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국사 전경
연국사(蓮國寺)는 말 그대로 연꽃의 나라처럼 소박하고 단아한 곳이다. 플러싱 한인 타운 내 한국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Union Street에 위치한 연국사는 처음 이사올 때는 가정집에 절 간판을 내걸었기 때문에 절로서는 어설프고 허술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매년 조금씩 수리하고 개조하다보니 이곳 자리에 터를 잡은 지 3년 만에 가정집의 티를 벗고 절 분위기가 나는 도량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으며, 이 지역사람들과 뉴욕, 뉴져지 불교계에 연국사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선묵 스님은 주지로 취임 이후 매일 새벽기도를 하고 있다. 이 새벽기도에는 항상 여러 명의 신도들도 함께 동참하면서 신심을 다지고 스님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선묵 스님은 아침 일찍부터 틈만 나면 도량청소를 열심히 하고 정원을 가꾸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 지저분하기 쉬운 지역에 있는 연국사는 항상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을 준다. 이 처럼 큰 구호를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행동으로 불교인으로써 또 스님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직접 보여주는 주지 선묵스님의 모습에 신뢰를 보내면서 연국사 신도로 합류한 사람들이 최근 꾸준하게 늘고 있다. 미주 한국사찰들이 최근 일반적으로 사세가 줄거나 정체하고 있는데 반하여 연국사는 도량도 조금씩 정비되고 신도수도 증가하는 사찰이 되어 미주한국불교계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매주 일요일에 갖는 정기법회에는 30명 가까운 신도들이 참석하고 있다. 신도 구성을 보면 여자 신도들이 많지만 남자 신도들도 전체 참석자의 약 30% 가까이 되고 연령층도 30대에서 6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비교적 젊은 신도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선묵스님이 주지를 맡으면서 기존의 신도들중 이탈한 신도는 없고 새로 합류한 신도들이 꽤 많다. 연국사 신도들은 가족처럼 화목하게 지내며 선묵스님의 지도를 잘 따르고 생활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수행정진한다.
연국사는 아담한 도량이지만 필요한 것은 모두 있다. 법당은 10평정도인데 조금 작아 아쉬움이 있지만 현재까지는 법회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법당 맞은편에는 20여명이 식사할 수 있는 식당과 부엌이 있다. 그리고 2개의 아담한 도서실과 선방이 있다. 도서실에는 불교 책도 많이 있다. 연국사에 들어서면 처음 방문하는 사람도 내집같은 아늑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세히 살피면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동체 건물로 잘 꾸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모두가 이 건물로 이전한 후 매년 한 두 번에 걸쳐 건물을 수리 보수하면서 꾸준하게 건물을 개조한 결과이다. 현재는 절 앞의 정원에 각종 나무를 심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또 지하에는 어린이 방을 꾸밀 예정이다.

연국사 창건한 故 혜영 스님
연국사의 연원을 잠시 살펴보면, 당초 故 혜영스님께서 1982년 퀸즈 엘름허스트 킹 조지 아파트에서 연국사를 개원하였다. 1987년 퀸즈 잭슨 하이츠 주택으로 이전하였다가 다시 1992년에는 3층 건물구입, 법당을 확장이전을 하였다. 시인이기도 하였던 창건주 혜영스님은 1998년 5월에 입적하셨다. 연국사는 혜영스님 입적 후 잭슨하이츠에서 롱아일랜드로 이전하였다가 다시 2003년 4월 롱아일랜드에서 현 위치로 이전했는데 이때 김용학 거사등 여러 신도들과 당시 주지 하림스님이 이전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故 혜영스님께서는 수덕사 말사인 개심사에서 출가를 하셨고 동국대를 졸업 한 후 1981년 도미하셨다. 서울에 계실 때는 최초의 비구니 꽃꽂이 연구가로 포교에 매진하셨으며 승려 시인으로“빈 하늘에 기대어”라는 시집 외 <內面詩集>, <산 물 가락>을 출간하기도 하셨다.
또한 기도 정진하시며, 대방광불 화엄경, 능엄경, 법화경, 금강경 등을 한글 서사시로 번역하셨고 그 후 총 11권의 책이 사후 출판 된 바 있다. 연국사의 도서실에는 혜영스님의 번역 서사시가 자리를 잡고 있어 스님의 뜻을 언제라도 함께 하는 듯하다. 2006년 5월 19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