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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능동 곱창골목에서

작성자김창현|작성시간26.06.13|조회수60 목록 댓글 0


[수필]

능동 곱창거리에서 다시 흐르는 푸른 의리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추억의 한 조각이었던 고비덕 치악산방의 기약 이후, 세월은 또 잠시 숨을 고르며 흘렀다. 한동안 소식이 뜸해 마음 한구석에 '혹여 나의 잦은 카톡이 그에게 작은 성가심이라도 되었을까' 하는 조바심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 시골 여동생이 2024년 가을에 정성껏 담아 보내준 은행주(銀杏酒)가 떠올랐다.

천식과 기침으로 고생한다던 그가 생각나 2리터 꿀단지 유리병에 가득 채운 은행주 사진을 카톡으로 건넸더니, 이내 반가운 만남의 기약이 돌아왔다.

우리가 마주한 곳은 옛 추억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중곡동 군자역 근처의

'능동 곱창거리'였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는 그동안 몸이 꽤 아파 고생을 했다며, 연락이 적조했던 것은 결코 귀찮아서가 아니었다고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미안함과 고마움의 무게만큼, 그는 불판 가득 고기를 구워 대접하며 변치 않은 정을 쏟아냈다.

막걸리 세 병이 비어가는 동안, 우리의 이야기는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1998년 회사 부도 소식을 미리 알고, 우리 둘이 뒷골목에서 속상해하며 백세주 아홉 병까지 세었던 게 내겐 가장 아련한 술의 기억이네."

나의 말에 그가 화답했다.

"상무님, 저는 화양동 사무실 시절에 새벽 1시가 넘도록 전철 밑에서 토해가면서도, 둘이서 뭔가 다정하게 이야기했던 그 밤이 아직도 선합니다.

30년 전 상무님 친구분인 이진구 氏가 백혈병으로 아프실 때 함께 혈소판 헌혈을 했던 그때나 지금이나, 제 마음속 상무님은 늘 변함없으십니다."

게다가 그의 아내 역시, 과거 내 아내가 자신을 "봄이 어머니, 봄이 어머니" 하고 정답게 불러주던 따뜻한 정을 잊지 않고 우리 부부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2년 전 교통사고로 사별한 내 친조카보다 한 살 많은 이 친구는, 이제 부모님의 유산을 훌륭히 키워냈고, 부동산 재개발 분야 전문가이자, 목수 학교에서 대목수 자격까지 따서 형의 집을 지어줄 만큼 속 깊은 재주꾼이 되어 있었다.

주말이면 직접 포크레인을 몰아 치악산방 주위에 사과나무를 심고 아내와 청량한 공기를 마시는 그의 삶은 참으로 풍요롭고 단단해 보였다.

세월은 흘러 이제 직장의 상하 관계는 역전되었다. 내가 상사가 아니라, 남을 속이지 않고도 정직하고 훌륭하게 성공한 그 멋진 인생을 내가 인생의 도반으로 모시고 사는 셈이다.

동생 같고, 조카 같고, 때로는 핏줄보다 진한 친구 같은 강 사장!

능동 곱창집의 자욱한 연기 속에서, 2024년 가을의 은행주 향기가,

그리고 고비덕의 푸른 공기가 다시금 우리 사이로 따스하게 흐르고 있었다.

정직하게 살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는 내 삶의 '1등 국민'과의 인연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ㅡ ㅡ


[시조]
능동의 밤, 다시 핀 꽃씨

1. 은근한 은행주 정(情)

성가신 조바심에 띄워 보낸 카톡 한 장

단지에 가득 채운 은행주 사진 동무 삼아

군자역 능동 거리서 마주 앉은 고마운 체취



2. 변치 않는 인연의 잔

백세주 아홉 병과 전철 밑 고단했던 밤

혈소판 나누던 의리 변함없다 웃는 얼굴

대목수 푸른 기상에 인생 도반 깊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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