소, 현장검증, 번복, 재판 >
2002년 12월, 서울행 논스탑 비행기안. 두명의 FBI 요원은 그녀의 양 옆에 앉아있었고, 그녀가 위험 인물이 아니라는 판단에 그녀의 손에 수갑은 채워져있지 않았었다. 서울에 도착한 그녀는 바로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된다. 그러나 그녀가 겪은 일들은 미국의 시스템과는 아주 달랐다.
변호사를 만나기도 전, 그녀는 한국도착 이틀만에 미국에서는 볼 수 없는 현장검증(reenactment) 를 하기 위해 이태원으로 향한다.그녀는 이 범행재연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것을 자신에게 거부할 권리가 있는지도 몰랐다. 크리스마스 쇼핑객으로 붐비던 이태원은 이런 진풍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 주위로 몰려들었고 그녀가 그날밤 갔던 인도 식당과 바를 지나 금성장 103호실에 들어가자 그녀는 평온함을 느끼면서 갑자기 자신이 제이미를 죽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장검증후 그녀는 자신의 자백이 거짓자백이었다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신동아의 기사에 의하면 그녀는 콜린파웰이 미군이 저지른 범죄를 감싸고자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기사에는 그런 언급이 없다.)
태국에서 교사를 하던 켄지의 엄마는 딸의 구속소식을 듣고 학교를 그만두고 딸을 위해 한국으로 왔다. 켄지의 어머니는 켄지가 한국에서 재판을 받는 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한국은 엄격한 법과, 용의자가 혐의를 벗기 힘든 곳이며 또한 사형방법이 약물주사가 아닌 교수형이라는 사실은 그녀 의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그러나 후에 한국의 시스템은 그녀가 우려한 것만큼은 아니였다고 말한 다).
켄지가 다녔던 교회에서 한국에서 그녀를 후원할 목사님을 수소문 해주었다.
한국의 시스템은 미국과 많이 달랐다. 그녀의 초록색 옷의 왼쪽가슴 주머니에 노란색 텍이 있었고 교도관들은 그녀의 이름대신 그곳에 쓰여진 번호로 그녀를 불렀다. 변호사는 그녀에게 붉은색 텍은 사기, 횡령범, 푸른 색은 마약사범, 노란색은 살인범임을 가르쳐 주었고 재판후 형기를 받은 사람은 회색옷,자신처럼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은 초록색옷을 입으며 그들이 재판정에 나올때 노끈 으로 허리를 묶는것은 특이했다.
또한 미국이 배심원 재판(jury trial)인 반면 한국은 판사들이 평결을 하는 paper trial이라고 했다. 몇일간의 독방감금. 옆방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의 의미를 켄지는 전혀 알 수 었었다. 몇일후 그녀는 4-5명이 모여진 그룹방으로 옮겨지고 이곳의 다른 여자 수형자에게서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를 후원하는 목사님이 보내준 한/영 성경책은 그녀들에게 통역관 역활을 했다.
한국인 수형자가 괴로울때 그것을 표현하는 성경구절 보여주었고 그녀 역시 자신의 답답하고 괴로운 심경을 표현할 수 있는 구절을 찾아 보여주었다. 감방 친구들은 그녀가 살인범인 것을 알면서도 그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았았으며 그녀도 그들에게 그들의 범죄에 대한 것은 묻지 않았다.
떨리는 심정으로 법정에 선 켄지. 그녀의 자백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범죄해결이 거의 자백에 의해 이루어 지고 자백은 너무나 일반적이라서 오히려 경찰의 강압수사를 우려해서 이에 대한 안전장치로 자백이 법정에서 받아들여지려면 그 자백이 일관되고 지속적이여야 한다는 엄격한 조항이 있었다.
또한 그 자백이 경찰이 아닌 한국 검사앞에서야 하는데 그녀는 세명의 미국 FBI요원에게 했다. 한국 검찰은 판사에게 그것을 예외로 해서 그녀의 자백을 인정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6월 19일 똑같은 넥타이를 한 네명의 판사가 등장하였고 판사의 평결을 통역사는 켄지의 귀에 속삭였다. 판사는 그들은 그녀의 자백을 기각하며 그녀를 범인으로 확정할 다른 증거가 없다며 그녀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녀는 울지 않으려 했다. 한국법정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판사를 당황케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손히 한국식 으로 몸을 숙여 인사했다. 법정에 있던 그녀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그날 켄지는 15개월의 긴 복역을 마치고 영등포 구치소를 나온다. 한국인 친구들이 권해준 대로 그녀의 어머니는 한국식 의식을 치루기 위해 두부를 준비했고 켄지는 그 두부위에 소금을 뿌려 세번 먹고 계란을 밟았다.
그 의식은 감옥으로 돌아오는것을 막아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검사는 그녀의 사건을 상급 법원에 항소했고 그들 모녀는 교회에서 제공해준 서울 외곽의 주택에 머물기 시작했다.
미국 법률회사인 “Aurora Law office”에서 그들을 위해 무료변론을 자청했다.
4개월후. 2003년 11월 서울 고등법원에서 그녀의 사건을 검토하였고 켄지와 어머니는 그 평결을 듣기위해 복잡하고 습한 지하철을 타고 법정으로 향한다.
미국의 법원과 달리 서울 고등법원은 금속탐지기도 없었으며 총을 가진 가드도 없었으며 깨끗하고 텅빈 복도에는 빠르게 조용히 다니는 직원들만이 있었으며 수형자들의 가족과 친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작고 다소간 우수운 장식들은(선홍색 벨벳 벽과 의자, 거대한 크리스탈 샨드리에)는 법정이라기 보다는 저녁 식사용 파티 장소 같았다. 켄지와 함께 평결을 기다리던 다른 수형자들은 모두 판사가 선고를 내릴 때 바닥만 응시하다가 일어나서 몸을 숙여 판사에게 인사하고 나갔다. 드디어 켄지 차례가 왔고 판사는 부드럽고 일관된 어조로 그녀의 자백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들은 그녀가 아닌 다른 남성이 범인임을 지적하였다.
켄지는 공손히 판사에게 몸을 숙여 인사하고 엄마에게 돌아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녀의 기쁨도 잠시, 한시간 후 대사관 직원은 그들에게 검사가 대법원에 항소했음을 전해주지만 대법원의 판결도 아마 같은 무죄일 것이라고 말했다.
< 모든것은 그대로였다 >
그날 저녁 그녀는 이태원에 갔다.
아무도 그녀에게 “ 네가 바로 그사람이지? ” 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그녀를 응시하는 사람도 없으며 그녀는 그저 그곳에 있는 수많은 평범한 외국인중의 하나였다. 그녀는 그들이 그날 갔던 인도 식당과 술집을 지나 금성장으로 향했다.금성장 주인은 102호 실을 청소하고 있었으며 그의 아내는 프론데스크 뒤에 있었다.103호실은 어떤 외국인이 투숙하고 있었다. 주인은 제이미의 살인사건은 불쾌하므로 이야기 하기 싫다며 “Leave it in the past”라고 말했다.
두달후, 그들 모녀에게 주어졌던 출국 금지명령이 풀려서 그들은 미국으로 돌아가 최종판결을 기다릴 수 있었다. 만약 대법원에서 그녀에게 유죄 평결을 내린다면 그녀는 교수형의 가능성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가야한다. 그녀는 지금 미네소타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묘지에서 야간근무를 하고 있다. 그녀는 가을학기 대학으로 돌아가는 희망도 가지고 있다.
한편 피해자인 제이미의 부모는 이제 어떠한 희망도 없다.
영사관 직원에게서 사실상 이 사건은 끝났다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민사소송을 준비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질 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딸의 영혼이 항상 그들 곁에 있다고 믿는다. 제이미의 방은 그녀가 한국으로 떠나던 날과 변함없이 그대로 있다. 제이미의 엄마는 딸이 한국으로 떠나던날 공항에서 건네주었던 딸의 비행 예정표를 아직도 지갑 속에 가지고 있다. 딸이 돌아오기로 한 날짜는 2001년 6월 11일 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난 이것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 지금 현재 켄지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Court Tv에서 다뤄지는 수많은 사건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모든 정황이 한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해도 의외로 범인이 아닌 경우도 많다. 난 범인이 정말 누구인지 모르겠다. 내가 범죄학 중에서도 교정을 중점적으로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누가 범인인지 판단할 수 없고, 또 그런 판단이 너무나 부담스럽다. 또한 나의 판단이 잘못되어서 무고한 사람이 옥살이를 했다면 난 그 죄책감을 견딜 수 없을것 같다. 인생을 살면 살수록 이 세상에서 가장 미스테리한건 바로 인간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Criminal mind.
그날 제이미를 그토록 무참히 죽인 범죄자의 마음, 누구의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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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켄지 스나이더는 항소심에서 무죄로 석방되어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