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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행복을 창출하는 수도인 되길 소원하며

작성자보산|작성시간13.06.06|조회수30 목록 댓글 0

행복을 창출하는 수도인 되길 소원하며


수도여자고등학교 운영위원장 황영복 목사

 


 현대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이상이 없다는 점입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도 네가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 라고 질문하였더니 '누구누구'라고 좀 얘기합니다만 고등학생만 되어도 “네가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라고 질문하면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야기 해보라고 보채어 보았더니 놀랍게도 '옛날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져서 존경할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암담하고 불안하기만 하니 미리 포기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즉, '현대는 존경하는 사람이 없고 모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의 교육현장을 말하는 것으로 '비전(이상)이 없는 교육 부재임'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던 말을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고쳤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라.”고 하던 부모들이 “이제는 유능한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를 위해 유능하며, 무엇을 위해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것입니까?

 배고프고 추운 절대 빈곤에 사는 때는 그런대로 가난과 싸우는 재미에 삽니다. 그러나 먹을 만큼 먹고 입을 만큼 입고 나니 그 때 문제가 생깁니다. 할 일이 없어 돈이 있으면 포카를 해 버리고, 조금 더 돈이 있으면 심지어 도박에 빠지고 아편쟁이가 되어 버립니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저는 진단하기를 '교육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 이라고 평가해 봅니다. 즉, '처음부터 인간 중심의 인성교육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비전(이상)이 없는 교육은 미래 없는 현재와 다름이 없다’ 하는 것입니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이 없는 교육은 소망 없는 훈련인 셈입니다. 비유하자면 공상품 하나의 생산품을 만들고, 생산 부품을 만드는 데 불과한 것입니다.

 '수도의 교육 목적은 사람을 길들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며, 숙련공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도인을 컴퓨터처럼 돌아가는 그런 인간을 지금 만들고 있다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수도인 여러분은 모두 귀한 인격과 바른 인성과 가치관을 훈련하는 공동체의 훈련과정안에 있슴을 학부모 총회장, 학교운영위원장으로 지켜보아 왔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당히 적응하고 있는 수도인이여! 여고시절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을 창출하기 위한 귀한 기회요. 행복을 창출해 내기위한 훈련 기간입니다.

 행복의 평가기준에 대한 심리학적인 비평백서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행복하고 반대로 이러한 사람은 불행하다는 것을 어디까지나 심리적으로 분석한 것입니다. 이제 제가 열가지를 소개 하겠습니다. 행복의 기준을 정하고 행복을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첫째로, 친구가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혹은 좋은 성적을 얻었을 때, 사회에 나가 사업이 성공하고 잘 될때에 마음이 흐뭇하고 샘이 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친구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인양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마음이 아주 불편해 지는가 하면,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에 속할것입니다.

 둘째로, 남을 위해서 돈을 쓸때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은 부자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구제를 한다든지, 봉사를 한다든지, 점심 한끼를 살때에 기분이 좀 떨떠름 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요,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내 자신과 혹은 자녀가 평범하게 성장했을때 여기에 감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저 건강하게 그리고 정직한 자녀로 성장해 준 것이 고마울뿐입니다. 더 이상은 크게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와 내 자녀만은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자학하거나 자녀들을 달달 볶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괴롭고 자식도 괴롭힙니다. 그는 불행한 사람이라는 얘기입니다. 너무 특별한 것을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식사할때마다 만족한 감사를 드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좋은 음식을 앞에 놓고도 짜증을 내는가 하면, 입맛이 어떻고, 음식 솜씨가 어떻고, 심지어 아무개 집 김치가 어떻고 하는 사람은 구제불능이요,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 오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령, 풀 한포기 꽃 하나가 신기하게만 느껴지고, 새 소리가 크게 들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일이 있었나?”, “무슨 새소리가 들렸나?”, “봄 여름 가을 겨울, 당연한 걸 가지고 무슨 새삼스럽게 요란을 떨고 있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감성지수가 영점이요,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이만하면 넉넉하다”, “분에 넘친다”, “족하다” 라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부자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매일같이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쟁쟁거리며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도대체가 만족이 없고, 모든 것이 불평거리인 사람은 진짜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일곱째로, 남을 비판하는 횟수보다 남을 칭찬하고 축복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남의 흉만보고, 단점이나 지적하고 비판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은 불행한 일을 창출해내는 주인공 입니다.

 여덟째로, 과거에 매이거나 후회가 없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미래 지향적으로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과거에 붙들려 오늘 꼼짝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소위 ‘내 청춘 돌려주오’를 노래삼아 살아 가는 사람은 불행하다는 얘기입니다.

 아홉째로, 불행한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많은 일에서 배신을 당했습니다. 부모로부터 애인으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계속 속기만 하고 이젠 믿음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제 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게 됩니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 “ 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병입니다. 아주 큰 병입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끝난 것입니다. 과거 때문에 현재와 미래까지 불신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열번째로, 봉사를 모르는 사람, 이것 역시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봉사의 대상이 없는 사람, 그래서 할 일이 없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 기울일 수 있는 그러한 일거리나 일의 대상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기심의 노예가 되어 자기만 위할 줄 알고, 남을 위할 줄 모르는 사람, 이 사람은 인생을 반도 못 사는 사람입니다.

 사실 기쁨이란 남에게 봉사하는 데 있는 것 아닙니까? 누군가를 위해서 내 자신을 바치기도 하고 수고도 하고 희생도 하는 바로 그 속에서 인간은 인간 최고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인데, 이 소중한 행복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봉사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내 수고의 대상이 분명하고 그를 위해서 자기를 바칠 정열이 있고, 그 수고 자체가 희열이요 그리고 영광으로 감수될 수 있을 때 이것을 행복의 극치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쪽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의 상태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행복하다면 무엇때문에 행복한 것이며, 불행하다면 무엇때문에 불행하십니까? 도대체 불행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때문에 불만족한 인생을 살아 가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본의 아니게 마음대로 되는 일도 있지만 안 되는 일로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 않았던 어려운 일들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상실로만 결과가 남지않습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서 우리는 더 소중한 것을 얻게 됩니다. 하나를 잃어 버리면서 더 큰 것을 얻습니다. 고난은 인간의 소원을 단순하게 합니다. 그리고 가치관을 바꾸어 줍니다.

 건강할 때에는 인간의 이런 것이 소중했습니다. 병들고 보니 그것은 소중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다른 것이 소중합니다.

 

 사업에 성공할 때는 소중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업에 실패하고 보니 이것들이 다 의미없는 일이요, 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그 무엇이 귀한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관과 가치관을 바꾸어 주는 것, 이것이 고난입니다. 고난은 때로 종말적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행복이 무엇인가 이것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해 줍니다. 이것이 고난이 주는 유익이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미 늦었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해도 안될꺼야!”, “나의 미래는 너무나도 암울해!”라는 불행을 산출하는 부정적인 사고는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늦었다고 포기했지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면 그 때가 가장 빠른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한한 잠재력이 있으며, 단지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장되어 있을 뿐입니다.

 

 원하는 바가 성취되지 못한다면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새로운 결단과 이상을 가지고 행복을 창출해 내는 21세기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전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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