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강론

가해_연중10주간 화요일_짠맛

작성자안셀모신부|작성시간26.06.09|조회수39 목록 댓글 0

가해_연중10주간 화요일_짠맛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습니다.

“물질로서 유혹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깨끗한 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내 하느님의 수난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제맛을 내는 소금이 된다는 것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찬양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묵상해 보게 됩니다. 우리 신앙인에게서 짠맛을 잃어버리지 않는 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쉽게, 무엇에 병합하거나 타협하는 것을 멀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참 기쁨을 잃어버리거나, 다른 것을 그 위에 놓으려는 것도 말해볼 수 있습니다.

 

수난과 죽음, 부활와 영원한 삶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생애를 말할 때, 그 시작은 수난입니다. 그분은 공생활을 준비하시면서도, 시작인 광야에서 세 가지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독서는 엘리야 예언자가 사렙타의 과부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신약 시대에 이 만남을 예수님께서는 직접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서 성경을 봉독하셨을 때입니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하고 말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어떠한 예언자도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의 예언자가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화가 잔뜩 났습니다.

 

시돈 지방은 이방인 지역이었고, 하느님의 은총이 선택된 민족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내려졌다는 사실이 화가났던 까닭입니다. 그들의 편협한 믿음은 나아가 예수님을 절벽 벼랑까지 끌고 가 떨어뜨리려고도 했습니다.

 

편협한 이기주의나, 배타적인 자기중심적 사고를 경계하는 것은 또한 우리가 복음의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에서도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르고, 심지어는 원수라 여겨지는 이에게도 하느님의 자비가 내려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복음의 빛은 내가 보고 싶을 때에만 꺼내어 보는 등불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쪼잔하게 만드려는 것은 그분을 내 안에 가두려고 하는 욕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셨고, 보여주셨던 짠맛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수난이라면, 모두가 싫어할 수 있는 그 일을 기꺼이 내 일처럼 여기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도 아주 훌륭한 복음일 것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