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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바람이 불 때에>라는 만화를 보셨나요

작성자버서크|작성시간03.03.24|조회수190 목록 댓글 5
전쟁이 터졌습니다. 전세계적인 반전 시위에도 불구하고 결국 터져버렸고, 먼나라 사람들은 단기전일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생각하며 각종 신무기에 감탄하고, 완구업체의 홈페이지에서는 첫 화면에 무기류 장난감을 띄우며 매출 신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전쟁이라고 하면 버서크 역시 게임이나 책에서 본 것밖에는 실감할 수가 없지만, 문득 예전에 읽었던 어린이용 그림책이 떠오릅니다.

레이몬드 브릭스라는 영국 작가가 그린 '바람이 불때에'라는 그림책(으로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왔지만 만화입니다.)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브릭스는 '스노우맨'이라는 서정적인 애니메이션의 작가로 크리스마스때에나 애니팬들에게 조금 인식되는 작가죠..- -;;; 그림은 아기자기 파스텔톤으로 퍽이나 귀엽습니다. 제목도 얼마나 서정적입니까. <바람이 불때에>라니...

예, 이 책을 펼치면, 지미와 힐다라는 노부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소방관을 하다가 정년 퇴임하고 외딴 시골집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부부죠. '정치가들은 다 나쁜놈들'이라고 뉴스를 보며 말하지만 정작 수상 이름도 제대로 못 외우는 평범한 노인네들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시내에 나갔던 지미는 전쟁이 터질 것이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도서관의 책에서 구한 정보대로 부부는 준비를 합니다. 문짝을 뜯어 임시 방공호를 만들고, 물병에 물을 14병 담아놓고(2주일 치를 준비하라고 책에 쓰여 있어서.), 준비 품목중 땅콩 버터가 있는 것을 보고는 땅콩 버터를 별로 안좋아한다고 걱정하고....그렇게 며칠 준비하다가, 결국 핵이 터져버립니다. '펑' 하고...

약간은 공포스럽게 그날 밤을 보낸 두 사람은, 핵이 터지는 광경이 텔레비젼에 나왔을 것이라며 텔레비젼을 틉니다. 안나옵니다. 갑자기 고장이 났나 봅니다. 라디오 뉴스를 들을려고 라디오를 켭니다. 안나옵니다. 건전지가 다 닳았나봅니다. 신문도 안옵니다. 돈은 제때 냈는데 이상합니다.

물도 안나오고 비상 식량도 다 떨어져갑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얀 재 같은 것이 날아옵니다. 잔디도 다 죽고 사과나무도 죽었습니다. 비료를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시내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만 몸이 아픕니다. 구토와 복통과 설사가 너무 심합니다.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집니다. 여자는 대머리가 없다는데 이상한 일입니다. 온몸에 퍼런 반점이 생깁니다. 아마도 늙었다는 증거인 모양입니다. 혹 핵폭발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얼마 안 있어 정부에서 과학자를 보내줄 것이고 과학자가 주사를 한 대 놓아주면 다 나을 겁니다.

비가 옵니다. 세상에 빗물처럼 깨끗한게 어디 있을까요. 물이 다 떨어진 마당이라 기쁘게 받아 먹습니다. 여전히 머리가 아프군요.

어쩌면 또 폭발이 있을지 모릅니다. 두 부부는 예전 도서관에서 읽은 대로 방공호에 들어가 안전을 위해 감자자루를 머리에 뒤집어 씁니다. 문득 기도가 하고 싶어지는군요. '우리를 푸른 풀밭으로 이끄시고...'

만화는 여기서 끝나버립니다. 무력한 노부부가 불가항력적으로 무너져버리는 내용이, 작가가 증오스러울 정도로 객관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예, 이 만화 다 읽고 나니 작가가 증오스러울 정도더군요. <바람이 불때에>라는 다소 서정적인 제목은, 그 바람이 몰고오는 핵의 낙진과 방사능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컬합니다.

이 만화의 압권인 장면은 지미가 괴혈병으로 입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가운데 '언제나 스마일 스마일' 노래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그런 비참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이미 독자는 희망이 없음을 압니다.

만화가 처음 시작되는 부분은 빨강과 노랑이 섞인 따뜻한 색감으로 그려지다가 점점 회색과 파랑색이 많아지면서 그림이 괴기스러워집니다. 첫장과 마지막장을 비교해보면 뚜렷하게 알 수 있게 되는데 마지막 부분은 이 만화의 작가가 스노우맨의 작가였나 싶을 정도로 차가워지더군요.

이 만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용 그림색 시리즈 중 하나로 번역되었는데, 바보같은 짓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어린이용으로는 어휘가 너무 어려운데다가, 무엇보다 어린이용으로는 내용이 너무 잔혹합니다. 하지만 그런 바보짓 덕분에 제가 구해서 읽을 수 있었다는 건 다행이라고도 볼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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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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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aulellious | 작성시간 03.03.24 얼마전에 본 다큐멘터리인데...'게'가 하천에서 바다로 가다 둑에 가로 막혀 다 죽고. 그럼 그 게들이 낳을 알들을 모아서 인공수정 하고 방류하는 식이던데...전쟁이라도 터지면 멸종 되겠군 싶더군요. 음흠...사람도 마찮가지 인가 보네용.
  • 작성자로이드비콘 | 작성시간 03.03.24 사는것 자체가 행복이라는것이 하나의 희망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고자하는것이 철학적일수도 있지만...ㅡㅡa
  • 작성자로이드비콘 | 작성시간 03.03.24 버서크님 질문한가지 출판사에서 근무하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떠돌이별"이라는 책 없나여 거긴 -_-a 그책이 나온지는 약 8년전에 나왔고요 ㅡㅡ;작가는 일본작가이고 번역한건데 출판사는 그당시 웅진출판사였습니다. 가격은 대충 5000원정도 1년전쯤에 큼직한 서점3군데를 가봤는데 절판이라는...ㅡㅡ
  • 작성자버서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3.03.24 헝...전 중고등학생 문제집 쪽이라는...^^;;;;별로 도움이 안될듯 하네요..^^;;;
  • 작성자이현암 | 작성시간 03.03.24 아 그 게 다큐멘터리. 다 죽는건 아니지 않나요. 오르려다 실패를 하는것이지 ㅡ_-);; 사람들이 잡고. 그 사람 왈이 옛날엔 하루에 몇백마리 잡혔다는데 지금은 몇십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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