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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염불 구도기 [10] 염불법에 대한 나의 믿음

작성자지금 여기에|작성시간08.03.03|조회수91 목록 댓글 1
염불 구도기 [10] 염불법에 대한 나의 믿음


나는 1990년 2월 동안거를 마치고 은사스님께 인사드리고자 찾아 뵈었다. 그런데 은사스님은 본사(本寺)로 돌아와 강원을 마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은사스님의 말씀을 따라 범어사 강원 사교반(四敎班)으로 옮겨 공부하게 되었다. 큰스님의 말씀을 따르기는 하였지만 그 뜻을 알아차린 것은 얼마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 때 단박에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마 당연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강원생활을 하면서 선배스님들로부터 "장판 때가 더 묻어야 안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출가생활을 익히는데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경험이 필요함을 말한 것이었다. 그러니 햇병아리에 불과한 내가 선문답같은 알쏭달쏭한 말씀을 단박에 이해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출가하였다 하여도 불교에 대한 확신이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세속적 욕망과 진리추구라는 이중적 의식구조를 지니고 생활하기 때문에 스스로 내면의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그렇듯이 출가자라는 특수한 집단의 생리를 이해하는 데는 오랜 대중생활의 경험 곧, "큰방의 장판 때가 묻어야 안다"는 말이 세월이 흐르면서 피부로 느껴졌다. 불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부터는 내면의 이중적 의식구조 뿐 아니라 승속이 행하는 신행의 형태에도 구조적 모순이 있음을 알고는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신론] [능엄경] [금강경]을 배우면서 이러한 문제의식은 더욱 깊어졌다.

나는 불법문중(佛法門中:불법을 따르는 사부대중의 도량)에서는 세계관과 지향하는 목표가 동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근기에 따라 베풀어진 가르침이 다르기 때문에 불법을 이해하는 차원과 실천방법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떤 가르침에서도 세계관과 믿음의 대상과 지향하는 목표가 동일해야 근기의 상하를 막론하고 다 함께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한 길에서 정진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요 바램이었다. 이런 나의 기대는 곳곳에서 무너졌는데, 재가자 뿐 아니라 출가자의 신행 모습 역시 다를 것이 없었다. 한국불교가 통불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가르침에 어긋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고 생각했다.

한국불교는 신라 이후 대소승 경전이 동시에 유입되어 먼저 교학이 발전하였고, 그 후(800년대 이후)에는 선종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어느 부문에서도 뚜렷한 종파를 형성하지 않고 통합불교 형태로 이어졌다. 더욱이 전통문화와 토속신앙의 바탕 위에 뿌리내린 때문에 민족종교의 성격까지 지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조 500년은 겨우 불교라는 명맥만 유지하는 기간이었으므로 신행형태는 토속신앙의 관행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승단 역시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여 인도할 여력이 없었겠지만 사원경제를 고려하여, 어떤 형태든지 산문에 들어와 예배하고 시주하는 자는 모두 포용하였고, 그들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전하는 일은 드물었다.

해방 이후에도 불교계는 신행체계에 관해 특별한 노력이 없었고, 오히려 비구 대처간의 분쟁으로 인해 그나마 유지해 오던 단일 종단마저 양분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수많은 종단이 생겨났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종단들은 대부분 그 명칭에 걸맞는 교학과 신행(信行)체계를 세우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미 형성된 신행관습을 고착화하는데 일조했다. 걸출한 선지식이 몇 분 나와 자각의 종교, 불교의 혁신을 외쳤지만 이미 지속된 관습을 새롭게 이끌어 가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내가 가장 깊게 문제의식을 가진 것은 이미 형성된 신행형태와 세계관에 대한 이해였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수행환경과 신행구조에 대하여 바라보면, 전통사찰에는 지덕(地德)을 상징하는 산신각을 아담한 형식으로만 세웠다. 그런데 해방 이후 산신각은 날로 크게 짓게 되었고, 예전에 없었던 용왕당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산중의 사찰은 곳곳에서 대승불교의 귀의 대상으로는 맞지 않는 나반존자 기도처 및 영험 기도처를 알리면서 무엇인가를 애타게 구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오늘날의 신도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복을 기원하고 소원성취하는 기도에 매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기의 문제가 아니라 복을 구하는 방향에 따라 신장(神將)과 보살이 신앙의 대상이 되고, 그런 신상과 보살상을 조성한는 불사가 성행한다. 불교의 신행구조는 욕망을 쫓는 사람들에게 욕망을 충족시켜 줄 것으로 믿는 대상을 우상화하였으니, 신행방편은 욕망을 기원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의식과 신행구조의 풍토에서는 자연히 천도재가 성행한다. 영가의 장애를 면하거나 죽은 자를 통해서까지 복을 기원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요즘에 여러 명분으로 재를 많이 지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의식(意識)과 신행구조에 꼭 알맞는 세계관은 바로 육도윤회설(六道輪廻說)이다. 그러므로 법문 역시 선행과 악업의 과보로 지옥과 천상에 태어나는 예를 들거나, 소원성취의 인과응보를 말하고, 영가의 장애를 받지 않도록 재를 권하고, 선행의 과보로 다음 생에는 행복이 보장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풍토에서는 깨달음이나 역사를 이끌어 갈 창조적인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복(祈福)의 신행구조, 육도윤회의 세계관을 말하는 관념의 근저에는 일체 현상을 실체로 바라보는 유(有)라는 폐쇄적인 상(相)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는 자각의 종교임을 표방하면서 범부의 인식관과 깨달음의 세계관을 설하고 있다. 바로 속제(俗諦)와 진제(眞諦)이다. 속제는 세속의 범부(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갖는 관념인데, 이것을 진리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세속의 진리(속제)라고 불러주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일체 현상계에 대하여 변하지 않는 실체가 있다 하거나, 생명은 영혼이 있어서 죽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러한 세속적 관념을 바탕으로 성립된 세계관이 바로 육도윤회설(六道輪廻說)이라는 것을 불교인은 반드시 이해하고 출발해야 한다.

불교는 사회적으로 팽배해 있는 윤회설을 받아드렸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체(영혼)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번뇌의 업(業)이라 하여도 수행의 깊이에 따라 변하는 것이며, 깨달음으로써 마침내 완전히 소멸된다는 것이다. 수행과 깨달음의 점차에 대하여 소승은 점수돈오(漸修頓悟), 대승은 돈오점수(頓悟漸修)의 입장을 취하였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도 속제와 육도윤회설은 깨달음으로써 타파하고 버려야할 관념에 불과한 것이었다.

진제(眞諦)는 불교의 진리를 표방하는 것으로 정신적 물질적 일체 현상(法)은 무상(無常) 무아(無我)이니 실체가 없다(空)는 것이다. 이것은 깨달음으로 바라본 실상(實相)이요, 참된 진리이므로 진제라고 부른다. 깨달음이란 곧 속제로부터 의식을 변화시켜 세계와 생명의 실상을 바로 보는 것이다. 이처럼 깨달음(진제)은 속제 가운데서 얻는 것이므로 인식을 초월한 경계라고 말할 수 없다.
진제요 공(空)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성립된 세계관이 곧 연기적 세계관(緣起的 世界觀)이며 신행체계의 근거로 삼았다. 수행계위 역시 공관(空觀)의 확립과 연기적 세계관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러한 때문에 불법에 귀의한 자는 애초부터 유(有)적 관념과 윤회의 실상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공(空)과 연기적 세계관에 대하여 익히고 닦아야 한다. 이것은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였으나, 나는 가장 대중적인 염불법 안에서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불법에 대한 믿음과 이해가 깊어지면서 칭명염불을 뛰어넘어 정토신앙 전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염불법은 제불보살이 찬탄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문(門)이라 하였으니, 반드시 연기적 세계관(緣起的 世界觀)을 바탕으로 누구든지 깨달음을 얻는 길이 열려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더욱이 수많은 조사들이 정토문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정토신앙은 대승불교의 꽃이라고 찬탄한 어록들을 읽으면서 나의 믿음은 깊어졌다. 그리고 염불법을 통해 깨달음에도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나는 불자라면 깨달음을 향한 행위의 인과에 의해서 복과 지혜를 구해야 하고, 설령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근기라도 부처님의 지혜를 믿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름으로써 안심(安心)을 얻어야 하며, 구체적인 이상세계를 향해 정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정토문과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염불법에는 이 모든 것들이 구족되어 있으니 나를 매료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염불법에 대한 믿음은 깊어졌고, 내 마음에는 염불법을 연구하며 닦고 깨달아 신행체계를 정립하고자 하는 의지로 충만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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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노랑 | 작성시간 07.11.14 2007--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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