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어른이 다시 오셨으면 (賊主再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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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 매우
가난하게 사는 부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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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이웃에는 큰 부잣집이 있어,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매우 호화롭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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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이 부잣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이 담장을 넘어 들어가서는
집안을 살피며 재물을
쌓아 놓은 광을 찾다가,
마침 소변이 마려워
일어난 주인 노인에게
그만 들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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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도둑은 얼른 피한답시고
담장을 넘었는데,
그것이 길가로 난 담장이 아니라
바로 가난하게 사는 이 집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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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부잣집에서는
도둑을 잡느라 종들이
등불을 켜들고 집안을 뒤지니,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다시 조용해졌는데,
부잣집 개 짖는 소리에
잠이 깬 이 가난한 집 주인이
아내를 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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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부잣집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고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어느새 잠잠해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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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집 옆 모퉁이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인기척이 나는 걸로 보아,
필시 도둑이
이리로 넘어온 게 분명하오."
그러자 아내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내일 아침 지을
쌀 한 톨도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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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방에는 막대기를 들고
아무리 휘둘러도
거리낄 물건 하나 없으니,
도둑이 들어와 본들
가져갈 게 어디 있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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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도둑이 이 집으로 넘어와서
가만히 숨어 있다가
그 대화를 듣자니
가엾기 짝이 없어,
'이 집은 도둑질을 해서 먹고 사는
나보다도 훨씬 못하구나.
내일 아침
밥 지을 쌀도 한 톨 없다니,
이거 너무 가엾구먼.'
이라고 중얼거리며,
허리에 두르고 있던 전대에서
돈 다섯 냥을 꺼내
방문 앞에 놓아두고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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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잠에서 깬 아내가
방문을 열고 나가다가
그 앞에 놓인 돈을 보고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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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그 도둑이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놓아둔 모양이라고 하여,
아내는 그 돈으로
쌀을 사다가 밥을 지어 먹었다.
이리하여 부부는
그 돈으로 수십 일을 살았는데,
또다시 양식이 떨어지자
부인은 텅 빈 쌀독을
내려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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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그 도둑어른이
다시 왕림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인의 이 말에 남편은
심히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더라 한다.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15071?category=651358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