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밖의 한국사찰 >
중부 지역 한국불교 중심 사찰
시카고 불타사
글 | 김형근(본지 발행인)
시카고와 불교의 인연
본지에서는 미국 불교의 시작을 보스톤 콩고드 지역에 있는 초월주의자들의 기관지에 법화경이 소개된 1844년으로 본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인터넷이 나오기 전이라 어느 지역에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전 미주에 알려지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후 약 50년 후인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종교회의를 계기로 전 미주에 불교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893년 만국 박람회 또는 세계 컬럼비아 박람회(영어: World's Columbian Exposition)는 1492년에 일어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893년 5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이다.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는 총 46개국이 참가했다. 이 박람회에 조선도 참가하였는데 고종은 참의원 내무부사 정경원을 책임자로 해 관리, 통역, 국악인 등 13명을 파견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제물포를 출발해 30여 일의 긴 여정으로 개막 3일 전인 4월 28일에 시카고에 도착했다. 박람회 기간에 한국전시관을 나무로 집을 짓고 지붕에 구운 기와를 올린 한옥양식의 6, 7칸의 제법 큰 공간을 만들었다. 가마, 찬장, 식기, 짚신과 가죽신발, 화로, 자수병풍, 조총, 관복과 무인복, 악기 등의 물품을 전시했으며,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외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이 박람회 기간 중에 크고 작은 많은 회의들이 개최되었는데 그중에서 대 성공을 거둔 것이 세계종교회의이다. 1893년 9월 11일부터 9월 27일까지 열린 세계종교회의(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는 세계 최초로 동서양의 정신적 전통을 대표하는 공식 모임이 되었다. 이 회의를 통해 불교는 전 미주에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100년 후인 시카고 종교 회의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려 한국을 비롯하여 티벳 등 모든 전통적인 불교국가의 스님들과 종교인들이 모여 엄청난 규모의 행사를 하였다. 그러므로 시카고는 미국불교와 아주 인연이 깊은 도시이다.
Judaism, Christianity, and Islam-and Zoroastrianism were six religions originating in South Asia and the Far East: Taoism,
Confucianism, Shintoism, Hinduism, Buddhism, and Jainism.
1893년 시카고 종교회의에는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유교, 도교, 일본 신도,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조로아스트교(배화교)등 세계 10대 주요 종교 대표자들이 참가했다. 이 회의에 인도와 일본이 많은 대표자를 파견하였고, 불교계 인사로는 스리랑카의 달마파마가, 힌두교는 비베카난다가 참석하여 큰 활동을 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스리랑카에서 온 달마파마는 스님이 아니었는데 그는 불교의 대변자처럼 활동하였다. 그는 “오늘날 전세계의 계몽된 사상의 흐름은 신학이 아니라, 철학과 심리학으로 향해 있습니다. 이원론적 신학의 돛단배는 위험 속으로 떠내려갑니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중부에 우뚝 서있는 불타사
미국의 한국 사찰 대략 100개 정도인데, 서부의 로스 엔젤레스와 북가주의 산호세 지역, 동부의 뉴욕과 뉴져지 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중부에는 시카고 지역의 불타사와 한마음선원 봉불사, 디트로이트 무문사, 미네소타의 삼불사 등이 있다. 이중에서 시카고 지역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으며, 불타사가 가장 먼저 개원하였고, 신도도 가장 많다. 이제 한국에서 이민이 별로 오지 않은 미주한국사찰은 신도확보에 어려움이 격고 있는데 앞으로 미주한국불교계는 중부 지역의 불타사 등이 뿌리를 깊이 내려야 전 미주에(동부, 서부, 중부)에 한국불교가 건재할 수 있다.
시카고는 초기 미주한국불교계를 선도하는 지역이었다. 이 지역에는 미국에 일찍 입국한 사람들이 많았다. 1968년 최흥렬(일당거사), 1969년 이장수, 1970년 김택영, 이경숙(불명 정법심)부부, 림관헌(불명 대지)거사 등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1974년 2월 손영익, 최옥희, 이장수, 최일당, 태고심, 림대지, 박영규 등에 의해 불타사가 개원하였는데 이것은 뉴욕 원각사보다도 빠르다. 주지로는 손영익(후에 출가하여 지학스님)이 맡았다. 그 후 오홍선 스님이 1980년부터 1991년까지 11년 주지를 한 후에 중앙승가대 교수로 한국에 갔다. 홍선스님이 주지 시기인 1986년 6월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는데 두 동의 상가 건물을 구입하여 절로 개조하였는데 대지는 550평이고 건물은 2층으로 총 490평이었다. 그 후 여러 번 주지가 바뀌었다. 그리고 현성스님이 2002년부터 입적한 2017년 4월까지 주지를 역임하였는데 이 기간 중 2014년부터 15년에 걸쳐 일년 동안은 성향스님이 주지를 하였다. 2007년에 당시 주지 현성스님은 불타사가 사용하던 옆 건물 12,000 스퀘어피트를 구입하여 확장하였고 이 건물을 수리해서 법당과 한국어 학교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2007년에 ‘불타 예술제’를 시작하였다. 현 주지 비구니 선정스님은 범어사가 본사인데 2016년 8월에 기도하러 왔다가 현성스님이 입적하자 2017년 6월에 주지로 추대되었다. 불타사에서 오년 째 수행과 포교를 하고 있는 중이다. 불타사 역사를 통해서 봐도 그렇고, 대개 십년 이상 안정적으로 주지를 역임한 스님이 입적하거나 사정에 의해 절을 떠난 후임으로 새로운 주지 스님이 오게 되면 혼란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선정스님은 주지로 취임 후에도 이런 혼란이 없이 현성스님 시절에 하던 프로그램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신도들과 아주 좋은 관계 속에서 매우 안정적이며 성공적으로 불타사가 잘 운영되고 있다.
미국불교사를 보면 동부에는 보스톤 근교에서 1840년대에, 서부에는 1850년대에 중국인들에 의해 불교가 시작된다. 당시 미국은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California Gold Rush, 1848년 ~ 1855년)시기였고, 이 시기에 미국의 각지, 그리고 해외에서 남녀노소를 비롯한 약 30만 명의 인구가 캘리포니아에 유입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내에서 왔지만 1852년까지 2만 명의 중국인들도 왔다. 1860년에는 켈리포니아 주민 10명중 1명이 중국인이었다. 19세기 말에는 중국인 주민이 6만 3천명 이었다. 그리고 1853년도에 샌프란시스코의 체얍(Sze Yap Company)조합에 의해 중국인 최초의 사찰이 설립되었다. 그 후 미국 서부 카나다 밴쿠우버에서 샌디에이고까지 해안선을 따라, 그리고 내륙 지방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까지 중국인이 있는 곳에 약 400개의 크고 작은 사찰이 들어섰다. 그러나 1882년 5월 6일 체스터 A. 아서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중국인 배척법(中國人排斥法)은 중국인 노동자의 이주를 금지시킨 미국 역사상 자유 이민에 대한 가장 무거운 제한의 하나였다. 이에 대해 스튜어트 크레이튼 밀(Stuart Creighton Miller)는 ‘환영받지 못한 이민’에서 “미국은 건국 이래 지켜 온 자유로운 개방 이민 정책에서 처음으로 인종적.문화적 차등을 두기 시작했다”고 썼다. 이 법 이후로 중국인들의 미국 이주가 감소됨에 따라 사찰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중국인 이민이 다시 시작되면서 중국인 사찰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금 미주한국불교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 있다.
필자가 정리한 미주한국불교사 연혁을 보면 미국에 한인이민자가 감소함에 따라 미국의 사찰들의 신도수도 이에 비례하여 감소하였다. 미주한국일보의 보도는 그동안 필자가 살펴본 미주 각 지역 사찰 법회와 본지 구독자들의 숫자 증감과 거의 일치한다. 즉 대체적으로 2010년을 기점으로 미주한국불교계는 그 전에 비해 새로 문을 여는 사찰 숫자가 줄어들고, 폐쇄하는 사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더불어 신자들은 늘지 않고, 점차로 감소하면서 고령화 되고 있는 추세이다. 또 뉴욕과 로스 엔젤레스에서 재가 신자들이 운영하는 신행단체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2010년대부터 이다.
미주한국일보 2020년 10월 24일 김상목 기자의 보도에 의하면 비영리 이민정책 연구기관 ‘이민연구센터’(CIS)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출신 이민자 인구는 2019년 현재 103만 9,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0년의 110만 명에 비해 6만 2,000명이 줄어든 것으로 지난 10년 새 6% 감소했다. 이 기간 동아시아 출신 이민자 인구는 15% 증가했으며, 동아시아 국가 중 이민이 감소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뉴욕에 있는 이민연구센터(CMS)는 한인 불체자 규모는 2010년 20만 5000명에서 2011년 20만 명, 2014년 18만 명, 2017년 16만 명으로 감소해왔다. 뉴욕에 있는 이민연구센터(CMS)는 어제(2021년 3월 8일) 미국 내 불체자는 1040만 명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중 한인은 14만 5000명. --출처, DKNET/News
이런 환경이기 때문에 미주에 있는 사찰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는 젊은 신들의 유입을 통한 신도의 세대교체 문제이다. 사업을 하면서 활동력이 있는 40대, 50대가 사찰의 중심세대가 되어야 하는데 현재 대부분 미주한국사찰은 40대, 30대 신도가 매우 부족하다. 신도회장과 임원, 이사진도 대부분 60대 이후가 많다. 이렇게 되면 세대교체가 어려우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안정적이라고 볼 수가 없다.
불타사 한국사찰의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불타사도 다른 사찰과 비슷하게 50대부터 70대 까지가 신도의 주류 세대이지만 이들을 이을 40대와 30대 신도들이 타 사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있다. 이 젊은 세대들이 1974년 개원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불타사 신자인 림대지, 박영규 거사, 1978년부터 신도로 이사장을 오랜 동안 역임한 김택영 감사, 정법심 합창단 단장, 60대 초반인 홍인한 회장을 도와 허리역할을 하면서 재무도 하고, 줌을 이용해서 법회도 중계하고, 한국어 학교 교사도 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찰의 매우 심각한 문제인 세대교체 문제가 불타사는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주지 선정스님에 의하면 현재 대략적인 등록 세대수는 400세대인데 법회에 참가 숫자는 대략 50-60명 사이이고, 2019년, 2020년의 봉축 연등은 250개 정도라고 한다. 불타사 법회는 반야심경 뿐만 아니라 천수경 등 모든 경전독경을 한글로 된 경전을 사용하고, 찬불가가 다른 사찰에 비해 많았다. 즉 법회는 한글 경전을 사용하고, 찬불가를 많이 한다.
사찰 내 신도 조직은 신도회(회장 홍인한)을 비롯하여 법등회, 불문회(회장: 무위거사), 바라밀회(50-40대 모임), 문사수회, 합창단이 있고,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불타사 한국어 학교(교장 추은경)’,‘불타국악합주단’과 타민족이 불타사에서 참선을 하는 ‘젠 그룹Zen Group'이 있다. 법등회는 회원이 매달 $100 회비이고, 현재는 50명 정도인데 전에 비해 많이 감소했다고 한다. 불문회는 불교문화를 육성하기 위한 조직이고, 합창단원은 20여명 이다. 현재 미주에서 개별 사찰에서 합창단을 운영하는 사찰은 거의 없다. 1986년 창단되어 35년 유지되고 있는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정법심 단장은 “제가 찬불가를 가르치면서 노랫말을 통해서 불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저희는 노래를 하면서 화음이나 고운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찬불가 노랫말과 하나 되는 연습을 많이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계 모든 합창단에게 들려주고 싶은 매우 중요한 말이다. 불타사는 1990년부터 어린이학교를 시작하여 당시에 두 명의 교사가 10세 미만 어린이들에게, 한글, 음악, 불교교리를 지도하였다. 학생은 대략 15명 정도였다. 이 어린이 학교가 중단 된 후 현재는 매우 발전된 한글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는 현성스님 주지 시기인 2004년부터 시작인데 원래 정원이 50명 이었으나 지금은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40명으로 줄었다. 미국 내 한국 사찰로는 가장 큰 규모이고 교실도 가장 넓은 면적을 확보하고 있다. 학생들의 80%는 혼혈아동이고 기독교 가정의 학생들도 있다. 학교에서는 한글을 비롯하여 한국역사, 문화, 음악, 무용, 태권도, 난타 북 등 다양한 내용을 지도한다. 다른 한국어 학교에 비해 한국 문화. 예술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미주 사찰들이 한국어 학교가 없기 때문에 자녀들 한글공부를 위하여 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로 자녀들을 보내면서 개신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큰 규모의 불타사 한국어 학교는 큰 의미가 있다. 불타사의 아주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미주 내 다른 사찰에 없는 프로그램이 ‘불타 국악합주단’이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국악을 전공하는 5-6명의 대학생을 선발하여 불타사에서 체류하면서 1년 동안 시카고 시내의 대학교에서 영어 어학 연수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드는 학비 2만 달러는 림대지 거사가 지불하고, 숙식은 불타사에서 제공한다.
이 기간 동안 이 학생들은 한국어 학교 학생들에게 국악 지도를 한다. 지금까지 네 번을 했는데 지금은 미국 내 대면 수업이 중지 상태라 이 프로그램이 일시 중단되었지만 미국의 대학교에서 대면수업이 다시 시작하면 이 프로그램은 다시 시작될 예정이다. 이것은 이민이 감소하는 상태에서 미국과 한국의 교류하는 매우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불타사는 림대지거사와 김승한거사가 함께 1999년 구입하여 조성한 ‘불교인 묘지’가 있는데 림 거사는 본인 몫을 불타사에 기증하였다. 김승한 거사는 불타사 신도회장도 하면서 불타사와 시카고계 불교 발전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하였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2017년에 모든 신도들의 애도 속에 61세로 별세하였다.
불타사를 만들고 지킨 사람들
불타사가 1974년 출발을 하였으니 이제 삼년 후면 오십년이 된다. 오십년 동안에 대부분의 시카고 한국 불교인들은 불타사에서 신행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인연이 끝난 사람도 있고, 타지로 이사한 사람, 또 별세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사십년 넘게 오십년 가까이 불타사 신도인 사람들도 있다.
사십년 넘은 사람들을 비롯하여 십년, 이십년, 삼십년 넘은 사람들 모두가 불타사와 인연 깊은 불타사의 기둥들이다. 이 동안 신도회장, 이사장, 이사, 총무, 재무 등의 직책으로 활동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이중에서 몇 사람만 소개한다.
림대지 거사는 불타사 창립부터 인연을 이어오면서 지금도 불타사 일에 앞장도 서고, 뒤에서 밀어도 준다. 숭산스님이 미국에서 활동 중일 때 시카고를 방문하면 임 거사 집에서 설법도 하고, 수련회도 하였다. 이 모임을 위해 큰 집을 마련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1994년 ‘시카고불교실업인협회를 창설하여 초대부터 삼대까지 회장을 하였다. 매년 불교실업인협회 주최로 ‘신년 하정.평화.통일 기원법회’를 규모로 하였다. 현성스님이 만든 ’시카고 동방대학교‘ 창립 이사장도 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법대를 졸업하였는데 행정고시 합격 후 감사원에서 근무하다가, 감사업무 전산화를 위해 1970년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그 후 일 년 휴직 후 퇴직을 하고, 미국회사에서 근무하다가 1979년부터 사업을 시작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1994년 이후 시카고 지역의 한국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에 칼럼을 썼다. 중앙공무원교육원초급관리자 과정 일상, 한국 정부에서 주는 국민훈장 모란장, 조계종 총무원장 표창, 일리노이 Human Service 상 등 수 많은 상을 받았다. ‘세계 속 자랑스런 한국을 위하여 1,2등 몇 권의 저서가 있다.
김택영, 이경숙(정법심) 부부는 1978년부터 불타사 신도이다. 김택영거사는 연세대학교 의대, 정법심보살은 이화여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김택영 거사는 의사이면서 미국에서 18년간 성악을 공부하였고 정법심 보살은 70년부터 아메리칸 컨서버토리에서 그레이스 웰스 교수의 지도로 연수하여 음악 석사와 박사를 받았고 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1984년 시카고에서 불타사 건물기금 모금을 위한 부부연주회, 1988년 시카고 North Park College에서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자광 양로원’을 돕는 자선음악회 등 시카고에서 여러 번의 부부연주회, 그리고 정법심 보살은 1984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1991년에는 호암아트홀에서 귀국 독주회를 가졌다. 시카고 불타사 합창단은 1986년 6월에 정법심 보살님을 단장으로 하여 창단되었는데 이 합창단은 미주한국불교 합창단으로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16년에 현성스님으로 부터 합창단 삼십년 유지한 공로로 공로상을 받았다. 김택영 거사는 오랫동안 불타사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불타사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마다 중심이 되어 불타사에 보시도 많이 하면서 불타사가 버팀목 역할을 하였다.
홍인한 거사는 2017년부터 불타사 신도회장을 하고 있다. 시카고 지역에서 큰 규모의 세탁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시카고 지역에서 알아주는 골프 실력자이기도 한데, 시카고 지역의 실업인협회를 비롯한 크고 작은 많은 단체에서 회장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많지만 모두 거절하고 오직 불타사 회장직만 하면서 불타사 법회의 사회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행사에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오랜만에 한국사회의 유명 가수 최정자 보살님을 만났다. 대부분의 불타사 신도들과 마찬가지로 최정자 보살도 불타사 신자로서 무한 긍지를 갖고 있다. 전에는 뉴욕과 로스엔젤레스 등에도 사찰들의 초청으로 봉축행사 때 여러 번 방문하여 공연을 하였다. 또 불타사 홈페이지에 보면 1대 신도회 임원에 이 장수 회장, 총 무: 임관헌, 교 무: 최일당, 재 무: 박영규, 2대에 최 일당 회장, 총 무: 임관헌, 교 무: 최일당, 재 무: 박영규로 되어 있다. 이 외에도 전직 회장을 역임한 분들 중에 박영규, 보광 정대환, 문장기 거사님도 직접 만나 적이 있어 기억하고 있다. 모두 불타사와 인연깊은 분들이다고 생각한다. 이 분들 중 일부는 지금은 불타사를 떠났거나 사정상 불타사에 못나오더라도 모두들 시카고 지역에서 불교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원로들이다.
불타사의 모든 재정은 공개하고 있는데 각종 회비와 연등 수입 등 합해서 매년 25만 달러는 넘고 30만 달러 미만이라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불타사는 여러 신행단체와 다양한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미주 내 정상급 한국사찰이다. 시카고는 로스 엔젤레스와 뉴욕에 비해 한국인 거주자가 현저하게 적다. 이런 이유로 법회 참가자 수와 신도 세대수가 적지만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잘 운영하고 있고, 신도들간의 친화력과 응집력이 좋으며 다수의 젊은 신도들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많은 신도들은 절에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원봉사자로 기꺼이 나서고 있다. 이런 일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불교인으로 자긍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필자는 사찰의 역할은 신도들에게 교육을 통해서 불교 교리를 교육시켜, 불교인으로서 자긍심을 갖도록하고 사찰 밖에서는 실천불교를 하는 사람을 양성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타사가 이런 모델에 부합하는 사찰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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