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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가해_연중11주간 월요일_방식

작성자안셀모신부|작성시간26.06.15|조회수37 목록 댓글 0

가해_연중11주간 월요일_방식

 

독서의 아합 임금이 참 못됐습니다. 임금이란 자가 신하의 땅을 갖고 싶어하는 것도 우습지만, 아내를 꾀어내 결국 신하를 죽이고 땅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저마다 소유한 땅이 곧 자신을 보여주는 표시였습니다. 자신이 어디에 속해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땅을 팔아 넘기는 것은 곧 자신의 본모습을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자와 권력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땅을 빼앗을 권리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아합 임금의 아내 이제벨은 종교와 정의를 조작하여 자기 남편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신하 나봇을 죽이고, 그의 땅을 빼앗습니다.

 

예언자는 이러한 가난한 이의 권리를 두둔하며, 불의한 상황을 고발함으로써 그들의 편을 들어주는 역할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철저히 아합 임금이나, 이제벨이 행했던 수법과는 다릅니다. 만약 그들이 보여준 방식 그대로 되갚으려 했다면,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술에 취해 지하철에서 한껏 소동을 피우던 어떤 장년을 두고 대치중인 경찰이 뉴스에 나온적이 있습니다. 옆에서 물끄러미 상황을 지켜보던 한 청년이 다가갑니다. 경찰을 도와 주취자를 제압하리라 생각했던 찰나, 곧바로 다가갔던 청년은 말없이 주취자를 부드럽게 안아주었습니다. 고함을 치며 분노를 터뜨리던 사람은 돌연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그 청년을 끌어안고 오열했습니다. 대치중이던 경찰도, 주변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멈추어 그 상황을 지켜보게 만들었습니다.

 

‘취했으니 말 다했지’, ‘빨리 잡아갔으면 좋겠다’. ‘괜히 나한테 피해가 올까’ 싶어 피했던 많은 이들 가운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다 있을까? 싶었습니다. 행동으로 옮겨 위로했던 순간도 특별했지만, 주취자를 바라보면서 가엾은 마음, 안타까움, 슬픔과 걱정으로 무기력한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었던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받은 대로 되갚아 주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세상에서

의로운 한 사람의 선행은,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고 살아가는 예언자입니다.

하느님의 방식으로 사랑을 보여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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