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막달레나원고

고양이와 함께 동거한 남자

작성자대모|작성시간26.06.12|조회수211 목록 댓글 0

글 ; 막달레나

2026.6.11

 

​희망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내 시선은 늘 한 곳에 머문다. 그곳에는 바람만 불어도 바스러질 것처럼 앙상한 사내, 하경주(가명, 54세) 씨가 앉아 있다. 오랜 거리 생활의 풍파가 그대로 내려앉은 그의 몸무게는 겨우 40킬로그램도 되지 않는다. 살 한 점 없이 뼈만 앙상한 그의 실루엣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편이 저릿하게 아려온다.

 

​경주 씨의 삶은 시작부터 모질었다.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고작 네 살이던 해, 그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해야 할 품인 친모에게 버려졌다. 지나가던 한 여인이 가엾은 그를 거두어 자신의 호적에 올려 키워주었지만, 그것이 따스한 가정의 시작은 아니었다. 학교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한글조차 깨치지 못했고, 어린 나이에 길거리로 내몰려 구걸하는 삶이 그의 전부가 되었다.

 

​배움이 없고 의지할 곳 없는 그를 세상은 가만두지 않았다. 악한 이들은 그의 이름 석 자를 도용해 몹쓸 짓을 저질렀고, 아무것도 모르는 경주 씨는 그들의 죗값을 대신 치르느라 교도소 차가운 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억울함과 슬픔을 달랠 길 없던 그에게 오직 술과 담배만이 유일한 친구이자 삶의 전부였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가장 바닥의 삶을 산다는 거리의 노숙인들 사이에서조차 그가 ‘가장 약한 자’로 낙인찍혀 따돌림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매서운 침뱉음과 손가락질을 피해 그가 도망치듯 기어들어 간 곳은, 버려진 어둡고 축축한 하수관이었다.

​그 좁고 캄캄한 하수관 속에서 그를 유일하게 반겨준 존재들이 있었다. 바로 길 위의 고양이들이었다. 세상에 갈 곳 없는 이들이 모여 서로의 체온을 나누던 하수관 속. 경주 씨는 고양이들을 품에 안고, 고양이들은 그의 시린 몸 위에 누워 서로의 온기로 혹독한 겨울 밤들을 버텨냈다.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사내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길 위의 작은 짐승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고양이들과 동거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경주 씨를 누군가 발견했고, 다행히 따뜻한 살핌의 손길 덕분에 우리 희망센터로 오게 된 것이 딱 1년 전의 일이다.

 

​오늘 저녁, 나는 경주 씨와 마주 앉아 조용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몇 일 전, 큰마음을 먹고 그를 치과에 데려갔던 일이 떠올랐다. 이가 다 망가져 소화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겨우 한두 숟가락 밥을 물에 말아 삼키는 그가 너무 안쓰러워서였다. 치과의사 선생님도 사정이 안타까웠는지 가능한 모든 도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비급여 본인 부담금으로 내야 하는 임플란트와 틀니 비용이 자그마치 450만 원이라는 큰 액수로 돌아왔다.

 

​내 작은 어깨가 무거워졌지만, 그보다 더 마음이 무너진 것은 경주 씨의 한마디였다.

"막달레나 님, 저는 지금도 시설에서 거지 중에 거지라고 따돌림을 당해요..."

​그 나직한 목소리에는 평생을 따라다닌 거절감과 외로움이 깊은 흉터처럼 박혀 있었다. 이곳에서조차 마음 둘 곳 없이 겉도는 그의 처지가 너무도 애달파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씹을 수 있는 새 치아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살아갈 수 있다는 아주 작은 ‘희망’, 나 같은 사람도 세상에 태어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그 따뜻한 확신이 더욱 절실해 보였다.

​"경주 씨, 치과 치료 들어가면 몸이 단단히 버텨내야 해요. 영양가 있는 것 좀 먹어야 하는데... 죽이라도 좀 드셔볼래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묻자, 그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먹을게요..." 하고 작게 대답했다.

 

​그 대답이 어찌나 고맙고 마음이 아프던지. 내일 그를 다시 만나면 따뜻하게 데워 먹일 간편식 죽을 한가득 준비해 두었다. 미음조차 넘기기 힘들 만큼 성치 않은 이와 쇠약해진 몸이지만, 이 죽 속에 담긴 내 온기가 그의 얼어붙은 영혼을 조금이나마 녹여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직이 가슴으로 기도를 올린다.

 

‘주님! 당신도 지금 이 모습을 보시며 가슴이 참 많이 아프시지요?

당신의 가장 작고 상처 입은 아들 경주 씨가 더 이상 길바닥의 돌멩이처럼 짓밟히지 않게 도와주소서.

그가 세상의 매정한 시선 대신, 당신이 저를 통해 보내는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다시 살아갈 희망을 품게 하소서.’

 

 

​내일 마주할 그의 메마른 손을 꼭 잡아주어야겠다.

그리고 속삭여줄 것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이 세상에는 당신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이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양손 가득 전복죽과 영양죽 몇 종류를 사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에는 경주씨 생각이 맴돌았다. 경주씨와 이웃들의 건강 관리를 위해 먹는 것을 따로 챙겨 드려야 할 텐데,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지속적으로 챙겨드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염려가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으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며칠 전 우리 희망센터에 오셔서 은혜로운 강의를 해주셨던 안홍기 목사님이셨다. 목사님은 대뜸 내게 계좌번호를 보내 달라고 하셨다. 무슨 일인가 싶어 깜짝 놀랐는데, 이내 목사님이 보내오신 사연을 읽으며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동이 밀려왔다.

​생각이 났다. 강의가 끝나고 희망센터에서 목사님께 강의 사례비를 드리려 했을 때, 목사님은 한사코 안 받겠다고 거절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러면 그 사례비를 소금창고에 주십시오. 좋은 일에 쓰이도록..." 하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목사님은 그때 하신 말씀을 잊지 않으시고, 그 소중한 강의비를 소금창고를 위해 쓰라며 보내주신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 귀한 호의를 덥석 받아도 되는 걸까 망설여졌다. 하지만 이내 이번만큼은 거절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이웃들의 먹거리를 계속해서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막막해하며 길을 걷던 내 마음을, 하느님께서 고스란히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내가 마음속으로 읊조리던 걱정을 들으시고, 목사님을 통해 가장 필요한 순간에 곧바로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

​‘하느님께서 다 아시고 목사님을 통해 이렇게 채워주시는구나.’

​하느님의 예비하심과 사랑을 느끼며, 내 마음속의 걱정과 망설임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목사님의 깊은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목사님, 거절하지 않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오늘 제 길동무가 되어 만나주신 예수님을 위해 가장 귀하게 사용하겠습니다.”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오늘도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며 이웃의 따뜻한 손길로 찾아와 주신 하느님, 참 감사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