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의 현장Ⅰ
시카고 불타사
봉축법회와 주지 진산식
글 편집부
지난 12일 대부분의 미주한인사찰에서는 많은 신도들이 참석하여 봉축법회를 하면서 부처님 탄생일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였다. 이제는 이 행사에 여러 사찰들에서 미국인들 참석자들을 볼 수 있다. 시카고 불타사는 봉축법회와 더불어 법찬스님이 15대 주지로 취임하는 취임식을 넓은 관음전에서 거행하였다.
이날 행사는 새 주지 법찬스님과 미네소타 삼불사 주지 덕경스님, 그리고 홍인한 신도회장을 비롯한 불문회 대표 무위거사, 바라밀회, 문사수회,청년회, 합창단원 등 각 단체 회원들과 미국인 참선그룹 멤버 등 일리노이주, 인디애나주, 미내소타주 등에서 온 120여명이 참석하였다. 참석자중에는 20대부터 30대, 40대, 50대 젊은 회원들이 많았다. 행사는 개회사에 이어 남녀 6명씩 12명의 청년회원들의 육법공양으로 시작하였다.
이어 법찬스님15대 주지 진산식이 매우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법찬스님은 작년 12월 14일에 불타사에 와서 주지 대행으로 3개월간 있다가 불타사 신도들이 주지로 취임해 달라는 요청을 수락하고 주지 취임식을 가지게 되었다. 진산식은 박철현, Goetz, 루시 두명의 남.녀 화동과 무위 불타사 대표로 윤여원거사, 불문회 대표 원 자현심, 바라밀 대표 심공거사, 합창단 대표 이정은 보살, 문사수회 대표 소일 등 신행단체장들의 화환증정으로 이루어졌다. 이날 주지로 취임한 법찬스님은 해남 대흥사 조실 보선스님이 은사스님이고, 1994년 출가 이후, 봉암사, 해인사, 송광사, 대흥사, 백양사 등 여러 선방에서 선수행을 많이 하였다.
이어 그동안 불타사 발전을 위해 큰공로가 있는,
5월 4일 별세한 학산 김택영 박사를 대신하여 부인인 이경숙 보살이 공로패를 받았으며, 감사패는 림관헌, 무위 윤여원, 원인식, 혜철 국승모 대덕 조재이, 승파 최순용 거사 등 그동안 불타사 발전에 공로가 있었던 여러 사람들에게 법찬스님이 공로패와 감사패를 증정하였다. 그리고 이어 이윤재, 조형우 두명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였다.
시상식 후에는 법찬스님이 부처님께 헌화하고 법찬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아래는 이날 설법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마야부인 옆구리에서 태어나시자마자 북쪽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하신 말씀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다시 태어남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글귀가 인도를 떠나서 아프카니스탄과 파미르 고원을 지나, 천산산맥과 신장 위그를 거쳐서 중국에 와서 말이 바뀝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일체개고, 아당안지(一切皆苦我當安之)로 변합니다. 뜻이 완전 변해버립니다. 하지만 부처님 말씀대로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다시 태어남이 없다로 갈무리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선원에서 정진했지만 산철에 가끔씩 부처님 경전이나, 선사들 어록을 읽을때마다 답답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한자는 한 글자마다 너무 많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말로 푸를 청(靑), 파라다. 푸르다, 푸르스름하다. 등 여러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중국어와 한국어는 뜻을 표현하는 방법이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중국 고전에 심취하였습니다. 어느 대학 교수의 글을 읽었는데, 중국어 번역의 어려움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중국 진시황이 만든 만리장성은 가을만 되면 기마민족이 말을 타고 와 중국의 하북성, 산시성, 감숙성을 약탈하여 돌아갑니다. 이와 관련된 고사성어가 ‘천고마비’, ‘새옹지마’ 등 많이 있습니다.이 초원민족은 전투력이 뛰어나고, 또 잔인했습니다.
중국 어느 고을에 현판에 있었습니다. 몽고 칸이 이 고을을 침입하여 포로로 잡은 중국인에게 그 뜻을 물었고, 그 중국인은 그 “왕이 누구되든 우리가 무슨 상관이냐”고 대답하였습니다. 몽고 칸은 항복이라고 판단하고 다음 마을로 갔습니다. 가는 마을마다 살인을 하고, 마을을 없앴습니다. 몇 년에 걸쳐 주변을 다 파괴하였습니다. 몽고 족이 돌아간 후 한족 정부 군사들이 들아와보니 대부분 마을이 초토화되었지만, 유독 한 고을만 온전하였습니다. 중앙정부에서 관리가 파견되어 그 고을에 가서 사태파악을 하러 가서 살아남은 까닭을 물었습니다. 마을주민들은 현판을 보여주었습니다. 중국정부 관리가 보니 반역한 고을이라고 생각하고, 처벌을 하려고 하자, 그 고을 사람들은 놀라서 이 현판 글귀를 띄어서 보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띄어 쓴 글귀 뜻은 “우리는 왕에게 절대 충성한다”라는 내용으로 변했습니다.
이처럼 뜻글자, 중국 글은 소리글자인 우리 나라 글과 달라서 한자를 잘 몰랐던 저에게는 한자 경전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어쨌든 부처님께서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다시 태어남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6년 수행의 결과이고, 45년 설법의 핵심이었습니다.
중국의 당나라와 오대십국 시대에 변방이었던 광동성 유원현(乳源縣)에 살았던 운문 문언이라는 선사가 있었습니다. 문언선사(雲門文偃, 864∼949)가 오늘 같은 부처님 오신 날에 설법을 하시는데 운문 문언선사의 설법은 파격적이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시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였는데, 내가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이 몽둥이 한 방망으로 그를 때려죽여 개의 먹이로 주었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중국 전역으로 퍼져서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중국에는 선종뿐만 아니라, 화엄종도 있었고, 여러 종파가 있었습니다. 황제가 참선을 하니까 재상, 정승, 신하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선을 하고 수행을 합니다. 재상과 정승 중에서 깨달은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이 수행을 해 본 후에, 운문선사의 말이 맞았구나, 운문 문언 선사가 부처님의 진실한 제자였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운문 선사가 “부처님을 때려 죽이겠다”는 말이 나쁜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한국에서도 고려시절에 순천의 송광사에서 16국사 중에서 두 번째 국사인 진각 국사 혜심스님께서 선문염송이란 책을 쓰면서 그 이야기를 썼습니다. 운문 문허선사가 ‘부처님을 때려죽인다’고 했을 때 역대 선승들이 거기에 대한 게송을 적어 놓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같이 운문선사를 찬탄하는 글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것은 선가에서 내려온 이야기이고, 여러분들에게는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 금생이 마지막이다. 라는 것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기에다 제가 하나 더 붙인다면 “저는 부처님이 원망스러습니다. 왜나면, 부처님이 안계셨다면 저는 진작 자살했습니다. 아니면 나쁜 짓해서 사형당했을 것입니다. 인내가 있음을 몰랐고, 생사해탈이 있음을 몰랐습니다. 저는 진작 사고 쳤을 것입니다.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40살 전까지만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작에 죽었을 것인데, 부처님 덕분에 제가 지금까지 살아 있습니다. 저는 부처님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인과응보를 설했고, 생사해탈을 설했고, 생사해탈을 위한 수행을 말씀하셨습니다. 저에게 목표가 생겼습니다. 저도 부처님처럼 금생이 마지막이다. 다시는 태어나지 않겠다. 비록 제가 금생에 수행을 제대로 못해가지고,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저의 목표는 딱 한가지 입니다. 금생에 안되면, 다음생에 또 와서 저도 부처님처럼 금생이 마지막이다. 다시는 태어나지 않겠다. 라는 목표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저에게 목표를 주신 분입니다. 저에게 꿈을 주시고, 저에게 갈 길을 알려주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장 좋습니다.”
이어서 합창단의 찬불가 ‘부처님 오신 날에’를 한 다음에 석가모니 정근과 관불의식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