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꽃은 워낙 아름답기 때문에 관상용으로 개발되어 널리 애용되기도 한다. 신세가 고단하여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지난 5월 만촌농원에서도 <꽃양귀비 축제>를 개최한다며 전국의 친구들을 초대하는 공지를 읽은 적이 있다. 양귀비꽃은 가느다란 줄기 위에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듯 얹혀 있는 꽃의 자태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소녀처럼 곱고 앙증맞다. 오죽 아름다우면 인도를 통해 유입된 세티게룸꽃을 보고 중국인들이 저들의 4대 미녀 중 으뜸으로 치는 양귀비로 명명했겠는가. 이하 세티게룸이란 서양 명칭은 양귀비로 통일한다.
양귀비꽃의 안쪽으로는 촘촘하게 들어선 수술들이 열매를 에워싸고 있다. 오래지 않아 꽃이 지면 줄기 끝에는 열매만 홀로 남게 된다. 속에 수천 개의 씨앗이 들어 있는 양귀비 열매의 표면을 긁으면 흰 수액이 흘러나오는데, 바로 이 수액이 양귀비가 지닌 마법이다. 이 끈끈한 수액을 모아 조제하면 용도에 따라 아편도 되고 모르핀도 되고 헤로인도 되는 것이다. 내 어릴 적 일이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큰집 뒤안에 양귀비 한 포기를 길러서 꽃이 피면 즙을 내어 아편을 조제한 뒤 잘 보관해두었다가, 가족 중 누군가 심한 통증을 일으킬 때마다 바늘로 담배씨만큼 떼내서 구급약으로 쓰곤 했었다. 나는 딱 한 번 가족이 아편을 먹는 걸 지켜본 기억이 있다. 사촌누나가 밤나들이 갔다가 뱀에 물려 돌아왔을 때, 사촌형님이 기름종이에 싸서 대들보 뒤에 꼭꼭 숨겨두었던 아편을 꺼내 숟가락에 아주 쓴낫 떼내서 미지근한 물에 개어 먹였다.
최초로 양귀비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메소포타미아의 한 평원에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메르 유적지에서 발굴된 기원전 3000년경의 석판에 양귀비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는 양귀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이로 미루어볼 때 당시 사람들도 이미 양귀비의 성분과 효능을 충분히 알고 이를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고대 파피루스에도 기원전 1600년경 양귀비를 각종 약제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기원전 1200년경에 기록된 파피루스에는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양귀비를 먹였다고 적혀 있다.
고대그리스의 신화에도 양귀비를 진정제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올림포스의 主神 제우스의 누이동생이자 아내인 데메테르는 딸 코레를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에게 납치당한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양귀비 수액을 마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도 양귀비 수액이 모든 시름을 잊게 해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그리스의 의사들도 환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양귀비 수액을 처방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고 편히 죽을 수 있었던 것도 독약에 아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 기록으로 미루어 양귀비는 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고대그리스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양에서 양귀비 사용을 가장 널리 퍼뜨린 사람은 로마제국 네로 황제의 주치의 안드로마쿠스였다. 그는 양귀비를 사용하여 서양 제약史상 최고의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던 테리아카를 제조했다. 테리아카 제조에는 60가지가 넘는 성분이 들어갔는데, 동물‧식물‧무기질의 여러 성분들이 망라되어 있다. 로마제국의 최고 현군(賢君)으로 알려져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고질적인 통증을 다스리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테리아카를 복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안드로마쿠스의 테리아카 제조법은 1908년까지 프랑스의 공식 약전(藥典)에 수록되어 있었을 만큼 서양세계에서는 오랜 기간 공인되어왔었다.
영국 의사 토머스 시트넘은 1670년 새로운 특효약 로다놈을 개발했다. 아편에 사프란‧계피‧정향가루 등을 버무려 스페인 포도주와 혼합한 로다놈은 그때까지 최고의 진정제로 사용되어온 테리아카를 제치고 고통이 심한 환자들의 진정제 및 수면제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로다놈은 이질‧구토‧콜레라 등에도 특효를 나타내는 등 점차 사용범위를 넓혀나갔다. 로다놈 제조법은 일반에 널리 공개되어 가정에서도 손쉽게 제조하여 어린이 치료에도 사용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아편의 중독성이 밝혀지지 않아 과용 또는 남용된 측면이 있었다.
중독성이 밝혀진 뒤부터 세계 각국에서 아편에 대한 통제가 엄하게 실시되고 있지만, 현제도 두 가지 형태로 아편이 사용되고 있다. 아편 켐프팅크와 코데인이다. 아편 켐프팅크는 아편가루‧아니스油‧벤조산‧장뇌油 등을 알코올에 용해시켜 제조하는데, 효과가 뛰어난 지사제로 세계 모든 병의원에서 많이 처방되고 있다. 양귀비에서 추출한 코데인은 발작적인 기침에 잘 듣는 성분으로 다른 약을 제조할 때도 널리 쓰인다. 양귀비 씨에서 추출한 기름은 중독성이 없고 그윽한 향기가 나며 산패(酸敗)하지 않기 때문에 시중에서도 유통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지중해 연안국에서만 사용되던 양귀비가 인도를 거쳐 중국에 처음 전해진 것은 11세기경이었다. 아마도 이때 그 아름다운 꽃을 처음 본 중국인들이 양귀비라는 이름을 붙여준 게 아닌가 싶다. 중국에서 양귀비 수액으로 제조한 아편이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헐썩 뒤인 18세기 초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아편에 막대한 이윤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국에서 금세 중국 판매권을 빼앗아갔는데, 프랑스 작가 자크 브로스는 ‘영국인들은 악랄한 수법으로 중국에 아편을 팔아먹었다’고 기록했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사실이다.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인도의 벵갈지방에 거대한 양귀비농장을 조성해놓고 아편을 대량 생산하여 중국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아편 중독의 폐단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청나라 황제는 아편 수입을 금지시켰지만, 영국 상인들은 부패한 중국 관리들을 매수하여 판매량을 더욱 늘려갔다. 현재 우리나라가 거대한 마약 중개국과 소비국으로 전락한 것도 모두가 부패한 관리들이 거액의 뇌물을 받고 이를 눈감아주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영국이 청나라에 판매한 아편의 양은 60㎏짜리 상자로 1729년 200개, 1792년 4000개, 1837년 4만 개 등 국가경제를 뒤흔들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이에 청나라는 1838년 홍콩항에 정박해 있는 영국 배에 불을 질러 아편 상자 2만 개를 태워버렸다. 영국은 즉각 전함을 보내 청나라를 공격했다. 제1차 아편전쟁(1839~1842)이었다. 전쟁은 영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면서 청나라는 1838년에 불태웠던 배와 아편에 대해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홍콩까지 영국에 내주면서 거대한 청나라는 종이호랑이로 알려져 서양의 여러 제국에게 각종 이권을 야금야금 빼앗기기 시작했다. 청나라는 제2차 아편전쟁(1856~1860)에서도 참패하여 아편 거래 자유화라는 조건을 수락했다. 이로써 청나라는 세계 최대 아편시장이 되어 1886년에는 18만 상자의 아편을 수입했고 아편 중독자는 1200만 명을 넘어섰다. 청나라 멸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요인이었다.
서양에서는 아편 중독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번지지 않았다. 1807년 독일 제약사 제르튀르너는 아편에 함유되어 있는 여러 가지 성분을 분석하여 그 중 잠이 오게 하는 성분을 별도로 조제하여 모르핀이라는 이름으로 환자 치료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강력한 마취제 모르핀의 발견은 19세기 서양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로 꼽히고 있다. 1851년 프랑스 외과의사 가브리엘 프라바츠가 주사기를 발명하자 모르핀은 급격하게 사용범위를 넓혀갔으며,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전쟁 때부터 부상자들을 수술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 시작했다. 모르핀은 오늘날까지 외과 수술에 긴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1895년 독일 화학자 드레즈가 모르핀에서 헤로인을 만들어냈는데,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헤로인은 이후 마약으로 널리 통용되면서 세계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책에는 헤로인의 해독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생략한다.
- 프랑스 식물학자 자크 브로스 지음 「식물의역사와 신화」 중에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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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갑 작성시간 19.11.28 양귀비가 참 좋은게 직접
체험해 보니 알게 되었다네
강원도 정선에 있을때 설사가 나서 고생을 했는데 이웃주민이 조금 구해주어 병아리 눈꼽만큼
물에 타서 마시니 입에 축이자 멈추네
강원도 있을때 내내 가지고 있었다네 -
답댓글 작성자김창현 작성시간 19.11.28 범죄를 저질렀꾸마는!
그렇게 단속한다해도 현실에는 어디선가 감출 수 있다는 이야기. -
작성자기원섭 작성시간 19.11.28 햇비농원 우리 뜰에도 양귀비가 흐드러지게 필 건데...
내년이면.... -
답댓글 작성자晩村 안휘덕 작성시간 19.11.28 우리가 심는 양귀비는 약용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고
꽃만 보기위해 개발한것이고 이 꽃은 꽃은 피지만
약으로 쓰이는 꼬투리가 맺지 않는 것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