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외래문화의 자기화 과정
우리가 전통적이라고 인식하는 사상과 문화도 사실은 오래 전에는 외래 문화로서 들어와 그 이전의 전통문화와 융합하여 새로 전통문화가 된 것이다. 주자학사상과 유교문화는 지금 우리에겐 전통사상과 전통문화이지만 오륙백 년 전에는 최신의 외래사상,외래문화로서 수용되었다. 기존의 불교 중심의 전통문화와 갈등을 벌이고 그것을 포섭, 극복하는 과정을 밟아 조선후기에 와서 전통문화의 핵심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의 전통사상과 문화는 끊임없이 외래사상과 문화를 받아들여 변화한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종상들이 그러했듯이 밖으로부터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고 전통사상과 문화를 시대 흐름에 맞추어 급속히 변화시켜 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 문화을 수용하는 능력은 전통문화의 수준이나 역량에 의해 좌우된다. 전통문화의 수준이 높다면 외래 문화도 쉽게 수용될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유럽으로부터 서양문화를 받아들였던 수많은 나라들이 현재 우리보다 서양화에 뒤진 것은 대개 이런 이유 때문이다.
3)전통문화의 개성창출
조선의 외래문화 수용은 국가적 지원아래 적극적으로 추진 되었다. 고려말 세계제국 원나라의 서울 대도에 충선왕이 만권당을 설치하여 고려의 학자들이 중국 최고의 학자들과 직접 만나 선진 학문과 문화를 직수입하도록 했던 방식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세종대왕은 집현전이라는 학문연구기관을 설치하여 중국 고전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를 진행시킴으로써 외래 문화를 조직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정조대왕이 규장각을 설치하여 이런 방식을 계승하였다. 이런 조직적 활동을 통하여 우리 전통문화는 외래문화 수용에 효율성을 발휘 하였고 국제적 수준과 세련성을 갖추면서도 개정적인 문화 창출의 기반을 확보해 갔던 것이다.
사림의 조선성리학-세종대 이후 중국의 선진문화는 물론 그핵심의 주자성리학을 받아들였던 조선의 사림학자들은 김시습, 서경덕,이언적, 퇴계 이황을 단계에 이르면 중국주자학의 전체 체계를 완전히 이해 하게 되며 그뒤을 이어 율곡 이이의 단계에서는 주자성리학에서 조선 현실에 적합한 내용을 선택하여 조선식의 요약본을 만들었으며 (사서율곡언해)처럼 유학의 기본경전을 우리말로 번역 (언해) 하여 주자학의 대중화를 위한 기반을 조성함으로써 이른바 조선성리학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경화사족의 진경문화-영,정조시대에는 서울 경기 지역을 생활권으로 하는 경화사족 이 대두하여 문화예술의 발전을 절정에 올려놓에 된다. 겸재정선의 진경산수화, 사천 이병연의 진경시,원교 이광사의 동국진체로 대표되는 조선 교유의 진경문화는 이시기 경화사족들의 산물 이였다.
외래문화의 주체적 수용-뛰어난 학문군주였던 정조대왕은 세종대왕이 그러했둣이 규장각이란 학문연구기관을 설치하여 선진문화의 수용을 지휘하게 된다. 정조시대는 군주가 휘하에 진보적 학자들을 거느려 그들과 함께 전통문화의 한계를 공감하여 그 극복을 모색하면서 외래문화의 수용을 통해 혁신을 시도한 시기였다.
새로운 시대의 역사적 과제-일방적 수용과 모방의 단계에서 벗어나 독자적 개성을 창출함으로써 선진화를 달성해야 하고 이웃한 여러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국가적 자주성을 확보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외래 선진문화를 수용하여 개성적 전통문화를 창출하고 강대국의 영향력 속에서도 그에 흡수되지 않고 자주성을 유지해 온 우리의 수천 년 역사적 경험이 새삼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시점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