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미주한국사찰

[2021년 7,8월호] 미주한국불교 역사에 관한 책 5 / 김창송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1.07.25|조회수21 목록 댓글 0

< 미주한국불교사 자료 >

 


미주한국불교 역사에 관한 책 5

 

1964년 서경보 스님에 의해 시작된 미주한국불교 역사 기록에 관한 책자로는 LA관음사, 뉴욕불광선원에서 사찰이름으로 년보와 주보를 묶어 단행본으로 출판하였고, 서경보스님, 숭산스님, 채인환스님, 강청화스님, 성해스님, 혜성스님, 이한상 거사에 관한 개인 활동을 정리한 자서전이나 활동을 정리한 책자 등이 있는데 미주현대불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은 총 12권이다. 이 책들 외에는 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외에 2004년에 미주현대불교 주관으로 뉴욕시 플러싱에서 열린 ‘미주전법 40주년 기념행사’ 행사 책자가 있다. 이 책자들은 당시 미주한국불교를 기록하는 언론 활동이 없는 시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역할을 하고, 그 기록을 통해 미주한국불교사를 기록할 수가 있기 때문에 기록한 사찰이나, 스님 당사자에게도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이 책들의 발행처와 발행 년도, 내용 등을 간략하게 5-6번에 걸쳐 소개하려고 한다.

 


글 / 김창송(본지 편집인)

 

 

 

 

캐나다 토론토 대각사 창건주 호암 인환스님 회고록

나의 발심수행장 (2)

인환 스님은 계율을 잘 지키고, 선수행을 하면서 포교에 큰 공헌을 하였고 또 많은 연구 논문을 발표하면서 학자로 모범적으로 살았다. 이 책은 채인환 스님이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장 재직시기인 2011년 10월에 시작하여 2012년 9월까지 1년간 원장실에서 연구원 최 동순교수가 27차례의 인환스님의 구술을 녹취하여 정리한 글이다. 인환스님은 20대 초반인 1952년 출가하여 세수로 88세인 2018년 10월에 입적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거의 70년 가까이 계율을 지키며 선수행과 공부를 병행한 스님의 행적은 감동적이며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며 교육적이다.  1975년 일본에서 박사학위 받기 아주 어렵던 시기에 동경대학교에서 박사를 받은 후 동국대학교 교수 제의를 받았지만 이를 마다하고, 카나다로 와서 영어 공부와 대각사를 창건하고 포교를 병행했다. 그 후 동국대학교 학장인 지관 스님의 간곡한 권유로 1982년부터  동국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인환스님은 1977년부터 1982년 초 까지 만 5년을 해외포교에 매진하였고, 그 후에도 방학 때마다 미주에 자주 와서 설법을 하면서 해외포교에 힘을 보탰으므로 1970년대 말까지 미주에 들어온 미주한국불교  1세대 스님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필자는 1세대 스님으로 인환스님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인환스님이 이 책이 미주한국불교사에 귀중한 이유는 카나다에서 본인의 체험을 글로 쓰지는 않았지만 직접 구술한 것을 녹취하여 정리한 책이기 때문이다. 미주한국불교사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이 있지만 스님 본인의 포교활동에 관한 내용을 직접 글로 써서 발행된 것은 없다. 대부분 신문 등 언론 보도를 수집하였거나 구술을 대필한 것이다. 구술을 대필한 것은 비슷하지만 최 동순 교수가 한 작업은  첨단 기계를 이용하여 한 일종의 학술작업이어서 다른 대필과 차원이 다르다. 

카나다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인환스님의 노력 - 영어공부와 기도
 
이제 카나다 생활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분들이 토론토에 살고 있어서 처음 그곳으로 갔습니다. 1977년 2월입니다. 처음 가서 참 막막하더라구. 우선 일반 주택 하나를 월세로 빌렸어요. 토론토 토손 에비뉴 10번지 . 여기서 걸어서 20, 30분 거리에 영어학교가 있어요. 이름이 존스애비뉴스쿨이라고, 랭귀지 스쿨이야, 카나다 정부에서 외국에서 온 사람들, 이민 온 사람들에게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영어를 교육시키는데 6개월 동안 학비를 안 받아요. 6개월 이상은 못해요. 그래서 나도 그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앞도 뒤도 없고 동 떨어진  데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어요. 불자가 어려울 때 믿을 것은 부처님 밖에 더 있나. 또 거기서 자꾸 머리를 이리 저리 쓰면 마음 복잡해 안 돼. 그래서 생각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기도를 시작했어요. 월세 주택에 자그마한 불상 모셨어요. 리빙룸에 탁자를 짜서 불상을 봉안하고, 절 이름을 대각사라고 걸었어요. 매일 새벽 4시쯤 일어나 예불 모시고 한 3시간 쯤 기도합니다. 출가 이후, 어느 곳에 살거나 무엇을 하거나 하루의 시작은 이렇게 예불과 기도로 시작했어요. 내 철칙입니다. 아침밥 먹고 9시 까지 학교 나가서, 오전 12시까지 영어 공부합니다. 학교 마치고 절에 돌아와 마지 올리고 점심공양하고. 2시 되면 기도를 시작합니다. 
기도는 한번 시작하면 3시간을 합니다. 별 일 없을 때는 5시간, 10시간도 하고. 저녁 예불을 모시고 밤에 잘 때 까지 그냥 기도를 했어요. 학교 다니면서 사분정근 벡 일을 시작했습니다. 학교 가서 영어 공부하는 거 말고는, 종일 목탁 두드리고 기도, 정근하는 거야. 캐나다 도착해서 곧바로 시작했으니 1977년 첫 해에 여름 백일기도, 겨울 백일기도, 그 이듬해 78년도 여름 백일기도, 겨울 백일기도, 그 다음 79년도 역시 여름 백일기도, 겨울 백일기도 3년 동안에 육 백일기도 했어요. 그 때는 일체 다른 생각 없이 목탁 두드리고 기도만 하니까 마음은 오히려 편했어요. 

낯선 이국땅 동떨어진 아무것도 없는데서
이리저리 생각을 쓰다보면 더 어려워요.
그냥 뭐 잡생각 안하고 혼자 목탁치고 절하고 이렇게 3년을 지냈어요. 

대각사에서 신도교육과 운영은 미주에서 활동하는 스님들에게 좋은 예. 
미주한국불교계가 60년으로 향하고 있고, 그 동안 수 많은 스님들이 미주에서 신도교육을 시키면서 포교활동을 하였다. 신도교육은 주로 정기법회 시간에 설법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로스 엔젤레스 관음사나 뉴욕 불광선원, 뉴욕 대관음사에서는 불교대학을 통하여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환스님은 관음사나 불광선원보다 훨씬 오래 전에 시도하였다. 

 

인환스님


교민들에게 불교공부를 시키다  

그러다보니까 차차 소문이 났는가봐. 한국 스님이 하나 왔다고 하는데 소리 소문도 없고. 무슨 뭐 알리는 것도 없고, 가만히 보자하니 어느 절에서 오직이 목탁만 치고 기도만 하는 모양이더라. 그랬겠지. 이렇게 소문이 나다보니 관심있는 분들이 어떤 물건이와서 있는가, 더러 들여다보더니. 차츰 사람들이 늘어나더라구. 그 분들과 같이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캐나다에서는 토론토에 한국교포들이 제일 많이 살아요. 내가 갔을 무렵에 5만 명쯤 이었을 거야. 한국에서 수준이 괜찮은 사람들이 많이 나왔어요. 
~~ 중략 ~~~

일요일이 되면 모여서 법회를 했어요. 교포들이 차차 늘어가지고 나중에는 일요법회에 오는 사람들이 5-, 60명 쯤 되더라구.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니까 그저 절만 할 일이 아니고, 불교를 바로 알리는 일을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2월에 처음 토론토에 들어와서 아마 연말쯤 부터일거야. 교포들은 모두 직업을 가지고 있어. 취업이 안 된 사람들은 나름대로 한국에서 가져온 밑천으로 동네에서 작은 슈퍼를 운영하고 그런다 말이야. 그래서 오후 8시부터 뜻있는 사람들 모여 공부를 시작했어요. 
어찌 보면 무모한 거겠지만. 이것저것 안 따지고 시작했어요. 공부 내용은 우리 전통 강원의 이력 과목으로 정했어. 내가 해인사와 통도사에서 열심히 공부한 ‘치문’부터 시작이야. 불교를 제대로 알려면 스님들 제일 처음 공부하는 내용을 아는 게 좋겠지. 그런데 영어권에 살고 있으니 한문을 얼마나 알겠어요. 아는 사람이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고 가지가지야. 공부가 뭐 그리 쉽게 되나.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모르고 하더라도 차차 하다보면 알게 되고 알아가는 재미가 좋아요. 나중에는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되고 그렇지. ‘치문’에서 시작해서 점차 ‘도서’, ‘선요’, ‘서장’, 이렇게 사집(四集)을 했어요. 나중에는 ‘능엄경’, ‘금강경’까지 했어. 신도들이 어려워서 못 하겠다는 소리 안 나오도록 그네들 근기에 맞춰가며 했어요. 
신심이 있어서 나오는 분들이니까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낮에는 각자 직장을 가거나 상점 등에서 일 하고, 매일 저녁 먹고 8시에 와서 10시 넘어까지 내가 토론토에 7년 있었는데 떠날 무렵에는 ‘능엄경’을 오랫동안 했고, ‘대승기신론’.‘원각경’까지는 못 갔어. 하여간 그렇게 해서 사교과의 절반은 한 셈이야. 전혀 문외한이던 분들이 매일 와서 그렇게 하니까,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왔어요. 그저 절에 가서 절만하고, 기도하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불교를 제대로 배우는 코스를 했어요. 모르는 분들에게는 1대 1, 맞춤식으로 했고, 평균 20명 정도가 꾸준히 참석했어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