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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국사찰] 미국한국불교계 최대 사찰 LA 관음사 (1)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06.04.26|조회수892 목록 댓글 0

             미국한국불교계 최대 사찰 LA 관음사 (1)

 

     

                                                      2006년 현재 관음사 전경

미주에서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있는 LA근교에는 한국 사찰들이 20여개가 넘는다. 달마사가 맨 처음 간판을 달았으며 두 번째는 관음사로 1974년 3월에 지금은 오렌지 카운티에서 개인 사업을 하며 정혜사 이사장으로 있는 정정달 법사 1주)에 의해 시작이 되었다. 스님이었던 정정달 법사가 공개적으로 부처님께 승복을 받치고 환계하고 결혼을 함에 따라 관음사 주지가 공석이 되어 신도들이 조계종 총무원에 요청하여 조계종 총무원의 주지 임명장을 들고 1975년 주지에 취임한 이래 관음사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현재 관음사는 옥스퍼드와 3가가 만나는 한인타운에 있다. 20여개의 LA지역 한인사찰들이 대부분 주택을 개조해서 법회를 하는 실정인 현실에서 최근 한국전통 법당에 단청작업을 마친 달마사와 더불어 총 34,500 스퀘어 피트의 관음사는 한국사찰을 대표하고 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도안스님

 

오늘날의 관음사가 있기 까지에는 현 주지 도안스님을 비롯하여 최 보현화 보살, 김 금락화 보살, 조 기순 보살 등 여러 보살님등과 퍼시픽 식품회사 김종성거사를 비롯한 전직 신도회장등 많은 거사들의 숨은 공로가 크다. 기독교 국가인 한인사회도 기독교 영향력이 매우 큰 여건속에서 종단차원의 지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대부분 스님들이 언어장애를 겪으면서 한 개의 사찰을 설립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관음사도 현재의 큰 건물을 가진 대형 사찰로 성장하기 까지에는 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주지 도안스님은 세탁소에서 파타임으로 일을 한 적도 있고 신도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최,김,조 보살님등은 육체적 노동뿐만 아니라 웰페어를 받은 돈을 모아  관음사 재정에 힘을 보탰다. 미국에 한국사찰들이 개원하여 성장하는 과정이 대개 그러하듯이 관음사도 근거지인 공간확보 즉 법당을 마련하기 위하여 신도들의 기부금과 서화 전시회등으로 모은 돈을 가지고 조그만 건물을 구입했다.

 

여기에서 몇 년 법회를 계속하는 동안 신도가 증가하여 법당, 식당 등 공간이 비좁아 좀더 큰 장소로 이사해야 할  즈음에 이 건물가격이 크게 올라 이 건물을 팔고  새로운 건물구입에 필요한 돈을 조달하기 위해 많은 신도들이 백방으로 노력하여 미 본토 한국불교계에서는 가장 큰 건물인 현 건물 다운페이 할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현 건물을 1986년 구입하였다. 이렇게 관음사가 성장하는 동안 주지 도안스님은 파타임으로 세탁소에서 일을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하였다. 필자가 관음사에 맨 처음 방문한 것은  1987년 이었다. 그 후 뉴욕에서 L.A에 갈때마다 관음사에 때로는 2-3일 길게는 20여일을 지내는 동안 여러 가지 관점에서 관음사를 관찰하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주지 도안스님의 행동이었다. 스님의 움직임은 그대로 이 큰 사찰의 모든 것과 직결되었다. 하루 종일 동분서주 그것이었다. 크고 작은 모든 행사의 준비와 사무처리, 그리고 일요일에는 그 바쁜 시간에 신도들 픽업을 위해 손수 벤을 운정하였다.

 

      

                                                                        관음사 행사장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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