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2021년 여름에, 속셈 인생
나는 인생을 그냥 닥치는 대로 살지 않았다.
미리 속셈을 하고, 그 속셈 한 대로 살았다.
말하자면 속셈 인생이다.
내가 아내와 결혼한 것도, 곱게 쓰는 글 솜씨에, 가지런하게 정돈한 단발머리에, 목을 맨 물방울 블라우스에, 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치마를 입은 그 단정한 차림새로, 그 성품 또한 그러려니 속셈을 하고 꼬드긴 결과였고, 우리 두 아들 어릴 때 기타를 가르치고 컴퓨터를 그때그때 최고사양으로 끊임없이 바꾸어준 것도, 인터넷으로 온간 정보가 공유되고 세계가 하나로 엮이는 글로벌리즘의 세상이 다가올 것임을 내다본 속셈의 결과였고, 내 사랑하는 손녀 서현이와 손자 서율이의 이름으로 증권계좌를 마련해서 꼬박꼬박 일정 금액을 입금시켜주는 것도, 훗날 큰 부자가 되어서 이 사회에 크게 헌신을 할 수 있게끔 해주려는 할아버지인 나의 속셈의 결과였다.
또 있다.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내가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총무과장 겸 공안과장으로 근무하다가 지금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전신인 서울지방검찰청 수사과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의 일이다.
목동에서 살다가 서초동을 이사를 했다.
그것도 아파트에서 빌라로의 이사였다.
주위에서는 나의 그 이사계획을 한사코 말렸었다.
빌라에서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경우는 봤어도, 아파트에 살다가 빌라로 이사를 가는 경우는 못 봤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돈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투자의 의미에서 빌라보다는 아파트가 낫다는 것이었다.
물론 돈이 많이 있었으면, 아파트로 이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겐 그런 큰돈이 없었다.
그러니 어차피 아파트로 이사를 할 형편은 되지 않았다.
그때 내게는 두 가지의 속셈이 있었다.
하나의 속셈은 근무지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 일상이 편하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 다른 속셈은 이제 곧 결혼 적령기를 맞게 되는 두 아들의 인생을 챙겨줘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었다.
늘 그랬듯, 내 그 속셈은 적중했다.
퇴직할 때까지 편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고, 두 아들을 서초동에서 대학을 다니게 할 수 있었고, 군에도 보냈고, 결국은 맏이의 경우에는 장가까지 들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속셈이 하나 더 있었다.
훗날 그 언젠가 태어나게 될 손주가, 빌라 그 너른 거실에서 이웃 눈치 안보고 놀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 속셈이었다.
내 사랑하는 맏손녀 서현이를, 내 그 속셈대로 키웠다.
훌라후프를 돌리기도 하고, 전동차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물론 층간 소음이 문제될 수 있었다.
그것은 서초동 먹자골목에서 음식점을 하는 아래층 주인에게 일찌감치 양해를 구하고, 종종 그 집을 들러 식사를 해줌으로써 해결할 수 있었다.
그때 그 집 주인의 말이 아직도 귓전에 울리는 듯하다.
곧 이 말이었다.
“아이가 시끄러워봐야, 얼마나 시끄럽겠어요. 막 뛰어놓게 하세요. 혹 소란으로 잠 못 드는 일이 있다면, 전화를 드릴게요. 그러나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서율이가 거실 온통을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걸음마 보조기를 밀고도 다녔고, 내가 장만해준 전동자동차에 올라 다니기도 했다.
소음이 날만 했다.
누나인 서현이도 서율이를 따라다니고 저 어미 아비도 따라다니다 보니 소음이 더 크게 울렸다.
그래도 층간 소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소음의 피해가 있을 법한 아래층 1층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그저 무심히 이사를 오다보니 그런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일찌감치 층간 소음을 생각했고, 훗날 태어날 손주가 그 옛날 누나 서현이가 그랬듯, 마음 놓고 놀게끔 해주려는 속셈으로 그 아파트를 선택해서 입주한 것이었다.
역시 속셈 인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