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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East Of River, 꿈은 이루어지고/Hand in Hand

작성자기원섭|작성시간15.11.18|조회수77 목록 댓글 0




East Of River, 꿈은 이루어지고/Hand in Hand

 

 

6년 전으로 거슬러, 내 사랑하는 손녀 서현이가 아직 저 어미 태중에 있을 때인 2009915일의 일이다.

 

내 그날 그 태중의 손녀가 먼 훗날에 챙겨 읽기를 바라면서 한 통의 편지를 썼었다.

 

태중의 그 손녀가 아직 태명도 짓지 않을 때여서, ‘야이야라고 내 마음대로 호칭해서 그 편지를 쓰기 시작했었고, 이날의 편지는 그렇게 쓴지 네 번째의 것으로, 그 제목을 Hand in Hand이라고 했었다.

 

다음은 그날 그 편지의 전문이다.

 

야이야!

 

손주인 네가 할아버지인 내 이 편지를 받아볼 때쯤에서, 햇수를 거슬러 30여 년 전이 되는 1988년에, 대한민국 우리나라 서울에서 세계 올림픽이 열린 적이 있었다.

 

그 보다 38년 전인 1950년에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을 치른 우리나라로서는, 그 올림픽이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에 그 명성을 드높일 기회라고 생각해서, 온 국민이 그 올림픽 유치에 매달렸고, 결국은 제 24회째가 되는 그 올림픽은 우리나라 서울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나라 국토 전역에서 치러지면서, 우리 온 국민을 들뜨게 했었다.

 

기대에 걸맞게, 그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금메달 12, 은메달 10, 동메달 11개를 따서, 5위 서독을 제치고, 소련 동독 미국에 이어, 160개 참가국 가운데 세계 4위의 기록하는 쾌거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이 할아버지 또한 매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이루어내는 그 쾌거에, 혼신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야이야!

 

이 할아버지가, 온 국민에게 빤한 그 역사적 사실만을, 내 사랑하는 우리 손주에게 전해주기 위해, 오늘 이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다.

 

내 오늘 그때의 그 올림픽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내 그때 내 가슴에 따로 담았던 감동 하나를 전해주려는 것이다.

 

그 감동은 바로 노래 한 곡이다.

 

다름 아닌, 우리나라 출신의 혼성 4인조 코리아나’(Koreana)가 불렀던 노래로서, 그때 서울올림픽 공식 지정곡이었던,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라는 제목의 노래가 바로 그것이다.

 

그 노래 가사는 내가 멋진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네 작은어머니에게 띄우는 편지 속에, 따로 담아 너에게 띄운 그 첫 번째 편지에서 이미 소개해놨지만, 오늘 내 너에게 쓰는 이 편지의 중요성을 감안해서, 다시 한 번 더 소개한다.

 

하늘 높이 솟는 불/우리의 가슴 고동치게 하네./이제 모두 다 일어나/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길/나서자./손에 손잡고/벽을 넘어서/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손에 손잡고/벽을 넘어서/서로 서로 사랑하는 한 마음 되자./손잡고/아리랑~어디서나 언제나/우리의 가슴 불타게 하자/하늘 향해 팔 벌려/고요한 아침 밝혀주는 평화/누리자./손에 손잡고/벽을 넘어서/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손에 손잡고/벽을 넘어서/서로서로 사랑하는 한 마음 되자./손잡고/아리랑~

 

그 노랫말에 꿈과 사랑과 어울림이 가득 담겼다.

 

바로 그렇게 긍정적 덕목이 담긴 것으로, 나도 그 노래를 참 좋아했다.

 

코리아나가 힘찬 화음으로 부르는 그 노래를 듣다보면, 나 역시 저절로 가슴속에서 힘이 솟구치는 듯했다.

 

그리고 감격에 겨워, 노래의 리듬에 맞춰 오른손 주먹을 위로 치켜들고는,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네 애비가 지금의 네 나이쯤이었던 그 시절을 보냈다.

 

 

바로 엊그제인 2009913일 일요일의 낮 1230분 그 , 신림동 당곡 4거리 등심구이집인 신림정이라는 그 , 내 이제 영원히 잊을 수 없게 됐다.

 

네 엄마가 너를 잉태한 그 소중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온 가족 점심을 같이 하러 간 그곳에서, 네 할아버지인 내가, 네 엄마의 그 고운 손을, 내 평생 처음으로 맞잡아봤기 때문이다.

 

내가 네 엄마를 처음 대면한 것이 200699일로 지금부터 꼭 3년 전의 일이었고, 네 엄마를 우리 집안의 가장 소중한 존재인 큰며느리로 맞아들인 것도 2007129일로 벌써 2년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그동안 네 엄마 손을 내 한 번도 잡아주지 않다가, 엊그제 그날 내 처음으로 네 엄마의 오른손을 잡아준 것이다.

 

내가 그렇게 내 큰며느리인 네 엄마의 손을 잡으면서 한 말은, 딱 이 말 한마디였을 뿐이다.

 

애썼다.”

 

그런데 그때 내 마음속으로 한 말이, 따로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이 말이었다.

 

네가 내 손주를 잉태했으므로, 이제 넌 내 진정한 혈육이다.’

 

그렇게 내 진정한 혈육이 된 네 엄마와, 네 엄마가 그 뱃속에 잉태한 너의 건강을 위한답시고, 네 할머니는 네 엄마가 뭐든 실컷 찾아 먹게 하려는 뜻으로 두툼한 돈 봉투를 네 엄마의 손에 쥐어줬고, ‘신림정주인인 김창호 사장님은 네 엄마에게 푹 고아서 몸이 둘 된 며느리 보신 좀 시켜주라는 뜻으로 쇠뼈가 가득 담긴 비닐봉지를 네 할머니 손에 들려주고 있었다.

 

가득한 정들이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그 정경을 보는 내 가슴은, 마냥 뜨겁게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코리아나의 그 노래 손에 손잡고, 전혀 주저함이 없이 그냥 내 코에서 노래가 되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

 

좋은 일은 좋은 그대로 좋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그 극복의 기회가 있어서 또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이 할아버지다.

 

그러니 그 어떤 순간에도 좌절하지 말고, 그저 꿈과 사랑과 어울림만을 네 삶의 덕목으로 삼아라.

 

혹 정말 힘들 땐, 오늘의 이 할아버지의 콧노래를 기억해라.

 

네게 다가오는 삶의 그 매 순간에서, 그렇게 손에 손을 잡듯 주위와 어울리는 삶을 살기를 바라면서, 2009915일 화요일 새벽 547분에 내 네게 띄우는 그 네 번째 편지의 그 끝을 맺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손에 손잡은 부부가 있었다.

 

늘 그랬다.

 

2층 버스를 타고 네온사인으로 화려한 홍콩시내 야경을 구경하러 나갔을 때도 그랬고, 유람선 스타페리를 타고 홍콩만을 건널 때도 그랬고, 인파가 들끓는 몽콕 야시장을 누빌 때도 그랬다.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없었다.

 

몸과 몸을 맞붙이고 다니는 것으로도 부족했다싶은 듯,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옛사람들에게는 꼴사납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모습이었다.

 

우리들 일행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가이드는 잉꼬부부라고까지 하면서 그 둘의 손잡은 모습을 추켜 세워주고 있었다.

 

바로 김재국 친구 부부가 손에 손잡은 잉꼬부부의 주인공들이었다.

 

쟤네들 왜 그래?”

 

아내의 얼굴을 한 번 힐끗 바라 보며 한 말이 그랬다.

 

그러나 사실 속마음으로는 나는 언제 저리 해보나 하면서 손가락 꼽아 그 세월을 계산해보고 있었다.


아마, 다들 나와 같은 생각 아니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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