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프리카 일대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5만 년 전이었다. 이들 원시 사피엔스는 다른 종보다 특별하게 뛰어난 점도 없었고 사용하는 도구도 엇비슷했다. 이들은 지중해 동쪽의 레반트지방에서 최초로 네안데르탈인과 충돌한 결과 후퇴하고 말았다.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두번째로 무리를 지어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거쳐 유라시아 각지로 퍼져나갔다. 이들은 네안데르탈인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 먼저 터를 잡고 살던 다른 종의 인간들을 모조리 몰아냈다. 이들은 해수면이 낮아진 바다를 건너 45000년 전에는 호주에도 도착했다. 호주에서도 여지없이 호모 에렉투스를 벽지로 몰아내고 생존에 유리한 지역을 차지했다.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Aborigine)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종이 다른 호모 에렉투스다. 사진에서 보듯이 애보리진은 골격에서 호모 사피엔스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까지 활과 화살, 바늘, 기름등잔, 배 등을 발명했다. ‘바늘’ 발명이 인류 발전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얘기는 작년 가을 「왜 지금 지리학인가」에서 설명한 적이 있다. 울산 반구대암각화와 호주의 사자인간 조각 같은 수준 높은 예술작품도 이 시기에 활발하게 창작되었다. 이는 분명 사회에 계층화가 일어나 직업이 분화되었다는 증거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미 현대인 못지않은 지능‧창의력‧감수성‧상상력 등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사회학에서는 ‘인지혁명’이라고 한다. 700만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오던 인류가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까지의 짧은 기간에 이처럼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은 ‘돌연변이에 의한 우연의 산물’이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사회학에서는 그저 그 순수한 돌연변이 이후에 사피엔스 언어※로 이룩된 문명과 문화를 분석하고 연구할 뿐이다.
※ 사피엔스 언어 ; 어느 시기, 어느 지역의 특정한 언어가 아니라 현생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 한국어를 비롯한 지구상의 수천 가지 언어는 모두가 15만 년 전부터 동아프리카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사용하던 단일 언어에서 분화된 것이다.
언어는 인간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신호가 아니다. 벌이나 개미 같은 곤충은 인간이 탄생하기 오래 전부터 독특한 언어체계를 가지고 사회생활을 해왔다. 정찰 벌은 수km 떨어져 있는 곳의 주거가능지역이나 꽃밭을 정탐하고 돌아온 뒤 몸짓과 날갯짓으로 무리에게 정확한 위치와 형태를 알려준다. 목소리를 이용한 최초의 언어도 모든 유인원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동물학자들은 원숭이들의 울음소리를 녹음했다 들려주는 방식으로 그들이 사용하는 일부 언의의 뜻을 해독해냈다. 고래는 인간 못지않은 다양한 소리를 훨씬 멀리 전달할 뿐만 아니라, 해마다 또는 계절마다 유행가를 만들어 일정 해역에 퍼뜨리기도 한다. 어떤 해에는 한 곡의 유행가가 전 세계 모든 해역에서 모든 종류의 고래에 의해 오랜 기간 유행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 미국과 소련의 해군 소속 과학자들이 해저 음파탐지기술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밝혀낸 사실이다. 앵무새는 사람이 하는 말을 모두 따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공의 다양한 음향까지 흉내낸다.
그렇다면 호모 사피엔스의 언어는 무엇이 특별할까? 가장 큰 특징은 이해력의 유연성이다. 우리는 제한된 개수의 소리와 기호를 연결하여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수많은 언어를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사피엔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무한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소통할 수 있다. 사회적 동물인 사피엔스는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언어를 진화시켜왔다. 거기에 일부 선각자들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언어는 더욱 다양하게 변하고 발전했다. 즉, 언어는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인 사회성의 핵심 도구인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통용되는 수천 개의 언어는 쉬지 않고 진화를 지속하고 있다. 언어는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해주어 지도자를 선출하는 훙륭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을 선출한 유권자들만 빼고.
언어의 또 다른 역할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이다. 거짓말에서 출발한 이 특이한 능력은 각 종족의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심청전」은 거짓말이자 영향력이 큰 문화‧예술이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 전달 기능’에서 함께 출발한 신과 종교는 인간의 자유를 앗아가고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영국 철학자 A. C. 그레일링도 그의 저서 「존재의 이유」에서 ‘종교는 가장 큰 사회악이다. 종교는 인체의 암과 같은 요소다’라고 규명했다. 누군가 맨 처음 창의력을 발휘하여 기술한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엣 하샤마임 에트 하레레츠(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는 구절은 여러 작가들의 상상력이 보태지면서 한 권의 구약성서를 이뤘다.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유대교가 발원하여 차례로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배태했다. 세 종교는 오늘날 전 세계에 30억 이상의 신도를 거느리며 온갖 갈등과 분쟁을 조장하고 있다.
현생인류의 사촌인 침팬지는 ‘알파 수컷’을 중심으로 수십 마리가 무리지어 살고 있다. ‘알파 수컷’은 침팬지 무리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생물학적 용어로서, 인간사회로 치면 조폭 두목이나 김정은 같은 존재다. 무리 내의 다른 수컷이나 암컷은 ‘알파 수컷’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침팬지 무리는 함께 사냥을 하고 다른 침팬지 집단이나 치타‧개코원숭이 등에 맞서 싸운다. 도중에 무리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알파 수컷’은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먹이와 무리 내의 모든 암컷을 독점하는 것도 ‘알파 수컷’의 특권이다. 어린 수컷이 힘이 세져서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알파 수컷’과 다툴 때는 각각 다른 개체와 동맹을 맺기도 한다. 친하지 않던 개체와 동맹을 맺기 위해 몸을 비비고 털을 다듬어주는 모습은, 선거 때만 되면 상갓집 개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악수 공세를 펼치는 정치인들과 흡사하다. 목숨을 건 싸움 끝에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면 안면 몰수하고 독재자로 군림하는 모습도 이 나라 정치인들과 빼꼽았다. 침팬지 무리의 개체 수는 20~50마리가 맥시멈이다. 그 이상이 되면 ‘알파 수컷’의 영이 서지 않고 무리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침팬지는 다른 무리와 협력하지 않으며, 먹이를 두고 격렬하게 다툰다. 한 무리가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주변의 무리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한 사례도 있다.
호모 사피엔스를 포함한 초기인류의 집단생활 형태도 이와 유사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차츰 이웃의 소집단과 친교를 넓혀나갔을 것이다. 각종 유적을 분석‧연구한 결과, 원시사회의 최대 집단은 150명가량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대인류도 각종 법령과 공식서열이 없다면, 150명 규모를 넘어서는 조직과 단체가 존속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가장 효율적인 전쟁 단위도 120명 내외의 중대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이 임계치를 극복하고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와 수 억 명이 살아가는 제국을 다스릴 수 있게 된 것은 집단적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원시부족, 고대도시, 중세종교, 현대국가 등이 모두 그러하다. 로마가 거대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자신들이 처형한 일개 잡범을 ‘십자가의 영웅’으로 미화하여 다양한 종족을 통합하는 수단을 삼은 사례는 가장 성공적인 사기극이었다. 이후 기독교는 유럽 각국이 세계를 정복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무기로 활용되었다.
국가는 공통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전혀 만난 적이 없는 다수의 국민들이 혈통‧고향‧국기‧국가(國歌)와 같은 신화를 중심으로 상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현대국가의 사법체계는 법적 신화에 해당된다. 전혀 이해를 달리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동일한 사법체계의 적용을 받는다는 사실은 신화라는 용어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모두가 사피엔스의 위대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로서, 원시인들이 누군가 창안해낸 귀신의 존재를 믿고 보름달 아래서 무리지어 춤을 추기 시작할 때부터 생겨난 전통의 산물이다. 이 오랜 전통을 무시하고 국회에서 푸닥거리를 했다는 이유로 기독교인들이 그 모임을 주관한 국회의원을 떼거리로 찾아가 집단 항의한 사실은 주객이 전도된 가소로운 타란티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