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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세계불교

[2020년 9,10월호] 뉴 잉글랜드 평화의 탑 사찰을 다녀왔다 / 홍성미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0.09.21|조회수132 목록 댓글 0

    < 타민족 사찰 소개 >





    평화를 염원했던 일본 승려 니키다츠 후지
    (Nichidatsu Fujii)스님이 남기고 간 선물,

    뉴 잉글랜드 평화의 탑
    (New England Peace Pagoda)
    사찰을 다녀왔다




    글 / 홍성미(본지 취재기자,
    컬럼비아 대학 아동미술학과 박사과정




    평화 탑   




    이  평화의 탑 사찰은 미국에서 ‘평화’를 전면적으로 내걸고 참여불교를 하는 아주 드문 사찰이다. 또한 이 사찰은 매주 일요법회를 하는 대부분의 한국사찰들과 달리 정기적인 일요법회를 하지 않고, 연중에 몇 번의 행사를 하면서 사찰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계 사찰이지만  미국인 카터스님이 있기 때문에 일본인 신도가 거의 없고, 백인 신도가 대부분이다. 이런 몇 가지 특색이 있는 사찰이다.  - 편집자 주





    클레어 카터 스님                  




    길을 걷다 누군가와 옷깃을 한 번 스치기 위해서도 우리는 몇 겁의 인연이 필요하다고 한다. 개인적 친분을 통해 알고 지내는 지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도대체 그들과 난 얼마나 많은 만남이 있었기에 이번 생에 그 인연을 이렇게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구심이 자연스럽게 들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다양한 인연으로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이 배제된 목적 위주의 만남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우리는 이러한 인연의 경이로움이나 만남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먼 길을 달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전 당신과의 만남이 정말 기다려졌어요. 이런 소중한 날 어떤 인연이 찾아 오실지 무척 설랬답니다” 라고  상대방이 말해준다면, 우리는 어떤 기분이 들까? 어쩌면 마치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뉴 잉글랜드 평화의 탑(New England Peace Pagoda) 취재를 위해 만났던 클레어 카터(Sister Clare Carter) 스님과의 첫 만남이 필자에게는 바로 그랬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매일매일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대면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한지 대한 의문 그리고 동시에, 모두가 사람 만나는 것을 내심 꺼려하는 요즘 같은 때에 복잡한 도시 맨해튼에서 오는 낯선 이방인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수락해 준 사람들에 대한 묘한 궁금증.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품고 필자는 New England Peace Pagoda에 도착했다. 사찰의 비구니 스님인 클레어 카터(Sister Clare Carter )스님은 처음 만나는 필자에게 칠월 칠석에 얽힌 견우와 직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필자가 스님을 만났던 날은 공교롭게도 양력 7월 7일이었다), “누군가를 일 년에 딱 한 번 밖에 만날 수 없다면, 그 만남은 참으로 소중하겠지요?” 라는 말을 해주었다.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며 상대를 배려해주는 스님의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신선함은 충격이었다. 필자의 마치 잠에서 깬 사람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고,  마음 속 단단한 무언가가  마치 봄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 내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삶의 기본을 망각하고 산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깊은 수면에 빠져 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잠에서 깰 때,비로소 그동안 우리가 잠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의 순수한 심장이 뿜어내는 선함과 부드러움의 위력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지난 5개월 동안 숨죽이고 있던 필자의 폐 속으로 여린 바람 한 줄기가 스며드는 듯 했고, 마치 세상에서 가장 멋진 놀이터를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기쁘고 행복한 마음이 밀려 들었다. 그렇게 필자의New England Peace Pagoda 탐방은 시작되었다.


    법당   



    일본 법화종 계열의 사찰 New England Peace pagoda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 주 레버렛 (Massachusetts, Leverett)에 위치한 뉴 잉글랜드 평화의 탑(New England Peace pagoda) 사찰은 일본 법화종 계열의 불교 종파인 닛폰잔 묘호지 대승가 (日本山妙法寺大僧伽, Nipponzan-Myōhōji-Daisanga) 소속의 불교 사찰로 평화를 염원하는 불탑으로 유명하다. 닛폰잔 묘호지 대승가는 일본의 승려 니키다츠 후지 (Nichidatsu Fujii, 1885-1985) 스님이 1917년에 창시한 불교 종파로, 13세기 가마쿠라 시대의 승려였던 니치렌(Nichiren, 1222-1282) 스님으로부터 발전한 니치렌 불교(Nichiren Buddhism) 중 일련종 계열이다.

    니치렌(Nichiren, 1222-1282) 스님은 당시의 다른 대승불교와 달리 법화경(Lotus Stura)을 설법하며, 법화경의 정식 명칭 “묘법연화경”의 일본식 발음인 나무 “묘 호 렌 게 교”(Namu Myo Ho Ren Ge Kyo, “나는 법화경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라는 의미의 염송만 외우면,  모든 사람은 원래 불성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현재의 사회적 지위, 출신 배경, 성별, 나이, 직업 등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깨달음을 얻고, 다음 생이 아닌 이번 생에 모두가 성불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니치렌(Nichiren) 스님이 승려로 활동했던 가마쿠라 시대는 일본의 무사계급이 천황이나 귀족계급과 분리된 새로운 지배체제로 등장했던 정치적 변혁의 시기였다. 기록에 의하면, 승려 니치렌(Nichiren)은 자신을 혼탁한 말법 시대에 법화경을 통해 세상과 중생을 구하기 위해 온 상행보살의 화신이라고 말하며, 당시 권력의 핵심에 있던 막부 세력과의 결탁을 시도했다고 한다. 글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니치렌(Nichiren) 스님은 입정안국론을 지어, 당시 빈번하게 일어났던 지진, 역병, 기근 등 자연재해의 원인은 사람들이 정법인 법화경을 믿지 않고 선종(임제종과 조동종)이나 정토종(Pure Land Buddhism)과 같은 그릇된 법을 믿기 때문이라며, 법화경을 나라의 중심에 두지 않는다면, 외세의 침략과 내전 등으로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거라고 주장했다. 그의 배타적인 태도는 다른 종파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입정안국론은 현 정권에 대한 정치적 비판으로 여겨지며 그는 유배를 당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보전하고 유배에서 풀려날 즈음 일본은 몽골의 간섭과 침략을 받기 시작했고, 일본 내에서는 나이가 어린 왕자가 자신의 이복 형을 죽이는 사건과 더불어 교토 조정에서도 상황과 천황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며  일본의 국내 상황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는데, 그가 주장했던 입정안국론은 그러한 모든 혼란을 이미 예견했던 예언서로 사람들에게 받아 들여지며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니치렌(Nichiren)의 가르침은 다양한 종파로 분리되며 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승가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일련종(니치렌-슈, Nichiren-shū)과 승가와 평신도 협회인  Hokkekō가 함께 운영하는 일련정종(니치렌-쇼슈, Nichiren Shōshū), 그리고 승려가 아닌 평신도 그룹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는 창가학회(Soka Gakkai) 외 다수의 신흥 종교 그룹들이 있다. 니치렌 불교(Nichiren Buddhism)는 종파를 운영하는 방법, 종파의 설립 과정, 그리고 니치렌(Nichiren) 스님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

    니치렌(Nichiren) 스님에게는 6명의 수석 제자들이 있었다. 일련종(니치렌-슈, Nichiren-shū)은 니치렌(Nichiren) 스님이 어느 한 명의 제자가 아닌 6명의 수석 제자  모두에게 법통(法統)을 남겼다고 믿는다. 따라서 일련종은 니치렌 스님의 법맥을 잇고 있는 전체 Nichiren school(니치렌-슈, Nichiren-shū) 조직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를 갖는다. 일련종의 총본산은1274년 니치렌(Nichiren) 스님이 미노부산(Mt. Minobu)에 창건한 쿠온지(Kuon-ji) 사찰로서, 결속력이 부족할 수 있는 일련종을 하나의 승가로 묶어 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일련정종(니치렌-쇼슈, Nichiren Shōshū)은 6명의 제자 중 한 명이었던 니코 스님(Nikkō Shōnin)만이 니치렌 스님의 정식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며, 니치렌(Nichiren) 스님을 1대 종정, 니코 스님(Nikkō Shōnin)을 2대 종정으로 하는 독자적인 법맥과 종파를 만들었다.



    법당 입구에 있는 일본산묘법사 편액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와 가장 가까운 수행을 하는 종파는 일련종(니치렌-슈, Nichiren-shū)이라고 할 수 있다. 승가 중심의 일련종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고, 니치렌(Nichiren) 스님은 부처님의 불법을 전하는 메신저로서 성불을 이룬 최고 경지의 보살로 본다. 뛰어난 문장가였던 니치렌(Nichiren) 스님은 방대한 양의 글과 저서들을 남겼는데, 일련정종이나 창가학회의 신자들이 고쇼(Gosho)라고 불리는 니치렌(Nichiren) 스님의 글을 중심 교리로 배우는 것과 달리 일련종은 이를 부처님 말씀인 법화경을 설명해주는 해석서로 보며, 법화경 이외에도 사성제나 팔정도와 같은 부처님의 다른 가르침도 함께 공부한다. 일련종은 일련정종이나 창가학회에서 택하고 있는 니치렌 스님의 고쇼(Gosho)가 일부 왜곡되어 해석되고, 니치렌 스님의 글이라는 역사적 고증을 거치지 않은 불분명한 문헌들도 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닛폰잔 묘호지 대승가 (日本山妙法寺大僧伽, Nipponzan-Myōhōji-Daisanga)의 창시자인 니키다츠 후지 (Nichidatsu Fujii, 1885-1985) 스님은 일련종(니치렌-슈, Nichiren-shū)을 통해 계를 받으신 스님으로, New England Peace pagoda 의 스님들은 일련종의 총본산인 쿠온지(Kuon-ji) 사찰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니키다츠 후지 (Nichidatsu Fujii, 스님                   



    니키다츠 후지(Nichidatsu Fujii) 스님과 마하트마 간디의 만남
    승려로서의 삶을 살고자 했던 니키다츠 후지 (Nichidatsu Fujii, 1885-1985) 스님은 19살에 일련종에서 계를 받고 정식 스님이 되었다. 오랜 수행을 통해 후지 스님은 북을 치면서 “나무 묘 호 렌 게 교(Namu Myo Ho Ren Ge Kyo)를 염송하는 독자적인 수행법을 완성했다. 일련종 최상위의 대보살인 니치렌(Nichiren) 스님의 예언을 따르는 것이 승려로서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후지 스님은1930년 인도 순례에 오른다. 서아시아, 즉 인도지역에서 시작된 불교가 동아시아로 옮겨갈 것이고, 동아시아로 온 불교는 다시 서아시아로 꼭 돌아가야 한다는 니치렌 스님의 예언에 따라 직접 불교를 인도에 알리기 위해서 였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간디의 무저항 비폭력 정신을 바탕으로 한 평화적인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스님은 기도를 하며 계속 걸었다. 하지만 불교 승려를 관심있게 보는 사람들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온 스님이 손에 든 작은 북을 치며 평화를 염원하는 순례를 하고 있다는 소식은 전해 들은 간디는 후지 스님을 자신의 아쉬람(공통체)에 초대했고, 그렇게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아쉬람에 머물며, 간디의 철학과 사상에 큰 감동을 받았던 후지 스님은 더욱 적극적으로 평화 운동에 전념하기 시작했고 간디는 후지 스님에게 그루지(Guruji)라는 이름을 지어 주기도 했다. 특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의 참상은 후지 스님이 세계 곳곳에 평화의 탑을 짓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54년 일본 구마모토에 첫 번째 평화의 탑(Peace Pagoda)이 세워졌고, 이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도 평화의 탑이 세워졌다.


    후지 스님이 세운 평화의 탑(Peace pagoda)은 인도의 전통적인 불탑 양식을 본 떠 지어졌다. 아래 부분은 둥글고 커다란 돔 형태로 되어 있고, 그 위에 안테나 모양의 첨탑이 올려져 있는데, 특히 평화를 염원했던 인도 아쇼카 왕의 업적을 존경했던 후지 스님은 아쇼카 왕의 산치(Sanchi)유적 중심에 있는 대탑(Great Stupa), 보통 산치 대탑(Sanchi Great Stupa)으로도 불리는 그 불탑 모양에서 평화의 탑(Peace Pagoda) 디자인을 빌려왔다. 인도에는 현재 산치 대탑(Sanchi Great Stupa)에서 영감을 얻은 후지 스님의 평화의 탑(Shanti Stupa)이 6개 있고, 인도 뿐만 아니라 네팔, 아시아, 유럽,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는 약 80개의 평화의 탑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샨티(Shanti)는 산스크리트어로 ‘마음의 평화, 평안’을 의미한다.


    왜 뉴 잉그랜드(New England)?
    불탑은 치유의 기능과 동시에 교육의 기능도 함께 있는 수행의 좋은 동반자라고 클레어 카터(Clare Carter) 스님은 말한다. 탑은 그 존재 자체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기도를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뉴 잉글랜드 평화의 탑(New England Peace pagoda)은 모두에게 그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불자이건 불자가 아니건 상관없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찾아와 불탑을 돌며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클레어 카터(Clare Carter) 스님은 한사람 한사람의 작은 평화가 충분히 모여졌을 때 비로소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변화는 안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평화의 탑은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를 상기시켜 주는 시각적 대상이자, 내면의 평화를 배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작은 개인 법당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평화의 탑은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와 같이 큰 아픔이 베어 있는 장소에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1985년에 완공된 뉴 잉글랜드 평화의 탑(New England Peace pagoda)은 미국에 세워진 첫 번째 평화의 탑이었다. 그런데 왜 뉴 잉글랜드였을까? 미국은 많은 전쟁과 폭력의 역사를 통해 세워진 나라다. 유럽인들은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많은 미국 원주민(Native American)들을 살해했고, 그들에게 가해진 유럽인들의 폭력은 나치로부터 유대인들이 겪었던 홀로코스트보다 몇 배 더 가혹했다. 또 노예무역으로 아프리카에서 잡혀 온 수 만명의 흑인들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던 참혹한 역사가 있다. 뉴 잉글랜드(New England)는 이러한 미국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모든 아픔이 시작된 곳, 그 아픔의 뿌리를 치료한다면 미국이 안고 있는 상처들을 조금 더 빨리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던 후지 스님의 평화에 대한 열망이 뉴 잉글랜드에 미국 최초의  평화의 탑(New England Peace pagoda)은 건립하게 된 이유였다고 한다.



    법당에 걸려 있는 간디사진   


    법당에 걸려있는 후지스님 사진   


    주지 카토스님과 클레어 카터 스님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되는 사찰
    뉴 잉글랜드 평화의 탑 사찰은 두 명의 스님과 한 명의 비구니 스님이 상주하는 절이다. 니키다츠 후지 (Nichidatsu Fujii, 1885-1985) 스님의 일본인 제자였던 교웨이 카토(Gyoway Kato) 스님이 사찰의 주지스님이다. 총 면적이 약 30 에이커 정도 된다는 사찰 부지의 맨 위쪽 언덕에는 평화의 탑(Peace pagoda)이 서 있고, 고혼존(Gohonzon)이라고 불리는 “묘법연화경”이라고 쓴 니치렌 스님의 붓글씨가 비석으로 만들어져 한 쪽에 서 있었다. 평화의 탑 왼쪽으로 법당 건물이 있었는데, 부처님이 열반에 들었던 인도 쿠시나가르 성지의 건축 스타일을 이용했다고 한다. 인도 아잔타 석굴의 느낌을 살려 디자인 했다는 법당 안에는 거대한 황금빛 불상과 그 뒤로 고혼존(Gohonzon)이 걸려 있었다. 법당 한 쪽에는 니키다츠 후지 (Nichidatsu Fujii) 스님의 사진과 마하트마 간디(Mohandas Gandhi)의 사진이 함께 걸려 있었는데, 두 분의 깊은 인연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법당에 있는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 스님들이 생활하는 요사채 공간이 법당과 연결되어 있었다.

    뉴 잉글랜드 평화의 탑 사찰은 아침 저녁으로 매일 예불을 드린다. 누구든지 원하면 예불에 참석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사찰은 석가탄신일, 평화의 탑 건립 기념일, 백중(오봉). 평화 걷기(Peace Walk) 등 여러 연중행사들이 있었는데, 회원제 방식이 아닌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모든 행사들을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었다. 인연이 오래된 신자들과 그 가족이나 지인들이 필요에 따라 자신들의 재능을 기부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1985년에 완공된 평화의 탑(Peace pagoda)은 약 1년 6개월 정도의 공사기간이 결렸는데, 따로 후원금을 모으거나 하지 않고, 약 1000명에 가까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부모를 따라 온 어린 아이들의 작은 손이 나르던 흙 한줌이 모여 이 거대한 탑이 완성되었다며, 진정한 평화란 이렇게 작은 마음들이 하나로 모아질 때 완성된다고 스님은 말했다. 



    법당 내부모습 . 일반법당과 조금 다르게 고혼존(Gohonzon)을 크게 모신다.


    김형근 발행인과 주지 카토 스님                 


    피스 파고다 스님들   



    종교와 사회운동의 경계에 서다
    닛폰잔 묘호지 대승가 (日本山妙法寺大僧伽, Nipponzan-Myōhōji-Daisanga)의 창시자인 니키다츠 후지 (Nichidatsu Fujii, 1885-1985) 스님의 화두는 “평화”였다. 따라서 사찰이 지향하는 수행의 방향 역시 평화다. 사찰은 그동안 반핵, 반전과 같은 평화 운동, 환경 문제, 교도소 개혁, 사형 폐지, 대서양 횡단 노예 무역에 대한 속죄 등을 알리기 위한 수많은 종교 간 걷기를 주최해 왔다. 그래서인지 뉴 잉글랜드 평화의 탑 사찰은 서양에 존재하는 모든 불교의 틀을 깨뜨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탑 중심의 전통적인 순례 수행 방식을 현대로 가져와 세상을 치유하는 불교의 역동적인 힘을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클레어 카터(Sister Clare carter) 스님은 불교란 행동하는 종교라고 말한다. 중생의 삶 속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고, 호흡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살의 삶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일 년이 넘는 대장정 프로젝트였던 노예 무역을 속죄하는 대서양 횡단 순례는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서 시작해 카리브해(Caribbean)을 지나 서아프리카(West Africa)로 향하는 당시 노예무역선이 지나온 길을 역으로 걸어가 보는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역사의 현장을 걸으며, 역사를 바로 알고, 함께 평화를 기도했다고 한다. 세상을 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만큼 아주 강력하고 값진 경험이었다고 클레어 카터(Sister Clare carter) 스님은 그 때의 경험을 회상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뉴 잉글랜드 평화 탑 사찰은 식민지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미국 뉴 잉글랜드 지역 원주민(Native American)들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배우고 인정하기 위해 미국 원주민(Native American) 지역을 방문하는 평화의 걷기(Peace Walk) 운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이러한 평화의 걷기 운동은 종교와 인종을 넘어 모두가 참가할 수 있고, 해마다 조금씩 일정이 변하지만, 참가자들은 메인(Maine),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로드 아일랜드(Rhode Island), 코네티컷(Connecticut)에 있는 유럽 정착민들의 초기 원주민(Native American) 학살 현장을 방문하기도 한다. 사찰은 지역사회의 시민운동 단체들이나 종교 단체들의 지원과 동참을 통해 행사를 조직하고 운영하고 있다. 

    사찰은 반핵과 반전 등의 운동에도 적극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Walking for a Nuclear Free World in Indian Point도 그 중 하나였다. 주지 스님이신 교웨이 카토(Gyoway Kato) 스님과 참가자들은 뉴욕 주에 있는 Indian point 원자력 발전소에서 평화의 걷기 행사를 열었다. 스님과 참가자들은 향을 피우고, 함께 북을 치며, 평화를 염원하는 “나무 묘 호 렌 게 교(Namu Myo Ho Ren Ge Kyo)” 기도를 했다. 클레어 카터(Sister Clare carter) 스님은 이러한 행위에는 타인(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한 조금의 원망이나 비난이 섞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북을 치고 기도를 하는 행위는 기도를 하고 있는 그 사람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평화를 끌어올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통해 자신 안에 충만해진 평화에너지를 꺼내 세상 밖으로 전달하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평화행진 장면     




    낮에 평화 행사 마치고, 저녁에 이런 강당등에서 토론이나 행사에 대한 설명을 한다.    



    불교와 미국 평화운동과의 만남
    간디는 평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이 타고난 본래 신성(godliness)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우리가 인간임을 부정하지 않는 한 평화란 인류가 갖고 있는 권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폭력을 생산하는 국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감옥에는 죄수가 넘쳐나고, 미국의 외교는 폭력과 살상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화를 수행의 가장 큰 과제로 생각했던 니키다츠 후지 (Nichidatsu Fujii, 1885-1985) 스님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잠자고 있는 평화를 깨울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도 일찍이 퀘이커(Quaker) 교도들의 반전 운동을 비롯해서 1, 2차 세계대전에서의 징집거부 운동, 여성의 낙태반대 운동, 반전, 반핵운동, 1968년에 시작한 케네디 대통령의 평화군 운동 등 다수의 평화 운동들이 있었다. 한 명의 일본 승려가 전 세계에 약 80 개의 평화 탑을 세울 수 있었다는 건, 미약하지만 평화의 가치를 알고,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뉴 잉글랜드 평화의 탑(New England Peace pagoda)은 평화를 열망하는 이러한 두 그룹의 의미있는 만남이 만들어낸 위대한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통한 평화
    우리는 “평화”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여러 곳에서 듣게 된다. 때론 너무 정치적이란 느낌이 들어서인지 “평화”라는 말을 평화롭게 들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님 “평화”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전쟁”, “폭력”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진지하게 평화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번 뉴 잉글랜드 평화의 탑(New England Peace Pagoda) 취재를 통해 필자는 “평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특히 클레어 카터(Sister Clare Carter) 스님의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평화를 깨우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라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개개인이 만든 작은 평화들이 모여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씀도 무슨 의미인지 왠지 알 것만 같았다. 마치 “평화”라는 거대한 쿠키를 먹을 수 있는 알맞은 크기로 받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평생을 그렇게 수행해 온 “평화”의 살아있는 화신이 바로 필자의 눈 앞에 있었다. 필자에게 누군가 평화란 무엇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아마 클레어 카터(Sister Clare Carter) 스님의 모습이 떠오를 것 같다.


    연꽃과 수련이 있는 연못   



    하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참상을 목격한 후, 평화의 탑을 짓는 불사를 시작했다는 후지 스님의 행보에뭔가 찜찜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필자가 한국 사람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최근 뉴스에서 한국에도 원자탄이 떨어지던 그때 히로시마에 있었던 원폭피해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폭의 피해는 1세대 원폭 피해자들 뿐만 아니라 2세, 3세그리고 4세들에까지 각종 유전적 질병과 선천성 기형이 발견되며 그들은 고통의 삶을 살고 있었다. 정말 원자폭탄이 지구상에떨어지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삶이 너무 힘겨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베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위정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며 과거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없이 적극적평화주의라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 표현은 적극적 “평화”주의 였지만, 그 의도는 군사작전에서 선제적 기지 공격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꼼수였다. 전쟁과 같은 비극이 이 지구상에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아마 모든 사람들의 염원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사의 반성없이 외치는 평화는 공허한 울림일뿐이다. 필자는 만약 후지 스님이 태평양 전쟁을 통해 일본이 동아시아에 저지른 침략의 만행과 잔혹한 학살의 역사에 대한 언급과 함께 평화를 위한 불사를 하셨다면, 그의 발자취가 더욱 빛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주소: 100 Cave Hill Rd, Leverett, MA 01054
    연락처: (413) 367-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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