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slim life, 작은 포기
「대한민국 천연발효빵은 ‘이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캐치프레이즈가 내걸린 빵집이 있다.
서초동성당 인근의 ‘김영모 빵집’이 캐치프레이즈에서 ‘이곳’이라고 지목한 바로 그 빵집이다.
그 빵집을 들렀다.
엊그제인 2020년 3월 10일 화요일 오전 10시쯤의 일로, 아내와 함께 그 인근의 ‘활기원’을 찾아 자세교정을 받고 나오는 길에, 아내가 앞서 그 빵집으로 들어가기에 나도 덩달아 그 뒤를 따랐다.
“이 집 빵이 맛있더라고요. 서현이 빵 좀 자주려고요.”
그 빵집에 들어서면서 아내가 하는 말이 그랬다.
“좋지.”
손녀 챙기는 아내의 마음이 참 아름답다싶어서, 내 그렇게 순순한 응대를 하면서 아내를 뒤따라 그 빵집으로 들어섰다.
먹음직스러운 갖가지 빵과 과자들이 수두룩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풍경이었다.
구수한 빵 냄새가 코끝 향기로 스치고 있었다.
그렇게 눈으로 즐기고 코로 즐기는 순간, 내 생각의 나래는 딴 세계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 세계에는 얄밉게 웃는 손녀 서현이 얼굴이 있었다.
보름 전쯤으로 거슬러, 서현이네가 새 집으로 이사를 하던 그날의 일이다.
맏이와 맏며느리는 이사하느라 힘든 하루였고, 나와 아내는 새 집 등기와 관련된 일을 하느라 힘든 하루였다.
다들 힘들었던 그 하루를 깔끔하게 마무리해주고 싶은 생각에, 개포동 서현이네 동네의 등심구이 집에서 이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엄마 아빠, 오늘 힘들었어. 아침부터 쭉 굶었어. 아마 등심 10인분은 먹어야 할 거야. 그거 다 할아버지가 쏘는 거야.”
서현이가 그렇게 내게 덮어씌운 날이기도 했다.
그렇게 덮어써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비록 할아버지인 내게는 그렇게 덮어씌우고 있었지만, 그래도 부모에 대한 서현이의 효심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사 도중에 서현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있었다.
왜 그러는지 눈여겨봤더니, 저만치 멀리 떨어져 가서는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는 것이었다.
상대가 누군지는 몰라도, 앉은 자리에서 전화통화를 해도 될 것을, 그리 떨어져 가는 것이 좀 희한하다 싶었다.
더 희한한 것은, 전화통화를 하다말고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서는, 실실 웃는 것이 그랬다.
한참을 그러다가 전화통화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온 서현이 얼굴에는, 아직도 좀 전의 그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누구랑 통화를 했니?”
내 그리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숙모랑 했어.”
답이 그랬다.
숙모라면 지난해 여름에 우리 막내와 결혼하면서 막내며느리로 우리 집안 식구가 된 은영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전화통화를 하면서 왜 실실 웃었니?”
이어서 내 그리 물었다.
“그건 몰라도 돼. 비밀이야.”
그렇게 답을 딱 잘라버리는 서현이었다.
그렇다고 윽박질러 답을 하게 할 수도 없었다.
아예 답 듣기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서현이이 그 비밀을 오래 가지 않았다.
그때 서현이와 통화를 했던 막내며느리인 은영이로부터 쉽게 전해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로 최근에 창궐하는 코로나19의 위기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볼 생각에서, 아내와 함께 백두대간 너머의 강릉과 속초로 1박 2일의 주말여행을 떠나기로 했고, 그 여정에 춘천에 사는 막내와 은영이를 동행하게 되었는데, 그 여정에서 자연스레 은영이가 서현이와의 그 전날의 통화를 털어놓으면서, 내 그 둘의 대화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대화라고 했다.
“숙모, 내 동생 될 애 말이야. 남자애야, 여자애야?”
“아직은 몰라.”
“어쨌든 좋아. 근데 말이야. 걔 참 불쌍하게 됐다.”
“뭐가 불쌍해?”
“덕담을 들어야 하거든. 할아버지 덕담 말이야.”
“할아버지 덕담은 다 좋은 말씀인데, 왜 그래?”
“좋은 말씀이긴 하지. 근데, 너무 길단 말이야.”
“길어도 들어야 하는 거야. 손주들 잘 되라고 하시는 말씀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30분, 아니, 한 시간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그뿐 만이 아니야. 아예 적어 오셔. 그것도 두툼하게 적어서는 나보고 읽어보라고 하시는 거야. 학교 공부도 하고 학원도 다니고 해야 하는데, 언제 읽느냔 말이야.”
“그래, 그건 좀 그렇다.”
그렇게 전화통화를 하면서, 서로 웃었다고 했다.
은영이가 털어놓는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기는 했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섭섭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 어느 주교의 무덤에 묘비명으로 새겨진 글에 대한 생각이었다.
다음은 그 글이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 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 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 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10여 년째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 독서클럽 ‘Book Tour’ 모임에서 숱하게 들은 묘비명이었다.
경향신문 편집국 부국장 겸 선임 기자 출신으로 나와 친분이 깊은 방송인 유인경도 그녀가 쓴 위즈덤하우스 출판의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만’이라는 에세이집에서도 그 묘비명을 인용했었다.
그렇게 많이 접했으면서도, 그 묘비명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나 자신의 모습이 얄밉게 웃는 손녀의 얼굴에 오버랩 되고 있었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젠 그 묘비명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됐다 싶었다.
우선 손녀에 대한 덕담부터 그만둬야 했다.
뭔가 잃는 것 같긴 했지만, 한편 홀가분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내 그렇게 작은 포기 하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