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김영희의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한 달 전쯤의 일이다.
아내가 그동안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십 수 년 전에 타계하신 장인어른의 유품인 책 더미를 챙겨보던 중이었다.
장인어른께서 쓰신 소설과 시와 수필이 실린 문학잡지가 대부분이었으나, 그 중에 특별한 책들도 몇 권 있었다.
조수미가 쓴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라는 에세이집도 있었고, ‘어린왕자’의 생텍쥐페리가 그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 묶음인 ‘어머니에게 사랑을’이라는 책도 있었고, 부산기독교문화회에서 펴낸 ‘살기 좋은 지옥 살기 힘든 천국’이라는 책도 있었다.
그 책들은 장인어른께서 누군가로부터 선물로 받아 소장하고 계셨던 책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책 무더기 속에 나와 아내가 선물로 받은 책 한 권이 끼어 있었다.
바로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가 ‘자기가 쓴 자기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여서 쓴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라는 그 책이었다.
28년 전으로 거슬러 1992년 5월 25일에, 우리들 결혼 14주년을 기념해서 처제가 선물해준 책이었다.
처제는 그 책 첫 번째 갈피에 그 책 선물의 사연을 이렇게 적어놓고 있었다.
‘형부와 언니의 행복한 기념일을 축하드립니다. 둘째 드림’
그랬음에도 나는 그동안 그 책 선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잊고 있던 처제의 선물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콧잔등이 시큰해져야 했고, 뜨거운 눈물을 찔끔 흘려야 했다.
십 여 년 전에 세상을 뜬 그 처제의 살아생전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간장 꽃게 장 30여 마리 한보따리를 담아서는, 자기 남편은 한 마리도 안주고 내게만 싸들고 올 정도로, 형부인 나를 그렇게도 챙겨주던 처제였다.
뒤늦었지만, 그 책을 읽어야 했다.
‘인형작가 김영희. 아이 셋을 두고 사랑하던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간직한 채 살다가, 열네 살 연하의 독일 청년을 만나 독특하고 뜨거운 사랑 끝에 결혼, 그 사이에서 또 아이 둘을 낳고, 자신의 삶을 인형으로 만들며 살아가는 예술가. 드라마틱한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직접 쓴 진솔하고 뜨거운 소설 같은 인생이야기.’
책 표지에 쓴 그 짤막한 소개로, 저자가 책속에 담아낼 그 이야기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자 자신이 ‘내가 아는 김영희’라는 제목으로 맨 처음에 쓴 글에 그 대강이 담겨 있었다.
그 첫 대목이다.
김영희는 아이를 잘 낳는다. 많이 만든다.
십 년 전 서울 살 적에도 셋이 많다 싶었는데, 지금은 다섯이다.
아직도 끝내겠다는 결심은 없다.
김영희는 아이를 많이 만든다. 잘 키운다.
십 년 전 전시로도 대단히 놀랐는데, 잘 키우고 많이 만들어 그의 인형들은 더 깊어져 있다.
김영희는 전생에 무엇이었는데 사람 만드는 일에 이토록 집념인지 모른다.
그래서 낮이고 밤이고 바쁘게 산다.
한국에서도 그랬고, 독일에서도 그렇다.
김영희는 사랑에 잘 빠진다.
사별한 전 남편과도 너무나 사랑했고,
재혼한 열네 살 연하의 독일 남자와도 지극히 사랑한다.
그녀의 아이들과 인형들도 죄다 사랑이다.
김영희는 현대를 살면서 미래와 과거 속을 동시에 산다.
그녀의 작업은 전에 그 누구도 한 적이 없어 스스로가
전위(前衛)라고 말한다.
그 여자에게 가면 단어나 이론도 재구성 된다.
그래서 아방가르드 한 그녀의 작품에서 과거의 향수가 녹아 있다.
김영희는 아는 게 많다. 모르는 것은 더욱 많다.
아는 부분에 관해서는 지독히 말이 많다.
모르는 부분에 관해서는 관심조차 조용하다.
우외(右腦)와 좌뇌의 균형이 크게 기우는 사람이다.
김영희는 사람을 끈다.
어딘가 샤머니즘이라 떠올릴 얼굴과 생각과 행동으로 옭아 넣는다.
인간의 위대함과 평범함을 곧잘 뒤집어 놓는다.
평범을 끌어안고, 위대함을 휴지로 버리곤 한다.
그러면서 평범한 많은 사람들에게 흠 잡힌 것과
위대한 몇 사람의 칭찬을 서로 상쇄시킬 줄 안다.
그럴 때 문득 그녀의 사고가 별남을 안다.//
역시 별난 그녀의 삶이었다.
다음은 책의 목록이다.
1. 뮌헨의 노란 민들레 2. 긴긴 겨울 나그네 3. 누리, 누리, 봄누리 4. 눈이 작은 아이 5. 은빛 날개 6. 빨간 마술사 7. 또다시 수선화가 피다 8. 슈바빙 거리에는 젊음이 깔리고 9. 누가 이 여자를 모르시나요 10. 바람, 인연, 꽃노래 그리고 해프닝 11.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저자는 자신의 그 별난 삶을 그 11개의 장에 몽땅 담아놓고 있었다.
저자는 민들레를 좋아하는 여인인가보다 했다.
책의 시작인 첫 장의 제목을 ‘뮌헨의 노란 민들레’라고 뽑아낸 것이 그랬고, 이야기의 첫 시작을 ‘노란 민들레’ 그 다섯 자로 앞세운 것이 그랬다.
그 대목이다.
노란 민들레가 뮌헨 근교에 한없이 쏟아져 깔리고 있었다.
키니네 봉지를 쏟아 급히 주어 담으며 느끼던 노란 현기증의 어린 시절, 그 어지럼증이 나른한 봄날 속에 핑그르르 맴돌고 있었다.
지천에 핀 민들레 때문일까?
저쪽 끝에는 드물게 보는 푸른 하늘에 나풀나풀 까만 머리칼을 날리며 한국의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토마스는 내 이마를 만져주며 외로운가 물었다. 그럴까? 그 외로움이 봄날의 내 생각과 풍경을 뒤범벅시키고 있는 걸까?
뮌헨에 정착한 뒤로 바늘로 찌르는 듯한 심한 외로움을 느꼈는데 그것은 심하게 줄다리기를 하며 내 생활에 자주 침투하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아이들이 꽤 익숙한 독일말로 “토마스! 토마스! 날 잡아봐!” 외치며 뒤따라오고 있었다.
내 체구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흔들림을 느끼며 잔디에 주저앉자 “욱”하고 구역질이 났다. 끝없이 맹물을 뱃속으로부터 토해냈다.
“임신이구나!”
나는 낮게 외치며 잔디에 드러누워 버렸다. 말간 하늘에 구름이 새털처럼 흩어지고 뽀오얀 구들들은 내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또 하나의 우주를 당돌하게 품게 된 것이다. 토마스의 아이를!
그 첫 대목으로, 나는 닥종이 인형 작가인 저자가 이 책에 담고자했던 이야기들의 알파와 오메가를 다 짚을 수 있었다.
지은이 김영희는 1944년 경주에서 출생하여 1969년 홍익대 미대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와 조각을 전공하였고 1981년 독일 뮌헨으로 이주, 그곳에서 인형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가 78년 조선호텔과 79년 공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통해 선보인 그녀의 닥종이 인형들은 그 당시 어떤 작가들도 다루지 않았던 재료와 형태, 표현으로 상당한 찬사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후 독일인과 결혼, 독일로 건너가 그해 뮌헨에서 가진 개인전을 위시해서 독일 전역과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 스위스 등지에서 지금까지 60여 차례의 개인전 및 그룹전, 퍼포먼스를 가져 국내에서보다 오히려 외국에서 더 잘 알려진 작가가 되었다. 90년 조선일보 창간 70주년 행사에 초대되어 11년 만에 그녀의 작품을 우리나라에서도 선보였다. 92년 2월 현대화랑 초청으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책 표지 뒷장의 저자 소개의 글이 그랬다.
저자는 책 22쪽에서 토마스와의 첫 인연을 이렇게 풀어내고 있었다.
1980년 이었을 것이다. 그해 가을 독일문화원의 친지를 통해 한 예술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독일 청년이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오라고 하지 뭐.”
나는 거절을 못해 건성으로 대답해 버렸다.
갑자기 알려진 작가 김영희를 보려고 일주일이 멀다 하고 외국인들이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세계적인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크게 보도된 까닭이었다. 스무 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는 쉰 명이나 되는 외국인들로 북새통을 우리었다. 특히 화장실이 문제였다. 화장실 앞에 총총히 늘어선 모습은 끔찍한 희극이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우리집을 찾았나 할 정도로 수선스럽고 복잡했다. “잡지에 난 당신을 한국에서 만나니 너무 기쁘다”고 손을 잡고 수다를 떨었다. 그런 칭찬이 처음 몇 번은 즐거웠지만 드물게 보던 하얀 피부의 외국인들을 신물나게 보게 되자 외국인도 그저 그렇구나 하고 심드렁해졌다. 나는 세 아이와 얌전한 시어머니와 함께 둥지에 깃든 새처럼 살던 집이 난장판으로 변해가는 것이 점점 싫어졌다
그 무렵에 토마스가 내게 왔다.//
그렇게 엮어진 인연으로 저자는 사춘기 소녀가 되고 말았다.
그 대목이다.
그 후로 5년, 나는 맥 빠진 사춘기 소녀로 변해 버렸다. 토마스는 밤마다 국제전화로 나의 안부를 물어왔다. 1981년에 한 유럽 여행으로 나는 거듭 딴 여자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연하의 독일인 청년을 사랑하는 여인을 사별한 남편의 시집에서는 반길 리가 없었다.
심지어는 친정어머니까지 나서서 말렸다.
이야기는 그 주위로 인해서 애타는 가슴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우선 남편이 임종의 순간에 씌워놓은 굴레를 벗어나야 했다.
저자는 그 임종의 순간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었다.
그(유진아빠)는 죽을 무렵 내 손을 붙잡고 누누기 얘기하곤 했다.
“내가 남자라서 남자를 잘 알아. 남자 세계는 너희 여자 세계와는 달라. 특히 애기 같은 너에게는 실망과 상처만 올 거야. 미안해, 영희. 너는 오로지 우리 애기들 잘 키우는 엄마가 되어야 해. 내가 지하에서도 힘껏 너를 밀어줄게.”
그는 뭐라고 또 말했던가.
“형님 내 눈을 못 감겠소. 벌어 논 돈도 없고 아이 넷만 놓고 죽으니 어찌하면 좋소. 형님 철부지 영희 잘 부탁해요.”
그는 친정 오라비를 붙잡고 마지막 임종을 힘들게 했다. 아이 넷이란 나를 포함한 숫자였다. 밖에는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때문에 눈이 어지러웠다. “어떡하지...” 나는 헛소리만 중얼거렸다. 새카맣게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가 되어, 강보에 싸인 여섯 달짜리 장수를 쓰다듬으며 헛소리를 계속했다. ‘어떡하지...’라는 그 소리만 매일 되풀이 했다. 그 무서운 가을이 다섯 번 지나가고 남편이 하지 말라는 연애를 한 것이다. 제법 더워진 초여름 서울 거리를 배회하며 나는 속으로 투덜대고 있었다.
‘나 외로워서 이대로 못 살겠소. 언제까지 이 외로운 형벌을 감당해야 해요. 아이 셋이 귀중한 보배인 줄 알지만 내 외로움은 누가 밀어주오. 외로운 엄마가 애들 잘 키우기 만무하오. 내 예술가란 정식 간판을 땄지만 그 작가라는 이름이 나에게 준 것이 무엇이오! 돈이 왔습니까, 편안함이 왔습니까?’
나는 죽은 남편에게 싸우는 것처럼 덤벼댔다. 그가 살아 있는 것처럼...//
그렇게 남편과 싸워 이겨낸 저자였다.
그런 이력을 쌓은 저자였으니, 저자를 향한 주위의 야박한 시선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감당해낼 수 있었다.
단 친정어머니와의 화해가 어려웠다.
그러나 저자는 끝내 그 친정어머니의 마음까지 얻어내고야 만다.
그 대목이다.
어머니 방 문을 여니 훅 하고 시멘트냄새, 흙냄새가 섞여 풍긴다. 방을 수리하는지 벽지는 다 뜯어놓고 세간이 전부 마루로 옮겨져 있었다. 텔레비전이 그림도 없이 혼자 지직거리며 켜져 있었고 어머니는 예전처럼 모로 누워 새우잠을 자고 계셨다.
어머니였다! 그 얼굴에서 내 얼굴이 겹쳐 보였다. 나는 신식 여자로 어머니와 다르게 멋지게 살 것 같았는데, 어느덧 나도 일독에 빠진 중년이 되어 그녀의 일생과 비슷해진 것이다.
주름진 얼굴에서 그의 세월이 보였다. 그 주름살 하나에는 속깨나 썩힌 막내딸의 내력도 들어 있었다. 나는 문을 조심스레 닫고 나와 어수선한 마루 한 구석에 요를 깔고 잠을 청햇다. 얼마를 잤을까?
달빛이 휘영청했다. 푸르른 고국의 달빛. 어머니의 코고는 소리가 마루까지 들렸다. 이조 끝머리에 태어나서 온갖 신식 풍파를 다 겪고 장대 같은 아들을 몇이나 앞ㅅ우고, 삼분의 일만 남은 자손 속에 주무시는 어머니였다.
갑자기 마룻문이 벌컥 열렸다. 어머니는 그전에도 늘 그랬다. 코를 골아 깊이 잠들었나 싶은데, 어느 틈에 일어나서 일을 하는 분이었다.
어머니는 내 이불에 채여 흠칫 놀라신 모양이었다.
“어머니 저예요.”
“뭐시라꼬.”
“영희예요.”
“아이고 야야, 우째 소식도 없이 오나. 나는 무습었다. 이게 웬 물건인고 하고.”
나의 돌연한 출현에 적잖이 놀라 했다.
“니 혼자 왔나?”
“엄마가 순 한국 종자만 발들여 놓으라 그랬잖아. 그래서 빨리 못 뵙고... 힘들었어.”
“.....”
“어머니 건강은 어떠셔요?”
나는 빈말 온말 섞어가며 어머니 손을 잡고 떠들었다.
“다리는 맨날 아푸제. 어제 오늘 된 병도 아니고... 아(후란츠)는 우짜고 왔노?”
새벽녘, 아무도 듣는 이가 없어서인지 어머니 음성답지 않게 아주 낮은 소리로 물었다.
“또 물으시네., 그 아는 순 조선 종자가 아니라서 못 데리고 왔어요.”
“.....”
“즈그 아부지한테 맡기고 왔어요.”
나는 좀 빈정거리는 투였지만 이제 어머니 맘을 알 것 같았다 후란츠에 대한 소식을 붇는 것만도 나에게는 큰 영광인 것이었다.//
그렇게 한 여인의 굴국 진 인생사를 읽었다.
굴곡 졌지만, 그래도 행복한 인생사였다.
그랬기에 저자는 소설의 끝을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초록색 덧창문이 달린 바바리아 나의 집, 초록빛 사랑들이 손짓하는 그곳으로 힘찬 날개를 펴고 계속 날아갔다.//
그 끝 대목에서 나는 또 눈시울을 뜨겁게 적셔야 했다.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라고 자처하는 김영희라는 이름의 저자는 초록빛 사랑들이 손짓하는 바바리아의 자기네 집으로 날아갔지만, 오랜 세월을 병마에 시달리던 처제는 민들레 홀씨 날 듯 그동안 갇혀 있던 세상에서 벗어나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훨훨 날아 가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