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5명 중 1명은 슬프거나 우울하고 매사에 의욕을 잃는 등의 우울 증세를 경험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중 약 10%는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우울 증세를 보인다. 미국 미시간 대학의 세일러 마커스 박사가 <여성건강 저널>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임신 25주 된 여성 3,47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가 넘는 여성들이 우울증 증세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과거 우울증을 겪었던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임신 중 우울증 발생 빈도가 5배 정도 높다는 사실이다.
임신부 우울증을 일으키는 요인들
임신부 우울증은 보통 임신 6개월쯤부터 시작된다. 임신 초기에는 입덧·졸음·피로 등에 의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생기기 쉽지만, 태동이 시작되면 거의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중기 이후에 생기는 우울증은 출산 후 6개월까지 지속된다. 임신을 하여 몸매가 변함에 따라 스트레스가 쌓여 식욕이 늘어나게 되고, 과다한 식욕으로 인해 살은 더욱 쪄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또한 여성호르몬이 증가하여 감정의 기복이 상당히 커져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신경질이 많아지게 된다.
순천향대 병원 산부인과 이임순 교수는 “평소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사람뿐만 아니라 밝고 낙천적이었던 사람들도 감정을 억제할 수 없는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본래부터 예민하거나 우울증 증세가 있던 사람은 증상이 악화되기가 쉽죠. 이러한 임신부 우울증은 대부분 임신 첫 3개월에 우울증의 발생 빈도가 최고에 이르고, 두 번째 3개월 동안 나아지다가 마지막 3개월에 다시 증가율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뚱뚱해진 몸매 | 많은 임신부들이 눈에 띄게 변하는 몸매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민감해진다. 임신 전에 몸매나 외모에 자신감이 컸던 여성에겐 더 큰 스트레스가 된다. 이에 더해 유방 통증이 가라앉을 만하면 곧바로 닥치는 피로감, 입덧, 심한 변비 등이 초기 임신부가 갖는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주위의 무관심 | 처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주변 사람들이 축하의 말을 해주지 않거나 관심이 시들해지면 혼자서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외로움과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또한 임신을 하면 자연히 성관계 횟수가 줄어들게 되는데, 이때 임신부는 남편이 자신에게 냉담해졌다고 느껴서 불안감과 초조감을 느낄 수 있다.
진통과 기형아 출산 공포 |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면 언제 아기가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과 진통에 대한 두려움, 기형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까지 겹쳐 우울증이 될 수 있다. 산후 조리와 산후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준비가 없으면 불안감이 더해진다.
호르몬의 변화 | 임신으로 호르몬의 양이 증가하면서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다. 평소에 밝고 낙천적이었던 사람도 감정을 억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 | 미혼모이거나 결혼 생활의 부적응, 경제적인 요인 등으로 임신을 원하지 않았는데 아기를 갖게 됐을 경우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심한 우울증을 경험하게 된다.
아들 선호주의 | 남편이 외아들이거나 장남이라서 시댁의 남아선호 경향이 짙을 때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으로 우울해질 수 있다. 심할 경우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설치고 가위에 눌리는 등 수면 장애까지 경험할 수 있다.
계속되는 우울증에서 탈출하는 법
임신 우울증은 임신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감정의 기복이 지나치게 심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히스테리 증상을 보인다면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 방치할 경우 정신건강에도 큰 문제가 되며, 당장의 태교나 앞으로의 육아 문제에도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체중 조절 | 비만은 우울증의 큰 원인이므로 체중 조절은 매우 중요하다. 체중은 임신 전 기간을 통해 10∼12㎏ 정도 느는 것이 적당하다. 건강한 태아를 위해 두 배는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고 맛있는 음식을 기분 좋게 적당량만 먹는다. 일반 여성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열량은 1,800∼2,000㎉인데, 임신 6개월까지는 150㎉, 임신 7개월 이후에는 350㎉만 더 섭취하는 것이 좋다.
가벼운 체조와 산책 | 몸이 무겁다고 집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여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힘들고 귀찮더라고 가벼운 체조나 산책을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기분 전환을 해본다. 임신 중에 운동을 하면 체중이 덜 늘어나 정서적으로 안정된다.
자신만을 위한 투자 |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런저런 잡념이 늘 수 있다. 남는 시간을 이용해 뜨개질, 십자수, 스텐실, 공예 등 평소 배우고 싶었던 취미 활동을 즐긴다. 자신만을 위해 투자한다는 생각에 자부심도 생기고 마음도 즐거워진다. 가끔씩 쇼핑하러 나가 예쁜 출산 용품을 구입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남편과의 잦은 대화 | 남편의 따뜻한 보살핌과 정성 어린 말에서 위로를 받는다면 임신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크게 줄어든다. 함께 산책이나 쇼핑도 하고 운동도 다니고 집안일을 하면서 남편과 대화를 많이 나누면 남편은 아내의 고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때 남편과 잦은 스킨십을 갖는 것도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임신·출산에 관한 공부 | 임신으로 신체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또 출산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를 미리 알고 준비하자. 그러면 자신의 몸에서 생기는 변화, 출산의 두려움에 무작정 불안해하지 않고 좀더 여유로울 수 있다. 출산 경험이 있는 친구나 친척에게서 얘기를 듣거나 병원이나 유아업체, 인터넷 육아 사이트 등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적극 활용한다.
적당히 외모 가꾸기 | 모든 것이 귀찮다고 푹 퍼져 있지 말고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신 생활을 즐긴다. 기미 낀 얼굴, 망가진 몸매, 튼살 등을 거울 속에서 볼 때마다 자신이 초라해진다면 이미 임신 우울증의 초기 단계다. 이럴 때일수록 예쁘게 화장도 하고 마사지 등으로 얼굴을 가꾸는 것이 좋다.
임신부 친구 사귀기 | 임신부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사귀는 것도 좋다. 인터넷 동호회나 가까운 곳에 사는 선배나 또래 임신부들과 만나서 자주 대화를 하거나 도움을 받고 임신부 교실에 등록해 처지가 같은 임신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면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다.
연어, 정어리 등 생선 섭취 | 최근 연어와 정어리, 청어 같은 생선기름에 들어 있는 오메가-3 지방산이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여 임신부 우울증을 예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국립알코올남용-중독연구소의 조셉 히벨른 박사팀은 임신부 1만 1,00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일주일에 생선을 평균 2∼3번 먹은 여성은 가장 적게 섭취한 여성에 비해 우울증 발생률이 절반밖에 안 됐다고 밝혔다.
태아까지 위험해지기 전에 치료를!
임신 우울증은 산후 우울증으로 진행되어 만성적·재발성 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정도가 심할 때는 의사와 상담하여 치료받아야 한다.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그대로 방치하면 자칫 조산이나 태아의 뇌 발달장애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처럼 임신부의 우울증이 심한 경우 병원에서 사용되고 있는 치료법은 주로 항우울제를 복용하거나 심리요법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임순 교수는 “임신부 우울증의 치료는 일반적인 우울증 치료와 마찬가지로 생물학적·심리학적·사회학적으로 총체적인 치료 접근이 요구됩니다. 즉 임신 중 우울증을 유발한 원인을 찾아 이에 따른 육아, 교육, 개인, 부부, 가족 및 집단 치료, 약물 치료, 광선 치료, 정기 충격요법 등을 적용합니다. 최근에는 대인정신 치료, 인지행동 치료적 접근, 통합집단 치료의 도입으로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 예일대 의대 연구진의 발표에 따르면 특히 아침 햇빛을 쬐는 광선 치료가 여성의 임신 중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임신부 16명을 대상으로 3∼5주일 동안 아침에 일어난 지 10분 이내에 하루에 한 시간씩 밝은 자외선을 쬐게 한 다음 반응을 조사한 결과 광선요법 치료 3주일 뒤에는 우울증 수준이 49% 개선됐으며, 이 중 5주간 치료받은 7명은 우울증이 59% 완화됐다고 밝혔다. 치료를 중단했을 경우 우울증 수준이 다소 높아지기는 했으나, 치료에 따른 부작용은 전혀 없었다. 연구를 주도한 댄 오런 헤이븐 박사는 아직 정확한 치료 기전을 규명하지는 못했지만, 광선 치료가 인체의 24시간 생체시계를 적절한 시기에 반응하도록 해줌으로써 항우울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신부 우울증 자가 진단법
1. 막연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
2. 불면증이 오거나 또는 지나치게 잠만 자고 싶어한다.
3. 현저하게 식욕이 떨어진다.
4. 육체적인 고통과 불쾌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5. 기억력이 쇠퇴하고 집중력이 저하된다.
6. 성욕이 상실된다.
7. 계속적인 피로와 무기력함에 시달린다.
8. 죽음에 대해 자주 떠올리게 된다.
9. 사람들과 만나기 싫어지고 대인관계에 소극적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